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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재점화된 ‘새만금 복합리조트’ 긍정적 검토를

새만금 복합리조트 개발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새만금 관광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호텔과 쇼핑몰·컨벤션·스포츠시설·테마파크·카지노 등 다양한 시설과 기능을 갖춘 복합리조트 개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다시 나오고 있다. 지난 2016년 국회에서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를 새만금 프로젝트에 반영하려는 입법 논의가 있었지만 도민 반대와 법적·사회적 공감대 부족으로 진전되지 못하고 수그러들었다. 이후에도 전북에서는 새만금 내부개발을 촉진할 마중물로 글로벌 수준의 복합리조트 개발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6일 문화체육관광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호남에는 왜 없냐’며 카지노의 지역편중 문제를 제기하면서 전북도가 추진해온 새만금 글로벌 복합리조트 사업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그리고 18일에는 전북특별자치도발전연합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새만금에 오픈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를 유치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과거 숱한 논쟁 끝에 수그러든 사안이지만 지금의 환경은 과거와 분명히 다르다. 새만금 개발이 장기간 답보 상태에 놓여 있고, 새만금사업의 성패를 가늠할 시험대인 관광·레저용지 역시 뚜렷한 활용 해법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복합리조트 논의를 무조건 배척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동안 새만금은 관광·레저와 산업단지, 재생에너지, 스마트 수변도시 등 다양한 개발 구상이 제시되고 추진됐지만, 가시적 성과는 제한적이었고 도민들의 기대에도 못 미쳤다. 복합리조트는 단순한 카지노 논쟁을 넘어, 새만금 전체 개발 전략을 재점검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물론 내국인 카지노 허용 여부는 여전히 민감한 쟁점이다. 사행성 산업에 대한 우려, 지역사회 부작용, 법·제도적 한계는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우려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논의 자체를 봉쇄해서는 안 될 일이다. 경제적 효과와 사회적 비용을 객관적으로 따지는 공개적이고 투명한 검토 과정이 필요하다. 해외 유명 관광지들은 복합리조트를 단순 도박시설이 아닌, 숙박·컨벤션·공연·쇼핑·레저가 결합된 고부가가치 관광 인프라로 활용하고 있다. 이 같은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새만금 복합리조트 개발 사업은 지역 경제 활성화와 새만금 개발의 상징적 성과 창출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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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전주시의회 감시보다 자정노력 급하다

남의 눈 속의 티끌은 용케도 잘도 보면서 막상 자기 눈에 든 들보는 보지 못하고 우를 범하는 이들이 있다. 지금의 전주시의회가 딱 그런 격이다. 집행부에 대해서는 견제와 감시 기능을 이유로 사소한 것도 트집을 잡으면서도 막상 의회 운영이나 의원들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한게 바로 전주시의회의 현재 모습이다. 작금의 전주시의회 운영 실태를 보면 실망을 넘어 개탄스럽다.요즘 전주시의회는 윤리특별위원회의 징계 수위 결정을 두고 파열음이 일고 있다. 전주시의회 윤리특위가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의 징계 수위는 낮춘 반면, 소수인 정의당 소속 의원의 징계 수위는 높인 것이 발단이 됐다. 당사자인 한승우 의원은 “소수 정당 표적 징계”라며 반발하는 반면, 최주만 윤리특별위원장은 “군소 정당 정치 탄압 주장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하고 있다. 의회 내부의 논란과는 별개로 유권자인 주민들의 시각에서 볼때 참으로 개탄스럽다. 전주시의회 윤리심사자문위는 최근 최용철·전윤미 의원에 대해서는 ‘공개 사과’, 행정위원회 소속 의원과 한승우·이국 의원에 대해서는 ‘공개 경고’를 권고했다. 그런데 윤리특위는 전윤미·한승우 의원에게 ‘공개 사과’ 결정을 내렸다. 한승우 의원은 공개 경고에서 공개 사과로 징계 수위가 올라갔다. 행정위원회 소속 의원 7명(최용철·김동헌·김성규·이기동·이남숙·최명권·장재희), 이국 의원에 대해선 ‘공개 경고’ 처분을 의결했다. 최용철 의원은 공개 사과에서 공개 경고로 징계 수위가 내려갔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정의당 한승우 의원도 딱히 뭘 잘한거 같지는 않지만, 어쨋든 민주당 일당 독점의 전주시의회가 자정능력을 상실한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아닌게 아니라 L 모 의원은 자신과 가족이 소유한 건설업체가 전주시와 18건의 수의계약을 체결해 감사원에 적발됐는데도 당당히 의장에 출마해 당선된 바 있다.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대통령 탄핵과 산불 비상 상황속에서도 관광성 연수를 하는 등 중대한 사안에 대해 낮은 징계를 내린 것도 시민정서와는 크게 엇갈리는 부분이다. 솔직히 소상공인 지원 예산을 자신이나 지인이 운영하는 업체에 몰아줬다는 의혹을 받은 전윤미 의원의 경우 변명의 여지가 없으며, 배우자가 소속된 기관과 관련해 이해충돌 논란이 제기됐던 한승우 의원도 명쾌하게 해명하고 사과및 재발방지책을 내놓는게 마땅하다.

