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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과학이 먹히지 않는 이유 - 이기호

시국이 시국인지라 요사인 점심식사 때마다 전쟁 이야기가 화두에 오르내린다. 어떤 신문의 논설위원이란 사람은 우리의 공군 전력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국민이 사흘 만 참아주면 전쟁을 쉽게 끝낼 수 있을 거라는 요지로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런 비상식적인 확신(확신하는 자들은 당연히 고민이 없다)이 버젓이 신문지상에 오를내릴 만큼, 이즈음의 상황은 다분히 비정상적이다. 그리고 그런 비정상적인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6?25 트라우마를 하나둘 씩 꺼내, 다시 현재에 대입하고 있다. 대부분 보도연맹이니, 좌우익 사이 벌어진 피의 보복극에 대한 기억이었다. 이 형, 이 형도 지난번 시국선언 때 서명하지 않았나? 그러면 백 프로 좌익으로 몰리겠네. 전쟁 나면 어디 살아남겠어? 에이, 어디 그런 일까지야, 웃으면서 말을 받았지만, 전쟁이라는 비이성적인 공간이 불러올 예측불허의 사태에 대해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걸 나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씁쓸해졌다. 예전에 비해, 우리 사회가 외면적으론 보다 이성적이고, 보다 합리적인 사고방식에 접근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자세히 속내를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1950년대보다 정파 간의 갈등은 더 격해졌고, 그에 따른 적의는 더 날카로워졌고 첨예해졌다. 전선 자체의 경계가 명확히 나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예전에 비해 그 피해가 더 크면 컸지, 줄어들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전쟁은 무조건 안 된다. 설령 사흘 만에 전쟁이 끝난다고 해도, 그것이 몰고 올 여파는 무시무시한 공멸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한 예를 이미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상황을 보아 알고 있다. 전쟁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지만, 그러나 여전히 전쟁 중인 상황들. 그 안에서 최고권력자들을 뺀 나머지 국민들은 오로지 고통만을 강요당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국가 간의 전쟁이 갖고 있는 진짜 본질이다. 사흘 만 참아달라는, '참아달라는' 어휘 속에 내장된 아무렇지도 않은 희생 강요 같은 것들.그래서 이즈음의 상황이 더 답답하게 느껴진다. 전쟁이 발발하는 계기들이란, 대부분 우연적이고 국지적인 충돌들 때문이다(세계대전의 시작은 언제나 누군가가 발사한 총 한 발 때문에 비롯되었다). 그런 우연과 충돌을 제어해주고 예방하는 것이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이양 받은 자들의 몫일 텐데, 작금의 모습은 어쩐지 그 반대의 경우로만 가고 있는 모양새다. 제어와 예방을 제대로 하지 못한 군 수뇌부들은 당당하고, 정부와 여당은 발 벗고 나서 국민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역전된 상황 때문에 국민은 의심하고 신빙성 없는 괴담들만 흉흉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천안함 사건의 처리 과정만 보아도 그렇다. 정부에서 아무리 과학적인 증거라며 수차례 기자회견을 열고 발표를 해도, 왜 그것이 대다수 사람들에게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것일까?(참고로 얼마 전 기자협회에서 발표한 기자들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정부의 천안함 조사 발표의 불신은 41%에 달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테지만, 크게 두 가지 사안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하나는 작전에 실패한 군 수뇌부가 조사의 주체가 되었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발표 시점의 문제일 것이다. 만약 이 정부의 책임 있는 당사자들이 천안함 사태 직후 즉각 군 수뇌부를 교체하고 사건을 조사했다면 지금 같은 불신에 시달리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조사 발표 시점을 지방 선거 이후로 미루었다면, 그 신빙성은 더 높아졌을 것이다(이건 너무 속이 뻔해 보이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그러하질 못했고, 그래서 불신을 스스로 자초했다. 더불어 이 정부가 그동안 여러 차례 해왔던 '말 뒤집기'의 사례들이 겹쳐, 불신의 폭은 더 넓어지고 광범위해졌다. 그러니, 아무리 '과학'을 강조해도, '과학'이 먹히지 않는 것이다. 표 때문에 '세종시' 문제를 그렇게 뒤집었으니, 이번 역시 표 때문이지 않겠느냐, 이런 공식이 설득력 있게 통용되는 것이다.어쨌든 이제 선거는 끝났다. 칼럼을 쓰고 있는 이 순간, 선거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알 순 없지만,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선거 종료를 기점으로, 이 송곳 같은 긴장 상태가 다소 누그러지길, 그 마음 하나뿐이다. 어느 영화 제목처럼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는 것이 맞다. 더불어 불안을 조장하는 권력들이란, 대부분 불신의 늪에 빠져 있는 경우들도 맞다. 영혼을 잠식당하지 않은 국민만이 권력을 올곧게 감시할 수 있는 법이다. 그것이 또한 권력자들만을 위한 전쟁을 막는, 유일한 국민의 길이기도 하다./이기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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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6.04 23:02

[금요칼럼] 누구를 찍을 것인가 - 전용배

체육 및 스포츠분야에 종사하면서 평소 필자는 스포츠가 매력적인 이유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실력이 있음에도 좌절하는 경우는 다른 많은 영역에서는 흔하디 흔하다. 세상이 꼭 실력대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정확한 잣대를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어떤 영역에서든 주류에 편입되지 못한 '사파무림(邪派武林)'의 고수는 널려 있다. 그러나 적어도 스포츠 세계에서는 이러한 경우가 많지 않다. 아무리 감독이나 코치가 선수를 폄하해도, 실력이 있으면 벤치에 머물지 않는다. 관중석의 팬들이 가만두지 않는다. 경기력만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기회는 오게 되어 있다." 사실이 그렇다. 스포츠분야는 보편적 규칙 때문에, 적어도 경기는 공정한 잣대가 적용된다고 믿고 있으며, 우열을 가리기도 어렵지 않다. 그러나 화두가 정치 또는 선거에 이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6.2지방선거가 눈앞에 다가왔지만, 누구를 찍어야 할지. 우리나라 선거에서, 공약을 찾아 비교분석하면서 누구의 공약이 가슴에 와 닿는지에 따라 투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실제로 공약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북풍'과 '노풍'만 강조한다면, 유권자를 무시하는 처사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라고 주장하지만 실제 국민들 눈에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경우가 다반사다. 그렇다고 권리를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누가 나은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는 시?도 교육감과 교육의원도 선출해야 하는데, 후보난립과 정보 부족으로 예상치 못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유권자를 탓해야 할지, 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누구도 명확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결국 어떤 선택을 하던 유권자의 몫으로 남겨 둘 수밖에.혹자는 "선거란 결국 최선이 아니라 차선, 최악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하는 과정이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면 일리 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차악(次惡)을 선출하기 위해 투표장에 간다면 너무 비참하지 않을까. 아무리 오십보백보라지만 그래도 보다 낳은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것이 유권자의 역할이다. 서구 선진국의 경우라면 일반적으로 선출직에 당선되기 위해서는 동네 앞마당이라도 쓸어본 경험, 즉 남을 위해 봉사와 희생해본 경험이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이다. 남을 위해 삶의 일부분을 희생해 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남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느냐는 전제가 깔려 있다. 전문성은 비례대표로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준 말고, 또 어떤 요소가 보편적 기준이 될 수 있는가. 해답은 대한민국 헌법에 제대로 녹아 있다.집권여당이나 기존 시?도지사를 심판해야할 목적이라면, 그 당이 또는 기존 시?도지사 집권 시, 이전 집권세력이나 시?도지사 때와 비교하여 삶의 질이 나아졌는지, 개인 및 집단의 인권이 성장했는지, 경제발전 지표가 우수한지, 표현의 자유가 확대되었는지, 이념의 다양성이 확보되었는지, 복지가 나아졌는지, 교육 및 의료서비스가 진일보했는지, 보다 투명한 사회가 되었는지, 과거보다 행복해졌는지 등, 대한민국 헌법에 내재되어 있는 기본가치를 준거의 틀로 적용한다면 보다 쉽게 판단할 수 있다. 물론 어떤 정권이든 또는 시?도지사이든 완벽할 수는 없다. 항시 공과 과가 상존할 수밖에 없다. 단지 이전에 비해 이러한 기준에서 10개 중 6~7개 정도의 영역에서 발전과 개선이 있었다면 다시 찍어줘도 무방하다. 그러나 5개 미만이라면 심판받는 것이 당연하다.학교에서 같이 근무 중인 외국인 교수들이 가끔 의아해하곤 한다. 미국의 경우 기득권층과 비즈니스맨들은 대부분 공화당 쪽이고 흑인들 및 지식인층은 대부분 민주당 쪽인데 반해 한국은 자기 정체성과 상관없이 투표하는 것에 대해 의문이 든다고. 필자가 보기엔 그것은 민주주의의 역사와 성숙도의 문제이다.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죽기 직전에 "아직도 수천 명의 사회학자 중에서 공화당원을 한명도 확보하지 못했단 말인가"라고 말했다는 우스개가 있다. 비판적 시각을 가진 사회학자가 공화당원이 되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경우 유권자의 정체성은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후보의 정책보다 이미지에 의존하여 투표하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강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선거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그래도 대한민국이 아시아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민주주의 수준이 가장 높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누구를 찍을지 결정하지 못했다면, 헌법에 내재된 가치를 떠올리면 의외로 쉽게 답이 나올 수도 있다./전용배(동명대 체육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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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5.28 23:02

