김은정 선임기자
 
   책장 맨 위,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올려놓은 책들은 대개 오래되었지만 자주 찾지 않게 된 것들이다. 그중에는 아무래도 사전류가 많다. 언제 적 샀던 것인지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 국어, 한자, 영한, 영영사전이나 마음먹고 샀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같은류다. 이 사전들은 책장을 정리하면서 ‘이번에는 없애자’고 마음먹고 꺼내놓았다가 번번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게 되는 것들인데, 그 쓰임은 적어졌으나 아직은 존재감(?)이 있다는 증거겠다.
사전은 ‘어떤 범위 안에서 쓰이는 낱말을 모아서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여 싣고 그 각각의 발음, 의미, 어원, 용법 따위를 해설한 책’을 이른다. 인터넷상의 해설에는 ‘최근에는 콤팩트디스크 따위와 같이 종이가 아닌 저장 매체에 내용을 담아서 만들기도 한다’는 설명이 덧붙여있다.
역사상 가장 오래된 사전은 고대 수메르인들이 만든 <우라 후불루 용어집> 으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2300년 경 쓰인 아카드 제국의 쐐기문자 조각으로 남은 이 용어집은 수메르인어의 낱말 목록을 표준화한 것인데, 그 뒤로 이어진 사전을 보면 단어나 사투리, 전문 용어 등의 뜻풀이부터 호메로스 작품 용어집 같은 특정한 분야를 다루는 사전까지 그 확장과 쓰임의 발전이 흥미롭다. 백과사전도 그 중의 하나인데, 인간과 문화, 사회, 생활, 학예 전반에 관한 사항을 통합 분석하고 정리해 해설한 백과사전은 단순히 객관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문명을 바라보는 시각과 삶과 지식의 보고다. 백과사전의 기원인 고대 로마시대 박물학자 플리니우스의 <박물지> 도 고대세계의 천문 지리 인문 자연학 등 다방면에 걸친 지식을 집대성 한 것으로 고대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문헌으로 평가 받는다. 박물지> 우라>
종이책 형식에 의존했던 사전은 이제 그 형식과 쓰임이 크게 달라졌다. 인터넷 검색으로도 모든 정보와 지식의 공유가 가능해진 시대, 디지털의 시대가 가져온 변화다. 종이책과 전자책이 공존하는 환경에서 종이책은 위협받는 존재가 됐다. 종이사전 역시 그 처지가 다르지 않다.
뜻밖에도 종이사전 판매량이 늘었다는 소식이 있다. 교보문고가 발표한 올해 상반기(1월 1일~6월 13일) 어학사전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1.4%가 증가했단다. 특히 국어사전 판매율은 140%나 늘었다. 구매 독자층은 40대 여성이 39.5%로 가장 높다. 교보문고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자녀들의 학습공백이 학력 격차로까지 이어지는 상황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배경이야 어떻든 고전을 면치 못했던 종이사전이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증거일터. 종이사전의 귀환이 반갑다.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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