오목대

노인일자리 사업의 방향

“집에만 있을 때는 건강이 안 좋았는데 일을 하게 되니까 몸도 좋아지고 사람들하고 함께 얘기할 수 있으니 마음도 편하죠. 자식들한테 용돈 달라고 손 벌리지 않아서 좋고…” 3년째 전주에서 길거리 청소에 나서고 있는 70대 후반 노인의 말이다. 이 노인은 일주일에 2∼3번 아침 일찍 나가 담배꽁초를 줍거나 잡초 제거 등의 일을 한다. 이처럼 노인일자리 사업은 노인들에게 소득과 건강 개선, 사회적 관계 형성에 기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만족도가 꽤 높은 편이다. 정부 재정으로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노인일자리 사업은 공익활동사업(옛 공익형)과 역량활동사업(사회서비스형) 및 공동체사업단(시장형)으로 나뉜다. 또 인턴십, 취업알선형 등 민간재원을 활용한 사업도 있다. 공익활동형은 65세 이상 기초연금 수급자가 대상이며 월 30시간 일하고 29만원의 활동비(연중 11개월)를 받는다. 노인역량활동사업은 60세 이상으로 주 5일간 하루 3시간씩, 월 60시간 일하고 월 76만원 가량(연중 10개월)을 받는다. 공익활동형은 업무강도가 낮은 자원봉사 형태로 복지사업에 가깝다. 반면 노인역량활동사업은 최저임금과 사회보험이 적용되는 일자리로 취업통계에 잡힌다. 이러한 노인일자리 사업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처음 실시됐다. 그전까지 노인복지는 주로 현금이나 현물급여 방식이었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OECD 등에서 생산적 복지와 활동적 노화 개념이 도입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우리나라도 활동적인 노인이 많고 공적연금이 충분치 않다는 점에서 도입되었다. 2004년 첫해에는 2만5000개에 국비 213억원이 투입되었으며 2026년에는 115만2000개에 2조3851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이중 전북의 경우 2026년에 8만9633명이 참여한다. 이는 65세 이상 인구의 19.1%로 전국 평균 9.3%의 두 배를 넘는다. 그만큼 전북이 고령화됐고 민간의 좋은 일자리가 없다는 뜻이다. 이 사업의 개선 방향을 꼽아보면 첫째, 일자리가 너무 부족하다는 점이다. 올해의 경우 수요 대비 충족률이 46.3%에 불과해 경쟁이 치열하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노인은 더욱 소외되는 결과를 낳았다. 둘째, 담당자의 처우 문제다. 지난해 기준 시니어클럽과 대한노인회 등의 노인일자리 담당자는 6520명으로 1인당 142.3명을 담당했다. 이들은 과도한 업무량과 낮은 임금, 고용불안 등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1년 계약직이 대부분으로, 실제 무기계약직 및 정규직 전환은 16.4%에 그쳤다. 셋째, 역량활용형의 대상이다. 이 유형은 건강하고 수준 높은 베이비붐 세대들이 가장 선호한다. 하지만 일부에서 높은 연금을 받는 화이트칼라들이 자리를 대부분 차지한다고 볼멘소리가 나온다. 노후에 일자리는 최고의 복지다. (조상진 논설고문)

데스크창

“청곱창김 위기, 적극행정 없이는 산업도 없다.”

