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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싶다는 유산 물려받은 전북

얼마전 발표된 2015 도민의식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자손들이 전북에 살기를 바라느냐는 질문에 45.1%가 아니라고 응답했다.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의사가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44.1%가 그렇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북애향운동본부가 19세 이상 도민 700명을 대상으로 면접 조사한 내용이다.한마디로 전북은 뿌리 박고 살만한 곳이 못된다는 반응이다. 도민 절반 가량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경제적 기반이 취약하고 삶의 질이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현실은 그렇다 치더라도 미래가 보장된다면 인내할 수도 있다. 그런데 미래도 부정적이었다. 10년 후 어느 정도 발전할 것으로 전망하느냐는 질문에 74.6%가 지금과 별 차이 없거나, 여전히 타 지역보다 뒤떨어질 것이라고 대답했다.이런 사실에 화가 치민다. 지역발전을 위해 매진하겠다 지역은 내가 책임지겠다며 표를 구걸했던 정치인들 때문이다. 그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어쩌다 전북이 이렇게 됐는지를 생각하면 허탈하다. 허공에 주먹질이라도 해대야 속이 풀릴 판이다.삶의 질, 소득, 일자리, 취업, 교육, 기업유치, 지역발전 등의 현안은 모두 정치의 영역이다. 지역의 정치리더들에겐 현안을 해결하고 삶의 질을 높여 지역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가야 할 책무가 주어져 있다. 국회의원과 단체장, 지방의원이 그들이다.정치인들은 최선을 다했다고 강변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과로서 나타나지 않는다면 무위(無爲)나 마찬가지다. 열심히 했다는 것만으로는 면죄부를 받을 수 없다.독일의 정치철학자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은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함께 가져야 하고 아무리 힘들더라도 이 신념을 현실세계에서 이뤄내야 한다고 했다.정부나 자치단체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정치인이라면 성과물을 내놓아야지 최선을 다했다는 것만으로는 면피할 수 없다는 뜻이겠다. 한 때 전북을 책임졌거나, 현재 책임지고 있는 정치인들에게 딱 들어맞는 언명이다.그런 점에서 떠나고 싶은, 황무지 같은 유산을 물려준 전북의 정치인들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그렇다고 마냥 기성 정치권 탓만 하고 있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문제에 천착하는 것이 생산적, 교훈적일 것이다.우선 도민의 실리의식이다. 정치적 사안이나 경제적 행위 등에 대해 실리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일이다. 어떤 방법이 지역이익과 발전에 도움 되는가를 기준으로 삼아 판단하자는 것이다.또 하나는 정치적 경쟁구도다. 라면가게가 하나 있을 때보다는 여러 곳일 때 고객 서비스가 높아지듯, 정당 간 경쟁구도가 형성되면 지역과 도민에 대한 정치서비스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집권 교체 시에도 유효한 틀이다.다른 하나는 소프트웨어다. 전북의 실정에 맞고 미래 부가가치 높은 분야를 선택해 집중하는 일이다. 미래 먹거리 연구에 집중하고 있는 대기업연구소와의 연계 및 교류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글로벌 경쟁시대에 투자정보와 인적 자원을 선점하는 효과도 있다.응집력도 관건이다. 국회의원들 간에 응집력이 없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숫자도 적은 마당에 각개 전투 식이라면 존재감도, 영향력도 반감되고 말 것이다.도지사 시장 군수 워크숍 정례화도 필요하다. 넥타이, 허리띠 풀고 1박2일 정도 머리를 맞댄다면 아이디어와 정보 교류, 인적 네트워킹 등을 통해 지역의 고민과 현안을 해결하고 지역의 에너지를 극대화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5.10.07 23:02

