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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 된 전북, 역동성이 필요하다

'천하우락 재선거(天下憂樂 在選擧)'라는 말이 있다. 세상의 즐거움이나 근심 걱정은 모두 선거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구한말 지식인이었던 실학자 최한기 선생이 한 말이다. 선거는 사람을 쓰거나 추천하는 일로, 오늘날의 선거와는 다르다. 하지만 단체나 조직의 리더를 뽑아 일을 맡긴다는 측면에서는 상통한다. 작년 4.11총선과 대선, 민주당 5.4 전당대회 등 몇차례 굵직굵직한 선거를 치렀다. 선거는 지도자를 뽑고 지역발전을 꾀할 수 있는 유력한 장치다. 그런데 전북은 선거를 통해 나아지기는 커녕 자꾸만 쪼그라들고 있다. 4.11총선은 중진을 밀어내고 7명이 초선으로 채워졌다. 정치력이 크게 약화됐다. 이를테면 예산 칼자루를 쥔 기획재정부를 호령할 역량 있는 국회의원 몇명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언감생심이다. 전북은 중앙과의 창구도 막혀 있다. 청와대 핵심과 소통할 통로가 없다. 우호적인 수석비서관도 없다. 광주에 지역구를 둔 이정현 청와대 정무수석이 광주·전남의 핵심 창구 역할을 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통합을 강조했고 그 일환으로 지역균형발전과 탕평인사를 약속했다. 하지만 탕평인사는 없었고 지역정책은 뒷걸음 쳤다. 창구가 없고 정치력이 없는 전북 같은 곳은 홀대 받을 수 밖에 없다. 인사와 예산·정책·사업 등 어느 것 하나 정치적이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새 정부 초장부터 현안이 터덕거리는 걸 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다. 박 대통령은 지금까지 국책사업인 새만금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이전 문제 역시 새누리당의 공약이지만 '소 닭 보듯' 하고 있다. 전북은 새누리당의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한때 지명직 최고위원 두자리에 광주와 전북·전남 몫이 검토됐지만 결국 광주와 강원 출신이 차지했다. 강원 배려는 선거 때 도움을 준 논공행상의 결과다. 헌데 일관성이 없다. 득표율을 따진다면 광주(7.8%) 대신 전북(13.2%)이라야 맞지 않겠는가. 전북은 존재감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에도 전북출신이 없다. 대주주나 마찬가지인 전북 또는 호남출신이 지도부에 입성하지 못한 건 아무래도 허전하다. 여·야 지도부에 전북을 대표할 인물이 동시에 없는 건 드문 일이다. 지역 대표성을 가진 인물이 없다면 지역의 현안이나 주민의사가 뒷전에 밀릴 것임은 불보듯 뻔하다. 당장 내년 지방선거와도 관련이 있다. 전북은 변방이다. 섬이나 마찬가지다. 고립무원이랄까 사람도, 사업도, 예산도 비빌 곳이 마땅치 않다. '전국 3% 경제', '지역총생산 최하위권' 위상이 30년간 지속되고 있다. 이런 터에 전북은 늙어 있기까지 하다. 고령인구 비율(16.2%)은 최상위권이다. 지역사회에 복장 터질 일이 있으면 주먹질이라도 해대야 할 텐데 소리 지를 힘도 없는 고령인물이 지역을 대표하는 조직의 장을 맡고 있는 곳도 전북이다. 변방에다 역동성마저 없으니 최악이다. 국회의원 간 응집력도 떨어져 있다. 민주당 최고위원 선출 땐 "모 국회의원이 우리지역 후보를 언급치 않고 다른 후보를 선택하라는 오더를 내렸다."며 흥분한 당원도 있었다. 응집력이 떨어지면 정치력도 약화될 수 밖에 없다. 열악한 여건, 취약한 인적 인프라 속에 정치 리더들이란 사람들은 밖으로 뻗어 나가질 못하고 좁은 지역에서 왕초 노릇이나 할려고 안달이다.어떻게 해야 할까.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판갈이를 하지 않고는 전북은 바뀔 수가 없다는 생각이다. 구성원들의 사고도 바뀌어야 하고 인적 판갈이도 필요하다. 그리고 역동적인 전북을 만들 수 있는 인물을 리더로 세워야 한다. 그럴려면 사람을 쓰거나 추천할 때, 또는 선거 때 전략적 판단이 필요할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지역사회가 고민해야 할 것 같다.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3.05.20 23:02

정치쇄신 주도해야 민주당이 산다

작년 대선과 총선을 관통하는 열쇳말은 '새로운 정치'였다. 여야 모두 정치쇄신의 깃발을 펄럭이며 '새로운 정치'를 들고 나왔다. 기성 정당과 정치권의 행태에 대한 불신의 반작용이다. 새 정치는 정치 관행과 제도, 문화 등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작업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기대는 컸다. 뼈저리게 반성하면서 낡은 정치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창출하겠다고 약속한 탓이다. 이를테면 기초단체장·의원 정당공천제 폐지, 국회의원 세비 30% 삭감, 국회의원 '종신연금' 폐지, 국회의원 면책특권 제한, 국회의원 겸직 금지,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 등이 그런 것들이다. 누구랄 것도 없이 특권과 기득권을 내려놓겠다고 침이 마르도록 외쳐댔다. 불과 네달 전의 일이다. 이런 묵직한 개혁과제는 눈 앞의 선거가 없어야 적기다. 선거를 앞두고는 당리당략 때문에 쇄신을 이뤄내기가 어렵다. 다음 총선은 3년, 지방선거는 1년 3개월 남았다. 따라서 지금이 개혁의 호기다. 그런 데도 선거가 끝나고 나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 쇄신 공약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입에 발린 감언이설이 되고 만 것이다. 민주통합당이 더 문제다. 문재인을 찍은 1469만표는 적지 않은 표다. 그들의 염원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대선 패인을 분석하고 수권정당의 면모와 능력을 갖추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그 첫 단계가 정치쇄신 과제들을 주도적으로 실행하는 일이다. 당원과 국민에 대한 도리이고 진보성향의 야당이 해야 할 당연한 몫이기도 하다. 더구나 민주당 스스로 외쳐댄 공약 아닌가. 민주당은 지금 책임지는 사람도 없고 쇄신 공약들을 챙기지도 않고 있다. 대선평가위가 당내 패권주의와 계파정치의 폐해를 강하게 적시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두달전 민주당 지도부가 "잘못했다"며 버스 사과투어를 했을 땐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런데 말로만 사과했지 진정성 있는 실천이 따르지 않았다. 국민 실망만 돋궜다. 국민을 물로 보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기주의적이고 너무 뻔뻔하다. 공약 따위는 선거 때만 필요한 언사(言辭)요, 국민 기만용 호언장담의 수단인 것처럼 비친다. 반면 5.4 전당대회에는 관심이 유별나다. 국회의원 자신들의 미래와 이해득실이 걸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임 짓는 일은 네 탓, 이익되는 일은 내 것의 전형이다. 패인의 하나로 지적된 계파·패권주의가 또다시 벌겋게 달아오를 것이다. 4.24 '서울 노원 병' 선거판에 안철수가 돌아왔다. 신당도 곧 태동될 것이다. 얼마전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은 '10%대 지지율, 3당 전락'이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다. 이젠 별로 충격도 받지 않는 것 같다. 선거가 닥치면 감언이설, 호언장담으로 후다닥 벼락치기 공부한 경험 때문일까. 그동안 호남은 안전지대였다. 공천=당선인데 목줄을 쥔 당의 지도부만 쳐다보면 됐다. 정치쇄신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게 구태요, 기득권에 기댄 안주(安住)다. 이걸 타파하고 국민을 쳐다보는 진심의 정치를 하자는 게 새로운 정치다. 새 정치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정치쇄신을 외면하고 국민을 기만한다면 안철수 신당 같은 대안을 선택할 것이다. 호남이라고 해서 언제까지나 안전지대일 수는 없다. 지금 민주당에 대한 민심이 너무 좋지 않다. 겉으론 침묵하고 있지만 물결처럼 도도히 흐르는 게 민심이다. 민심을 잡을려면 국민 눈높이 정치쇄신을 주도해야 한다. 그래야 민주당이 산다.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3.04.01 23:02

인사탕평의 핵심은 호남이다

지난해 6월20일 농협금융지주회장에 경남 거제출신인 신동규 전 은행연합회장이 선임됨으로써 우리나라 금융계에 전무후무할 진기록이 세워졌다. KB금융 어윤대, 우리금융 이팔성, 신한금융 한동우, 하나금융 김정태, KDB산은 강만수 회장에 이어 대한민국 6대 금융지주회사 회장이 모두 PK(부산 경남) 출신으로 채워진 것이다. 다 아는 것처럼 금융회장 자리는 청문회도 거치지 않는 경제권력이자 최고의 벼슬 아닌가. 여기에다 금융위원회 김석동 위원장도 PK이다. 이런 PK 싹쓸이는 대한민국 금융계에 처음 있는 일이다.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세우기 힘든 '이변 인사'로 기록될 것 같다. 이를 두고 전남 순천 출신인 칼럼니스트 조용헌(52)은 '이간질 인사'로 풀이했다. "5.16은 300년 동안 기호 노론(서인)으로부터 탄압받았던 영남 남인들의 한(恨)이 분출한 것이다. …(5.16으로) 영남은 지난 50년간 어느 정도 한을 풀었다. 그런데 (MB 정권 들어) 더욱 강화된 영남 싹쓸이 인사를 감행하는 행태는 대한민국의 통합을 방해할 뿐인 '이간질 인사'로 보인다." (작년 6월25일자 조선일보 '조용헌살롱') 하기야 특별사면 권한을 이용해 못된 짓을 한 측근 다 풀어준 MB정권이고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국민 생각을 무시하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반대도 아랑곳 하지 않는 불도저식 결단력이야말로 MB의 상징 아닌가. 전북은 정부 요직에서도 변방, 찬밥에 불과했다. MB정부 5년 동안의 '장·차관 147명(장관 49명, 차관 98명) 임명 현황'에 따르면 전북출신은 7명(4.8%)뿐이었다. 그나마 유인촌처럼 '무늬만 전북'인 사람도 있다. 전남 11명, 경북 25명, 경남 17명과도 대조적이다. 물극필반(物極必反). 달도 차면 기울듯 사물의 전개가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하는 법이다. 대통령 당선인 박근혜는 탕평인사와 지역균형발전을 약속했다. 그만큼 호남이 인사에서 차별받고 지역발전 정책에서 소외받았다는 걸 역설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따라서 두가지 약속의 핵심은 호남이다. 박 당선인은 전북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 약속의 구체성을 드러냈다. "생전에 김대중 대통령께서 동서화합을 강조하신 뜻을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 지금 우리나라가 한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화합과 통합이 중요하다. 역대 정권에서도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 가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지역화합과 통합을 위해서는 두가지 과제가 있다. 공평한 인재 등용과 지역균형발전이다." 그러면서 그동안 작은 것 하나라도 챙겼던 사람이 누구냐고 반문했다. 약속을 이행할 사람은 박 당선인 자신이라는 뜻이다. 믿음직스런 말이지만 13.2%의 지지율이 걸린다. 그러나 13.2%의 의미는 민주당한테는 견제구를, 새누리당한테는 진정성을 갖고 좀더 가까이 다가오라는 뜻의 절묘한 표심이다. 무신불립(無信不立). 믿음과 의리가 없으면 개인이나 국가가 존립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신의를 지켜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박근혜 당선인의 트레이드 마크는 원칙과 신의다. 내각 구성에서부터 신의가 지켜져야 한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처럼 사람 쓰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일은 사람이 하기 때문이다. 박 당선인의 첫 조각이 초미의 관심이다. 전북인들은 박 당선인의 탕평인사와 지역균형발전 두 약속을 두고두고 기억해야 할 일이다. 달콤한 사탕발림일까 아닐까.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3.02.04 23:02

