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버티기 힘든 자영업 소상공인의 겨울은 유난히 춥고 혹독하다. 실물 경기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당장 문을 닫고 싶어도 빚더미에 허덕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은행권에서 빌릴 수 있는 돈은 죄다 가져다 썼기 때문에 이젠 기댈 언덕조차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말 그대로 하루하루가 피를 말리는 고통의 연속이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자영업자 대출은 313만명에 1043조2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다. 같은 기간 연체액도 1조원 늘어난 7조3000억원으로 역대급이다. 얼마 전 금융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특례보증 대출이 오픈런을 통해 삽시간에 마감되면서 돈줄이 막힌 시중의 자금 사정을 여실히 보여줬다.
정치권의 때아닌 ‘횡재세’ 도입 논란도 이 때문이다. 천문학적 영업 이익을 거둔 은행권을 정조준해 고금리 장사로 배를 불리는 만큼 이자 부담에 허덕이는 서민들을 도와달라는 것이다. 오죽하면 윤석열 대통령도 이 문제를 언급 “은행권은 강력한 기득권층이다. 이들의 독과점 행태를 정부가 방치해선 안된다” 며 전면적 쇄신책을 주문했다. 금융 수장들도 이 같은 기류에 적극 호응하며 은행의 사회적 기여를 공개적으로 강조했다. 금감원장은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를 합친 것보다 은행권 영업 이익이 더 많다며 개선 의지를 시사하기도 했다. 민주당도 국민 70% 이상이 동의한다며 입법 추진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런 전방위 고강도 압박에 은행권도 일단 보조를 맞추는 모양새다. 정부가 밝힌 “고객들이 납득하고 체감할 수 있는 수준” 에 부응하기 위해 이자 부담을 줄이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과거에도 소나기를 피해 가듯이 생색내기에 그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와 같은 눈가림식 일회성 퍼포먼스는 지금의 상황에서 오히려 역풍을 불러일으켜 부메랑을 맞기 십상이다. 실제 유럽 일부 국가에선 이 제도를 활용해 고객 이익으로 되돌려 주고 있다. 올해 3분기 5대 시중은행의 누적 이자 이익은 30조 936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4% 증가했다. 30조를 넘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은행은 서민들이 돈 필요할 때 빌릴 수 있는 다정한 이웃이다. 주로 고객 이자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인데도 문턱이 너무 높은 게 문제다. ‘상생 협력’ ‘동반 성장’ ‘든든한 가족’ 이란 슬로건 이미지와는 달리 고객 대출을 좌우하는 건 결국 신용등급, 담보, 연체 등이다. 코로나를 겪으며 유례없는 경제난 속에 겨우 돌려막기로 연명하는 자영업 소상공인에게 이 같은 전제 조건은 대출을 못해주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횡재세 논란이 불거진 것도 말만 번지르르 하기 보다는 슬로건처럼 실천하라는 일종의 압박 전략이다. 오랜 기간 거래하던 신용 우수 고객이 뜻하지 않은 경영난에 봉착했을 때 그들은 도움을 주기는커녕 리스크 관리에만 혈안이 된다. 한마디로 비올 때 우산을 뻿는 식이다. 김영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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