‘청곱창김(학명: 하이타넨시스)’을 둘러싼 논란이 ‘바다의 검은 반도체’라 불리는 김 산업 전반을 흔들고 있다. 최근 국립수산과학원(이하 수과원)은 청곱창이 중국산 단김과 유전적으로 유사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국내 해역에는 단김이 자연 서식하지 않는다”고 단정했다. 청곱창의 국내 자연발생 가능성을 전면 부정한 것으로, 이 판단이 행정에 적용될 경우 어민들은 하루아침에 ‘불법 종자 취급자’로 내몰릴 수 있다. 중국산 단김은 국내 생산과 유통이 금지된 품종이기 때문이다. 반면 수년간 지역 해역에서 청곱창을 양식해 온 어민들과 배양업체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한다. 이들은 “단순한 외래종 도입이 아니라 과거 지역 해역에서 자연산으로 보이는 개체를 채취해 10년 넘는 실패와 재도전을 반복한 끝에 지금의 청곱창을 배양했다”고 주장한다. 정부기관의 분석과 어민들의 현장 경험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이 충돌은 즉각적인 산업현장의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단속 우려로 신규 양식시설 설치는 멈췄고, 기존 양식 규모도 축소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현행 식품위생법이 합법적인 가공원료를 참김·둥근돌김·모무늬돌김·방사무늬김·잇바디돌김으로 한정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청곱창이 단김으로 판정될 경우 양식·가공·유통이 모두 제약받는다. 현실과 행정이 엇박자를 보이는 법적·행정적 불확실성이 산업 전반을 옥죄는 형국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대목은 정책이 기후변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연안 수온 상승이 일상화된 지금, 고수온에서도 생장 가능한 청곱창과 같은 품종은 지역 특산물을 넘어 미래대비 전략자원이다. 실제 동해에서만 잡히던 오징어가 서해에서 대량 어획되는 사례처럼 해양 생태계는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성을 통한 새로운 양식 전략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다. 그럼에도 청곱창을 신품종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행정적 판단의 기준과 배경이 무엇인지, 그 기준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점 역시 논란을 키우고 있다. 불투명한 검증 체계와 제한된 정보만으로 산업화 여부가 좌우되는 상황은 국가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단속 중심의 접근으로는 갈등만 확대될 뿐이다. 기후변화 등 외적인 변화의 흐름에 맞춰 품종등록제도 정비, 합법적 재배기준 마련, 산업 지원 정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농업분야가 국가등록품종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한 사례는 이미 충분하다. 청곱창 문제는 단순한 품종 논쟁이 아니다. 지역경제, 어민의 생계, 산업화 전략까지 걸린 복합적 의제다. 과학과 제도가 조화롭게 작동할 때만 합리적 해법이 나온다. 정부기관이 적극행정을 통해 신뢰를 구축할 때만 어민들은 불안을 덜고 안정적인 생산을 이어갈 수 있으며, 지역의 산업화 전략도 현실성이 생긴다. 단순한 유전자 유사성만으로 산업화와 유통을 제한하는 접근은 너무 섣불리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예측 가능한 변화를 반영하는 적극 행정이 뒷받침될 때, 청곱창은 고군산군도, 나아가 우리나라의 미래 수산자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변화를 반영치 않는 행정은 탁상행정이며 국민을 옥죄기만 하는 죽은 행정이다. 제자리걸음 행정이 아니라, 현장을 믿고 변화에 맞춰 제도를 바로잡는 용기가 지금 정부에 필요하다. 군산=문정곤 기자