본말 전도된 선거개혁 논의

한 젊은이가 화살 쏘는 연습을 했다. 화살은 과녁을 자꾸 빗나갔다. 에잇 참, 왜 이렇게 안맞지? 젊은이는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가만 있자. 화살이 어차피 과녁 한 가운데만 꽂히면 되잖아? 그러면 과녁을 맞히려고 이렇게 애쓸게 아니라 화살이 꽂힌 둘레에 과녁을 그리면 되겠군! 그리곤 붓과 물감을 가져와 나무와 담장에 꽂힌 화살 둘레에다 동그라미를 겹겹으로 그렸다. 쏜 화살이 마치 과녁을 맞힌 것처럼 되었다. 하하하, 이렇게 하면 될 걸 공연히 과녁을 맞히려 애를 썼군.본말이 전도되면 얼마나 엉터리로 결과되는 지를 적시한 예화다. 논리학에는 본말전도의 오류란 게 있다. 두 사건의 관계를 잘못 파악해 전제와 결론을 뒤바꿔 추론함으로써 발생하는 오류다.올해는 선거제도를 선진형으로 개편하고, 헌재 결정에 따른 선거구도 손질해야 하는 중요한 해다. 그런데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선거제도와 선거구 획정, 의원 정수 논의가 꼭 본말이 전도된 것 같은 느낌이다. 화살 떨어질 곳을 정해 놓고 주변에 동그라미를 그려 넣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현행 소선거구제는 근 40여년 동안 유지됐다. 장점도 없진 않지만 지역주의가 고착화된 곳에서는 폐해가 더 크다. 영호남에서는 특정 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당선됐다. 이런 풍토에선 공천이 사천이 되고 뇌물공천이 성행하기 마련이다.승자독식과 사표의 폐해도 컸다. 40% 가까운 지지표도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19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 갑의 김부겸(새정연)과 전주 완산 을의 정운천(새누리), 광주 서 갑의 이정현(새누리)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런 곳은 부지기 수다. 때문에 다음 총선에서는 선거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이 일었다. 정치권도 이에 동의했다.그러나 여야는 선거제도를 진정성 있게 논의하지 않았고, 그럴 뜻도 없는 것 같다.이를테면 권역별 비례대표제나 석패율제, 중대선거구제, 도농복합형 등 여러 선거제도에 대한 철저한 논의를 벌인 뒤 지금 이 시점의 우리한테 가장 바람직한 제도를 선택하고 그에 따른 선거구획정과 의원 정수에 대해 숙의하는 것이 순리다.그런데도 지역별 국민 순회공청회 한번 열지 않고 있다.여야 지도부는 자기 입맛에 맞는 정치발언들만 쏟아내고 있다. 정치생명을 걸고 오픈프라이머리를 관철시키겠다 오픈프라이머리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일괄타결하자 의원 정수는 몇명이 적정하다는 등의 발언이 그런 것들이다.이런 쐐기발언은 선거제도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를 차단시키는 행태다. 오로지 자기 중심적이고 자당의 유불리만 계산한다. 국민은 안중에 없는, 본말 전도의 정치행위가 아닐 수 없다. 정작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중앙선관위 산하의 선거구획정위나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한쪽으로 비켜나 있다.의원 정수 문제도 그렇다. 정수 증원은 57%가 반대할 만큼 국민적 저항이 크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예컨대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바람직하다면, 그리고 효과를 거두기 위해선 증원이 절대 필요하다고 한다면, 현 예산의 범위 내에서 60명 증원 같은 안도 검토해야 한다. 정치 선진화를 꾀할 수 있다면 정수 증원도 국민한테 용기있게 호소할 수도 있는 것이다.그런데 진지한 논의도 없이 여야가 현행 정원 고수라는 결론부터 내 버렸다. 여론을 의식한 포퓰리즘이다. 중앙선관위가 제안한 지역구 200명, 비례대표 100명 안은 지역구 축소 때문에 아예 논의대상 축에도 끼이지 못한다.선거구별 인구편차 2대1 헌재 결정은 작년 10월에 나왔다. 10개월이 지났지만 선거제도와 선거구 획정 등 선거개혁 논의는 제자리걸음이다. 무얼 어떻게 개혁하려는지 목표도 없다.화살을 쏠 때는 먼저 과녁을 놓은 다음에 쏘는 게 바른 순서다. 화살을 쏜 다음에 과녁을 그려 넣으면 이건 순 엉터리다. 여야는 지향하는 목표를 정하지도 않고 화살만 쏘아대는 꼴이다. 용은 커녕 지렁이도 그리지 못할 것 같다.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5.08.26 23:02