대통령은 '투표하는 국민'이 만든다

제18대 대통령 선거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새누리당의 박근혜-민주당의 문재인 양강구도가 형성돼 팽팽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 TV토론이 관심을 모았지만 기계적인 틀 속에 갇혀 별다른 정보도, 감흥도 주지 못했다. 식견의 깊이 측정에도 한계가 따랐다. 대선이 막바지에 이르자 흑색선전만 더욱 가열되고 있다. 그렇긴 해도 선거는 선거다. 향후 5년간 국정을 책임질 지도자를 선출하는 선거는 매우 중요하다. '천하우락 재선거(天下憂樂 在選擧)'라는 말이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최한기 선생이 한 말이다. 천하의 근심과 즐거움이 선거에 있다는 뜻인데 사람 잘 뽑아야 한다는 얘기다. 선거 변수는 여럿이다.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적 차이, 지역색, 정책의 차이, 지역발전 공약 등이 그것이다. 그보다는 안철수 지지자들의 표심과 젊은층의 투표율이 결정적 변수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초박빙 구도이기 때문이다. 휴대폰에는 투표 독려 메시지가 넘친다. 박근혜나 문재인 쪽 모두 마찬가지다. 핵심은 젊은층의 투표율이다. 중앙선관위 조사(전국 1500명)에 따르면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비율은 20대 이하 74.5%, 30대 71.8%, 40대 78.3%, 50대 82.8%, 60대 이상 91.5%였다. 고연령층이 높고 젊은층으로 갈수록 낮다. 역대 대선에서 실제투표율은 의향조사 때보다 3~8% 낮았다. 2030의 젊은층은 대란 세대다. 등록금 대란, 취업대란, 카드대란, 벤처대란, 부동산대란 등 힘든 시기를 경험했다. '30대 정치학'을 쓴 언론인 김종배는 이런 배경 때문에 "30대가 가장 정치적, 진보적"이라고 말한다. 세대대결이 본격화한 지난 10년동안 각종 선거에서 30대는 가장 진보적인 선택을 해왔다는 것이다.선거는 검증이고 심판이다. 그럴려면 투표를 해야 한다. 18대 대선을 앞두고 주목받는 드라마가 있다. '프레지던트'(2010년 12월15일∼2011년 2월24일)라는 20부작 드라마다. '대학생과의 간담회'에서 대통령 경선 후보로 나선 최수종의 명대사가 SNS에서 달궈지고 있다. 옮겨 싣는다. "학생1 : 청년실업의 책임이 청년들에게 있다고 하셨나요? 최수종 : 상당 부분 청년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했습니다. 학생2 : 그런 무책임한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정치권과 정부의 무능 때문이지, 그게 왜 대학생들 책임입니까? 비겁하게 사회적 약자인 청년들한테 책임을 전가하지 마세요. 아무리 스펙을 쌓아도 취업이 하늘이 별따기라는 말입니다. 당장 발언을 취소하고 전국의 대학생들한테 사과하세요.최수종 : 자, 내가 왜 사과를 해야죠? 대통령은 누가 만듭니까? 학생3 : 그야 국민들이죠. 최수종 : 지성인답게 보다 정확하게 이야기 하세요. 정말 국민입니까? 학생4 : 당연하죠. 최수종 : 틀렸어요. 대통령은 '투표하는 국민들이' 만드는 겁니다. 정치인은 표를 먹고 삽니다. 세상에 어느 정치인이 표도 주지 않는 사람을 위해 발로 뜁니까? 여러분들도 귀가 닳도록 들었죠? 청년실업 해소, 일자리 수십만개 창출 그러나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왜 그럴까요? 여러분들이 정치를 혐오하기 때문입니다. 투표 안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못 배우고 나이든 어르신들이 지팡이 짚고 버스 타고 읍내에 나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때 지성인이라고 자처하는 여러분들은 산으로, 강으로 놀러갔습니다. 영어사전은 종이채 찢어먹으면서 손바닥만한 선거공보에 눈길 한번 주지 않았습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사람은 보호 받지 못합니다.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은 결코 보호받지 못합니다. 투표하십시오. 청년 실업자들의 분노와 서러움을 표로, 오로지 표로서 나같은 정치인에게 똑똑히 보여주십시오."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2.12.17 23:02

바보야, 문제는 실리(實利)야!

윤재호 건설협회도회장이 신임 인사차 지역 국가기관장을 예방했다. 조단위 사업물량을 투자하는 기관이다. "도내 건설업체들이 사업물량을 많이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랬더니 이 기관장은 "시장 군수들한테 도와달라고 하세요." 했다. 애써 일을 하면 단체장들이 마치 자신이 한 것처럼 생색 내버리는 행태를 비꼰 언급이다. 일거리를 만들어 지역을 도와봤자 고맙다는 전화 한 통도 없더라고 했다. 이런 정도라면 우리지역에 애정을 갖고 사업을 추진할 기관이 얼마나 될지 우려스럽다.지역경제가 매우 어렵다. 대기업들은 대선 이후에 대비, 유동성 확보에 열중하고 있다. 그러니 돈이 돌지 않는다. 자영업, 건설업, 제조업 모두 죽을 맛이다. 도내 건설업체들은 아예 물량 자체가 없어 불황에 빠져 있다. 7월말 현재 수주액은 8400억 원. 작년 같은 기간 1조3400억 원의 58%에 불과하다. 도내 종합건설업체는 682개나 되는데 숟가락 꽂을 곳이 없으니 항상 배가 고프다. '개점휴업' 업체도 부지기 수다. 지역경제가 기지개를 켤려면 주택, 토지, 도로 등 건설사업을 많이 실행해야 한다. 협력업체와 하청, 인력고용과 자재 등의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지역발전을 앞당기는 효과도 있다. 전국의 단체장들이 개발사업에 매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능력이 없는 단체장과 정치인에게는 선거때 표를 주지 말아야 한다. 개발사업을 많이 하는 곳이 LH(토지주택공사)다. 도내 연간 투자액이 5000억 원 규모다. 주택건설과 택지개발, 산업단지 조성이 사업 영역이다. 전북에서는 전주 만성지구와 효천지구, 익산 국가식품클러스터, 혁신도시, 군산 신역세권, 완주 삼봉, 정읍 첨단산단 등이 추진되고 있다. 모두 서둘러야 할 사업들이다. 그런데 LH가 시큰둥하다. 자치단체가 식품클러스터 로드맵을 발표했지만 사업추진 주체인 LH는 검토도 하지 않고 있다. 웃기지 말라는 투다. 충남 등 다른 지역의 신규 사업들이 속속 확정되고 있지만 전북의 그것들은 불투명하다. 김호수 부안군수가 임대아파트 건설을 요구했지만 여전히 미정이다. 임대아파트는 전국 공통의 요구 사업이다. 일부 예를 들었지만 전북은 향후 LH사업에 애를 먹을 것 같다. 왜 그런가. 지역이 LH를 적대적 관계로 만든 탓이 크다. 전주 효자5지구 보금자리 아파트 고분양가 논란과 관련, 일부 지방의원과 국회의원이 LH본사에서 가격인하를 요구하며 강도 높은 액션을 취했다. 애당초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면 떼쓰는 것으로 밖에 비치지 않는다. 얻은 것도 없이 전북의 이미지만 나빠졌다. 또 전북도가 분양가를 내리지 않으면 앞으로 사업 인·허가를 내줄 수 없다는 공문을 LH에 보낸 것도 화를 돋궜다. 김완주 지사는 임대아파트 공약을 이행할려면 아쉬운 소릴 해야 할 텐데 너무 한 게 아니냐고 지적하자 "그때 가서 술 사고 로비해야지."라고 반응했다. 참으로 편한 답변이다. 이런 맛보기식 대응은 사업 구조조정을 하는 LH한테 좋은 핑계거리가 될 수 있다.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이다. 도와주고 싶은 의욕을 사정 없이 꺾어버리는 행태다.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은 결국 지역개발의 발목을 잡고 전북을 외톨이로 만드는 부메랑이 되고 있음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기관장의 언급과 LH 두 사례는 투자기관을 우호적 관계로 만들어 실리를 챙겨야 한다는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단체장과 정치인들이 어려운 시기에 허풍을 떨고 튀는 행정이나 하면서 여유 부릴 때가 아니다. 일할 의욕을 북돋아 주고 투자기관을 활용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 사람이 유능한 정치인이다. 2014년 지방선거 때 어떤 성적표를 내놓을지 지금부터 고민해야 할 때다. 차 한잔 대접하면서 투자사업 기관장들의 얘기를 경청하는 일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싶다.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2.09.03 23:02