딱따구리

[딱따구리] 불법을 감내하라는 익산시의회

익산로컬푸드직매장 어양점이 풍전등화다. 내년 2월에 위탁계약이 만료되는데, 자칫 운영이 중단될 위기다. 기존 위탁운영 조합은 감사에서 부정이 적발돼 재위탁이 법령상 불가하고, 익산시가 직영하기 위해 편성한 예산은 익산시의회의 벽에 부딪혀 전액 삭감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직영을 반대하며 예산을 삭감한 의회의 명분이 궁색하다. 공공 목적과 무관한 부지 매입(계약 위반) 지적과 비정상적인 매입·매출 정황 포착 등 시민 신뢰를 실추시키고 로컬푸드 운동의 근본 취지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매우 엄중한 사안이라고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문제의 조합에게 다시 운영을 맡기라고 한다. 통상의 민간위탁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운영 주체의 부조리가 감사에서 적발됐으니 한참 잡도리를 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 사법절차가 진행 중이니 결과가 나올 때까지 그대로 다시 맡기라니. 되레 특혜 의혹을 자초하고 있는 행태다. 일각에선 내년 선거를 염두에 둔 눈치보기가 운영 중단 위기로 이어졌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직영 방침 철회 VS 법령상 재위탁 불가. 팽팽한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는데, 사실 사안은 복잡하지 않다. 직영은 ‘운영의 안정성’ 문제인 반면, 기존 조합 재위탁은 ‘불법’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안정성을 이유로 불법을 저지를 수는 없다. 직영 전환 시 발생 가능한 문제를 생각해 보면 더 쉽다. 현재 직매장에 납품을 하고 있는 농민들은 변함없이 납품할 수 있다. 운영 주체만 바뀔 뿐이다. 출하 농민들이 판로를 잃게 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조합원이 아닌 지역 전체 농민에게도 문이 열린다. 당초의 로컬푸드 취지에 부합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현 조합의 수뇌부 몇몇이다. 불법을 감내하면서까지 그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의회의 책무인가. 아니면, 지난 10년간 잘해 왔으니 이번 감사 적발 정도는 슬쩍 눈감아 줘야 한다는 건가. 초딩도 알 수 있는 문제 아닌가. 익산=송승욱 기자

최근칼럼

[청춘예찬] 골목문구생활 ⑥다시, 쓰는 마음으로

문구점의 겨울은 유난히 조용하다. 날이 추워질수록 골목도 한층 느려지고, 가게를 방문한 손님들의 걸음에도 차분함이 묻어난다. 손님이 찾아오는 날보다 한적한 시간이 길어지며, 우리도 자연스럽게 올해를 정리하고 갈무리하는 기운을 감지한다. 이맘때 문구는 단지 물건이 아니라 마음의 도구가 된다. 펜을 쥐는 손끝에 결심이 담기고, 종이를 펼치는 행위 안에 되돌아봄이 있다. 우리는 잊지 않기 위해, 때로는 털어놓기 위해, 종종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을 다지기 위해 기록한다. 짧은 메모 한 줄에도 우리의 일 년이 고스란히 내려 앉아 있기에, 아무렇게나 휘갈긴 흔적에도 가만히 바라보게 되는 힘이 느껴진다. 쓰는 일은 늘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된다. ‘청춘예찬’에서 문구점을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골목의 역사, 이웃 어르신들, 우리가 만든 물건 이야기까지 매달 한 편씩 써내려가며 더 많은 것을 기억하고 정리하게 되었다. 글을 쓰기 전에는 늘 긴장과 망설임으로 가득했지만, 책상 앞에 앉아 종이를 펼치고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는 동안에는 어느새 마음이 고요해져 있었다. 우리 문구점도 사람들에게 그런 시간이 허락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 해를 돌아보고 내년을 준비하는 공간. 천천히 앉아 펜을 드는 마음, 종이를 마주하며 호흡을 가다듬는 순간처럼, 모두가 조금씩 더 선명하게 나아가기 위한 준비운동을 하는 곳. 완벽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을 잘 흘려보내고 다가올 날들을 맞을 마음의 힘을 기르는 곳으로. 문구는 결국 우리의 하루와 함께 하는 도구이다. 잊지 않으려는 마음,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감정, 흘러가는 시간을 잠시 붙잡고 싶은 바람이 종이 위에 천천히 내려앉는다. 그렇게 적힌 문장들은 자신도 몰랐던 마음의 모양을 비추어주고, 어느 날엔 소리 없는 응원처럼 조용히 우리의 곁을 지킨다. 지나온 날들을 천천히 되짚으며, 다가올 계절의 문 앞에서 우리도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는다. 기록은 언제나 작지만 단단한 위로가 되었고, 문구는 그 곁을 지켜주는 도구였음을 알아차리며. 올해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다음 해의 첫 장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그래서 다시, 자세를 바로 앉으며 펜을 든다. 쓰는 일은 언제나 시작으로 이어지니까. 다시 나아가기 위한 용기를 안겨주니까. 고심하며 눌러 쓴 문장 위로,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졌음을 느끼며. 김채람 문화기획자