지방자치 20년 보완해야 할 몇가지

지방자치가 올해로 성년이 됐다. 1995년 7월 민선 자치가 시작된 지 꼭 20년이다. 그러나 여전히 무늬만 지방자치다. 자치단체 사무의 72%가 중앙사무이고 지방 고유사무는 28%밖에 안된다. 사무 이양이 계속되고 있지만 노른자위 사무는 중앙정부가 움켜쥐고 있다. 국세와 지방세 비율도 8대 2다. OECD국가 평균 6대 4에 크게 못 미친다. 이러니 2할 자치 껍데기 자치란 말이 나온다.지방에 주는 교부세와 보조금, 각종 심사와 인센티브로 중앙정부가 자치단체들을 길들이기 하고 있는 것도 여전하다. 중앙정부에 순치된 세월이 20년이다. 풀뿌리 자치는 통치권 차원의 대대적인 정비 없이는 요원하다.그럼에도 지방자치가 시행된 이후 주민 참여와 협치, 주민 편익시설과 인프라가 크게 확충된 건 주지의 사실이다. 생활환경과 삶의 질도 나아졌다. 주민은 객체에서 지역발전의 주체로 격상됐다.그러나 폐해도 컸다. 생색내기 사업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펼쳐졌다. 축제가 대표적이다. 자치단체마다 네댓 개씩 축제를 열고 있다.다음 선거를 겨냥한 선심성 사업들, 선거에 도움을 준 세력에 대한 보은성 사업들이 암암리에 진행되고 있는 것도 예산을 낭비하게 하고 입찰질서를 교란하는 원인이다.공무원 승진 인사는 좋은 먹잇감이다. 과거 임실지역 등이 뇌물 승진인사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지금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공직사회에서는 인사 뇌물만큼 안전빵이 없다고들 한다. 비밀 유지 때문이다. 돈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을 모두 처벌하는 현행 쌍벌규정 때문에 비밀이 보장된다. 고발한 사람은 벌을 면제해 주고, 돈 받은 사람만 처벌하도록 관련 법을 고쳐야 한다. 이것만 고쳐도 뇌물수수관행은 크게 개선될 것이다.공직선거법 소송 기간을 최소화하는 것도 숙제다. 작년 64 지방선거에서는 전북지역 자치단체장 3명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황정수 무주군수, 심민 임실군수는 각각 벌금 80만 원을 선고받았다. 박경철 익산 시장은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12심에서 각각 500만 원을 선고 받고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당선되자마자 재판 준비에 몰두하는가 하면 어떤 경우는 임기까지 끌고 가는 일도 있다. 이러니 지역살림에 신경 쓸 틈이 없다. 문제는 직을 내놓아야 할 단체장이 소송을 질질 끌면서 하세월 행정행위를 하도록 놔두는 게 과연 옳은가 하는 것이다. 영(令)도 서지 않고 행정행위에 대한 신뢰도 떨어진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지도 있다.선거법 위반 기소 여부는 6개월 안에 끝내도록 돼 있다. 이런 것처럼 단체장의 선거법 위반 3심까지의 기간도 1년 내 마무리로 내규화하면 어떨까 싶다. 특히 법리 판단에 치중하는 대법원 심리기일을 늦출 이유는 없다.황숙주 순창군수 부인의 뇌물수수 사례는 좀 묘하다. 군청 기간제 공무원 채용 대가로 지인한테 2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법정구속돼 있다. 인사권도 없는 군수 부인한테 뇌물을 주고 청탁했다면 군수의 인사권과 연동시켰다고 봐야 한다. 단체장 권한과 맞물린 가족의 뇌물수수라면 그 책임도 단체장과 연동시키는 게 맞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단체장의 부인은 물론 아들, 딸에게도 인사입찰 계약업무 등 비리의 손길이 미칠지도 모른다. 과거 국승록 정읍시장 부인 등 비슷한 사례가 많다.단체장이 치매 등 노인성 질환으로 정상적인 업무를 처리하지 못할 경우도 문제다. 업무정지나 보궐선거 등 아무런 규정이 없다. 이에 대한 규정도 보완돼야 할 것이다.15회 지방선거를 통해 배출된 전국 기초단체장은 1152명이다. 이중 16.8%인 193명이 선거법 위반이나 재임 중 비리로 임기 도중 낙마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민낯이다.여야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혁신을 외치고 있다. 이 기회에 앞서 지적한 미비 사안들을 제도화하고 선출직들의 도덕성을 강화할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재보선 원인 제공시 정당의 공천 포기, 보전받은 선거비용 반환, 부정부패 정치인 사면 금지 등 제도적인 보완대책도 아울러 내놓길 바란다.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5.07.15 23:02