[금요칼럼] 속도의 충돌과 사고(思考)의 충돌 - 이영탁

앨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 『부의 미래』(2006)에서 <속도의 충돌>을 언급하고 있다. 기업이 가장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비해 다른 분야가 이를 따라가지 못해 결국 속도의 충돌을 야기함으로써 경제발전의 저해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기업의 속도에 크게 못 미치는 곳으로 정부조직, 학교, 정치조직, 법 등을 열거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정치나 법률 분야의 변화속도가 제일 더딘 것으로 하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미국도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지 않나 하는 점에서 시선을 끌기도 한다.여기서 본인은 우리네가 지니고 있는 사고(思考)의 차이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그동안 급속한 경제발전과 사회변화의 과정에서 세대 간, 계층 간에 형성된 인식이나 판단의 괴리는 엄청나다. 결국 우리 사회에 만연된 <속도의 충돌> 못지않게 <사고의 충돌>이야말로 심각한 문제로서 앞으로 여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경우 우리 사회의 발전을 현저하게 저해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예를 들어보자. 우선 우리 사회에 뿌리박힌 우파 대 좌파 또는 보수 대 진보 간의 갈등이 그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이런 식의 분파는 존재하였다. 그러나 우리처럼 매사에 의견이 갈리고 서로를 헐뜯기만 하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지나치다. 그동안 세월이 많이 흘러 각자의 주장을 조금씩 고쳐먹을 법도 한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무조건 옳고 상대방은 늘 문제가 있다는 발상에 큰 변화가 없는 실정이다.세대차이만 해도 그렇다. 워낙 급속하게 변하는 생활환경 속에서 세대와 연령에 따라 가치관이 달라지고 판단의 기준이 차이가 나게 되었다. 같은 집에서 한 솥 밥을 먹고 있는 가족 간에도 대화가 잘 안 되는 것이 바로 단적인 예이다. 이러한 데서 나아가 우리 사회 각 분야에 세대 간의 갈등이 증폭되고 그로 인한 폐해가 엄청난 것이 현실이다. 같은 문제에 대해 정반대의 견해를 가지는가 하면 이것이 지나쳐 서로간의 대화채널이 중단되는 수가 흔히 있다. 이는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지만 경제사회의 발전과 변화의 속도가 빠른 우리가 더 심한 편이다.이러한 현상을 두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사회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사고나 인식의 격차가 우리 경제 사회의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게 하자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살펴보기로 하자.첫째, 우선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처럼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같은 사안을 두고서도 다양한 의견은 필수적이다. 아니 획일적인 것보다는 다양한 의견이 활발하게 개진되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고 좋다. 문제는 나와 다른 의견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자세다. 이제부터라도 평소 나와 같지 않는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자. 의견이 다르다고 무조건 비판하지 말자. 설사 반대할 때 반대하더라도 협력할 때는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지 않고서는 지금처럼 사사건건 시비에 휘말리는 수밖에 없다.둘째, 여건이 달라진 만큼 사고도 달라져야 한다. 지금은 정보화시대다. 그것도 정보화시대 50년 역사가 이제 곧 막을 내리고 후기정보화시대로 진입한다고 한다. 이런 판에 아직도 산업화 시대의 사고나 논리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결국 옛날 얘기만 되풀이하는 셈이다. 아무리 건강에 주의해도 결국은 늙어 죽는 것이 인간인 것처럼 시대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가기 어려운 것이 또한 인간이다. 현실적으로 자기는 변하지 않으면서 남들한테는 변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다. 스스로 모순을 저지르는 셈이지만 그만큼 여건변화에 맞추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이 어렵다는 얘기도 된다.셋째,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아무리 여건이 달라지고 거기에 따라 사고도 달라져야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원칙이다. 여기서 원칙은 기본에 관한 것이다. '정직하게 살고, 열심히 노력하고, 남을 먼저 배려하고, 주변의 약한 사람을 돕고 --- ' 등등은 만고불변의 원칙이다. 원칙은 보편적 적용이 가능한 기본적인 진리이다. 또한 원칙은 영구불변의 가치를 가지는 인간행동의 지침이다. 이러한 원칙은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원칙이 습관으로 자리 잡을 때 그 사람은 보다 완성된 인간의 면모를 갖추게 될 것이다.이렇게 볼 때 <속도의 충돌> 이상으로 <사고의 충돌>이 충격적일 수 있지만 이를 극복해내는 방안도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어렵지만 이것도 사회지도층부터 솔선할 일이다. 남보다 먼저 다양성을 인정하고, 생각을 바꾸고, 원칙에 충실토록 하자.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우리사회에 고질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계층 간의 사고나 인식의 격차를 극복함으로써 국가발전의 원동력을 갉아먹는 일을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다./이영탁(세계미래포럼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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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5.21 23:02

[금요칼럼] 천안함 침몰의 진실은 무엇인가? - 김명곤

천안함의 연돌에서 화약성분이 검출되고, 해저의 모래와 자갈에서 화약흔이 검출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침몰원인이 어뢰의 버블제트 폭발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그러나 그 주장을 받아들이기에는 설명되어야 할 의문점들이 너무도 많다.먼저 생존 장병 중에 버블제트로 인한 물기둥을 본 사람이 없고, 물에 젖은 사람도 없고, 죽은 물고기떼와 같은 폭발 흔적이 없는 점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버블제트로 인한 폭발이라면 사고 때 관측된 인공지진파가 시차를 두고 두 번 나타나야 하는데 한 번밖에 나타나지 않은 점도 설명되어야 한다. 또 폭발이 있었다면 화상이나 고막파열이나 장기파열 같은 상처가 있어야 되는데 희생자들의 시신 상태나 생존자들 중 그런 상처가 한 명도 없는 점, 함미 바닥에 배가 긁힐 때 나타나는 스크래치의 흔적이 나타난 점, 스크류의 날이 안쪽으로 크게 휘어있는 점, 인양할 때 함미 밑바닥에 구멍이 뚫려서 물이 샌 점도 설명되어야 한다.사고 다음날 희생자 가족들 앞에서 공개한 작전상황도에 보면 '최초 좌초 6.4'라고 표기돼 있는데, 해군 관계자는 그 글씨가 유족 가운데 한 명이 작전상황도를 뺏어가 임의로 써 넣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누가 왜 그런 중대한 자료에 멋대로 그런 글씨를 썼는지, 또 군은 왜 그런 글씨가 써진 지도를 공개했는지도 함께 설명되어야 한다.이 의문들은 군에서 몇 가지 기록만 공개하면 금방 풀릴 수 있을 것이다. 먼저 TOD 영상 기록이 공개되어야 한다. 군에서는 9시 4분 무렵에서 9시 24분 무렵까지의 20분간만 영상 기록이 없다고 하는데, 만약 그렇다면 TOD 담당 병사의 근무태만이니 그를 불러서 확인해야 한다. 다음은 교신기록이 공개되어야 한다. 군에서는 사고 당일 9시 15분에서 22분까지는 군 통신망을 통해서 교신한 기록이 없다고 하는데, 도무지 납득이 안 간다. 또 KNTDS(해군전술지휘통제시스템) 기록도 공개해서 천안함이 정확히 어느 위치에서 어떤 사고를 당했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의 가장 중요한 증거물인 인양된 선체를 공개해야 한다.이런 증거들이 공개되지 않은 채 조사단의 활동이 마무리되는 듯하다. 민군합동조사단은 천안함 근처에서 터진 어뢰가 TNT보다 위력이 강한 고폭약인 'RDX'인 것으로 보고 정밀 분석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정부와 군 당국은 북한 공격설을 기정사실화하는 태도이고, 대다수 언론들도 그런 식의 보도를 하고 있다.게다가 조사에 대한 모든 사항이 철저한 비밀에 싸여 있으니 국민들은 그저 군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꼴이다. 불필요한 혼선을 막기 위해 일부는 보안에 붙인다고 하더라도 조사단의 구성이나 조사 과정이나 최소한의 진행 상황은 공개 못할 이유가 없다. 온 국민에게 슬픔을 안겨준 비극적인 사건의 진상 조사를 하면서 그토록 철저히 비밀주의로 일관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불신을 자초하는 처사다. 보안 때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중요한 사항들이 비밀에 싸여 있으니 온갖 억측과 가설이 난무하는 것 아닌가?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은 희생 장병들을 위한 영결식에서 '국민에게 고통을 준 세력을 끝까지 찾아내서 더 큰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접한 대부분의 국민들은 '고통을 준 세력'을 북한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국민들에게 고통을 준 세력은 군과 정부라고 생각한다. 이해 할 수 없는 보고 지연과 구조 과정의 난맥상과 비밀에 싸인 조사과정까지 그 무엇 하나 고통을 주지 않는 부분이 없다. 명백하게 군의 위기관리에 커다란 허점이 드러났고, 군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음에도 군은 자신들의 문제를 반성하기보다 북한에 책임전가를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만일 북한이 버블제트 어뢰를 발사해서 침몰한 것이라면 그 또한 군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잠수정이 한미훈련중인데도 백령도 깊숙이 침투해서, 수중음향탐지기인 소나에도 걸리지 않은 채 빠르게 이동 중인 천안함을 버블제트 어뢰를 쏘아 명중시킨 후 몰래 북으로 귀환했다는 얘긴데 참으로 신출귀몰한 북의 침입에 대해 우리 해군은 왜 그토록 무기력했단 말인가? 막대한 국방비를 써서 최신예 무기들로 무장한 우리 해군이 그토록 무능하고 직무에 태만했다는 얘긴가? 만약 그렇다면 북한에 비해 그토록 전력이 뒤떨어진 군을 우리 국민들이 어떻게 믿고 살란 말인가? 이처럼 도저히 믿을 수도 없고 이해도 되지 않은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천안함 침몰의 진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김명곤(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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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5.14 23:02

[금요칼럼] 토마스가 묻는다 - 이기호

그러니까 이런 상상을 한 번 해보자. 만약 미국 애리조나에 토마스나 보그먼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가 한 명 살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어느 날 한가롭게 거실에서 인터넷으로 뉴욕타임즈를 읽고 있던 토마스는 별 해괴망측한 기사 하나가 올라온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국제 면에 나온 그 기사에는 아시아에 있는 한국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2012년에 환수하기로 한 전시작전통제권을 몇 년 더 미국이 행사해줄 것을 강력히 희망한다고 적혀 있다. 토마스는 잠시 생각해본다. 왜 남의 나라 전시작전통제권을 우리 미국이 갖고 있지? 가난한 나란가? 아니, 분명 한국이라고 했는데. 내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이 컴퓨터와, 옆 집 더글라스가 몰고 다니는 자동차를 만든 나라가 맞는데, 거 참 이상하네? 이 나라 사람들이 제정신인가, 왜 자신들의 주권을 남에게 받아달라고 이렇게 생떼를 쓰지? 날이 더워서 그런가? 추신수는 그래서 메이저리그로 넘어왔나?정말이지, 창피해서 살 수가 없다. 굳이 토마스를 상상하지 않더라도, 작금에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은 국민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들고, 고개를 절로 수그러들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들뿐이다. 우리 군의 주요 지휘관이라는 사람들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천안함 사태에 대한 보복을 다짐하고 있고, 또 한쪽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연기를 주장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사안에 어떤 모순점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처럼, 부끄럼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만약 다수의 언론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천안함 사태가 북한측의 소행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해군참모총장의 발언처럼 보복 작전을 펼치는 것에 온 국민이 합의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과연 우리가, 우리 스스로 보복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가? 안 된다는 거, 다 알고 있지 않는가? 전시작전통제권이 미국에게 있는 마당에, 미국이 그렇게 손쉽게 오케이, 보복 작전의 승인을 해줄 수 있을 거라고 믿는가? 그걸 믿는다면 당신은 지금이라도 원고지를 펼치고 동시 스무 편을 줄줄 쓸 수 있을 만큼 순진하고 순박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미국이 천안함 사태 하나만 두고 한반도에서 전쟁을 승인해줄 거라곤 믿진 않을 것이다(미국의 대 한국 투자자본, 교역규모, 대 중국 관계 등을 생각해보면, 대번에 계산은 나온다. 친구가 기분 나쁘다고 누굴 함께 때려달라고 했을 때, 같이 싸움에 나설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 물론 조폭 빼곤). 설사, 미국의 반대를 물리치고 우리 군대가 단독 작전을 감행했다고 치자. 그럼, 그 뒤의 일은 어떻게 되는가? 미국은 당연 한미군사협정 위반이라며 발을 뺄 게 분명하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전시작전통제권은 우리 쪽으로 넘어오게 될 것이다. 우리 군의 주요 지휘관들은 지금 그것을 원하고 있는 것인가? 한데, 그러면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연기 주장은 또 뭐란 말인가? 그 사람들은 모두 반어와 모순을 즐기는 전위예술가들이란 말인가?군 수뇌부들은 이번 천안함 사태에 대해서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할 사람들이다. 사태의 원인이 무엇이든, 46명의 고귀한 젊은이들이 스러져갔다. 그들은 용사(勇士)가 아닌, 희생자들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젊은이들 또한 언제든 그런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사태의 교훈이다. 군 수뇌부들은 그런 희생자들의 제단 앞에,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이고도 어떻게 그리 허술하게 사고를 당해야만 했는지, 설명해야 한다.정부측에도 따져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좌파정부라고 부르는 지난 정권에서는 해마다 9%에 가까운 국방예산이 증액되었다. 이 정권 들어서는 과연 국방예산이 얼마씩 증액되었는지, 따져 묻고 싶다. 과연, 우리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주권인지, 4대강 정비인지, 그것에 대한 대답도 듣고 싶다. 왜 우리의 함선 침몰 경위를 국민보다 앞서, 미국이 먼저 알아야 하는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듣고 싶은 것이다.그리고, 다시 애리조나에 사는 토마스도 묻는다. 신문 기사를 보고, 한국의 역사를 구글로 훑어본 토마스는 혼자 이렇게 중얼거린다. 이건 과연 돈 때문인가, 그도 아니면 오랜 식민 근성 때문인가? 둘 중 어느 하나라도 거 참 이상한 나라인 건 마찬가지다. 토마스의 질문에 나는 그저 고개를 푹 수그릴 뿐이다./이기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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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5.07 23:02

