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치부 들추기 무속 논란 횡행
국가 미래 비전 국민 통합은 뒷전
독일 재건한 메르켈의 리더십 필요
정말 희한한 대통령 선거다. 이제껏 이런 선거전은 없었다. 후보를 둘러싼 폭로전과 흠집 잡기, 고소·고발이 난무하는 데다 세대별 계층별 성별 갈라치기가 횡행한다. 게다가 뜬금없는 무속 논란까지 증폭되면서 대선이 아사리판으로 전락하고 있다. 혼돈과 혼란에 빠진 유권자들은 선거 혐오감만 팽배하다. 이래서야 어떻게 국가 지도자를 뽑고 제대로 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을까.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치닫는 선거전은 끝나도 문제다. 초박빙의 승부가 예견되는 가운데 누가 대권을 잡든 패배한 쪽은 인정하려 들지 않을 것 같다. 지금껏 지켜봐 왔지만 야당이 되면 사사건건 시종일관 딴죽걸기만 해왔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협치는 뒷전이고 오직 당리당략과 집권에만 함몰됐다. 누가 당선돼도 걱정이다. 무작정 남발한 선심성 공약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천문학적인 재원은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선거 망국론이 나오는 이유다.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은 매우 엄중하다. 날로 고조되는 북핵 위협에다 미·중 간 패권전쟁 틈새에서 우리는 위기에 직면해있다. 기후 재앙과 코로나19 사태가 지구촌을 흔들고 문화 충돌과 국가 간 갈등은 세계적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내적으로는 인구 격감으로 인해 국가 소멸 위기에 처해있다. 청년 실업률이 급증하면서 젊은 층은 희망을 잃어가고 수도권만 키운 탓에 지방은 설 자리를 잃었다. 투기 광풍과 집값 폭등에 상대적 박탈감이 더 커지면서 국민의 마음은 상처투성이다.
그런데도 나라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대선 후보들이 국가 미래 비전 제시나 국민 통합에 나서기보다는 되레 지역과 세대 계층 간 갈등만 부추긴다. 정책은 뒷전이고 치부 들추기로 반사이익만 노린다. 국정농단의 후유증이 가시지 않았는데도 선거판에 무속인이 오르내리고 주술 논란이 증폭되니 한심할 따름이다.
지난해 12월 전 국민으로부터 박수받으면서 퇴임한 독일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이 부럽다. 16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난 메르켈 총리는 임기 말 지지율이 80%에 달했을 정도로 국민적 인기를 누렸다. 그는 총리 관저를 마다하고 작은 아파트에서 살면서 퇴근 후에는 마트에서 장을 보는 등 소박한 삶으로 국민에게 다가갔다. 그가 총리에 취임한 2005년 독일은 동·서독 통일 비용 증가로 재정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청년실업률은 11%에 달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여기에 유럽 재정금융위기까지 덮쳤다.
내우외환의 위기 속에서 그는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부드러우면서도 조용히, 그리고 일관되게 자신의 정책을 추진해나갔다. 그리스 구제 금융과 이탈리아 재정위기, 이란 핵협상,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 등 수많은 난제를 풀어가면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조롱에도 국제 난민 문제를 해결하고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맞아 EU 회원국을 설득해가며 1048조 원 규모의 경제회복기금을 조성해 유럽 통합의 상징이 됐다. 보수당 출신이지만 소속 정당의 입장에 매몰되지 않고 토론을 통해 국민적 공론을 형성해가면서 쟁점 법안과 국정 현안을 풀어냈다. 포용력과 중재,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리더십으로 그는 독일을 재건했고 명실상부한 EU의 맹주로 올려놓았다. 그와 정파가 다른 인사들도 그의 재임기간을 메르켈의 시대, 독일의 황금기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람들은 메르켈의 실용주의와 통합의 리더십을 일컬어 ‘메르켈리즘’(Merkelism)이라고 부른다.
우리 대선 후보들도 입으로는 통합과 실용주의를 외친다. 하지만 내놓은 정책과 언행을 보면 국민 통합과는 거리가 멀다. 표만 된다면 편 가르기도 서슴지 않고 국가 재정 따윈 안중에도 없다. 지금 우리에겐 메르켈 같은 지도자. 메르켈리즘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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