전주 종합경기장 개발 어떻게 할 것인가

전주 종합경기장 개발사업이 표류하고 있다. 단체장이 바뀌면서 기존의 이전 및 개발계획에 대한 가치가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주종합경기장 이전 및 개발은 2005년 12월 당시 김완주 지사가 현 종합경기장 부지를 민간 사업자에게 양여하고 대체시설 및 컨벤션센터를 기부 받는 ‘기부 대 양여’ 방식으로 추진한 데서 비롯됐다. 그 뒤 컨벤션센터를 전주시 재정사업으로 떼어냈다. 이 방안은 2011년 12월 9일 전주시의회 임시회에서 가결돼 지금까지도 유효한 개발계획이다. 대규모 회의나 행사를 유치하려 해도 회의장소나 숙박공간이 없어 반납해야 했던 궁핍함을 절감한 뒤 나온 결단이다. 전시 컨벤션 사업은 효과가 크고, 컨벤션시설이나 호텔은 도시의 경쟁력이기도 하다. 두차례 공모과정을 거쳐 사업자로 결정된 (주)롯데쇼핑은 전주 월드컵경기장 인근에 1종 육상경기를 치를 수 있는 종합경기장과 야구장을 지어 전주시에 기부하고, 종합경기장 부지 절반을 양여 받아 영화관과 호텔·쇼핑몰을 짓는다는 구상이다. 취임 1년, 구체적 마스터 플랜 못 내놔전주시가 2000억 원 정도의 예산만 조달할 수 있다면 굳이 민간 사업자를 끌어들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부족한 예산 때문에 나온 궁여지책이다. 어쨌건 이 계획은 전북도와 전주시 간의 대체시설 이행 양여계약 체결, 각종 관련 안건에 대한 전북도의회와 전주시의회의 의결, 민간 사업자 선정 및 협약 체결, 지식경제부 협의 및 행정안전부 투·융자 심사 등 수많은 행정절차를 밟아 탄생했다. 시민 68%가 찬성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전주 월드컵경기장 일대는 스포츠 콤플렉스화 되고 종합경기장 부지는 전시 컨벤션센터와 호텔·영화관이 들어서 집적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된다. 아울러 법원과 검찰청이 2018년 만성지구 법조타운으로 이전한 뒤 나타날 덕진 일대의 공동화를 막는 효과도 있다. 문제는 롯데 쇼핑몰이다. 쇼핑몰이 문을 열면 지역상권을 잠식할 것이다. 특히 로드샵 등 의류매장의 타격이 심할 것이라고 한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작년 선거 때 쇼핑몰을 막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종합경기장 재생에 가치를 둔 개발계획을 구상하고 있다. 종합경기장 일부를 헐어 재생시키고 다른 대체시설은 전주시 예산으로 짓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취임 1년이 다 되도록 구체성을 띤 마스터플랜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김 시장의 고민이 깊을 것이다. 이 방안을 추진하려면 전북도와의 무상 양여계약을 파기해야 한다. 그럴 경우 종합경기장 재생도, 컨벤션시설도 추진할 수 없다. 다른 대체시설 예산 대책도 내놓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 종합경기장은 노후 건물로 안전 C등급이다. 재생 가치가 있는 지도 의문이다. 옛 것이라고 해서 모두 가치 있는 것도 아니다. 또 구상 자체가 미래 수요나 가치, 전북의 체육시설 인프라 구축 필요성에 비춰 보면 옹색하기 짝이 없다는 비판을 받을 개연성이 크다. 장고 끝에 악수 두는 법이다. 애초의 계약을 이행하되 지역상권 보호 방법을 찾는 게 해답일 것 같다. 유통산업발전법상 대규모 점포 등의 개설 등록 시에는 상권영향평가서 및 지역협력계획서를 첨부하도록 돼 있다. 이 과정에서 지역업체 참여나 지역 상권보호 방안 등을 놓고 롯데 측과 조율하는 쪽에 에너지를 쏟는다면 해법이 나올 수도 있다. 당초 계약 이행하며 지역상권 보호를전주는 전북의 수도다. 전주시는 전북의 대표기능을 할 인프라 구축도 고려해야 한다. 이젠 촌티를 벗고 전북의 수도에 걸맞는 모습으로 탈바꿈할 필요가 있다. 정치 리더는 수많은 선택을 강요받는다. 표를 의식하면 일을 그르치기 쉽다. 미래의 가치를 바라보고 가야 한다.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 법이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의견을 많이 듣는 스타일이다. 몇몇 자기 사람에만 의지하지 말고 시민 전체의 의견을 수렴해 종합경기장 문제를 매듭지었으면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두고두고 단견 리더십이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을 지도 모른다.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5.06.08 23:02