[금요칼럼] 월드컵 단독중계냐 교차중계냐 - 전용배

월드컵이 한 달 정도 밖에 남지않았지만 SBS의 월드컵 독점중계에 따른 논란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 SBS는 지난 2006년 8월 IOC와 FIFA로부터, 2010년부터 2016년까지, 4개의 올림픽과 2개의 월드컵 중계권료를 각각 7250만 달러, 1억4000만 달러라는 엄청난 고가에 사들였다. KBS와 MBC의 제소에서 보듯이 그 파장이 작지 않다. 먼저 법리적인 문제부터 살펴보면, 보편적 시청권이 제기될 수 있다.보편적 시청권이란 "방송법 제 76조 및 동법 시행령 60조의3에 따라 국민관심행사의 경우 대다수 국민들이 시청할 수 있도록 방송 수단을 확보해야 하는 규정"을 말한다. 즉 올림픽과 월드컵은 국민 전체 가구수의 90% 이상이 시청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이미 방송통신위원회가 유권해석을 통해 밝혔듯이 큰 문제는 없다. 차라리 방송법 76조에 나와 있는 "지상파 방송사업자를 포함한 모든 방송사업자와 중계방송권자 및 그 대리인에게 재판매할 의무를 지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에 대해 SBS가 성실히 임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물론, 우리나라도 메가스포츠 이벤트를 과거처럼 지상파 3사가 동시 중계할 이유는 없다. 시청자의 채널 선택권은 차지하고 지구상에서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지상파 여러 채널이 동시에 중계하고 있는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밴쿠버동계올림픽을 SBS가 단독 중계했음에도, 방송중계시간은 중국을 제외하고 가장 긴 것이 사실이다. 아무리 국민적 관심사가 큰 스포츠이벤트이긴 하지만 '우민국가'도 아니고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 따라서 KBS, MBC, SBS가 모두 월드컵을 동시 중계하는 것은 전파낭비에 지나지 않는다.그럼에도 월드컵과 관련해서 SBS만의 단독중계는 미증유의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일본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NHK와 5개 민영방송이 가입한 '재팬 컨소시엄'이 올림픽과 월드컵 축구중계권 협상에서 창구 역할을 한다. 월드컵과 올림픽의 공익성을 고려하여 NHK가 협상을 주도하고 중계방송도 중복되지 않도록 NHK가 조정한다. 수신료로 운영하는 NHK가 중계권료의 50~60%를 내고 주도권을 쥐며, 경기별로 방송사들이 추첨을 해 중복 방송을 피한다.유럽도 올림픽의 경우에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모여 '유럽방송 연맹'이란 단일 창구를 만든다. 또한 IOC가 보편적 접근권을 내세워 올림픽 경기의 95% 이상을 무료로 방송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지상파의 협조 없이 케이블방송이 높은 값을 주고 중계권을 사들일 수도 없다. 다만 월드컵 중계의 경우 이탈리아, 영국 등은 미국처럼 방송사들이 따로 경쟁을 벌인다. 하지만 보편적 접근권을 법으로 보장해 유료 채널이 독점 중계권을 따더라도, 주요 경기는 지상파로도 방송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올림픽과 월드컵중계권을 두고 각 방송사들이 철저히 경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본이 취하는 방식이 그나마 적합한 모델이다. 공영방송의 주도아래 방송 3사가 나누어서 중계하는 것이 모양이 가장 이상적이다.SBS는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케이블, 위성방송, IPTV 등 유료방송 사업자에게 동계올림픽을 재전송하는데 대한 대가를 요구해 논란이 있었는데, 올림픽과 월드컵 등 국민적 관심 행사에 대한 재전송 대가를 별도로 요구할 경우 이는 결국 소비자에 대한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기 때문에 '보편적 시청권' 개념과 배치될 수 있다. 또한 케이블 등 유료방송 사업자와 갈등으로 올림픽, 월드컵의 재전송이 불가능해졌을 경우 SBS는 보편적 시청권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2010년부터 2016년까지 올림픽과 월드컵중계권을 고가를 들여 확보한 SBS는 이미 스포츠중계권에 관한한 기득권이다. 지상파 3사가 월드컵이나 올림픽을 동시에 같은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것을 반대하지만, 교차중계는 필요하다. 미래 스포츠시장을 예견컨대, 우리나라의 경우 방송 3사가 Korean Pool을 형성하여 접근하지 않으면, 모두가 피해자가 될 뿐이다./전용배(동명대 체육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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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4.30 23:02

[금요칼럼] 미래인의 시각으로 본 도요타 사태 - 이영탁

이번 도요타 리콜 사태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도요타 자동차의 품질관리와 위기관리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무리한 사업 확장을 계속하는 가운데 품질관리가 소홀해졌다는 것이다. 또 최근에 일어난 위기관리 실패에서도 그 원인을 찾고 있다. 늑장 대응, 사실 부인, 뒤늦은 사과 등 위기 발생 초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시장의 신뢰를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한마디로 도요타의 내부경영 잘못이 오늘의 도요타 사태를 불러왔다고 보는 관점이다. 과연 이러한 진단이 옳을까? 이 엄청난 도요타 사태가 회사 내부의 품질관리와 위기관리에 문제가 없었다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이었을까? 문제를 너무 좁게 보고 단순화시킨 단견적인 시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매사가 그렇듯 어떤 문제든 과거적인 시각보다는 미래적인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 과거적인 시각으로 오늘의 문제를 본다면 그 해법도 과거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 가지고서는 올바른 답이 나올 수 없다. 미래적인 시각으로 최근에 일어난 도요타 사태를 보면 그 요체는 이러하다.첫째, 도요타는 자동차 회사이며 제조업이다. 따라서 자동차와 제조업의 미래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아직도 자동차를 단순히 수송수단이나 제조업 제품으로 보는 것은 곤란하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의 40%가 IT제품이다. 자동차는 더 이상 사람이나 물건을 실어 나르는 수송수단이 아니다. 이제 자동차는 밤낮없이 일하는 사람들의 사무실이요, 휴식공간이다. 그 결과 자동차 제조와 IT기술을 융합하여 자동차를 '탈것'에서 '움직이는 멀티미디어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개념이 탄생하고 있다. 차가 사무실이 되어 이메일을 처리할 뿐 아니라 금융거래를 하는 등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소가 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상황에서 지금도 종래와 같이 자동차는 제조업이요, 제조업은 품질관리 위주로 경영되어야 한다고 믿는다면 이는 큰 오산이다. 제조업의 경쟁력이 품질에서 나온다고 하는 것은 옛날식이다. 일본과 같이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가 제조업 경쟁력을 지속하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제조업의 서비스화가 어렵거든 차라리 제조업에서 손을 떼라고 하고 싶다.둘째, 최근의 일본 경제를 살펴보라. 1990년대 초반 이후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한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10년, 20년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년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사회 전체가 가라앉고 있다.그 와중에 과거에 잘 나가던 소니가 그 위상이 많이 떨어졌고 일본항공은 법정관리로 들어가 주식이 휴지조각으로 변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소니와 일본항공 자체에도 문제가 있지만 좀 더 크게 생각해보면 지금 일본 경제사회가 총체적으로 숫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일본의 아사히신문이 기획기사로 '일본의 악몽: 재정파탄 시나리오'를 실은 바 있다. 이 기사는 20xx년 7월 19일 밤 9시 나카조에 유타카(가명) 일본 총리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다는 내용이다. 최근 세계경제포럼은 일본 경제의 몰락 가능성이 90%이상 된다고 까지 경고했다.셋째, 도요타 문제나 일본의 문제를 남의 문제로만 생각할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도요타와 경쟁하는 우리 자동차 회사는 과연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잘하고 있는가. 우리 대기업이 매년 요구하는 거래 중소기업의 가격조건은 너무도 문제가 많다고 한다. 약자일 수밖에 없는 하청기업을 극한상황으로 내몰고 있다는 소리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또 최근 일본경제의 부진이 우리와는 무관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며칠 전 노무라 증권에서는 지금 한국경제가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되기 전 1980년대 후반의 일본경제와 너무도 닮았다고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지금 일본이 겪고 있는 일이 앞으로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또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을 어떤 확실한 준비라도 하고 있는가. 우리도 그동안 급속하게 떨어진 출산율을 감안하면 앞으로 2020년이 오기 전에 경제활동인구에 이어 전체 인구가 줄어드는 단계로 접어드는데.결론적으로 도요타 문제는 도요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제조업의 문제요, 일본 전체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동시에 도요타 문제는 곧 우리 자동차업계의 문제, 나아가 우리나라 전체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이것이 곧 최근에 일어난 도요타 사태의 본질적인 문제를 미래적인 시각에서 본 것이다. /이영탁(세계미래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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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4.23 23:02