여기는 딴 나라 같다

앞산 산 밑에 농막을 짓고 사는 사촌 동생 복두가 서울에서 가져온 누룽지 가져가라고 전화 왔다. 복두는 나보다 한 살 아래, 초등학교 입학해서 졸업 때까지 같은 반이었다. 서울에서 살다가 몇 해 전 앞산 밭에 농막을 짓고 이따금 와서 기거한다. 밤이 되어 앞산 밑 강 언덕에 불이 켜지면 산이 눈을 뜨는 것 같다. 이따금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를 크게 틀어 놓는다. 아침밥 먹었는데, 앞집에서 복국 끓여 놓았다고 먹으러 오란다. 복국 먹고 있는데, 복두가 누룽지 가져가라고 또 전화한다. 강을 건너갔다. 눈이 날린다. 눈발이 몇 개 얼굴에 차다. 검정비닐 봉지에 든 누룽지를 들고 타박타박 강을 건너왔다. 오리들이 강에서 놀고 있어서 사진을 찍었다. 며칠 사이에 청둥오리들이 많이도 불어났다. 금 새 100마리도 더 떼를 지어 하루 종일 마을 앞 강에서 먹이를 찾아 먹고 바위 위에 앉아 머리를 날개 위에 꼬아 얹어 놓고 한 발로 서서 쉰다. 오리들이 먹이를 찾기 위해 머리를 강물 속에 처박고 궁댕이와 노란 발을 허공 속에 버둥거리는 모습은 매우 웃기고 아주 평화로워 보인다. 오리는 힘들겠지만, 나는 그렇다. 강물 속에는 봄여름 가을까지 자란 다슬기들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오리는 다슬기를 까먹지 않고 통째로 삼킨다. 책을 보고 있는데( 나는 요즘 유발 하라리의 ‘21세기 스물한 가지 제언’을 읽고 ‘넥서스’를 읽고 있다. 이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의 저서인 ‘사피엔스’와 ‘호모테우스’ 다시 읽어야겠다고 벼른다. )앞집에서 또 방어 회 먹자고 해서 양껏 배부르게 먹었다. 이틀 전에 김장 마늘을 깠다. 오늘은 파를 다듬었다. 해는 지고 어두운데 딸이 순창 읍내로 치킨 사러 가자고 한다. 날이 추웠다. 달리는 차 창에 눈발이 날아왔다. 닭집 앞에 차를 세우고 치킨을 기다렸다. 사람들이 닭집 홀에 앉아 맥주를 마신다. 퇴근 후 사람들이 한가하게 술을 마시는 풍경을 정말 오랫만에 보았다. 함께 평화롭고 서로 다정하고 여럿이 정다워 보인다. 읍내, 그러면 어쩐지 정답다. 정다운 모습들을 치킨이 나올 때까지 차 안에서 바라보았다. 무어라 심각하게 말하고, 또 허리를 뒤로 제 끼고 웃고, 손뼉을 치며 모두 웃는다. 삶의 내일이 불안하고, 또 기다려진다. 큰 도시 삶같이 어마어마한 희망은 없을 것 같은 간소한 읍내의 하루가 이렇게 눈발 속에 잠겨 있다. 집이 있고, 집에는 식구들이 기다린다. 그것 또한 삶의, 하루의 안심이다. 닭집 여자 주인이 닭을 가지고 온다. 얼른 차장을 열고 받았다. 부지런함이 몸에 밴 치킨집 여자 사장님이 나를 보더니, “어머! 시인, 그분 아니세요” 한다. 내가 네 맞다, 고 했다. 좋아하셨다. 딸이 운전하면서, 아빠가 그분이구나. 했다. 웃었다. 눈발이 아까보다 세차졌다. 순창에서 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때 우리 모두 가난하고 가난하였다. 자취하는 나를 도와준 친구가 둘 있었다. 종해와 운행이다. 종해는 어머니와 누님하고 살았다. 추운 겨울 자기 집에 데려가 이불 속에 묻어 놓은 따듯한 밥을 주었고, 운행이는 시계 집 아들이었는데, 중학교 네네, 소풍 때마다 도시락을 싸 왔다. 운행이가 어느 날 자기 집에 나를 데려갔다. 고운 얼굴의 운행이 어머님이 나더러 “니가, 용택이구나,” 하며 나를 바라보며 웃으셨다. 나의 생활권은 지금도 순창이다. 시장을 보러, 마트에 무엇인가를 사러, 가고, 찻집도, 외식도 병원도 순창으로 간다. 내 삶의 일상은 모두 순창으로 해결된다. 집에 일이 없는 날은 아내는 책을 보러 순창에 간다. 거리를 다니다 보면 어디서 본 듯한, 어쩐지 낯설지 않은 얼굴들이 스친다. 중고등학교 6년 동안 살며 눈에 익었던 그 이들의 자손이거나, 아니면 어쩌다 스친 그 때 읍내에 살던 사람들의 얼굴을 닮은 후손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사는 이 작은 고을은 일상은 딴 나라 같다. 닭튀김은 맛이었다. 격동의 1년이 가고 있다.