개혁 공천 안 하면 신당이 치고 나온다

내년 20대 총선까지는 1년이나 남았지만 총선 레이스는 사실상 시작됐다. 지난 3월 한달 동안 전북지역의 신규 정당 가입자 수가 500여명에 이른 것은 물밑 움직이 활발하다는 증거다. 누가 봐도 내년 총선 경선을 겨냥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공천 룰의 윤곽이 드러나는 등 정당도 속도를 내고 있다. 새누리당은 완전국민경선을 실시하고 전략공천을 아예 없애겠다고 밝혔다. 새정치연합은 공천 룰이 좀 복잡하다. 경선 선거인단을 권리당원 40%, 국민 60%로 하되 전략공천을 20%(종전 30%)로 낮추었다. 그리고 현역 국회의원평가제를 시행키로 한 것이 눈에 띈다.공천 투명성 공정성 보장해야사실 후보 선택을 완전히 국민에게 일임한다거나 국민 몇 %, 당원 몇 % 식의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정당 스스로가 공천권을 포기 또는 자격이 없다는 걸 자인하는 꼴이다. 정당제에서는 당원들의 신임을 받은 후보를 선출해 유권자 심판을 받게 하는 것이 원칙이다. 좋은 상품을 내놓든, 벌레먹은 상품을 내놓든 정당이 책임 짓고 정치 소비자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 순리다. 그럼에도 국민을 끌어들여 공천을 포장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딱하다. 정당은 이제 외부에 의지하지 않고는 자신들의 고유 권한인 공천권 하나 투명하고 공정하게 해내지 못하는 집단이 돼 버린 것이다. 원죄가 있다. 공천은 돈에 좌지우지됐고, 유력 정치인의 영향력에 따라 춤 추었다. 자기 사람 챙기기 등 이른바 계파공천도 정치혐오를 돋구었다. 유권자 불신은 극에 이르렀다. 공천을 사천(私薦)으로 악용한 탓이다. 기득권 정치인들의 자업자득이다. 선거 때마다 관심의 초점은 공천이다. 어떻게 하면 역량 있는 정치 신인들이 국회에 진출하고, 무능한 현역 국회의원들을 퇴출시킬 것인가가 핵심이다. 정치 신인들의 진입장벽은 여전히 너무 높다. 인지도와 조직 등에서도 열세다. 100미터 달리기에 비유하면 신인은 스타트라인에서, 현역은 30∼40미터쯤 앞서 달리는 꼴이다. 정치 신인과 정치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선거 때마다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비례대표 안배나 여성에 대한 가산점 등이 그런 수단이다. 전략공천을 제대로 하는 것도 유의미한 장치다. 새정치연합이 전략공천(20%)을 유지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전략공천을 제대로 할 수 있느냐 여부다. 참신하고 역량 있는 정치 신인들의 수혈 기회로 활용돼야 그 취지도 살아날 것이다. 반면 과거처럼 돈 많고 힘 있는 유력 정치인의 정치진출 창구로 악용된다면 정치불신은 극에 이르고 말 것이다. 또 하나는 현역 국회의원에 대한 평가다. 의정활동과 도덕성 등을 평가해 공천에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회의원을 2선, 3선 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져 지역 현안에 무관심하거나 자기노력을 게을리 하는 의원들이 있다. 도덕적이지 못한 의원들도 있다. 세비를 매월 1200만원씩이나 받고, 비서 및 보좌진을 7∼9명이나 두면서 건성건성 의정활동을 한다면 갈아 치워야 맞다. 그러나 처음 시행하는 것이라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벌써부터 평가 주체와 방법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이러다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흐지부지될 개연성도 있다. 