[금요칼럼] 20대의 정치참여, 희망의 싹을 본다 - 김명곤

6월 2일에 실시되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20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20대는 정치에 관심이 없는 세대라고 치부되어 왔다. 정치보다는 텔레비전의 오락물이나 스포츠나 명품 핸드백에 열광하는 세대라고 폄하되기 일쑤였다. 물론 아직도 정치에 관심이 많은 20대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70년대나 80년대의 젊은이들을 휩쓸었던 변화와 개혁의 정치적 열풍이 다시 불기를 기대하기도 쉽지는 않다. 그러나 새 생명의 기운이 움트는 봄을 맞아 터져 나오기 시작한 20대들의 발언과 움직임은 앞으로 커다란 변화를 예감하게 한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이전과는 상당히 다른 에너지를 뿜어낼 것으로 보인다.먼저 '유권자 운동'을 통해서 20대의 권리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한국대학생연합, 시민주권 대학생모임, 대학생 YMCA, 원불교대학생연합 등은 가칭 '2010 지방선거 대학생유권자연대'를 결성하고 전국의 대학 단체 등에 공동행동을 요청하고 있다. 이들은 20대를 위한 정책을 정당과 후보자들에게 묻는 질의서를 발송하고, 광역기초단체장 후보들을 캠퍼스에 초청해 청년정책 토론회를 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각 정당과 후보들이 20대의 정책을 얼마나 수용하고 있는 지 대학생들에게 공개하고, 이를 기준으로 투표참여를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정책을 수용한 정당이나 후보들과는 협약식을 개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또 각 대학들이 위치한 지역으로 전입신고를 해서 지방자치단체가 그 지역의 대학에 대한 정책을 내놓도록 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고, 이를 통해 '학자금 이자조례 제정'이나 '시도립 기숙사 건립' 등의 정책을 요구할 계획이다. 연세대학교 총학생회는 연세대학교가 위치한 서대문구 구청장 후보와 서울시장에게 "20대를 위한 임대주택을 지어 저렴한 보증금과 임대료로 양질의 주거환경을 제공하라"는 요구를 할 예정이다. 최근 대학가 주변의 임대료가 급등해 대학생들의 주거 문제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터에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은 학생들의 지지를 폭넓게 받고 있어 다른 대학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이들은 이와 같은 활동을 통해 올 지방선거에서 20대 투표율을 대폭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역대 지방선거에서 30%선에 머물러왔던 20대의 투표율을 '88만원 세대'라는 호칭에 맞게 88%까지 높이겠다는 당찬 계획을 내걸고 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온라인에서 투표참여를 선언하는 30만 댓글운동을 벌이고, '대학생 정치참여 권리선언 대회'도 열고, 전입신고를 통해 선거구 내 대학생 유권자의 수를 높이고, 전국 주요 대학에 투표소를 설치하는 운동도 활발하게 전개할 계획이다.이런 유권자 운동뿐만이 아니라 직접 선거에 출마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지방선거에 직접 출사표를 낸 20대의 선언이 줄을 잇고 있어 4월 11일 현재까지 선관위에 예비후보자로 등록한 20대 후보자는 26명이다. 이처럼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이전과 다르게 20대들이 적극적으로 정치 참여를 준비하고 있어 선거의 향방을 가를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그동안 우리 젊은이들은 정치에 실망하고 냉소적인 태도로 정치를 바라봤다. 그들은 극심한 경제난과 취업난 속에서 미래에 희망을 갖지 못하고 불안에 떨며 방황하고 자포자기하며 지냈다. 그러는 동안 우리 젊은이들은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고, 지금도 잃어가고 있다.그런데 그들이 방황이나 자포자기에 머무르지 않고 일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전 스스로 고대를 퇴교한 김예슬양의 비통하면서도 울분과 절규에 가득 찬 대자보에 대학생들의 관심이 폭발되고 뒤따라서 자퇴 선언을 하는 학생들이 나타난 것을 보면 현재 20대들의 분위기가 어떠한 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은 이제 암담한 현실에 대한 절규를 넘어서서 스스로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세대뿐만이 아니라 젊은이들에게도 선거는 그들의 권익과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선거를 통해 정책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고, 교육제도를 바꾸고, 정치를 바꾸지 않으면 사회변혁이 어렵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지자체를 변화시키고, 정치를 바꾸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해법을 찾고자 뭉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뭉친 힘으로 세상을 바꾸는 개혁을 시작하고 자신들의 현실을 바꿔내려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목소리가 보다 많은 젊은이들에게 울림을 주고 그 울림이 천둥이 되어 6월의 선거를 통해 꿈과 희망의 미래를 개척해가길 희망한다./김명곤(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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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4.16 23:02

[금요칼럼] 유성매직 그리고 청테이프 - 이기호

얼마 전, 어느 모임 뒤풀이 자리에서 학생들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나온 대화의 대부분은 오직 하나, 스마트폰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어느 회사의 어떤 제품이 압도적인 품질을 가졌다는 말부터, 와이파이(Wi-Fi)가 되는 카페와 그렇지 못한 카페, 앱 스토어에서 구입한 기상천외한 프로그램까지, 학생들은 스마트폰을 탁자 위에 꺼내 놓고,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도 계속 인터넷에 접속해 실시간 속보들을 중간중간, 충실하게 전해 주었다. 평소 얼리어답터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시대에 뒤처지지는 않는다고 자부하면서 살아왔었는데, 이런, 이젠 정말 구닥다리 세대가 되어버렸구나. 속으론 그렇게 찔끔, 했으면서도 겉으론 계속 어디선가 주워들은 '4G 스마트폰' 운운 하면서 아는 체를 하려고 노력했다. 노력하면서도 한편, 그들의 놀랄 만한 정보 접근력과 속도에 감탄했고, 그것이 못내 부럽기도 했다. 이것이 우리 세대와는 다른 그들만의 활력이고, 그들만의 세대의식이자 특권이겠구나,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렇게 인정하기도 했었다.그런 인정이 다시 뒤바뀐 건, 지난 달 서울 어느 사립대 재학생인 김예슬 학생이 대자보를 통해 밝힌 '나는 오늘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공개 자퇴서를 읽게 된 이후부터였다. 내가 유심히 본 건 그녀의 자퇴서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그녀의 글씨, 그 자체였다. 그녀는 왜 많고 많은 형식 중에서도 굳이 '대자보'란 구세대의 대화창을 사용했을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이나, 트위터, 싸이의 다이어리도 아닌, 손도 많이 가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대자보를 이용했을까? 그것이 나는 궁금했고, 며칠 동안 계속 그 의문을 머릿속에 품고 돌아다녔다. 그리고 희미하게나마 그 이유를 내멋대로,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었다. 만약 그녀가 자신의 '공개 자퇴서'를 학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렸다고 치자. 그러면 그 다음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되었을까? 아마도 대자보 보단 더 많은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그녀의 글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 뒤에 일어날 일들은 사실 뻔하다. 그녀를 옹호하는 댓글들과, 그녀를 비난하는 댓글들, 양비론의 댓글들과, 농담의 댓글들이 속속 그 아래에 달렸을 것이다. 그러다가 댓글과 댓글끼리 서로 싸우는 일도 일어났을 것이며, 홈페이지 관리자는 이 글을 삭제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을 본 김예슬 학생 또한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진행되는 논란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입장을 수정하고 싶은 생각들이 슬몃슬몃 들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건 비단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의 문제만은 아니고, 트위터나 싸이에서도 똑같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니 어쩌면 그래서, 그녀는 '대자보'를 이용했다. 그것은 돌아갈 길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미도 있지만, 말이 아닌 어떤 행동의 의미가 더 컸다. 쉽게 수정되거나 삭제될 수 없는 행동.지금도 인터넷에 들어가보면 수많은 이십대 청춘들이 저마다의 정치적 견해를 견지하고,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기사들과 정치적 사안들에 대해서 각자의 의견들을 보란듯이 제시하고 있다. 그 의견들만 보면 과연 누가 그들을 정치적으로 무관한, 자신의 스펙 쌓기에만 열중한 세대라고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한데, 문제는 딱 거기까지만이다. 치열하게 담론은 오고 가지만, 언제나 담론은 담론 수준에서만 머물고 만다. 누군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면, 행동으로, 정당한 투쟁으로 실천하는 것이 아닌, 단순한 비아냥거림으로, 또 다른 담론으로만 맞설 뿐이다. 그것은 권력을 가진 자들에겐 참으로 고마운 현상이 아닐 수 없는데, 그저 귀만 닫고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기만 하면, 모든 것을 다 자신들의 뜻대로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크고 작은 사안들이, 왜 수많은 비판들 속에서도 꿋꿋이, 아무런 지장없이 지속되고 있는가는 아마도 그런 사정들 때문일 것이다.대자보를 작성한 김예슬 학생은 자신의 글 말미에 '행동한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라고 썼다. 그녀는 그 문장을 유성매직으로 썼다. 그리고 그것을 청테이프에 의지해 게시판에 붙였다. 정보와 속도는 지식을 쌓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지성까지는 담보하진 못한다. 어쩌면 우리 시대의 인터넷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스스로의 지성을 포기하게끔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더 많은 자유를 주는 것 같지만, 더 무서운 포기가 거기 숨어 있는 것이다./이기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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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4.09 23:02

[금요칼럼] '천안함' 침몰, 군이 주도적으로 나서야 - 전용배

천안함이 침몰된 지 일주일 가까이 흘렀지만 아직도 희망적인 소식이 없는 것은 못내 안타까운 일이다. 현장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겠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원인규명도 중요하지만 역시 생사확인이 우선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단지 이번사태를 보며 아쉬운 것은 군이 주도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다. 걸프전이나 이라크전쟁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전황브리핑이나 사건개요는 군 최고책임자 또는 관련 참모총장이 직접 하는 것이 오해의 소지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다.초기에는 청와대가 직접 나서는 듯이 보이다가,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슬그머니 군에 미루고, 군도 대변인만 통해 짧게 발표하고 통제하기에만 바쁘다. 이대통령만 하더라도 처음 천안함이 침몰됐다는 사실이 지난 26일 밤 전해지자 청와대에 비상을 걸어 지하벙커에서 긴급 안보관계 장관회의를 열고, 이후에도 몇 번 더 개최하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적절한 조치였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은지 누구나 할 수 있는 '교시'만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발표하고 있다.천안함 침몰사건은 처음부터 군이 전권을 가지고 조치를 취하고 관할해야할 업무이자 영역이다. 사건이후 하루 이틀정도는 정리가 되지 않아 '상부지시'를 기다린다거나, 대응에 신중을 기할 수 있지만, 정보공개 및 상황진척에 대한 브리핑이 너무 더디다. 생존자들에 대한 언론취재 및 기자회견 금지도 이해하기 힘들다. 아무리 안정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국민들이 공개 못 할 뭔가가 있다고 오해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누가 뭐래도 군과 관련된 문제는 군이 제일 전문가 집단 아닌가.청와대 지하벙커에 모인 안보관계 장관회의 면면을 보라. 누가 군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있는가. 일단 대통령부터 총리, 국정원장, 대통령실장, 정책실장까지 군 면제이다. 군 면제 자체가 문제된다는 것이 아니라 빨리 해결하라고 다그칠 수은 있어도 직접해결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닌 것이다. 필자도 군 면제인 관계로 평소 군과 관련된 문제나 언급은 자제하는 편이다. 이유는 한 가지, 아무리 기준에 미달되었다고 하더라도 병역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은 개인적으로는 씻을 수 없는 상처이다. 따라서 병역의무를 다하지 못한 사람이 국민의 공복(公僕) 즉 공공영역 및 정치영역에 서비스하는 것은 이유야 어떻게 되었던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반대하고 있다. 보수주의자로 유명한 이상돈 중앙대 교수도 얼마 전 "내가 제일보기 역겨운 모습은 자신은 병역을 안 한 공직자들이 검은 옷 입고 국립묘지에 가서 엄숙한 표정 지으면서 분향하는 꼴"이라며, "그것이 내가 현 정권을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무지 대통령, 국무총리, 국정원장, 여당 원내대표가 모두 병역면제인 경우가 대한민국 말고 또 있던가"라고 말한 바 있다. 즉 현 정부의 고위층은 군대 조직의 원칙과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대한민국 군대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후로는 적어도 '정치군인'의 오명은 벗어났다. 그동안 국민의 신뢰도 많이 회복하였다.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해서도 정치적인 고려는 할 필요가 없다. 국민의 군대가 정치적인 역학관계나 개인의 이해관계를 따질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의 원인이 '북한의 소행'이던, 기뢰 때문이던, 내부폭발이던 그 후폭풍은 결국 군이 책임질 수밖에 없다. 정치권력이야 이해관계를 따져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되면 뒤로 빠질 것이고,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을 것이란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천안함 침몰사건에 군이 주도적으로 나서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책임과 권한에는 동시성(同時性)과 상관성(相關性)이 함께 내재되어 있다. 선진국에서 고위직에 오를수록 출근시간이 빠르고 퇴근이 늦은 이유도 권한에 따른 책임 때문이다. 천암함 침몰사건에 대한 기본적인 책임은 군에 있기 때문에 사건처리에 대한 집행권한도 함께 부여되어야 한다. 청와대 '지령'을 받아 소극적으로 나서기 보다는 군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 무엇이 두려워 언론을 피하고, 생존자들의 기자회견을 통제하고 회피하기 급급한지 알 수 없다. 국방장관과 해군참모총장부터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나서야 한다. 언론 앞에 쩔쩔매는 대변인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매를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하지 않았는가. 어차피 이번사건은 대한민국에서 군 외에는 해결할 수 있는 집단도 없다. 또한 이번사태는 군의 독립적 임무 수행능력과 역량을 검증 받을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도 있다. 어깨에 달린 별이 '상부눈치'보고 얻은 별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이다. 국민들은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전용배(동명대 체육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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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4.02 23:02