걷노라면

옛날에는 출 퇴근 때 주로 하이힐을 많이 신었다. 높은 구두는 허리를 꼿꼿하게 펴주고 아랫배에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하여 간강을 도모하고 경쾌한 걸음을 만든다. 나는 빵 가게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비만 일으키기 딱 좋은 초콜릿 식성이었다. 그런데 친정어머니의 유전자를 닮은 마른 체형은 굳이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게다가 직장생활과 아이 넷의 뒷바라지는 잠시도 몸을 둘 수 없는 일상이어서 살이 찔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은퇴 후 사정이 달라졌다. 퇴직 후 허리디스크 시술을 받고 운동화를 고집하면서 걸음은 해삼 풀어지듯 힘을 잃었고 밤늦도록 TV와 달콤한 군것질을 즐기는 동안 편안한 옷차림 속 뱃살은 멋대로 살집을 키웠다. 마른 비만, 전형적인 노인 체형으로 변해간 것이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고, 이대로 근력마저 떨어지면 아예 걷지도 못하고 일찌감치 요양원 신세 지게 될 것이고 겁을 주었다. 내가 설거지, 빨래, 청소 등 집안일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데 운동할 시간이 어디 있냐며 볼멘소리를 하니, 의지가 중요하다며 날씨가 더우니 새벽 운동을 시작하라고 했다. 그리고 한 달만 꾸준히 하면 보너스를 주겠다는 미끼까지 던진다. 그때쯤이면 운동의 자율성 원리에 따라 나 스스로 멈추지 않고 잘할 것이라는 계산이다. 그렇다고 내가 전혀 운동을 안 하고 지낸 것도 아니다. 라인댄스, 요가 등 한동안 운동도 열심히 했고 몇 가지 취미 활동도 즐겁게 해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모든 것이 시들해진 것이다. 젊은 날 정신없이 지낸 것도 지겨운데 다시 나를 얽어매는 시간의 구속이 싫었다. 이젠 화장하고 차려입고 외출하는 일들도 귀찮아졌다. 그래서 맘 나는 대로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겠다는 생각 속에서 지냈다. 그러다 보니 모든 활동이 소극적으로 되었다. 그러나 그 자유로움은 너무 편하고 행복했다. 하지만 그것은 세월이 갉아먹어 생긴 늙음이라는 증세였다. 남편의 제의는 꿩 먹고 알 먹는 일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힐스장을 기웃거릴 때 코로나가 또 말렸다. 가장 큰 행복 중 하나는 컴퓨터와 TV 앞에서 자정이 넘도록 혼자 시간 보내기다. 그리고 쫓길 일 없는 늦은 아침까지 느긋하게 잠을 잘 수 있다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오롯이 반납해야 하려니 괴롭다. 천변 산책길의 새벽 공기가 상쾌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복면 수준의 마스크는 코로나 염려만은 아닌듯하다. 나도 마찬가지다. 모자를 눌러쓰고 안경 밑까지 깊게 쓴 마스크는 나를 알아볼 수 없다는 은닉성이 좋은 것이다. 요즈음 내가 누리는 가장 큰 행복 중 하나는 컴퓨터나 TV 앞에서 자정이 넘도록 혼자 시간을 보내다 쫓길 일 없는 늦은 아침까지 느긋하게 잠을 잘 수 있다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오롯이 반납해야 할 것이 괴롭다. 아침 산책길은 꽃들이 어우러져 마치 나를 환영하는 사열대처럼 양옆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나는 두 손을 들며 미소로 답례한다. 시골 밭에서 성가시게 뿌리를 넓히던 개망초가 기생초를 만나 제 키까지 낮춰가며 안개꽃처럼 변신하니 참 아름답다. 내가 걸을 수 있는 동안은 모두 내 인생 황금기다. 드러난 파란 하늘 조각으로 아침 해가 한 뼘쯤 올라왔다. 와사주생(臥死走生-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이라 했던가? 잃었던 근력과 활력을 찾기 위해 오늘도 나는 만보(萬步)를 확인한다. △ 김덕남 수필가는 대한문학, 에세이스트 등단해, 전북문인협회, 전북수필문학회, 행촌수필문학회, 교원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수필집 <아직은 참 좋을 때>, <여섯 교우의 문향> 등이 있다. 그는 한국수자원공사 전국 물사랑 공모전 은상, 향촌문학상. 전주 기령당 충효앙양 글짓기 공모전 대상을 받기도 했다.