그렇지만 현역 국회의원에 대한 평가는 꼭 제도화돼야 한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개혁공천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개혁공천의 핵심은 공천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역 국회의원의 기득권을 최소화하고 역량 있는 정치 신인들을 끌어모을 있는 방안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현역 기득권 최소화·신인에 기회를엊그제 내놓은 공천 룰은 과연 이런 취지에 부합할까. 불행히도 혁신을 상징할 만한 구체적인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현역 국회의원들의 기득권, 정치 신인의 진입 장벽이 높은 것도 그대로다. 이래서는 좋은 공천도, 유권자 감동도 이끌어내지 못한다. 개혁공천 운운하지만 종국에는 용두사미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개혁공천을 하지 않으면 신당이 치고 나올 것이다. 입지자들이 지금 곁눈질하고 있다.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5.04.20 23:02

'영남민국'과 박 대통령의 허언

정치인의 말이 대개 허허롭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언사 만큼은 신뢰성이 높았다. 미생지신(尾生之信)의 고사를 인용하면서 한번 약속한 사안은 꼭 이행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 일도 있고, 약속 이행에 정치생명을 걸고 싸우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나타낸 적도 있다. 원칙, 약속, 신의 등은 박 대통령의 장점을 나타내는 키워드다. 집권 2년을 넘기면서 그가 쏟아낸 수사(修辭)를 들춰 보았다. 맛으로 치면 수요자 중심의 식감이 뛰어난 담백한 재료들이 많았다. 소외, 홀대, 차별 등에 길들여진 사람에게는 와∼ 소리가 나올 정도의 최상의 선물도 있었다. 거짓된 지역균형발전·인사대탕평“그동안 정치를 해오면서 저에게 손해가 되더라도 한번 드린 약속은 반드시 지켜왔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에는 정치생명을 걸고 싸워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2012년 7월10일 대선출마선언문)그리고는 국민대통합의 시대를 열어가겠다고 선언했다. “이념과 계층, 지역과 세대를 넘어 모두가 함께 가는 국민대통합의 길을 가겠다. ‘100% 대한민국’을 만들어 5000만 국민의 역량과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 새 역사를 만들겠다.”(8월20일 대선후보수락 선언문)그해 11월 전북방문 때엔 더 구체적인 언급을 하고 나선다. “지역화합과 국민통합을 위해서는 꼭 해야 할 두가지 과제가 있다. 첫째가 지역균형발전이고 둘째가 공평한 인재등용이다. 두 과제를 실천하려는 의지와 능력이 없다면 헛공약이 되고 말 것이다.”약속은 또 이어진다. “모든 공직에 대탕평 인사를 할 것이다. 어느 한 지역이 아니라 모든 지역의 100% 대한민국 정권이 될 것이다. 제가 되면 호남은 희망의 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임을 약속드린다. 약속한 것은 반드시 실천하는 정치의 새 모습을 보여주겠다.”집권 2년이 속절 없이 흘렀다. ‘국민대통합’ ‘인사대탕평’ ‘지역균형발전’ ‘동서화합’ ‘희망의 땅 호남’ 등 입맛에 척척 앵기는 약속들은 이제 거짓말의 백미로 반전되고 말았다. 지난 2년의 대한민국은 철저히 ‘영남민국’이었다.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인데 청와대와 내각, 권력기관, 공기업 등의 핵심들이 영남권 인사들로 채워졌다. 호남은 찬밥신세였고 전북은 인사 소외지역이었다. 오죽하면 ‘박근혜 정부 특정지역 편중인사 실태조사단’이란 기구가 만들어져 영남 편중인사의 심각성을 경고하고 나섰겠는가 싶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 의전 서열 10위까지 11명중 8명이 영남출신이다. 차관급 이상 고위직 132명의 출신지 역시 영남출신이 49명으로 37.1%를 차지하고 있다. 호남권은 15.9%(21명), 충청권은 12.1%(16명)였다. 검찰, 경찰, 감사원,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 이른바 5대 권력기관장도 모두 영남출신이 독식하고 있다. ‘영남민국’이란 비유가 적절할 정도로 노골적이다. 