[금요칼럼] 인구감소와 경제학 - 이영탁

인구문제는 미래예측에 있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하다. 실제로 인구의 미래는 미래를 이해하는데 있어 시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인구에 관한 한 통계를 바탕으로 비교적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다는 점이다.앞으로는 인구규모 자체가 그 나라의 경제활동에 갈수록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많은 인구와 질 높은 인적자원을 가진 인도가 미래에는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얘기하고 있다. 중국경제가 얼마 후 미국을 앞지를 것이라는 것도 기본적으로는 월등하게 많은 인구에 근거하는 면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어떤가? 한국 인구는 2018년을 정점으로 하여 그 이후부터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한 경제활동인구, 즉 노동력은 그보다 앞서 2016년을 고비로 하여 감소한다고 한다.우리나라 인구의 미래는 '저출산-고령화-인구감소'로 요약할 수 있다.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어 노인인구가 많아지는데도 불구하고 워낙 출산율이 낮아 전체인구는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것은 곧 앞으로 젊은 인구는 더 빠른 속도로 줄어든다는 얘기가 된다. 이러한 현상이 가져 올 결과는? 다시 말해 인구가 줄어들면 그 나라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한마디로 경제활동 전반에 걸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구가 줄면 전체 구매력이 줄어들기 십상이다. 그렇게 되면 시장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또한 노동력의 감소는 생산 활동의 둔화를 불가피하게 한다. 한마디로 인구가 줄면 노동공급도 줄고 시장에서의 구매력도 줄어들게 된다. 이처럼 인구감소는 경제의 양면 즉 수요와 공급, 모두를 위축시키기 때문에 경제활동 자체가 둔화될 소지가 크다.이런 말이 있다. '지진이 일어나기 1년 전부터 개미가 달아나고, 인구가 줄어들기 10년 전부터 기업이 달아난다.' 인구 감소가 경제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이웃 일본의 예에서 잘 알 수 있다. 일본은 일찍이 1990년대 초부터 노동력이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그 때부터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된 것이다. 현시점에서 일본의 문제는 잃어버린 10년이 벌써 잃어버린 20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일본의 발전을 견인하였던 경제가 어려워지자 일본 사회 전체가 침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우리가 지금 바짝 긴장을 하고 서둘러 준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부에서는 우리와 일본은 다르다고 한다. 그랬으면 오죽 좋겠는가마는 그러한 이유가 우리를 안심해도 좋다고까지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사실 경제적인 면에서 일본은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는 면도 있다. 우리의 개발 초기 단계에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었고, 지금 단계에서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더구나 우리나라의 경우 이제 곧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된다. 한국에서는 베이비 붐 세대의 시작을 한국전쟁 이후 1955년으로 본다. 이때부터 베이비붐이 일어나 연간 인구가 100만 명 이상씩 증가되었다. 1955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는 지금 만 55세이다. 이제 곧 은퇴를 시작하게 되어 있다. 본격적인 은퇴는 이들이 만 60세가 되는 2015년경에 나타날 것이다. 이때가 되면 경제 전반의 소비 둔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원래 사람은 일생을 통틀어 볼 때 50세 전후에 가장 경제활동이 왕성하다고 한다. 직장에서의 활동이 활발한 가운데 수입도 많다. 또한 가정에서도 자녀들이 대학에 다니는 동안 큰 집에 살면서 소비지출도 커진다. 그러나 이 시기를 지나고 나면 가계의 수입도 줄어들고 동시에 소비도 감소한다. 자녀들이 학교를 마치고 결혼을 하면서 독립하게 되고, 가구주도 일생의 절정기를 지난다. 그 이후 가구주의 연령이 60대로 넘어가 은퇴를 하고 나면 소비규모가 빠른 속도로 줄어든다. 실제로 60대 가구의 소비규모는 40대 가구의 62%, 그리고 50대 가구의 67%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우리의 '빨리 빨리 문화'에도 양면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했을 때는 모두가 부러워했고 우리도 어깨가 으쓱했다. 그러나 지금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달성하고 나서는 고민이 많다. 심지어 한국이 세계에서 인구 소멸 1호국이 된다고까지 얘기되고 있다. 다이내믹하고 별난 한국인이기 때문에 이 문제라고 해서 풀지 못할 것도 없지 않는가. 더구나 이웃 일본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는데. 일본의 예를 타산지석으로 삼고 한국인의 지혜를 모아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영탁(세계미래포럼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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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3.26 23:02

[금요칼럼] '88만원세대'의 안타까운 몸부림 - 김명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 초반에 태어난 'G세대(글로벌세대)'는 개인주의 문화에 익숙하고, 배낭여행과 어학연수로 다져진 국제 감각도 뛰어나다. 독립적이고 개성이 강한 그들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소비계층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캐나다 밴쿠버의 동계올림픽 스타들이 보여주듯 재기발랄하면서도 구김살 없는 건강함을 보여준다. 그 중에는 이미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주류에 편입된 젊은이들도 있다.반면, G세대의 몇 년 선배뻘이 되는 1980년대 초반 출생자들은 1997년과 2008년 두 차례의 경제위기를 겪으며 성장했다. 그들이 중학생 때 겪은 '외환위기'는 부모의 직업을 위기에 빠뜨렸고, 대학생 때 겪은 '글로벌 금융위기'는 자신들의 취업을 위기에 빠뜨렸다. 한때 'N세대(정보화 세대)'라고 불리며 게임과 인터넷과 핸드폰과 MP3의 주구매자였던 그들은 이제 20대 비정규직의 평균임금을 뜻하는 '88만원 세대'가 되고 말았다. 두 번의 경제위기를 겪는 동안 그들의 가정은 불안하게 흔들렸고, 기업은 신규채용을 줄였고, 경제 양극화는 취업의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대학 졸업장이 취업을 좌우하던 시절은 옛날 얘기가 됐다. 요즘은 졸업장에 새로운 변수가 추가됐다. '스펙'이 있어야 한다. '학점 4.0 이상, 토익 900점 이상, 어학연수.....' 기업들이 자신의 제품을 '업그레이드'하듯 취업을 원하는 젊은이들은 자신의 스팩을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스펙을 갖추려면 돈이 든다. '토익시험 응시료, 영어 학원이나 어학연수 수업료, 취업 잘되는 학과 복수전공을 위해 대학을 더 다닐 경우 지불해야 할 추가등록금....' 그 많은 돈을 누가 내는가? 부모들의 등이 휜다. 좋은 스펙 갖추도록 뒷받침할 경제력이 부모에게 얼마나 있는가에 따라 비슷한 실력의 젊은이 사이에서 취업의 성패가 갈린다.게다가 정부가 등록금 지원은 갈수록 줄이고 학자금 대출을 확대해서 많은 대졸자가 빚을 안고 사회에 나온다. 빚을 갚기 위해 비정규직이나 인턴이란 꼬리표를 감수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정규직 취업 기회는 점점 멀어진다. 개인은 '업그레이드'되고 사회 전체는 '다운그레이드' 됐다. 대기업과 공공기관은 일자리를 줄이고,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모든 조건이 지나치게 열악하다. 실업은 점점 심화되고 확대될 것이며, 고용시장의 침체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게다가 직장인의 퇴직이 빨라진 탓에 '아직 젊은', 그러나 일자리가 없는 '실직 부모'들을 부양할 심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이런 부담과 힘겨운 경쟁체제에 자신을 잃은 젊은이 중 일부는 취업이나 승진에 대한 관심보다 취미와 패션 등 자기만족을 제공해주는 일에 몰두한다. 어떤 분야에 지나치게 심취하여 집착하는 '오타꾸'가 일본에 생겨나더니 점점 우리나라에까지 번지고 있다. 또 친구나 이웃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고립적이고 독선적이고 폐쇄적인 '은둔형 외톨이'의 생활에 빠지기도 한다. 일자리를 구하려는 의욕을 상실한 채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프리터' 족도 늘어나고 있다.MBC TV의 일일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의 황정음은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자 평소 아끼던 구두와 옷까지 전부 내다판다. 또 새벽부터 취직을 위해 뛰면서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해결하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다. 그 드라마는 취직에 시달리는 88세대의 애환을 황정음을 통해 보여준다.얼마 전, '명문대'인 고려대 경영학과의 3학년 학생이었던(?) 김예슬양은 불안한 대학생활을 견디지 못해 대자보를 붙이고 자퇴하고 말았다. 그녀의 조리정연하면서도 비통함이 가득한 글은 수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을 후벼 놓았다."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취업'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시켜 줄 자격증 꾸러미가 보인다....우리들 20대는 끝없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적자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이대로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우리 젊음이 서글프다...."혹독한 경쟁에 시달리다 비좁은 사회 진출 관문에 끼인 우리의 청년들에게 탈출구는 없는가?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확신과 열정을 잃고 이처럼 자본주의의 먹이사슬 맨 밑바닥에서 안타깝게 허덕여야 하는가? 세계를 향해 드높은 꿈을 펼치고 훨훨 날아야 할 우리 젊은이들이 신나게 그 꿈을 펼칠 기회를 되찾기는 그토록 어려운 일인가?/김명곤(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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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3.19 23:02