근로자들이여, '쉴 권리'를 찾아먹자

'노는 만큼 성공한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등 도발적 제목의 책 저자로 유명한 김정운(50)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은 '재미학 전도사'다.'재미 있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재미 있게 사는 방법을 연구한다. 한국이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도 결국 재미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설파한다. 명지대에서 여가경영학이라는 생소한 분야를 가르쳤지만 올해 교수직을 사직했다. 독일에서 박사학위(문화심리학)를 받고 귀국해 한동안 백수생활 하다 어렵게 얻은 교수직을 때려 치운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서란다. 용기가 가상하다. 한국은 일 많이 하기로 유명한 나라다. 2010년 한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193시간이다. OECD 국가중 1위다. OECD 회원국 평균 노동시간은 1749시간인데 선진국의 노동시간은 대부분 평균치 이하다. 일 많이 한다는 일본도 1733시간 밖에 안된다. 1419시간에 불과한 독일은 적게 일하면서도 대부분의 산업이 세계적 경쟁우위를 보인다. 이런 걸 보면 일의 양이 결코 생산성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과거엔 일 많이 하는 게 자랑이었지만 이젠 삶의 질을 따지는 시대다. 재미 있게 살고, 사람답게 사는 방법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최근 등장한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정치 슬로건에 좋은 반응을 보이는 것도 지친 삶에 대한 반작용의 결과일 것이다. 얼마전 국회 강동원 의원(통합진보당=남원 순창)이 '야근방지특별법'('실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창출 특별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도 그런 맥락이다. 김정운 소장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은 열심히 하는데 일 이외의 영역을 어떻게 경영할 지에 대해선 아무 의식이 없다."고 지적한다. 놀 줄도, 쉴 줄도 모르고 여가문화를 즐기지도 못한다는 얘기다. 휴일도 잊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면서 일에 치여 산 사람이라면 여가를 재밌게 경영할 리 만무하다. 노동시간 세계 1위라면 세계인의 눈에는 죽어라 일만 하는 나라로 비칠 것이다. 창피할 노릇이다. 노동도 창의성과 자발성이 있는 노동이라야 경쟁력이 있다. 창의성과 자발성은 놀고 쉬면서 에너지를 재충전할 때 극대화된다. 쉴 틈이 없는데 어디에서 창의력이 나오겠는가.유럽의 여러 나라와 미국 등 선진국들의 노동시간이 짧은 건 휴가일수가 많고 법정 휴가를 다 찾아먹기 때문이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재임중 여름휴가를 30일이나 썼다. 브라운 영국 총리와 메르켈 독일 총리도 비슷하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대통령의 법정 휴가일수는 21일이다. 이걸 다 쓰면서 여름휴가를 보낸다면 아마 따가운 눈총을 받을 것이다. 도지사나 시장 군수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공무원들도 법정휴가를 다 쓰지 않는다. 상사 눈치 때문이다. 대기업은 물론이고 조그마한 사기업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사장이나 직장 상사가 휴가를 가지 않고 출근하는 마당에 직원들이 휴가 일수를 다 찾아 먹기란 웬만한 배짱이 아니고서는 어렵다. 그런들 왕짜증만 날뿐 일 해 봤자 생산성도 오르지 않는다. 휴가 가지 않고 일 하는 게 회사에 '충성한다'는 그릇된 생각을 갖고 있는 중간 간부들도 있다. 직원들이 손가락질 하는 줄도 모르면서. 장마가 걷히고 여름 휴가철이 시작됐다.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휴가를 포기하거나 다 쓰지 않는 건 낡은 생각이다. 행정기관, 사회단체, 기업의 장(長) 또는 조직의 높은 자리에 있는 인사들부터 휴가 제대로 쓰기에 솔선해 보자. 그래야 소속 구성원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근로자들도 '놀 권리' '쉴 권리'를 적극적으로 찾아 먹어야 한다.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2.07.23 23:02

'새만금 갖고 놀기' 이제 그만 해라

김완주 도지사는 전주시장 시절 전북도를 파트너 삼아 몸집을 불렸다. 유종근 강현욱 지사를 상대로 치고 빠지기를 간헐적으로 하면서 정치적인 입지를 다졌다. 새만금도 그 중의 하나였다. '강만금'의 별칭을 갖고 있는 강현욱 지사가 새만금에 올인하는 걸 보고는 "전라북도엔 새만금밖에 없느냐"고 비판했다. 그랬던 김 지사도 도정을 맡고 난 뒤엔 역시 새만금에 치중하고 있다. 지금의 송하진 전주시장도 '다른 할 일이 많은데 전라북도가 과연 새만금에 올인해야 하는가' 하는 점에서는 과거 김완주 전주시장의 견해와 다르지 않다. 다른 게 있다면 송 시장은 김 지사처럼 전북도를 파트너 삼아 몸집 불리기를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깍듯하다.새만금은 1991년 첫 삽을 뜬 뒤 22년째 진행형이다. 방조제를 쌓았지만 아직도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다. 그런데 참 성급하다. 망망대해를 두고'명품 새만금','수변 도시(water front)'또는'동북아경제 허브(hub)'운운 한다. 장담에 현혹될 일이 아니다. 자칫 잘못하다간'구정물 새만금'이 될 수도 있다. 새만금 컨셉은 정권이 바뀌거나 용역이 의뢰될 때마다 바뀌었다. 완성년도인 2020년까지 몇차례나 또 바뀔지 모를 일이다. 왜 그런가. 새만금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시즌이면 새만금은 단골메뉴다. 도민 입맛에 맞는 장밋빛 수사(修辭)가 넘친다. 지난주엔 새누리당 지도부가 전주에 와서 한바탕 립서비스를 날리고 갔다. "새만금이 완공되면 서해 경제권의 중심지가 될 것(황우여 대표)", "국가차원의 대책 필요(이혜훈 최고위원)", "새만금특별법 개정과 특별회계 및 전담기구 설치 필요(정우택 최고위원)" 등등. 그러고는 당 차원의 지원을 약속했다. 경험적으로 보면 공수표일 개연성이 높다. 박희태 정몽준 박근혜 전 대표도 그랬거니와 이재오 원희룡 허태열 등 중진 정치인들도 새만금을 얘기했지만 결국 립서비스에 그쳤다. 정치인들은 전북을 방문하면 왜 새만금 얘기만 하는가. 전라북도가 새만금에 목 매달고 있기 때문이다. 전북이 울고 불며 예산타령을 해대니 마치 전북의 사업처럼 돼 버렸다. 정치인들은 표를 구걸하는 수단으로 새만금을 이용해 먹고 있다. 주민 뜻과는 상관 없이 새만금은 어느새 지역을 대표하는 제일 의제가 돼 버린 것이다. 새만금은 전북한테 중요한 사업임에 틀림 없다. 미래 비전이 담겨 있지만 한편으로는 재앙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전북도의 사업이 아니라 국책사업이라는 사실이다. 국책사업에 아무런 권한도 없는 도지사가 새만금 추진상황을 정당 지도부한테 보고하고 애걸하는 형식은 주객이전도된 것이다. 도민을 대표하는 도지사라면 그동안 정치인들이 배설한 새만금 약속이 이행됐는지, 아니면 립서비스에 그쳤는지 따져야 옳다. 찬란한 수사와 공약들을 던져놓고 나몰라라 하는 정치인들의 뻔뻔함은 누가 질책할 것인가. 연말 대선까지 새만금은 주요 이슈로 작용할 것이다. '새만금 갖고 놀기'가 또 되풀이되는 셈이다. 소갈비도 거푸 세끼 먹으면 질리는 법인데 그놈의 새만금 찬사와 지원 약속을 반복해서 듣는 건 고역이다. 지금 새만금한테 필요한 건 장밋빛 청사진이 아니라 기간시설과 환경시설 확충이다. 그리고 완성된 뒤에는 규제와 자본이동의 제한이 없는 특별 구역으로 만들어야 국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모두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엊그제 새만금 현장에서 김황식 총리도 말하지 않던가. 새만금사업을 정부가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이젠 새만금을 놓아주자. 새만금은 정치색을 띠지 않아야 잘 굴러간다. 그럴려면 전북사업이라는 이미지를 벗겨내야 한다. 전북이 새만금에 올인할 에너지를 삼성이나 현대, LG연구소에 가서 미래 부가가치가 높은 사업이 뭔지 연구하는데 쏟는다면 훨씬 나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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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재
  • 2012.06.18 23:02