작년 9월4일 이낙연 전남지사와 윤장현 광주시장, 한갑수 호남미래포럼 이사장 등 호남출신 주요 인사 90여명은 공동선언문을 채택하고 호남출신에 대한 인사·지역차별을 해소해 줄 것을 박 대통령에게 요구한 적도 있다. "정책은 만드는 것보다 실천이 중요"또 국민 10명중 8명 꼴로 지방소외가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 한국지방신문협회가 지난달 22·23일 전국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77.4%가 그렇게 대답했다. ‘지역균형발전’과 ‘인사대탕평’ 등의 약속이 허언(虛言)이 되고 만 증거들이다. “정책은 만드는 것보다 실천이 중요하다. 그동안 정책이 없어서 국민이 불행했던 것이 아니라 약속이 실천되지 않아서 문제였다.” 정곡을 찌르는 이 발언도 박 대통령의 것이다. 이제 집권 3년차에 들어섰다. 다른 건 몰라도 지역을 찢어놓거나, 사람을 차별하는 정책 만큼은 피했으면 한다. 그래서 신의 없는 대통령이란 소릴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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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재
  • 2015.03.09 23:02

새누리당, '제 2의 이정현' 배출하려면

“전북은 새누리당의 불모지다. 도민이 마음을 알아줄 때까지 더욱 낮은 자세로 경청하고 전북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지난 22일 전북을 방문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이제 전북도민이 됐다”며 첫 운을 이렇게 뗐다. 그는 송하진 지사로부터 명예도민증을 받았다. 불모지(wasteland)는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거칠고 메마른 땅을 일컫는다. 하지만 미개척지라는 뜻도 있다. 미개척지는 개척 가능성을 함의한다. 새누리당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전북은 불모지일 수도, 미개척지일 수도 있다. 진정성 없는 사탕발림 이제 그만새누리당은 지금 전북에서 ‘제2의 이정현’을 배출시키는 것이 최대 숙제다. 이정현은 작년 7·30 재보선 때 전통적 야당 텃밭인 전남 순천·곡성에서 국회에 입성했다. 초선이 감히 최고위원의 자리에 올랐다. 여러 당선 이유 중 하나를 꼽으라면 그의 진정성을 꼽겠다. 지역과 주민을 위한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이 먹혔다. 비상이 걸린 건 새정치민주연합 쪽이다. 전북에 도미노현상이 일어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몇몇 국회의원은 지역구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보좌관까지 두었다. 여론도 기울었다. 전북에서도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한두명 정도는 나와야 지역이 발전할 수 있다는 논리가 제법 설득력을 얻고 있다. 내년 4월 총선이 분수령이 될 것이다. 그런데 걸림돌이 있다. 이런 논리가 쫙 깔린다 해도 박근혜 대통령의 허당약속을 떠올리면 많은 이들이 도리질 칠 게 분명한데 이를 어찌할 것인가. “모든 공직에 대탕평 인사를 하겠다. 어느 한 지역이 아니라 모든 지역의 100% 대한민국 정권이 될 것이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호남을 희망의 땅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겠다.” “새만금이 중국 특구들과의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도록 국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겠다.” 대선 때 박 대통령의 약속들이다. 이 약속은 집권 3년차에 들어선 지금 어떠한가. 특정지역 편중인사에다 이념과 지역, 계층에 따라 나라는 찢겨져 있다. 새만금은 박 대통령 당선 이후 한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100% 대한민국’은 물거품이 됐다. 이런 걸 떠올리면 표는 다 날아가고 말 것이다. ‘제2의 이정현’은 기대 난망일 터다. 이런 상황인 데도 새누리당 지도부는 핵심을 비켜갔다. “도민 여러분이 마음의 벽을 허물어 달라. 새누리당이 더욱 힘을 내서 지역발전에 노력하겠다. (김무성)” “고향에 온 것 같다. 환황해권 경제성장이 인천에서 성장해 평택 당진 서산으로 내려오고 있다. 