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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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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벗어나 어디든 훌쩍 떠나고 싶은 계절이다. 들녘에선 매서운 겨울 한파를 이겨낸 보리가 봄 햇살에 쑥쑥 자라난다. 짙은 초록으로 물든 보리밭은 특별한 봄날의 정취를 만들어낸다. 싱그러운 초록의 향연이다. 하지만 들판에 나가도 보리밭 보기가 쉽지 않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 보리를 파종했던 농민들이 어느 때부턴가 ‘돈 안 되는 보리’ 대신 비닐하우스를 세워 채소·원예작물을 가꾸거나 아예 땅을 놀리면서 보리밭은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우리나라에서 쌀 다음가는 주곡이었던 보리는 이제 경관농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농지와 농작물을 활용해 조성한 운치 있는 경관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해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 농업이다. 이맘때면 고창 학원농장과 제주 가파도·포항 호미곶·보령 천북폐목장 등 전국 곳곳의 청보리밭 명소에 나들이객들이 몰린다. 이 중 가장 인기를 끄는 곳은 고창군 공음면의 학원농장이다. 고창군은 이곳에서 매년 봄 청보리밭 축제를 연다. 올해로 벌써 20회째다. 살랑바람에 파도처럼 넘실대는 청보리밭은 도시인들에게 녹색 쉼터가 된다.

쌀이 부족했던 시기, 보리는 중요한 식량자원이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가을에 거둬들인 쌀이 바닥나고 추수 후 논에 심은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아 극심한 식량난을 겪어야 했던 봄철, 우리네 삶이 험난한 고개를 힘겹게 넘어가는 것과 같다고 해서 이를 빗대어 부른 용어다. 1970년대에는 정부가 ‘혼·분식 장려운동’을 정책적으로 펼쳤다. 흰 쌀밥 대신 보리 등 여러 잡곡을 섞어 먹거나 밀가루 음식을 먹자는 캠페인이다. 표현은 ‘장려’였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적인 방법이 다수 동원됐다. 주식인 쌀의 생산량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다. 

그리고 이제는 쌀이 남아도는 시대다. 품종개량과 농업의 기계화로 생산량이 크게 늘어난 쌀은 어느 순간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과거 ‘혼·분식 장려운동’처럼 ‘쌀 소비촉진 캠페인’이 펼쳐지고는 있지만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국민 주식 쌀은 과잉생산으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고, 보리는 구경거리가 돼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쌀 소비량이 줄어 쌀값이 폭락한다면 벼농사도 조만간 보리처럼 다른 각도에서 대안을 찾아야 할 수도 있다. 정부가 쌀 과잉생산 문제를 풀기 위해 벼 재배면적 축소 정책에 강도를 높일 게 뻔하다. 결국 농민들도 쌀보다 돈이 더 되는 체험·관광 목적의 벼농사로 눈을 돌릴 지 모른다. 마치 숲체험장처럼 황금물결 넘실대는 들판을 ‘농경체험장’으로 꾸며놓고 옛 정취를 갈망하는 도시인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거나 아동·청소년 대상의 체험학습장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실제 벼농사를 관광자원화하는 사업이 곳곳에서 추진됐다. 추수철 황금벌판에서 농경문화 체험을 테마로 열리는 김제 지평선축제에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리고 있으니 그렇게 멀리 볼 일만도 아니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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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 #경관농업 #관광자원화 #벼농사
김종표 kimjp@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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