의원님들, 4년을 '처음처럼' 일하시오

'처음처럼'이라는 한글 서체는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71)가 감옥(대전교도소)에서 개발한 것이다. 상형문자인 한자처럼, 한글도 지시하는 대상과의 관계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글씨를 쓰려고 시도했다. 이 서체는 출소 후 소주 브랜드로 쓰여지면서 유명해졌다. 두산소주는 '처음처럼'을 로고로 쓰는 대신 성공회대에 1억원의 장학금을 제공했다. 그런데 '처음처럼'이라는 글씨를 쓴 동기가 인상적이다. "어렸을 때 노트를 쓰다가 글씨가 마음에 안들면 그 장을 뜯어내고 새로 쓰지만 또 마음에 들지 않아 뜯어내고, 앞장을 뜯어내면 뒷장의 멀쩡한 노트가 떨어져 나가요. 그래서 그 다음 장을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쓰자는 것, …뭐 이런 뜻으로 시작된 거예요"(김정운의 '남자의 물건'에서 인용)산다는 것, 인생이라는 것은 잘못 쓰여진 노트처럼 결코 뜯어낼 수 없다. 늘 새로 시작하는 마음처럼 한결같은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니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다. 6월1일부터는 19대 국회의원 임기가 시작된다. 전북에서는 11명의 지역구 의원들이 전북을 대표해 중앙무대에서 활약하게 된다. 초선의원이 7명이나 된다. 숫자도 적은 데다 초선의원 비율이 높아 정치력 약화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아무리 중진일 망정 초선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하기 나름이다.당선자들은 선거 때 지역발전과 관련한 많은 약속들을 내놓았다. 당선된 뒤에는 머슴 역할을 하겠다며 바위덩어리 같은 무게의 당선사례를 수도 없이 했다. 보기 좋은 모습이다. 표를 찍어준 유권자와 도민들은 언행이 일치하는지 주시할 것이다. 당선되기는 어렵지만 떨어지기는 쉽다. 지역 일을 등한히 하면 추풍낙엽이다. 이번 선거가 증명하지 않던가. 3선 의원이 신예한테 나가 떨어지고 재선의원이 겨우 턱걸이 당선했다. 무소속 후보의 득표력도 놀라웠다. 당선자와 5% 대 차이 밖에 나지 않는 곳도 두 군데나 된다. 신발끈을 한번만 더 바짝 조였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는 간극이다. 이런 실정일 진대 허수로이 의정활동을 할 수는 없다. 등원하면 일로 승부해야 한다. 지금 정부 각 부처는 내년도 사업과 예산을 놓고 작업중이다. 등원 하자마자 큰 숙제가 안겨져 있는 셈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장·차관들을 다루기란 녹록치 않다. 그들을 호령할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국회의원 배지 단 기분을 즐길 여유가 없다. 공부하지 않으면 빌빌 거리다 1년 지나고 한 일도 없이 4년을 허송세월 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정치력 강화다. 전북 정치권은 숫적 열세에다 응집력도 약하다. 현안 문제를 놓고도 국회의원 끼리, 또는 도정과 국회의원 간 유대가 시원치 않았다. 정치권이 똘똘 뭉쳐 제대로 된 지역발전의 구심체 역할을 하는 것이 숙제다. 다른 하나는 독창성과 창의성의 발현이다. 전북은 30여년간 낙후된 곳이다. 생각이나 판단, 일하는 방식을 과거처럼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해선 나아질 수 없다. '따라하기 행정', '패거리 정치'로는 비전이 없다. 앞서 갈려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무장하고 새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한다. 등원 초기엔 의욕이 넘치지만 시일이 흐르면 매너리즘이 유혹한다. 자리를 탐내고 권위나 내세우면서 잇권에 관심을 쏟는다면 '전승이 수승난(戰勝易 守勝難)'으로 결과되고 말 것이다. 싸움에 승리하기는 쉬우나 그 승리를 지속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임기 4년은 금방 지나간다. '처음처럼'을 쓴 동기처럼 노트 첫 장 쓰는 마음으로 의정활동을 한다면 뜯어내지 않아도 될 두꺼운 노트로 남을 것이다. 지역도 분명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중앙무대에서 쫄지 말고 떵떵거리면서 호령하는 의원이 되라고 덧붙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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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재
  • 2012.05.14 23:02

전북에게는 일당백의 인물이 필요하다

선거일이 코 앞에 닥쳤다. 그런데도 부동층은 20∼30%에 이른다. 도내 11개 선거구 45명의 후보들은 그야말로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의 심정일 테고, 유권자들은 시장에 나온 상품 고르듯 꼼꼼히 뜯어보고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후보라는 상품은 유권자 입맛에 맞게, 그럴 듯 하게, 그리고 정성껏 포장돼 있다. 포장지 속에 가려진 하자를 발견해 내기란 여건 어려운 게 아니다. 유권자들의 선구안이 필요하다. 몇가지 기준이 있긴 하다. 공약이나 정책은 후보를 판단하는 유력한 수단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전문성이 있어야 판별이 가능한 사안도 있고 표를 의식하다 보니 후보간 차별성이 드러나지 않은 경우도 많다. 공약과 정책이 중요하긴 하지만 딱딱하고 재미가 없다. 눈길도 끌지 못한다. 그래서 감성 투표나 묻지마 투표가 성행한다. 고상한 기준도 있다. 막스 베버(1864∼1920)는 좋은 정치인이 되는 데는 세 가지 자질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열정'과 '책임의식', '균형감각'이 그것이다. 1919년 독일 뮌헨대학 자유주의 학생단체의 요청으로 공개 강연한 것을 정리한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책에서 그렇게 피력했다. 92년이 지난 지금도 딱 들어맞는 조건이다. 잠재적 대권주자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지난주 전남대 강연에서 총선 가이드라인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진영(陣營) 논리에 빠져 정파적 이익에 급급한 사람보다는 국익과 국민을 생각하는 사람, 둘째 과거보다는 미래가치를 이야기하는 사람, 셋째 분노나 대립을 얘기하기 보다는 온건하고 따뜻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조건도 훌륭한 기준이다. 막스 베버나 안 원장 모두 후보들이 저마다 잘나고 똑똑하다며 즐비하게 늘어놓은 스펙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는 점이 무엇보다 맘에 든다. 그런데 이러한 기준을 갖춘 사람도 드물거니와 그런 인물을 고르는 일 역시 쉽지 않다. 그렇다고 대충 선택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후보 고르기가 쉽지 않다면, 특히 부동층 유권자라면 선택 기준을 좁혀 전북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다. 정치력이 왜소한 전북의 처지도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유치 과정에서 보았듯 전북의 정치권은 너무나 무기력했다. 응집력도 약하다. 열정이나 책임, 전략 모두 낙제점이었다. 숫자로도 전북의 정치력은 허약하기 짝이 없다. 이번 선거에서 전국적으로 246명의 국회의원이 탄생하지만 전북은 11명에 불과하다. 4.4% 비율이다. 국회의원 11명으로는 국회 상임위도 다 커버하지 못한다. 상임위(16개)는 다양한 직능분야를 다루고 조율하는 기구다. 사실상의 모든 현안이 이 곳에서 논의되는 곳인데 전북은 한 개 상임위당 한 명꼴도 배치되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런 정치환경을 고려한다면 전북의 국회의원은 일당백(一當百)의 역할을 해야 맞다. 국회의원 한 명이 두 세명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막스 베버나 안 원장이 얘기하는 자질도 중요하지만 정치력이 허약한 전북한테는 오히려 일당백의 인물이 더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돼야 하지 않을까. 전북의 유권자라면 이에 걸맞는 후보가 누구인지를 놓고 천착할 필요가 있다. 선거를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선거는 후보 심판이자 인물 천거 행위이다. 기성 정치인은 그동안의 정치행위를 심판 받는 날이고 유권자는 지역 대표 인물을 선택하는 날이다. 또 쓸모 없는 정치 자원들을 솎아 내는 날이기도 하다. 점심 먹을 때도 뭘 먹을까 고민하는데 하물며 우리지역 대표 인물 뽑는 걸 그냥 대충 할 수는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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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재
  • 2012.04.09 23:02

회초리 더 맞아야 정신차릴텐가

민주통합당의 공천 민심이 사납다. 핵심 가치인 정체성과 도덕성에 일관성이 없고, 지난 1월15일 지도부 경선 때 큰 덕을 보았던 모바일 국민경선도 동원과 불법으로 얼룩져 버렸다. 한명숙 대표는 공천혁명을 이뤄내겠다고 천명했지만 지금까지 진행되는 걸 보면 혁명은 커녕 개혁 축에도 끼이지 못하는 것 같다. 공천원칙과 기준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다. 어느 선거구는 4배수, 어느 선거구는 2배수로 압축하고 또 다른 선거구는 필터링 기능도 하지 않고 전원 여론조사에 맡겨버리고 있다. 이런 판이니 고무줄 공천, 무원칙 공천이라는 비판이 나온다.현역 물갈이를 요구하는 국민 기대는 하늘을 찌를듯 한데 지금까지 세차례 발표한 153개 선거구중 현역이 탈락한 곳은 하나도 없다.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면 개혁은 불가능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두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다. 하나는 원칙과 기준을 운용하는 태도다. 원칙을 제시했으면 예외 없이 적용해야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탈락자들의 불만도 없다. 그런데 이 원칙이 왔다리 갔다리 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지붕 세가족의 태생적 한계에 있다. 민주통합당에는 민주당과 시민통합당, 한국노총 세 세력이 작용하고 있다. 공심위 결정에 세 세력의 이른바 리모컨공천이 작동하고 있다. 당초 그린 그림이 일그러질 수 밖에 없다. 강철규 공천심사위원장이 지도부와 갈등을 겪은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는 공천시스템을 복잡한 사거리 교통신호시스템에 비유했다. 힘 있는 사람의 수신호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정해진 원칙과 기준에 따른 시스템공천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경차는 세우고 검은 세단이라고 해서 통과시킨다면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느냐는 논리다.민주당은 사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지리멸렬했다. 전북지역에서 조차 '민주당도 이젠 회초리 좀 맞아야 한다'는 기류가 강했다. 여론조사 결과는 20%대에 머물렀고 이명박 정권의 실정(失政)에 따른 반사이익이나 보는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지난 연말 시민통합당과 한국노총이 통합되면서 지지율이 오르기 시작했다. 지난 1월 지도부 경선 때 최고를 기록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리막길이다. 국민 눈높이의 공천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민주통합당이 정신을 차리려면 회초리 좀 더 맞아야 한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 '자만심에 빠져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비판을 겸허히 새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심은 등을 돌리고 말 것이다. 중국 주(周)나라 유학자인 순자(荀子)는 '군주는 배요, 백성은 물과 같다'고 했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때로는 배를 엎어 버리기도 하는데 정치 리더들이 정치를 잘못 하면 갈아 엎을 수 있다는 걸 빗댄 표현이다. 2300여년 전의 정치철학은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하다. 지금까지 공천은 영남과 서울·인천 등 수도권, 강원·충청 일부 지역에서 확정됐다. 문제는 호남지역이다. 신경민 대변인은 "기대해도 좋다. 달라질 것이다"고 말했지만 두고 볼 일이다. 민주통합당의 텃밭이나 마찬가지인 호남은 다른 지역과는 다른 더 엄격한 기준과 잣대를 들이대야 옳다. 공천이 곧 당선이 될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지금부터라도 좀 화끈하게 국민 눈높이에서 공천을 했으면 한다. "정치혁신을 원하는 국민 염원을 잊어선 안된다. 국민을 두려워 하지 않으면 집권할 수 없고 집권하더라도 좋은 정치 할 수 없다." "더 낮은 자세로 일하겠다. 국민이 원하는 인물을 공천해 달라." 강철규 위원장의 핀잔에 한명숙 대표의 화답이다. 기대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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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재
  • 2012.03.05 23:02