[금요칼럼] 자전거 여행이냐, 급식이냐 - 이기호

예전에 살았던 아파트 단지에선 한때 이런 일이 있었다. 부녀회를 통해 아파트 정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분수대를 설치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그것이 주민협의회에 정식 안건으로 상정된 것이었다. 장기수선충당 이익잉여금인지 무엇인지 자세히 알 순 없으나 건설 자금은 충분히 마련된 상태이니, 보기에도 좋고 여름에도 시원한 오색 분수대 하나쯤 단지 안에 만들자는 것이 몇몇 주민들의 의견이었다.하지만 그 안건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주민들 사이에서 갈등을 야기했는데, 반대하는 쪽의 의견은 간단했다. 그렇지 않아도 주차공간이 부족해 겹주차에 단지 외곽 주차까지 하고 있는 마당에 분수대가 말이 되는 소리이냐, 그럴 공간이 있다면 차 한 대라도 더 세워놓자, 였다. 반대 의견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 않아서, 분수대는 단순히 보기 좋으라고 만드는 게 아니라, 아파트 매매 가격 상승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 정서에도 좋다, 분수대 공간이라는 게 기껏 해야 차 세 대 정도 주차할 크기인데, 별 다른 영향도 없다, 등등이었다.양 진영은 하루에도 몇 번씩 엘리베이터 옆 게시판에 각각의 의견을 적은 A4지를 붙여놓았고, 서명을 받겠다는 둥, 다수결로 하자는 둥, 한 치의 양보 없이 서로 마주보고 달렸다. 물론 나 같은 전세 세입자에겐 의견을 개진할 기회도, 권리도 주어지지 않았지만, 그 일은 여러모로 우리 사회의 어떤 사안들과도 닮은 점이 있어, 엘리베이터 앞에 설 때마다 적잖은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문제는 역시 일의 선후가 될 터인데, 어떤 쪽에 더 가치를 둘 것인가, 어느 의견이 더 긴급한 것인가에 따라서 각자의 입장이 바뀌는 모양이었다.영업용 차량을 모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주차 문제는 당장의 생존권에 해당되는 위치까지 오를 수 있는 일이었고, 분수대를 설치하자는 사람들은 먹고사는 일 못지않게 삶의 질 문제 또한 중요하다고 보는 쪽이었다. 결론이 나기 전에 이사를 해, 분수대가 세워졌는지 그 반대가 되었는지 알 순 없으나, 내심 나는 분수대가 세워지지 않기를 바랐다. 처음엔 그것이 삶의 질 문제보다 생존권을 우선시하는 내 나름대로의 태도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건 그냥 세입자의 시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차피 떠날 공간이니까, 그 기간 동안 만이라도 잠잠하기를 바라는, 여행자와도 흡사한 태도.지금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4대강 사업 중에는 '자전거도로' 건설 항목도 포함되어 있다. 총 1천728㎞ 길이로 건설될 예정인 자전거도로엔 수천억 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인데, 정부에서는 이를 각 지자체의 자전거도로와 연계시켜 권역별 테마노선으로 개발할 계획까지 갖고 있는 모양이다. 한데, 이 '자전거도로'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은 대부분 그 목적을 '레저용'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데 있다. 강줄기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이 과연 몇 곳이나 되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강'과 '자전거'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가 아무래도 '생활'보다는 '여가' 쪽에 더 기울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에서도 그 목적 중 하나가 '관광용'임을 숨기지 않는 것으로 보아, 도로가 완공된다면 아마도 일반인들의 시선 그대로 '레저용'으로 더 많이 이용될 것이 뻔해 보인다.그러면 우리는 이 지점에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과연 다른 사안들보다 더 긴급한, 또한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서도 해야 할 만한 일인가? 그만한 가치를 갖고 있는 일인가? 그러니까 예를 들어 초등학생들의 무상급식을 전면적으로 확대하는 일보다 붉은색 자전거도로를 전국 강가 옆에 까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인가, 더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누구의, 어떤 가치인가? 우리는 이 질문을 정부와, 정책입안자들에게 계속 던져야 한다. 그리고 정부 또한 그것에 대해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답변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한데 그런 질문들에 대해서 막연하게 '포퓰리즘 발상'이라고 답변해버린다면, 우리는 또 다시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5년 단위로 바뀌는 정권은 먹고 나면 소화가 되어버리는, 별 다른 티도 나지 않는 급식보다야, 한 번 짓고 나면 수십 년 동안 그 자리 그대로 남아 있는 도로 건설을 선호하는 게 당연하다고, 거기에 최우선 가치를 두고 있다고,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이 정부의 역점 사업들이 대부분 2012년을 완성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 또한 그런 생각을 더욱더 확고하게 만든다. '포퓰리즘' 정권이란 바로 그럴 때 쓰는 말이다. 자신들이 집권하는 기간만 생각하는 것, 눈에 확 띄는 사업만 하는 것. 전세 세입자와도 같은 시선 왜 이다./이기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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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3.12 23:02

[금요칼럼] 김연아 금메달, 자본과 주류의 인정 - 전용배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21회 동계올림픽이 17일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폐회되었다. 우리나라는 금6, 은6, 동2개로 동계올림픽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지난 4년간 견디기 힘든 훈련을 제대로 소화한 선수들의 공이 가장 크다. 이번 대회에서 주목할 점은 쇼트트랙에 한정되었던 메달이 빙상 전 부분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역대 동계올림픽에서 스피드스케이팅, 쇼트트랙, 피겨 등 빙상 전 부분에서 금메달을 동시에 획득한 나라는 미국과 캐나다 밖에 없다.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스키, 스노보드, 크로스컨트리, 스키점프 등 설상부분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여기에서 질문하나. 역대 동?하계올림픽에서 수많은 금메달을 획득했지만 유독 김연아의 금메달에 가장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제'(女帝), '여신'(女神)으로까지 '추앙'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국민들이 유독 피겨스케이팅을 좋아하기 때문이어서. 아니면 김연아가 너무 미인이라서. 피겨불모지에 나타난 천재에 대한 경의(敬意)인가. 아니다. 거기에는 '화폐'라는 숨은 그림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역사적으로 동계올림픽은 '선진국, 백인, 귀족'이라는 단어로 압축된다. 특히 설상종목에서 이러한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스피드스케이팅도 장거리는 '그들만의 리그'였다. 이번 대회에서도 한국, 중국, 일본을 제외하면 20위권 안에 랭크된 나라는 모두 서방선진국이다. 1992년부터 채택된 우리나라가 유독강한 쇼트트랙은 '이방인의 스포츠'일 뿐이다.장면하나. 1992년 세계쇼트트랙 선수권대회가 미국 덴버에서 있었다. 우리나라는 남자 전 종목을 석권하고, 여자부분도 개인종합 1위를 했다. 그럼에도 당시 개최도시 덴버의 지역신문에서도 제대로 취급하지 않는 것을 보고 놀란 기억이 있다. 그래도 세계선수권인데 개최도시, 지역 언론에서도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은 백인들의 선호도가 떨어지고, 돈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쇼트트랙은 동계종목 중에서도 소외받는 종목이었다. 주류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김연아의 올림픽 금메달이 가지는 함의는 서구주류 언론의 관심이다. 역대 동?하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수많은 금메달을 땄지만, 서구주류 언론으로부터 관심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심지어 황영조의 금메달마저. 전통적으로 올림픽에서, 서구 특히 미국인들의 저녁밥상머리에 올려지는 종목은 하계올림픽에서는 육상, 수영, 체조 등이며, 동계올림픽 종목은 피겨와 알파인 스키 등이다. 고액을 중계권료를 지불하는 서구 메이저 방송은 철저히 상업적이다. 오직 관심 있는 종목에만 초점을 맞추기 마련이다. 따라서 국내언론도 이러한 흐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결국 올림픽 금메달도 '가치와 금전'에서 사실은 굉장한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우리나라 국민들이 평소 수영과 피겨스케이팅을 좋아해서, 김연아와 박태환에 열광하는 것이 아니라, 실상은 그들이 서구 언론에서 주목을 받기 때문에 더 열광하는 것이다. 변방은 항상 주류의 관심에 목말라 할 수 밖에 없다. 주류가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끼리의 '자화자찬'에 지나지 않으니까.스포츠는 자본과 결합하면서 보다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경기력만큼이나 상업적 가치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점을 가장 먼저 간파한 곳이 스포츠마케팅 회사이다. 사실 김연아와 박태환은 소속사가 같다. 프로선수가 아닌 김연아와 박태환을 몇 년 전에 입도선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른 선수들과 달리 이들이 좋은 성적을 낼 경우 얼마나 큰 가치를 생산할 것인지 이미 기업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본주의는 돈을 외면할 수가 없다. 의미가 있건 무의미하건 그건 운명이다. 따라서 스포츠에서도 종목 간 불균형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한쪽은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해도 '굶주리는' 상황이고, 한쪽은 등장만으로 돈이 몰린다. 이러한 구조는 우리가 만든 게 아니다.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그들이' 만든 구조이다.동계스포츠는 근본적으로 인프라 구축에 재원이 많이 든다. 자연환경도 따라야하고, 장비도 고가(高價)이다. 따라서 저변확대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설상종목은 훈련만으로 극복하기에는 자연환경이 따라주지 못한다. 경기력 수준을 높이려면 최소한 10년이 더 필요하다. 짧은 시간에 가능한 건 그래도 스피드스케이팅, 피겨, 쇼트트랙과 같은 빙상부분이다.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가장 큰 성과는 빙상 전 부분의 금메달획득이고, 어쩌면 김연아 때문에 한국도 동계스포츠를 하고 있다는 것이 주류사회에 처음으로 알려진 계기가 된 것이다./전용배(동명대 체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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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3.05 23:02

[금요칼럼] 100년 인생을 설계하라 - 이영탁

얼마 전 공기업 임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곧 임기가 끝나간다기에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그랬더니 별 계획이 없다면서 이제 나이도 60이 되었으니 앞으로는 좀 쉬어야겠다고 하였다. 그제야 이런 말을 하였다. 지금까지 30년 정도 일했을 것 아니냐. 그것도 대단한 일이다. 지금 사오정이니 오륙도니 하는 판에 30년을 쉬지 않고 일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그렇다고 지금부터 쉬겠다고? 앞으로 얼마나 살 것 같은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적어도 90까지는 살 텐데, 30년을 쉬겠다고. 그건 과거에 70정도 살다가 죽을 때나 하던 소리가 아닌가.그렇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이다. 과거의 사고에 갇혀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나이가 60이 된 사람은 일생을 통틀어 볼 때 절반 밖에 일하지 않았다. 앞으로 30년이나 남은 인생을 두고 일할 생각은 않고 놀 궁리나 하고 있는 것은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인생 후반 에 30년을 놀다가 간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지루하고 답답하겠는가. 이런 인생을 두고 과연 보람 있는 인생이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지난 1960년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52세였다. 그러던 것이 2008년에는 80세가 되었다. 요즘은 매년 0.5세씩 올라가고 있다. 이런 식으로 평균수명이 늘어난다면 앞으로 90세, 100세가 될 날도 멀지 않았다. 문제는 오래 산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행복하게 오래 살아야 한다. 그러자면 사전에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잘 준비하는 자만이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아가는 행운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각자의 취향과 형편에 따라 방법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지금부터 남은 인생을 제대로 설계하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기 인생을 아무런 계획 없이 살아가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어떤 미래학자가 이런 말을 하였다. 미래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마치 어둠 속에서 방향감각 없이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것과 같다고.미래를 설계하지 않고도 각자의 인생은 전개되고 삶은 이어진다. 그런 인생의 미래를 가능한 미래(possible future)라고 하자. 한편 인생은 각자가 가고 싶은 미래, 즉 바람직한 미래(desirable future)가 있다. 미래설계는 결국 가능한 미래를 바람직한 미래 쪽으로 근접시키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각자가 원하는 미래 인생의 목표나 방향을 정해놓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곧 미래설계이다.여기서 미래설계에 있어 필수적인 몇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이미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각자의 남은 인생에 있어 지금이 가장 젊을 때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얼마까지 살 수 있을까, 즉 바람직한 건강의 미래를 설정하고 그 때까지의 인생설계를 지금부터 바로 시작하도록 하자.둘째, 뭔가 하고 싶지만 돈이 없어 못한다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잘 살펴보라. 밑천을 대고 돈을 버는 일도 있지만 돈 없이 할 수 있는 일도 얼마든지 있다. 더구나 미래는 대개 물질적인 욕구는 어느 정도 채워졌기 때문에 정신적인 측면을 훨씬 더 중시한다고 한다. 물질적인 측면을 앞세우는 것은 아직도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셋째, 각자가 지금까지 남을 위해 무엇을 얼마나 했는지를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그리고 어렵게 사느라 자신 이외에는 큰 신경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이만치 사는 것이 내가 노력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운이 좋았던 측면도 있다. 우리 주변에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더구나 미래의 세상은 윤리의 회복을 강조하고 있다. 열악한 조건에서 친환경적으로 농산물을 재배하는 농부들에게 적정한 이윤을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공정무역(fair trade)이 그 한 예이다.지금까지 인생의 과정을 30+30+a라고 한다. 부모 밑에서 30년, 부모 노릇하며 30년, 그러고 나서 환갑 이후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제는 30+30+30+a가 되었다고 한다. 오래 산다고 해서 무조건 축복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추가된 30년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전체 인생에 있어 행복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를 결정짓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100년 인생을 설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이영탁(세계 미래포럼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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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2.26 23:02