[병무 상담] 병역이행 궁금하면 물어봐

먼저, 사회복무요원에게「시간외 근무를 하게 한 경우 처리방법」입니다. 사회복무요원의 복무형태는「주간근무」와「주·야간근무」로 구분하여 근무시간을 달리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복무형태별 근무시간에도 불구하고 복무기관장은 재난 등 부득이한 경우나 업무수행 상 필요한 경우 사회복무요원에게 시간외 근무를 명할 수 있습니다. 복무기관의 업무사정 등으로 사회복무요원에게 시간외 근무를 하게 한 경우에는 휴식과 급식을 제공해야 하며, 초과근무시간 만큼 다음 근무일에 늦게 출근하게 하거나 근무시간 중 휴식제공 또는 조기퇴근을 시킬 수 있습니다. 다만, 복무기관 사정상 휴식 제공 또는 조기퇴근을 시키지 못한 경우, 초과근무시간이 누계 8시간 이상일 때 1일로 계산하여 대체휴무를 실시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분할복무 신청 방법 및 사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 중인 사람이 질병치료 등의 사유로 일정기간 복무를 중단하고 추후 재복무를 하기 위해서는 복무기관의 장에게 분할복무 신청을 해야 합니다. 신청방법은 복무기관의 장이 분할복무신청서를 관할 지방병무청장에게 송부하고, 관할 지방병무청장은 복무중단 여부 및 중단기간을 결정하여 분할복무 통지서를 복무기관의 장을 거쳐 본인에게 통보하게 됩니다. 분할복무 사유는 첫째, 1개월 이상 본인의 질병치료를 요하는 경우. 둘째, 가족의 간병이 필요한 경우로 본인 이외에 생계를 같이 하는 가족이 없거나 가족이 있더라도 심신장애 등으로 사실상 병간호가 어려운 경우. 셋째,「자연재해 대책법」제2조제3호에 따른 풍수해로 가옥·농경지 유실에 의한 복구 등이 필요한 경우. 넷째, 가족 중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의 사망이나 실직 등으로 생계지원이 필요한 경우. 다섯째, 법 제86조에 따라 기소된 경우 형사재판 종료일까지. 여섯째, 그 밖의 지방병무청장이 인정하는 경우가 해당됩니다.