기업유치, 아마추어 행정으론 안된다

1994년 착공된 완주 봉동의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은 자동차산업의 불모지였던 전북을 상용차 생산기지로 탈바꿈시켰다. 버스와 트럭, 특장차 등 중대형 상용차를 연간 10만대씩 생산하고 있다. 상용차 전용 공장으로선 세계 최대 규모다. 이 공장의 고용인원은 4100명, 협력업체에 종사하는 인원도 30개 업체에 1100명이다. 자치단체에 내는 세금이 연간 70억원이다. 직·간접적인 지역기여도는 이보다 훨씬 클 것이다. 현대자동차가 이곳에 순탄하게 둥지를 튼 데에는 단체장의 의지와 주민들의 협력이 컸다. 1993년 무렵이던가, 당시 이승 완주군수는 단 3일만에 공장 허가를 내주었다. 고용과 소득, 지역이미지에 크게 기여하리라는 판단에서였다.하지만 농지 관련 부서에서는 저항이 컸다. 여러 이유를 대면서 제동을 걸었다. 이 군수는 으름장을 놓기도 했고 서류뭉치를 과장한테 내던지기도 했다. 이런 곡절 끝에 사흘만에 허가가 났다. 요즘으로 치면 원스톱서비스인데, 당시에는 이런 개념도 없었고 오히려 권한을 즐기던 시절이었으니 파격이었다.이럴 때 기업은 감동하기 마련이다. 당시 전성원 현대자동차 사장은 공·사석에서 이 사례를 들며 '공장하기 가장 좋은 곳이 전북 완주'라고 치켜세우곤 했다. 지역의 이미지까지 업그레이드됐다. 단체장의 의지가 이러니 부지매입도 순조로웠다.가장 먼저 기업도시가 된 울산은 지금 16개 광역자치단체에서 소득수준이 제일 높다. 활력이 넘친다. 충남 아산신도시와 경기 파주신도시도 마찬가지다. LCD에서 세계 1,2위를 다투는 삼성전자 탕정산업단지와 LG필립스 LCD단지가 들어선 곳이다. (주)효성이 전주 팔복동·동산동 일원에 탄소섬유공장을 짓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이다. 1조2000억원을 투자하는 매머드 프로젝트다. 탄소섬유는 부가가치가 높은 미래 신소재다. 그런데 일부 토지주 반발이 계속되고 있다. 연말 안에 착공하겠다는 계획도 해를 넘겼다. 뒤늦게 막차 탄 토지주, 대토(代土)할 여건이 안되는 토지주, 보상비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토지주 등이 선뜻 동의할 리 없다. 개중에는 얼토당토않는 황당한 조건을 내건 토지주도 있긴 하다. 하지만 토지주 반발 탓만 하는 건 너무 무책임하다. 토지주 반발은 예견된 것이다. 이런 때 어떻게 할 것인지가 능력이다. 다양한 수단과 방법, 기술적인 조치 등이 강구돼야 하고, 때로는 강하게 밀어부치는 뚝심도 필요하다. 어르고 달랠 필요도 있고, 법으로 다스릴 위엄도 있어야 한다. 이런 일을 소홀히 해놓고 효성측에서 문제제기를 하자 전북도와 전주시가 뒤늦게 법석을 떨고 있다. 전북도는 지난해 투자협약 체결한다고 갑작스레 사람 불러모아 사진 찍고 홍보했다. 그런 열정이라면 토지주 협의도 진작 끝냈어야 했을 터이다. 닥쳐서야 호들갑을 떠는 건 아마추어들이나 하는 행태다. 기업한테는 시간이 돈이다. 탄소섬유 선두주자인 일본 도레이그룹은 지난해 6월 경북 구미 국가산단에서 기공식을 갖고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연간 2200톤 규모로 2013년부터 생산에 들어간다. 생산규모와 시기가 (주)효성의 그것과 비슷하다. 도레이와 경쟁해야 할 (주)효성으로선 다급할 수 밖에 없다. 이럴진대 기업한테 감동을 주기는 커녕 연말내 착공 약속도 지키지 못하면서 무슨 기업유치를 한다고 떠들어대는지 모르겠다. 오겠다는 기업도 가로막는 꼴이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탄소공장이 제대로 착공되길 기원하며 2000만원씩 내놓은 익명의 기부자가 있었다. 토지주들도 이런 심정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대승적 안목이 있어야 지역이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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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재
  • 2012.01.30 23:02

정치신인을 위한 고언(苦言)

정치시즌이 본격화되고 있다. 잇달아 열리는 출판기념회가 정치의 계절이라는 걸 실감나게 만든다. 기성 정치권도 분주하고 예비 정치인들도 잰걸음이다. 내일부터는 예비후보 등록을 하고 공식적으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관객들도 덩달아 바쁘다. 관객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기성 정치권이 기대에 못 미치니 확 바꿔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 어떻게 바꾸지? 하면 얼버무리기 일쑤다. 주자들은 많지만 딱히 ‘이 사람이다’ 할만한 입지자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함량미달도 있다. 개나 걸이나 빠꾸 퇴까지 나선다면 선거판이 희화화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옹이 하나 없고 조금도 비뚤어지지 않은 나무를 찾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모든 나무가 다 결이 좋은 것도 아니다. 얼핏 보아 나빠 보이는 나무도 나쁜 부분만 베어버리면 얼마든지 쓸모 있는 재목이 된다. 자사(子思)가 위나라 임금에게 인물을 천거하면서 한 말이다. 내년 4·11 총선은 정치신인들하테는 좋은 기회다. 야권이 통합을 결의하고 총선 공천방식도 ‘완전개방 시민경선’을 채택했으니 이처럼 좋은 조건이 없다. 또 때마침 불어닥친 이른바 ‘안철수 효과’도 천군만마다. 10·26 재보선 때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를 확실히 확인시켜 주지 않았던가. ‘통합과 혁신’ 바람도 기성 정치권을 뒤흔들 수 있는 최종병기다. 하지만 정치란 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합종연횡과 이합집산, 뒷다리걸기, 술수와 거래, 거짓말이 판 치는 게 정치판이다. 2009년 4·29 재선거 때 전주 덕진구에 출마했던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최근 이런 경험을 털어놓았다. “식당이나 술집에서 명함을 건네면 확 던져버리는 사람도 있더라. 그것도 내가 보는 데서. 내가 무슨 통닭집 알바생도 아니고 죽겠더라.” “민주당 당원들과 회의할 때 ‘앞서가고 있다. 열심히 하자’고 당부했는데 그때 아마 당원들이 나 보고 미쳤다고 했을 것이다. 실제로 나도 이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낮에는 우리 선거캠프에 와서 일하고 밤에는 정동영 사무실로 가는 사람도 있었다.”전북대 사대부고를 나온 그는 민주당 전략공천을 받았지만 12.93%를 얻고 무소속 정동영 의원한테 참패했다. 그의 경험담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단 몇달 동안에 인생에서 경험할 수 없는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정치신인들은 냉대와 자기도취, 이전투구의 정글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있는지 자신한테 먼저 물어야 한다. 정치판을 이전투구로 빗대지만 선거판은 그 보다 몇배 더 한 곳이다. 또 하나는 페어플레이를 하라고 주문하고 싶다. 기성 정치인들 흉내내지 않고 정도(正道)를 걷는다면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 그런데 벌써부터 뒷다리걸기가 시작되고 있다. 지난 6일 전주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한명숙 전 총리는 “출판기념회 참석을 놓고 왜 소란을 피우는지 모르겠다. 안 간다고 해 놓고 참석했다.”며 깜짝 놀라 했다고 한다. 일부 라이벌 정치인들이 참석을 막았던 모양인데, 한 전 총리가 전북의 정치문화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가졌을지 궁금하다. 다른 하나는 원칙과 대의명분을 좇아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에서 질 수는 있다. 그러나 지더라도 대의명분을 어겨서는 안된다. 그래야 다음 선거에 이길 수 있다.” 문재인의 ‘운명’에 나오는 말이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먼데 한가한 소리를 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선거판은 이제 초입이다. 시일이 흐를수록 난삽해질 것이다. 민주주의는 과정을 중요시하는 시스템이다. 괴에테도 ‘행복은 목표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에 있다’고 하지 않던가. 한가한 소리가 아니라 나중을 생각하면 금언이 될 것이다.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1.12.12 23:02