[금요칼럼] 무상급식, 어떻게 할 것인가? - 김명곤

초중등학교 무상급식 문제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여당과 야당을 가리지 않고 서울시, 경기도, 대전시, 광주시 등 일부 시도 단체장이나 교육감 후보들이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세우자 이에 대한 찬반으로 선거판이 달구어지고 있는 것이다.찬성하는 쪽에서는 지금처럼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만 무료급식을 하는 것은 대상 학생과 급식비를 내는 학생 사이에 나타날 수 있는 위화감이나, 그 학생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심리적 아픔을 생각할 때 교육적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그러나 반대쪽에서는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할 경우 매년 1조 5,000억 원에서 최고 1조 8,000억 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한데 한정된 교육 재정을 무상급식으로 돌리다 보면 다른 교육예산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으니 오히려 교육정책이 후퇴할 거라고 주장한다.이에 대해 찬성쪽에서는 무상급식은 단순히 교육적 차원에만 한정되지 않고 학교에 내는 급식비에서 절감된 돈이 가계의 지출에 활용됨으로서 경기부양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서민층과 중산층의 육아에 대한 부담을 줄임으로써 출산율을 높이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으며, 우려하는 예산 문제도 다른 부문에서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예산의 지출을 줄여서 국민의 세금 부담이 없이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으니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이에 대해 반대쪽은 강경한 어조로 무상급식이 선거를 염두에 두고 대중들에게 영합하는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다. <조선일보>는 2월 4일자 사설에서 "무상급식 다음엔 공납금 공짜 공약, 외고자사고 폐지 공약, 대학입시 추첨제 공약이 차례차례 또는 한꺼번에 등장할 것이다....아첨꾼 정치인들은 불평등과 빈부격차라는 사회의 그늘을 비집고 독(毒)버섯 돋아나듯 돋아난다"고 썼다. 같은 날 <동아일보>의 사설도 "국민을 속이고 국가에 해독을 끼치는 공약을 남발하는 출마자들은 유권자들이 가려내야 한다"고 했다.포퓰리즘 주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나 아르헨티나의 예를 들어 좌파의 복지 정책이 국가를 부도 사태로 끌고 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반대쪽의 손을 들어 주었다. 2월 12일 한나라당 신임 당직자들과의 조찬회동에서 "있는 사람은 자기 돈으로 해결하고, 그 돈으로 서민을 도와야 한다...복지 예산을 늘리고 싶어도 북유럽 나라처럼 안 된다"고 밝힌 것이 그것이다.현재 전국의 모든 초중고생들을 대상으로 가정형편이 어려운 13% 정도의 학생들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논란의 초점은 바로 이 '가정 형편이 어려운'이라는 단어에 있다. '한 반이 40명이라면 전국적으로 평균 5,6명의 아이들이 무상급식을 받는데 그 아이들에게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이 옳은 일인가?' 라는 질문은 타당하다고 본다.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감정이 예민한 어린 학생들이 다니는 초중등학교 안에서 아이들이 차별을 느끼고 소외감과 상처를 받게 되는 일을 막고 모든 아이들이 똑같이 나라에서 주는 밥을 먹고 평등하게 공부를 시키자는 원칙적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다만 현재 우리 국가의 예산 상황이나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그 시기나 범위를 놓고 서로 다른 의견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니 무상급식은 그 정책이 '옳으냐 그르냐' '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시행되고 있는 수준을 '유지할 것이냐, 더욱 확대할 것이냐, 전면 실시할 것이냐' 하는 실행 방법의 문제로 보인다. 더욱이 무상급식 실행 여부는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에 속하니 부분적으로 실시하든 전면적으로 실시하든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타당하리라고 본다.다만 재원조달 방안에 대한 대안도 없이 표를 의식해서 무조건 선심성 공약을 내세우는 후보는 철저히 검증해야 할 것이다. 그런 한편 이 문제를 포퓰리즘이나 좌파의 이념과 연결시켜 쟁점화하는 일 또한 미래의 꿈나무들을 위해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무상급식 시행으로 인해 학부모들의 세금 부담이 증가하고 더 중요한 교육 사업들이 뒷전으로 밀려날 지, 아니면 평등교육의 혜택으로 인재 양성의 토대가 튼튼하게 마련될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이렇듯 민생이나 교육과 관련된 장기적인 문제일수록 정치적으로 쟁점화하거나 선거의 유불리만을 따질 것이 아니라 국가 백년대계의 수립이라는 과제 속에서 활발한 토론과 공론화 과정을 통해 유권자의 선택에 맡기는 게 올바른 민주주의의 실천이라고 본다./김명곤(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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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2.19 23:02

[금요칼럼]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는 이유 - 이기호

아는 사람들은 이미 다 알겠지만, 우리나라의 학령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시점은 2016년부터이다. 그해부터 우리나라는 고교졸업자수보다 대입정원이 더 많은 사회에 접어들게 되며, 생산가능 인구 또한 하강곡선을 그리며 감소하게 된다. 그에 따라 많은 대학들이 통폐합이나 퇴출의 과정을 통해 사라지게 될 것이며, 기업 또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파산 절차를 밟게 되는, 우울한 현상을 곳곳에서 목도하게 될 것이다. 하나의 학교나, 하나의 기업이 사라지게 되면, 단순히 그 구성원들만 실업자 신세가 되는 것은 아니어서, 그곳을 기반으로 삶의 터전을 닦아오던 많은 사람들, 그러니까 식당 주인들이나 문구사 주인들, 원룸임대업자, PC방 주인들 또한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한데, 여기서의 학교나 기업은 주로 수도권보다는 비수도권 지역을 소재로 한 곳이 그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그 이유는 지난 몇 년 간의 수도권 인구 유입 통계자료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까 수도권으로선 별 문제가 없는 것이 자연인구수가 아무리 감소한다고 해도, 그것을 감내해줄 사회적 인구 유입 증가분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현상을 최소한 몇 년이라도 더 지연시킬 수 있을 거란 얘기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우리나라의 출산율 증가 대책에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고 있는 것은 대개가 비수도권 지자체들이고, 장학제도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지방대학들이다.따지고 보면 2016학번이 되는 친구들이 태어난 해는 바로 1997년, 이 땅에 가브리엘 천사처럼 IMF 구제금융이 당도한 해였다. 그 순간부터 우리나라의 인구 증가분은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했는데, 이 땅의 출산율 감소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고 싶다면 우선 그 시기에 대한 보다 면밀한 관찰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이야 외환보유고가 세계에서 몇 번째이니 우리끼리 서로 자화자찬하고 있지만, 사실 이 땅에 남기고 간 IMF의 내상은 결코 간단치가 않은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이 땅의 광고에서 '부자되세요'라거나 '대박나세요'라는, 이전까지는 너무 속물처럼 여겨져 금기시되어왔던 카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쓰이기 시작한 것도 그맘때쯤이었고, 노숙자 수가 급격히 증가한 것도, 시골 고향집에 아이만 달랑 맡기고 사라지는 편부모의 숫자가 늘어난 것도, 모두 그즈음의 일이었다.집 안에 있는 금붙이까지 싹싹 끌어 모아 보다 빨리 IMF 체제를 극복하려 노력하다 보니, 이런, 어느새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의 최우선 가치는 '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그 이전에도 우리 시대 최고의 가치는 계속 '돈'이었다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어지지만, 그래도 분명한 건 그 이전까지는 최소한 그런 말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공적인 사람들이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뜻이다. 신문만 살펴봐도 그 이전까지는 대부분 우리 시대의 화두는 '이념'이나 '민주'였지, '돈'은 아니었다.하지만 그런 속물적인 화두의 갑작스러운 출물은, 구제금융의 트라우마와 함께 많은 사람들의 의식 자체를 아예 '투자 대비 창출 효과', 혹은 '은행 복리 계산법'으로 뒤바꿔놓았다. 간단한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지자체에서 출산축하금으로 몇 백만 원을 건넨다 해도, 보육료 지원을 얼마씩 인상한다고 해도, 이건 도무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계산이기 때문에, 수지타산에 익숙해진 젊은 부부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IMF가 남기고 간 이 땅의 내상이자, 트라우마이다. 어쩌면 이제 우리들 역시 예전 일본사람들을 비하하면서 종종 했던 말, 바야흐로 '경제동물'들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문제는 이런 화두들이 계속 지속되고 강화된다는 데 있다. 일례로 세종시 문제만 해도 그렇다. 세종시의 원안이 뒤집히는 결정적인 논리들은 무엇인가? 효율과 경제성이 아니던가? 그 역시 다퉈볼 만한 사항들이지만, 사실 원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돈으로 환원되지 않는 가치들이 더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 눈에 띄지 않는 가치들이 모두 무시되고 있다는 것은, 현 정부의 가치지향점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그런 지향점 아래에서 출산율을 높이는 방법은, 딱 한 가지밖에 없는 것 같다. 출산하는 부부에게 원형지를 거의 무상에 가깝게 공급해보라. 성급하게 예견할 순 없지만, 효과는 기대이상일 것이다./이기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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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2.12 23:02