만화로, 전북으로 돌아오는 길

“여기에도 풍년제과가 있어요?” 타지에 대학 생활을 시작했을 때였다. 어느 날 기숙사에서 간식으로 치즈케이크를 하나씩 받았다. 치즈케이크 위의 초콜릿 장식에 ‘PB’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고 룸메이트에게 ‘풍년제과’가 여기에도 있냐고 물었다. 그는 풍년제과가 무엇이냐고 되물으며 ‘파리바게뜨’라는 브랜드라고 알려주었다. 전주를 프랜차이즈 빵집도 없는 시골이라고 생각했겠다 싶어 얼굴이 홧홧했다. 전주에서 10년을 떠나있었고, 돌아온 지는 7년이 되어간다. 타향에서 나는 주변인이었다. 귀향해서도 이 땅에 발붙이고 살아간다는 실감은 나지 않았다. 전주를 사랑할 수 없었다. 꿈꿔오던 일을 접고 직장 생활을 하기 위해 귀향했으니, 내 안에서 귀향은 곧 실패라는 그릇된 공식이 세워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꿈의 흔적은 대부분 처분하거나 서랍 깊이 밀어 넣었다. 몇 년간은 만화를 읽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뿌리 깊은 애정은 어쩔 수 없어, 결국 만화에 대한 글을 왕왕 쓰게 되었다. 만화를 보면 행복하다가도 가슴 한편이 시큰시큰 아팠다. 어디서고 나는 주변인이었다. 우연한 기회로 청춘예찬 필진으로 글을 연재하게 되었다. 전북을 배경으로 한 만화를 소개하고자 작품을 찾았다. 만화에서 친숙한 지명과 장소를 만나는 것은 생경한 느낌이었다. 혹여 칼럼을 읽고 작품을 찾아보고자 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니, 독자가 접근하기 쉽도록 2020년 이후 발표작으로 선별했다. 정보력이 부족한 탓인지 작품을 찾는 일이 순조롭지는 않았지만, 드라마로 제작 중인 유명 웹툰부터 독립만화까지 빛나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청춘예찬을 통해 많은 분께 만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올해 가장 큰 행운이었다. 금산사에 가면, 미륵전에서 기도를 드리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해송을 생각했다. 군산 앞 바다에서는 <고래별>의 수아가 의현을 구하던 모습을 상상했다. 한옥마을을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동학혁명기념관에서는 <향아설위>의 향아가 떠올랐다. 정읍 천변을 거닐면서는 <내가 살던 고향은>에서 작가가 가족과 함께 컵라면이며 아이스크림을 팔던 장면을 풍경에 겹쳐보았다. 내가 좋아한 만화의 인물들이 이곳에서 울고 웃고 숨 쉬었다고 생각하면 장소의 의미가 새로이 다가왔다. 누군가 마음을 담아 이 장소를 그리고, 그 작품을 읽은 또 다른 누군가가 이곳을 애정으로 기억하는 것. 그런 과정을 거쳐, 어쩌면 만화가 전북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자긍심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글에 바람을 담았다. 가을이 가장 깊어진 날, 한옥마을에 갔다. 오목대로 올라가는 길 곳곳이 노란 은행잎으로 덮였다. 한참을 오목대에 앉아 한옥마을을 내려다보았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중심가를 벗어나 교동 골목골목을 걸었다. 전주에서 태어나 20년이 넘게 살았음에도 풍경이 낯설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달이 떴다. 쌍샘광장 맞은편의 휴식 공간에는 초승달 조형물이 놓여있었다. 달이 둘이나 보이니 운치가 참 좋았다. 문득 전북에, 전주에 대해 더 많은 만화가 그려지면 참 좋겠다고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그런 날이 오길 기다리며 만화를 읽고 쓰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구나. 첫 연재 글에서 <외계인 투어>를 소개하며 내가 썼던 문장은 일종의 예언이었다. “전주를 사랑하는 일은 나를 다시 사랑하는 일로 이어지는 셈이다.” 마침내 나는 이 도시를 사랑하게 되었다. 박근형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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