현역은 ‘물갈이 민심’ 알기나 하는가

교사와 은행지점장, 국회의원 신분의 친구 셋이 여행을 떠났다. 날이 저물어 잘 곳이 마땅치 않았다. 마굿간을 발견하곤 그곳에서 하루 밤 묵기로 했다. 공간이 비좁아 교사가 먼저 들어갔다. 지독한 말 냄새 때문에 채 10분도 안돼 뛰쳐나왔다. 다음엔 은행지점장이 들어갔다. 한시간쯤 견디다 그 역시 뛰쳐 나왔다. 다음엔 국회의원이 들어갔다. 한참이 지나자 이번에는 말이 뛰쳐나왔다. 정치인 부패를 비유하는 우스갯 소리다. 10·26 재보선이 끝난 뒤 매일경제 신문이 전국 성인 600명을 대상으로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물었더니 48.7%가 ‘부정부패’라고 응답했다. ‘국회의원이 귀하의 의견을 대변해 주고 있느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은 5.5%에 불과했다. 정치적 의사표현이 필요할 때 지역구 국회의원 혹은 정당을 찾는다는 응답도 2%에 그쳤다. 이쯤 되면 우리나라 국회의원과 정당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무당파가 급증(73.6%)하고 있는 이유다. 기성 정치권과 정당에 대한 민심의 분노가 바로 10·26 서울시장 선거였다. 시민권력을 탄생시킴으로써 정권은 꼭 정당에서만 탄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으로선 참으로 쪽 팔릴 일이다. 민주당은 후보 경선에서부터 시민운동가한테 패했다. 작년 6·2지방선거에서는 경기도지사 후보를 내지 못하기도 했다. 해방 이후 정통 야당을 자처하는 민주당으로선 이런 굴욕이 없다. 한나라당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집권 여당이라는 프리미엄도, 최고위원이라는 후보의 화려한 지위도 무용지물이었다. 말끔한 신언서판(身言書判)도 효험을 발휘하지 못했다. 10·26 재보선 결과는 정당과 기성 정치권에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화들짝 놀란 정치권이 ‘변하지 않으면 다 죽는다’며 여러 궁리를 하고는 있지만 기대난망이다. 기득권을 포기해야 환골탈태가 가능한데 과연 정치권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을수 있을까. 만지작 거리다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말 것이다. 벌써부터 내년 4·11 총선이 흥미로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북에선 물갈이론이 한창이다. 판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어항의 물을 갈아주지 않으면 이끼가 끼고 물도 탁해진다. 정치판도 그런 이치나 마찬가지다. 지난 추석때 조선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전북은 71.5%가 물갈이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지금 활동중인 18대 국회의원 초선 비율은 44.8%에 이른다. 탄핵 바람이 불었던 17대 총선에서는 초선 비율이 63%나 됐고 15대 45.8%, 16대 40.6%였다. 물갈이는 공천만 받으면 거저 먹는 호남이나 영남 같은 일당 지배구조 지역에서 특히 필요하다. 특히 전북지역의 국회의원들은 민주당 텃밭 정서 때문인지 매너리즘의 정도가 심한 것 같다. 매너리즘에 빠져 있거나 지역 일을 등한시 해 온 국회의원, 허구헌날 단체와 간담회나 열면서 표밭만 다지는 국회의원, 공천만 받으면 된다며 위만 쳐다보는 국회의원들은 비호감이다. 분노한 민심을 추스리고 다스려야 할 최종 주체는 정치권이지만 개혁과 통합, 소통이라는 민심을 확인하고도 달라진 게 없다. ‘시골의사’ 박경철씨가 기자들이 정치권 진출을 묻자 “여의도에 가면 사람이 되어 나온다는 말을 들을 때 신청서를 들고 가겠다.”고 했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단면이다. 이것이 민심 눈높이일 것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정당과 기성 정치권이 변하지 않으면 유권자들이 심판할 수 밖에 없다. 사실상 무소속이 승리한 순창 남원 재선거판이 내년 총선에서 재연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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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재
  • 2011.11.07 23:02

[이경재 칼럼] 처참한 전북현실, 팔장 낀 정치인들

"(부산 시민들이) 힘을 모아주시면 내가 임기 중에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겠다." 나흘전 부산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이 지역인사들에게 한 약속이다. 그러면서 "여기 청와대에서 온 사람도 있다. 돈을 쥐고 있는 박재완 (기획재정) 장관도 와 있다"며 "여러분이 심려하는 것에 대해 부산 시민만큼 나도 신경 쓰겠다"고 했다.'이 정부가 부산에 해준 게 뭐 있느냐'는 비판여론을 의식한 것인데 대통령 스스로가 "임기 중에 최장 시간 지방에 머무는 날"이라고 언급할 만큼 깊은 애정을 보여주었다.특정지역에 대한 이런 호의가 또 있을까. 약발이 먹힐지 어떨지, 부산 민심이 어디로 흐를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여권이 무척 다급해진 모양이다. 어찌됐건 부산이 부럽다. 상수원 확보, 부산울산 철도복선화, 김해공항 국제선 증설, 신발산업 지원 등에 대해 "기왕에 해줄 거면 빨리 해주는 게 좋다. 시간 끌면 예산만 더 든다"고 대통령이 언급했으니 떼 놓은 당상 아닌가.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뺏긴 뒤 전북인사들이 소리소리 지르며 뙤약볕 농성을 했어도 거들떠 보지도 않던 청와대였다. LH 후속대책이란 것을 두고도 "LH 이전 대가라는 것은 없다"며 타당한지 아닌지 용역을 통해 가리자던 정부였다. 전북에는 눈길도 주지 않던 그들이 부산한테는 "섭섭해 하지 말라"며 다 알아서 해주겠다고 하니 너무 대조적이다. 이건 공정한 사회도 아니고 공정한 판단도 아니다.대통령이 부산을 찾아 선물을 안길 즈음을 전후해 전북 도민들은 전북의 현실에 낙담해야 했다. 지역신문들은 국정감사 자료를 인용하며 전북이 어떤 현실에 처해 있는지 구체적인 수치로 보여주고 있었다. '전북 법인소득 전국 꼴찌' '가난한 전북 실상 드러나' '집집마다 빚폭탄 안고 사는 전북' '도내 가계 대출 증가율 폭증' '전북 경제활동인구 빨간불' '호남에서 기업하기 어렵다' 등등 모두가 처참한 내용이다.기사 제목만 보면 전북은 살만한 곳이 못된다. 공기업이나 개인회사로 치면 진작 구조조정됐어야 할 자치단체다. 전북을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할 것이다.실제로 지난 8월 전북애향운동본부가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와 함께 실시한 '도민 의식조사'에서는 도민 절반(47.8%)이 전북을 떠나겠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아울러 상당수가 전북의 미래에 대해서도 비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도 왜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떠나고 싶은 도민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진지하게 고민하지도 않는다. 너무 양반들이라서 그러는 것인가. 지역발전을 책임지겠다던 정치인들이 침묵하고 있는 건 더더욱 이해되지 않는다.지역간 발전 격차를 뜯어보면 민심을 달래야 할 곳은 부산이 아니라 전북이다. 대통령이 선물을 주어야 할 곳도 부산이 아니라 전북이다. 전북이 대접받지 못하는 이유를 사람 쪽수로 보는 측이 있지만 그건 옳지 못하다. 그런 논리라면 전북 푸대접은 고착될 수밖에 없고 그걸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그보다는 사람의 질적인 문제에 있다고 보는 게 적절할 것이다. 인구가 적어도 제대로 된 인물이 나타나 시대정신을 구현하면 그만이다. 같은 논리로 어려움을 타개해 나갈 역량 있는 정치인 몇명만 있어도 전북이 이처럼 처참한 몰골을 드러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LH를 뺏기고도 등신 대접 받지는 않았을 것이고, 전북을 떠나겠다는 사람이 그처럼 많지도 않을 것이다.인구나 국회의원 숫자 문제가 아니다. 단체장의 리더십과 정치권 역량 등 질적인 문제인 것이다. 리더십을 지적하고 정치권을 판갈이하자는 여론이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도 전북 정치권은 부산 사례를 보고도 흥분하지 않을 만큼 무감각해져 있다./ 이경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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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10.03 23:02

[이경재 칼럼] '전북의 이정현'은 왜 없는가

한나라당 이정현 의원(53)이 호남 총선 출마선언을 하고 나섰다. 지난 1일이다. 내년 4.11 총선이 8개월이나 남았는 데도 '한나라당의 적지' 한복판인 광주(서구 을)에서 심판받겠다고 출사의 뜻을 밝혔다. 다른 건 몰라도 좌고우면하지 않는 당당한 태도가 좋다.이 의원은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간 초선이다. 대표적인 호남출신 친박계 의원이다. 내년에 지역구에 출마하면 세번째 도전이 된다. 1995년 민자당 시절 황색돌풍이 거셀 때 첫 출마를 했고, 2004년 탄핵역풍이 불 때도 출마했다.그 당시 광주에선 유일한 한나라당 후보였다. 거리에서 목이 쉬어라 연설을 하고,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골목마다 다니면서 죽기 살기로 유세했지만 얻은 표는 720표였다.호남에서 정치한다는 건 독립운동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했던가. 그런데도 그가 수도권에 눈길을 주지 않고 호남을 고집하는 건 호남에 대한 애정과 진정성일 것이다. 그는 석패율에 기댈 생각도 없다. 오히려 반대론자다.이 의원의 스토리를 꺼낸 건 우리지역 한나라당 사람들이 너무 무기력하기 때문이다. 민주당 편향의 지역정서 탓만 한다. 스스로 이런 고착적인 구조를 타개하려는 시도나 노력도 없다. 지역의 이익을 챙길 욕심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홍준표 대표가 호남을 홀대했을 때도, 이명박 정부(MB)가 영남편중의 인사정책을 폈을 때도 눈만 껌벅거릴 뿐 흰눈 한번 들이대지 못했다. 보는 이가 오히려 답답할 노릇이다.이 의원은 지명직 최고위원 두자리를 모두 충청 인사로 추천한 것을 두고 "전국정당임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정치인으로 발붙이고 살 수 있나"고 홍 대표한테 직격탄을 날렸다. MB의 호남홀대 인사에 대해서도 "호남출신으로서 분노를 느낀다. 이 정부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게 편파인사다."고 쓴소리를 해대지 않던가.소외 받는 걸로 따진다면 광주 전남보다 전북이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그런데도 우리지역의 한나라당 사람들은 번번이 소리 한번 질러보지 못하고 침묵하고 있다.명색이 집권여당이면서도 인사정책이나 예산, 현안 사업 등을 놓고도 강건너 불 구경 하듯 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물건너 가도 그 흔한 삭발정치인 하나 없었다. 그러니 왜 한나라당 사람으로 정치를 하는 것인 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이런 식으로 무기력하게 정치를 해선 안된다. 한나라당을 사업의 병풍막이로 활용한다거나 공기업 자리로 가는 징검다리 쯤으로 생각한다면 아예 정치를 그만 두는 게 낫다.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우선이다.전북의 한나라당 사람들은 정신차려야 한다. 현안에 침묵하지 말고 보다 역동적으로 정치를 했으면 한다. 지성이면 감천. 정성을 쏟으면 지역정서도 반응하는 법이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니 지역정서가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먹고 사는 문제, 일자리 문제, 중앙과의 창구역할 등 할 일이 너무나 많다. 새로운 정치 목표와 새로운 인물, 지역발전에 대한 비전 욕구도 강하다. 바로 잡을 일도 많다. 모두 정치의 영역이다.지금 지역에서는 '이젠 민주당에 회초리 좀 들자'는 분위기가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1985년 12대 총선 이후 27년간 지속된 일당 독주에 대한 정치적 피로감과 실망감도 있다. 이런 기류는 이미 지난 6.2지방선거와 재보선에서 나타났다.한나라당한테는 호재다. 껄쩍지근하게 처신하지 말고 지역과 주민들을 위해 개운하게 한번 일을 해 보시라. 말로만 집권여당 운운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때다./ 이경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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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8.22 23:02