[금요칼럼] 검찰과 법원 논쟁, 누가 반성해야 하나 - 전용배

공부와 운동병행이라는 시대적 경향으로 인해 최근 달라진 체육계의 현상 중에 하나가 운동선수출신들의 고시합격이다. 물론 아직은 그 숫자가 4-5명 수준에 불과하지만 고무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중고 시절 운동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최하위권의 성적을 받았다하더라도 본인의 노력여하에 따라서는 고시도 합격할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를 보여주었다. 합격한 이들이 하나같이 이야기하는 것이, 공학이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했겠지만, 사회과학영역이라 '체력'을 믿고 도전했다고 한다. 바꾸어 이야기하면 외우기만 하면 된다는 뜻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고시합격이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사법고시 합격생 중에서도 우리사회에서 아직도 최고 엘리트집단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 판사와 검사이다.최근 우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검찰과 법원의 논쟁을 보면서, 이해하기 힘든 점이 있다. 적어도 엘리트 집단끼리의 논쟁이라면 보다 논리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검찰과 법원의 마찰 과정에서 전혀 상관없는 '우리법 연구회'문제가 뜬금없이 튀어나오고 있다. 미네르바,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 야간 촛불집회,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전교조 시국선언, 강기갑 민노당 대표, 피디수첩 사건은 모두 우리법연구회와 무관한 판사들이 선고했다. 법원이 어떤 집단인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가치에 충실한 대표적인 집단이다. 왜냐하면 사법부는 기존질서를 지키는 역할을 주로 수행하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진보적이라는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이고, 미국 또한 예외 없이 사법부는 보수적이다. 게다가 판사는 독립적이긴 하지만 판단의 준거는 기본적으로 판례이기 때문에, 큰 틀에서 과거의 관행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들다. 일반 판사가 선고한 7건이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면, 답은 검찰의 무리한 기소 때문이다. 논쟁의 핵심은 기소내용에 대한 법리적 문제가 되어야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상관없는 집단을 마녀 사냥하는 것이 21C 선진인류국가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에서 가능하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물론 검찰은 '정치적 판결'이라 주장하면서 법원에 불만을 토로했지, '우리법 연구회'를 지칭한 적도 없고, 공격한 적도 없다. 진짜 정치적으로 이용한 집단은 '우리법연구회'와 이번 7대 무죄판결이 전혀 상관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문제를 제기한 거대언론과 여당이다. 검찰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할 수도 있지만 이 와중에 검찰이 궁지에 몰리고 있는 것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항 못하고 '복종'만 해온 역사 때문이다. 검찰이 '정권으로부터 부여받은 수사'에 충실한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오죽했으면 지난해 1월 피디수첩 수사를 책임진 주임 검사가 "정부 비판을 명예훼손으로 기소할 수 없다"며 사실상 양심선언을 하고 사퇴했겠는가. 이번 검찰과 법원의 논쟁에서 자기반성이 필요한 집단은 검찰이다."수십 년 검찰역사 속에서, 국민에게 긍정적으로 각인된 검사를 배출한 경험이 없는 검찰. 기소독점이라는 절대 권력을 소유했으면서도, 그 칼을 힘없는 백성과 집단에게만 휘둘러온 검찰. 도쿄지검 특수부가 집권 민주당의 실세인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의 정치 자금을 수사 중인데 비해, 죽은 권력에만 칼을 들이대는 검찰. '거악'과 싸우기는커녕 '거악'과 결탁한 검찰" 이것은 필자의 주장이 아니라, 검사 출신의 김용철 변호사가 새로 출간한 책에서 밝힌, 오늘날 검찰의 자화상이다. 검사도 인간이기에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찌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국민의 공복(公僕)이라면, 최소한 역사를 두려워 할 줄도 알아야 한다. 검찰조직에서 질서, 충성, 의리, 복종 같은 단어가 유의미한 가치로 계속 인정받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러한 가치는 필자가 몸담고 있는 체육계에서도 퇴출된 용어이다. 검찰 깃발에 그려진 칼과 대나무가 진정한 검찰의 상징이 되기를 고대한다./전용배(동명대 체육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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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2.05 23:02

[금요칼럼] 왜 미래인가 - 이영탁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미래를 모르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어둠 속에서 방향감각 없이 절뚝거리는 것과 같다." 이 말대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미래란 먼 훗날에 오는 일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에는 별 관심이 없다. 오늘 하루 먹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미래냐 하는 사람도 있고 온통 과거에 얽매어 옛날이 좋았느니 어쩌니 하면서 뒤만 돌아보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제작년에 홍콩을 방문한 앨빈 토플러가 한 말이 새삼 기억난다.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지만 미래에 대한 준비가 소홀하다."미래는 항상 미래로 있는 것이 아니라 금방 현실로 다가온다. 미래가 현재가 되고 또 과거로 바뀌면서 금방 새로운 미래가 나타난다. 따라서 미래를 잘 예측하고 준비하는 사람이 승자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반대로 미래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 하면서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게 될 리가 없다. 이것은 개인이나 기업이나 국가나 다 마찬가지이다. 행복한 삶을 원하는 개인, 성공적인 기업경영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기업가, 국가사회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자 하는 국민이라면 누구든 미래공부부터 하고 볼 일이다.미래변화의 내용을 한마디로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워낙 다방면에 거쳐 복잡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인구변화나 지구온난화는 어떻게 진전되고 우리에게 던지는 숙제는 무엇인가. 과학기술의 발전속도와 방향, 그리고 그것이 우리생활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인가. 과연 인간이 죽지 않는 세상이 올 것인가, 온다면 언제 쯤인가. 교육이 나라의 장래를 결정한다는데 교육 자체의 미래는 어떻게 되며 미래형 인재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일자리 변화는 어떻게 되며, 어떤 직종이 부상하고 어떤 직종이 사라지는가. 장차 기업의 모습은 어떻게 되고 기업경영방식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개별 국가 대신에 지구촌 정부가 탄생한다는데 과연 그럴 날이 올까. 미래는 온통 사이버 세상이 된다는데 어떻게 적응해 나갈까. 그 때 사람들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생활방식은 어떤 모습으로 바뀔까. 인간의 삶은 결국 행복추구에 최고의 가치를 둘텐데 미래인의 행복은 어디에서 찾을까. 이런 식으로 살펴보자면 끝이 없다.인구문제만 해도 그렇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인구문제는 한마디로 저출산-고령화-인구감소이다. 확실히 우리네는 별난 사람들이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저출산 때문에 아무리 고령화 속도가 빨라도 인구는 곧 줄어들게 되어 있다. 얼마 안있어 노동력이 줄면 생산활동이 축소될 것이고 뒤이어 인구가 줄면 구매력과 시장이 위축될텐데. 일본의 잃어버린 10년도 노동력 감소와 함께 시작되었다는데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고민이 아닐 수 없다.어느 시대, 어느 정부든 국정운영을 잘해서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해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렇게 되지 못하고 국민들로부터 많은 욕을 먹고 만다. 그렇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정부 당국자의 미래 마인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미래지향적 국정운영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야 하고 왜 정부정책에 기를 쓰고 반대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한마디로 국민들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살필 줄 알아야 한다.요즘 사람들은 저마다 똑똑하다. 인터넷이 집집마다 보급되어 있어 매일 매일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산다. 거기다 사람마다 휴대폰을 가지고 그때 그때 소통을 한다. 이처럼 인터넷과 휴대폰으로 무장한 똑똑한 군중들(smart mobs)의 활동영역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데 거침이 없고 정부가 하는 일마다 시시비비를 가리고자 한다. 이들이 무리를 이루어 집단행동을 하기 시작하면 그 위력이 대단하다.능력있는 정책 당국자라면 이들을 끌어안고 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정책 수립 단계에서부터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으고 특히 반대하는 사람들의 견해를 들어 받아들일건 받아들이고 받아들이기 어려운건 그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 결국 이들을 동반자로 만들어 함께 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다가오는 미래는 감성사회이다. 냉철한 머리도 필요하지만 따뜻한 가슴이 없이는 되는 일이 없는 사회가 바로 미래사회이다.우리가 알아야 할 미래는 너무나 복잡하다. 그런데 미래변화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고, 변화의 내용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남보다 먼저 미래를 파악하고 개척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라고 한다. 단순히 예측만 하는 데서 나아가 각자가 원하는대로 만들어가는 노력과 지혜가 필요하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 더 큰 미래를 열어가는 것은 누구나 원하는 바이다. 그것은 곧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승자가 되는 가장 확실한 길이기도 하다./이영탁(세계미래포럼 이사장)▲ 이영탁 이사장은전 총리실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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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1.29 23:02

[금요칼럼] 아마존의 눈물, 아바타, 아이티 - 김명곤

아마존의 와우라 족은 토기와 스테인리스 냄비를 함께 사용하며 발전기로 켜지는 텔레비전 을 즐겨 본다. 예전 브라질의 주요 수입원인 고무 채취에 동원됐던 마르보족의 상당수는 죽거나 마을을 떠났다. 여덟 살 소녀 릴리아니의 엄마는 병으로 죽고, 아빠는 도시로 나간 후 소식이 없다. 아마존 상류에 사는 마티스 족은 온 몸을 검게 칠하고 나뭇잎으로 몸을 감싼 어른이 회초리로 아이를 때리는 풍습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아이를 강하게 만들어 준다는 매서운 회초리질이나 얼굴에 새긴 사나운 재규어 문양에도 불구하고 부족민들은 병들어가고 있다. 사냥꾼 비나는 간염 보균자이며, 그의 둘째부인과 딸도 간염환자가 되었고, 큰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역시 간염으로 죽었다.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은 지상 최대 생물의 보고이며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의 위기를 그리고 있다. 만약 아마존이 사라진다면 인류는 또 다른 행성을 찾아 고달픈 여행을 떠나야 할 지 모른다.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는 에너지가 고갈된 미래 지구의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판도라라는 행성으로 날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들은 매장된 자원을 얻기 위해 원주민인 나비족의 고향에 불을 지르려 한다. <아바타>를 보면서 <아마존의 눈물>을 떠올린 것은 판도라 행성의 자연이 아마존의 밀림을 닮았기 때문이고, 원주민들의 고향에 불을 지르는 짓거리가 바로 지금 아마존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바타>에는 <아마존의 눈물>에는 없는 '영웅'이 있다. 휠체어 신세의 다리를 얻기 위해 행성에 들어 온 주인공 제이크 설리는 판도라의 여인과 사랑을 하고 행성의 아름다움에 빠져 결국 행성을 구해낸다. 그런데 판도라의 자연을 파괴하는 주체도 백인이고, 그것을 구하는 주체도 백인이라는 설정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 의문에 대해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브룩스는 영화 <아바타>가 "백인 메시아가 세계를 구한다는 우화를 강화시키는 백인 관점의 인종적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고 답하고 있다.1492년에 콜럼버스가 첫 발을 디딘 신대륙은 카리브 연안의 키스케야 섬이었다. 섬의 토착민들이 학살과 질병으로 몰살당하자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데려와 노예로 부렸는데, 이들이 현 아이티 국민들의 선조다. 그 후 프랑스 식민지가 되어 가장 잔혹한 수탈을 당한 아이티의 노예들은 기나긴 독립 투쟁을 했고, 드디어 1804년에 세계 최초로 흑인 공화국이 되었다. 미주 대륙에서 미국에 이어 두 번째 공화국으로 독립한 아이티에 대해 흑인노예들의 국가라는 이유로 국가 승인을 거부했던 미국은 1915년에 아이티를 점령해서 1934년까지 통치했다. 아이티가 독립 이후 34번의 쿠데타를 겪으며 최빈국으로 전락한 원인은 서구 열강의 탐욕스런 수탈과 군사개입과 점령을 반복했던 미국의 정책 때문으로 지적된다. 그 미국이 상상을 초월하는 강진 피해로 시신들과 통곡소리와 비명소리 가득한 '생지옥' 아이티의 구호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니 흑인들에게 병 주고 약 주는 백인들의 위세는 대단하다.북극의 빙하가 녹고, 아마존의 숲이 파괴되고, 지진과 해일, 폭염과 강추위가 지구를 뒤덮고 있는 지금 환경파괴로 인한 자연재해는 앞으로 우리의 삶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이러한 자연재해를 보는 시선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아바타>는 웃었지만, 아마존과 아이티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아이티, 아마존, 아바타. 공교롭게도 모두 '아'로 시작된다. 이 '아' 자들이 지금 우리 시대의 큰 화두를 제공하고 있다./김명곤(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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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1.2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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