[이경재 칼럼] 전북 판갈이 '어떻게'가 문제다

마침내 전북 판갈이론이 치솟았다. 전북이 이대로는 발전할 수 없다는 것, 아예 판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토지주택공사(LH) 유치 무산 이후 등장한 판갈이론은 내년 411 총선을 앞두고 있어 더 증폭될 조짐이다.전북일보는 창간 61주년 기념일인 6월1일자 통사설에서 "전북이 새로 도약하기 위해선 지금과 같은 패러다임으로는 안된다. 젊고 역동적인 새 틀이 구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그러기 위해선 사회지도층의 인적 쇄신을 통한 판갈이가 전제돼야 할 것이다. 자리에만 연연하는 인사들을 퇴출시켜야 마땅하다. 모래알 같은 정치권도 재편돼야 한다. 그럴 때 할퀴고 씻긴 전북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우연의 일치인가. 최근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는 '전북의 낡은 리더십을 청산하고 변화의 물꼬를 트자'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전북 정치권의 대대적인 물갈이와 낡은 리더십 청산, 도정의 나팔수가 된 관변 단체 인사들의 퇴진, 사이비 언론 척결 등을 세상에 대고 외쳤다.왜 이런 판갈이 주장이 나올까. 전북을 이끌어가는 리더들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자리만 꿰차고 앉아 있지, 무엇 하나 속시원히 해결하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무슨 확실한 비전을 제시한 적도 없다.그동안 내로라하는 숱한 정치인과 지역 유지들이 지역사회를 꾸려갔지만 전북은 과연 나아졌는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인구는 계속해서 줄고 지역총생산은 16개 자치단체에서 뒤끝이다.반면 요령만 는다. 한자리 차지하기 위해 선거캠프에 몸담는 꼼수나 부리고 인사숨통을 트기 위해 기관 단체만 늘린다. 조직마다 예스맨들로 꽉 차 있다. 한자리에 세명이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경우도 일자리 세개를 창출했다고 통계 내는 판이다. 그러니 전북도와 통계청의 일자리 통계가 엇박자일 수밖에 없다. 전시행정에 길들여진 탓이다.혁신도시 조성 당시 주요 기능군을 놓고 자치단체끼리 티격태격하더니 그 혁신도시 터를 닦던 LH를 경남에 내주고 말았다. 이제와서는 국민연금공단 기금이 330조원이나 되기 때문에 LH보다 낫다는 말도 서슴 없이 한다.LH 유치 무산은 우리 지역사회의 역량이 어느 수준인지 여과없이 보여주었다. 전술 전략과 정보 및 정치력 부재, 정치권의 나태와 책임 회피, 관료주의에서 비롯된 이른바 낡은 권위주의 리더십, 관변 단체의 맹목적인 도정 들러리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도정 나팔수 역할을 한 일부 언론들이 지금도 알몸으로 뭇매를 맞고 있고, 국내 최장기 버스파업 사태에 대한 정치권의 눈치보기와 무기력증도 두고두고 입줄에 오를 것이다.고립무원의 전북. 이런 실정일 진대 뭘 더 기대하겠는가. 전북이 새롭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새 패러다임과 인적 쇄신, 즉 판갈이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문제는 판갈이를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가에 있다. 정치권은 내년 총선이 분수령이 될 것이다. 퇴출, 수도권 출마, 정계은퇴 등을 거론할 수 있지만 강제할 방법이 없다. 선출직 단체장은 어떻게 할 것이며, 물러나야 할 관변 인사가 버티고 앉아있다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도민운동? 어려운 문제다.전북은 지금 너무나 침체돼 있다. 생각은 고루하고 행동은 머뭇거리면서도 자기방어에는 철벽이다. 이런 퇴영적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고는 전북이 새롭게 태어나기 어려울 것이다.권력이나 자리에 대한 욕심은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을 느끼는 바닷물과 같다. 판갈이의 장애물도 그런 욕심 많은 인사들이다. 물러날 때 물러나지 않고 권력의 맛을 계속 누리려 한다면 너무 추하다./ 이경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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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7.18 23:02

[이경재 칼럼] 재보선 비용, 당사자한테 물려라

지난 4월 치러진 일본 지방선거에서는 지방의원 수를 줄이고 월급을 깎자는 주장이 쟁점으로 대두됐다. 제3당인 공명당이 지방의원 수 감축과 월급 삭감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일부 민주당 의원들도 이에 동조했다. 구체적으로 30% 선까지 줄이자는 지역도 있었다.지방의원들이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까닭이다. 직무유기에다 비리와 청탁이 노골화되면 우리도 일본과 같은 현상이 나타나지 말란 법이 없다. 예상보다 훨씬 앞당겨질 수도 있다.지방의원들이 일부 권력화돼 군림하거나 인사 사업청탁 등을 다반사로 하고, 집행부 들러리 서면서 이익을 챙기기도 한다. 조례 제정 등 본연의 일에는 소홀하면서 해외여행은 꼬박꼬박 나가고 의정비 올릴 궁리나 한다면 말이다.자치단체장은 어떤가. 풀뿌리 자치를 위해 연구 노력하는 단체장이 있는가 하면 선거 캠프 종사자와 측근 챙기기에 관심을 쏟는 소인배 단체장도 없지 않다.'상가집 개'라는 말이 있다. 상가(喪家)에서 뭐 먹을 게 없나 하고 두리번거리며 먹이를 찾는 개를 이르는 것인데, 다음 선거를 겨냥해 돈이 되는 것과 표가 되는 것에만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는 단체장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공무원 인사나 조직 및 사람 관리, 각종 사업도 모두 이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깜빵'가기 십상이다.뇌물과 비리에 연루돼 중도하차하는 단체장이 전국적으로 수두룩하다. 민선 4기(2006~2010년) 시장 군수 230명 가운데 113명이 비리나 부정으로 기소됐다. 이중 35명을 재보궐선거를 통해 다시 뽑았고 선거비용만 186억원이 들었다. 모두 시민 세금이다.전북에서는 비리와 선거법위반 등으로 낙마한 단체장이 14명에 이른다. 이창승(전주시장) 이형로( 임실군수) 강근호(군산시장) 김상두(장수군수) 국승록(정읍시장. 부인 구속) 이철규(임실군수) 김진억(임실군수) 유종근(도지사)씨는 비리였고, 강수원(부안군수)씨는 공무집행방해였다. 김길준(군산시장) 최용득(장수군수) 이병학(부안군수) 윤승호(남원시장) 강인형(순창군수)씨는 선거법위반이다.단체장이 중도하차할 때마다 지역이 큰 피해를 입기 때문에 문제다. 여러 사업들이 구조조정되고 행정의 연속성이 훼손돼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1심에서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속행되는 재판 때문에 행정신뢰가 실추되고 공직사회도 흔들릴 수 밖에 없다.지역의 이미지 훼손과 불명예는 물론 재보선 과정에서의 주민간 반목과 갈등, 공무원 줄서기도 만연한다. 지역사회가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그 피해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수십억 원에 이르는 재보선 비용도 모두 시민세금이다.한마디로 단체장이 한번 잘못되면 엄청난 사회 경제적 비용을 치를 수 밖에 없다. 지역 이미지에도 먹칠한다. 그런데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면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 아니겠는가.지방의회는 지난 1991년 부활됐으니 올해로 20년, 민선 단체장 연륜은 16년이 됐다. 지방자치는 어느새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성년의 나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미스런 일들이 계속되고 있는 건 불행한 일이다. 이런 마당에 제도적 미비와 폐해를 그냥 방치해 두어선 안될 것이다.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이 중도하차할 경우 재보선 공영 선거비용을 당사자한테 물리는 방안을 제도화하면 불법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뇌물 등 개인 비리라면 당사자가 전액을, 선거법위반이라면 공천을 준 정당과 당사자가 각각 절반씩(무소속은 국가가 절반 부담) 부담하는 게 보다 합리적이다. 그동안 공천폐지와 선거법 강화에 주력했지만 이젠 비리나 불법을 원인시킨 당사자에 대해 경제적 책임을 함께 묻는 방안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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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13 23:02

[이경재 칼럼] 민주당, LH이전 원칙과 신뢰 바로 잡아라

낙숫물은 떨어진데 또 떨어진다. 그래서 돌에도 구멍을 낸다. 언론에 흘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일괄이전이 꼭 그런 격이다. 정부는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고 하는데 정부나 여권 고위관계자들은 LH를 일괄이전키로 가닥이 잡혔다고 반복해서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작년 9월이던가, 정종환 국토부 장관이 경제주간지 인터뷰에서 일괄이전을 언급했고 두달 뒤 국회 최규성 의원이 정부 고위 관계자가 언급한 것이라며 정부가 일괄이전 방침을 굳혔다고 소개했다. 그러자 벌집 쑤신 듯 지역이 왈칵했다.최근엔 '상황 끝'까지 진도가 나갔다.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출국에 앞서 최종 지침을 내렸고, 정부는 13일 '경남 일괄이전'을 발표한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이쯤되면 바위 같은 심지를 가졌더라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겠는가 하는 반신반의로 굳어지고 만다.LH 문제든 뭐든, 정치권이나 정부 깊숙한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국민들은 알 도리가 없다. 그곳의 정치세계는 국민들한테는 외적인 영역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려면 개인이 스스로 탐색하거나 상상을 하는 것, 누군가로부터 보고를 받는 것 등 세가지 방법이 있지만 앞의 두 방법은 한계가 따른다. 복잡다기한 현대사회에서는 누군가의 보고, 즉 언론보도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칼자루를 쥔 정부나 여권이 언론의 이런 속성을 이용해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 플레이는 권력과 금력이 있는 개인이나 집단이 언론매체를 통해 자기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도가 깔린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언론 홍보이론은 언론플레이는 나쁜 관계를 만든다며 가급적 하지 말라고 가르치지만 LH 일괄이전 언론플레이는 목적하는 바를 연착륙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언론플레이는 여론몰이를 통해 자신의 목적을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사기 또는 여론조작에 해당된다.LH 일괄이전을 흘린 건 두가지일 것이다. 대통령의 의중이거나 경남에 몰아주려는 정치적 판단이 그것이다. 그러나 어느 것이든 절차를 밟지 않고 그런 결정을 내린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분산배치였던 정부 방침이 대통령 말 한마디로 일괄이전으로 선회했다면 독재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 벌어진 것이고, 정치적 판단에 의해 결정됐다면 지나던 소도 웃을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정부 정책이라면 누가 봐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판단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 그것은 원칙과 기준에 따른 결정이다. 전북이 내건 분산배치는 정부 약속인 데다 두 지역이 이익을 공유하기 때문에 하등 문제될 게 없다.그러나 만약 일괄이전할 방침이라면 세부적인 기준과 원칙을 세워 심사한 뒤 전북 또는 경남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경남이 일괄이전을 주장했다고 해서 무작정 LH를 경남에 보낸다는 건 말도 안된다. 정부정책을 '뽑기'나 '찍기'로 결정한다면 너무나 유치하지 않은가. 일괄이전한다면 어느 곳이 더 경제적 효율적인지 등을 심사해 입지를 결정해야 맞다. 이건 기본중의 기본이다.마침내 민주당이 LH 분산배치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잘못된 건 반드시 바로잡는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정책결정은 민주적 절차를 밟아 결정돼야 하고 절차는 투명성과 공정성이 담보돼야 한다. 당연히 밟아야 할 이런 민주적 과정이 이행될 수 있도록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나서야 할 일이다.그래서 언론플레이가 얼마나 무망한 것인지, 원칙도 기준도 없이 목적을 달성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허망한 짓인지 드러내야 한다. 아니 땐 굴뚝엔 절대 연기가 나지 않는다는 것도 확인할 겸./ 이경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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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5.09 23:02

[이경재 칼럼] 민심분노 다음엔 전북 차례인가?

과학벨트 입지와 동남권 신공항 공약이 백지화됐다. 이명박 대통령(MB)의 공약이 두달 간격으로 연거푸 뒤집혔다. 충청에 이어 이젠 영남민심이 들끓고 있다. 다음엔 전북민심이 들끌을 차례인가?지금 전북의 가장 큰 현안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이전 문제다. 당초 국토해양부는 분산배치 방침을 내세웠다. 전북은 이를 따랐지만 경남은 통 크게 일괄배치를 내걸었다. 전북과 경남이 첨예하게 대립해 있는 이 사안을 MB 정부가 처리할 시간이 임박해지고 있다.그런데 숙제가 잘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지난달 김완주 지사가 김황식 국무총리와 임채민 국무총리실장, 청와대 관계자 등을 만나고 온 뒤부터는 '한계'를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게다가 최근 돌아가는 상황도 전북한테 결코 유리하지 않다. 경남도가 힘을 기울인 동남권 신공항이 무산된 것도 전북한테는 악재다. 만약 신공항 입지가 경남 밀양으로 선정됐다면 LH이전 문제는 전북에 훨씬 유리했을 것이다. 한 곳에 두개씩 몰아줄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LH이전도 결국 정치적 결정 아니던가.또 7년간이나 대구경북연구원장을 지낸 홍철(66) 원장이 LH이전 열쇠를 쥔 대통령 직속의 지역발전위원장에 임명된 것도 수상쩍다. 그는 "일 좀 하라고 고향에 데려왔을 텐데, 일 해준 것은 없고 빚만 지고 가는 느낌이다. 이제 빚을 갚아야 하지 않겠는가. 꼭 챙기겠다"고 했다. 이임에 앞서 지역 기자들과 식사자리에서 한 말이다. 밥 먹는 자리일 망정 고향 편향적 속내를 드러낸 언사가 날카롭다. 그 비수가 전북에 꽂힐지도 모른다.대통령 경제비서관과 건교부, KDI, 국토연구원장 등을 지낸 홍철 위원장은 지역발전 분야의 국내 대표적인 석학이다. 유종근 지사 시절 그가 국토연구원장 때 전북도와 업무협약을 맺은 적이 있어 낯설지는 않다.그렇긴 해도 지역발전위원장 자리를 5개월 동안이나 비워두다가 그를 앉힌 것 자체가 'LH 이전 미션'을 수행하라는 암묵적 뜻이 담긴 건 아닌지 모르겠다. 과학벨트와 동남권 신공항 대선공약이 순식간에 뒤집히는 걸 보면 LH이전 문제 쯤은 새발의 피일 것이다.정책결정에서 신뢰는 생명이나 마찬가지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신공항 무산 이유를 설명했지만, 민심은 "무산시킬 바엔 임기 초반에 했어야지, 피 튀기는 싸움을 시켜놓고 없던 일로 하면 어떡하느냐"를 따지고 있다. 결국 정책신뢰의 문제인데 민심은 MB정부와 MB의 신뢰문제를 질타하고 있는 것이다.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이 "정부나 정치권이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우리나라가 예측 가능한 국가가 된다."고 한 것도 MB의 무신(無信)을 점잖게 나무란 것이다. 뒷북만 친다는 비판도 있지만 신뢰를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요즘같은 시류에서 그의 말은 금언(金言)이다.논어 '안연편(顔淵篇)'에 실린 '무신불립(無信不立)'. 국민의 믿음을 잃으면 나라가 바로 서지 못한다. 이미 2500년 전에 공자가 한 말이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이 신드롬을 일으킨 배경도 우리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민이 신뢰하지 못하는 정부와 정치인, 정의롭지 못한 판단을 하는 세력들이 새겨야 할 교훈이다.LH이전을 다루는 문제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정부가 당초 내세운 원칙을 따를 때 신뢰도, 정의도 바로 설 것이다. 일괄이전이 효율적이라면 혁신도시 조성 취지가 그 기준이 돼야 한다. 홍철 위원장이 자신의 명예에 걸맞는 판단을 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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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4.04 23:02

[이경재 칼럼] 파업사태 하나 해결 못하는 우리사회

내일 모레면 일제히 개학을 한다. 학생들은 희망찬 발걸음을 내딛으면서 등교할 것이다. 그러나 상쾌한 출발도 잠시, 곧 짜증을 맛보게 될지 모른다. 시내버스를 타기 위해 30여분씩 기다려야 한다면 성인 군자도 욕설을 내뱉고 말 것이다.직장인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수십분씩 기다려야 가까스로 버스를 탈 수 있다면 아침부터 기분 더럽게 잡치고 말 것이다. 시장에 나서는 아주머니나 병원에 가야 하는 노인 등 교통약자들은 지금도 말 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다.전주 서곡지구에서 삼천동이나 효자동으로 등교하는 학생, 전주에서 삼례로 등교하는 대학생들은 경제적 부담 때문에 택시 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소요시간을 측정하기도 어렵다. 교통약자들이 시내 곳곳에서 이런 짜증나는 하루를 경험하고 있다.시민 고통이 이럴진대 파업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걸 보면 우리 사회가 어떤 수준인지 가늠할 수 있다. 시민을 대표한다던 그 잘난 정치인들은 지금까지 무얼 했으며 어디에 가 있는지 모르겠다. 생색 낼 곳은 내가 먼저, 질퍽한 곳은 나몰라라 식이다.파업은 지난해 8월2일 버스회사와 한국노총 간에 체결한 통상임금 관련 임단협 내용에 민노총이 이의를 제기하며 교섭을 요구했지만, 회사 측이 노조를 인정치 않자 12월8일 행동에 옮긴 것이 시발이다. 그리고 80일을 넘기고도 해결될 기미가 없다.그동안 노사 모두 시민들한테 욕을 너무 많이 먹어 배가 부른 상태일 것이다. '욕 먹으면 오래 산다'는 속설도 있으니 그들은 틀림 없이 장수할 것 같다. "지사나 시장은 도대체 무엇하는 거냐"는 질책이 쏟아지고 있으니 욕 먹기는 김완주 도지사와 송하진 전주시장도 마찬가지다. 두 단체장은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 시민 눈높이의 판단이 필요한데 그렇지 못했다.김 지사는 원래 발을 담그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론과 도의회 공세에 밀려 마지못해 관심을 나타냈다. 그러나 실기했다. 얼마전 제시한 처방도 효력을 담보할 만큼 강력하지도 않다.일의 우선 순위로 따진다면 김완주 지사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두 버스업체한테 받은 500만원씩의 후원금을 지금 당장 돌려주는 게 먼저 할 일이다. 그래야 떳떳하고 향후 행정행위에 대해서도 오해 받지 않는다.그러고 난 뒤 김 지사와 송 시장은 버스업체 보조금에 대해 실태조사를 벌여야 한다. 직년 한해동안 지원된 돈은 23개 업체에 모두 391억원이다. 적자재정에 218억, 벽지노선 손실보상에 164억 원이고 나머지가 기타 분야에 지원됐다.시민 세금으로 지출된 예산이 적정하게 쓰였는지, 위법사실은 없는지 들여다 보는 건 당연하다. 조사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위법사실이 없다면 버스업체한테도 오해를 씻어낼 좋은 기회다. 아울러 김 지사와 송 시장은 1박2일 정도 운수노조원들과 생활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진정성이 있으면 통하는 법이다.운수노조는 버스기사와 공무원들 한테 불법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달리는 시내버스에 돌을 던지는 위험한 짓을 해서도 안된다. 불법을 저지르고는 어떠한 정당성도 담보할 수가 없다.파업은 노사갈등을 넘어 사회문제화돼 있다.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한 중재안도 제시됐지만 버스업체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파업사태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가 참으로 안타깝다. 이러고도 경쟁력 있는 지역, 기업하기 좋은 전북이라고 내세울 수 있겠는가./ 이경재(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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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2.2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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