다음 차례는 군산 새만금이 있는 전북이다. (이인제)” “호남에 오면 많이 듣는 얘기가 지역인재 등용이다. 인재를 널리 등용하는 건 100% 대한민국의 시작이고 기초다. (이정현)” 격화소양(隔靴搔痒)이다. 선거 때 하던 립서비스를 어쩌면 그렇게도 똑같이 되풀이 하는지 원∼. 진정성도 없이 어린애 달래듯 사탕발림만 늘어놓았다. 김무성 대표는 언젠가 지역의 현안 한가지는 꼭 해결하겠다고 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송하진 지사한테 “가장 중요한 현안이 뭐냐. 하나만 말해 달라. 대표직을 걸고 해결하겠다”고 했으면 어떠했을까. 이런 정도는 돼야 진정정 있게 받아들일 것이다. 인사대탕평·균형발전정책 실천을당협위원장의 문제도 있다. 원외라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집권 여당의 위원장이라면 의제설정, 정책협의, 중앙당과의 교감 등 할 일이 많다. 인사와 예산, 사업 등에서 성과도 내야 한다. 전북처럼 정치력이 취약한 곳은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진정성이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일부는 자기 몫 챙기느라 서울 올라다니기에 바쁘다. 이래서는 ‘제2의 이정현’은 언감생심이다. 아직도 늦지 않다. 인사대탕평, 균형발전 차원의 지역정책, 이정현 같은 진정성 있는 활동을 한다면 지역도 감응할 것이다. “낮은 자세로 경청하고 전북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한 김 대표의 말은 정확한 진단이다. 실행이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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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재
  • 2015.01.26 23:02

누리과정 예산 원칙과 현실사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놓고 전북도의회와 김승환 교육감의 기 싸움이 볼만 했다. 수정 예산을 편성하라는 도의회의 요구에 김 교육감은 어린이집에 대한 예산 편성 지급의 책임이 교육감에게 있지 않다며 도의회의 요구를 거절하다 마침내 3개월치 202억 원을 편성했다. 하지만 법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잘 드러낸 사건이었다.'나쁜 정치' 피하려면 타협조율 필요교육기관인 유치원처럼 보육시설인 어린이집 유아에게도 체계화된 교육을 시키기 위한 교육과정이 만들어졌는데 이것이 누리과정이다. 대상은 3세에서 5세까지 해당되고 방과후 활동비 5만 원, 교육비 6만 원 등 매월 1인당 11만 원을 지원한다.도내 어린이집은 모두 1652곳이다. 이에 소요되는 누리과정 예산은 823억 원이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3~5세 누리과정 유아는 2만3000여명이다. 이중 10%인 2300여명이 저소득층 등 사회배려 대상자 자녀다.정부가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치 않은 것은 법 위반이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도 예산편성을 약속한 바 있다. 그런데 이런 약속도 이행하지 않으면서 교육청한테 수백억 원의 예산을 편성하라고 하니 선뜻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김 교육감은 헌법학자 출신이다. 원칙과 법이 기준이고 잣대다. 누리과정 예산도 정부가 약속을 저버렸고 편성 책임이 없는데 왜 교육감이 책임져야 하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 맞는 말이다.문제는 유아들의 보육 차질이다.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치 않으면 내년 1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니는 3~5세 유아들이 보육료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된다. 학부모들이 보육료를 부담하거나 직접 가정에서 아이들을 보육할 수 밖에 없다. 어린이집 종사자들도 신분 불안 때문에 좌불안석이다. 이쯤 되면 어린이집 누리과정은 민생의 문제다.도의회는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민생의 문제로, 정치의 영역으로 보았고 김 교육감은 법과 원칙의 문제로 대응했다. 정부 버르장머리를 고쳐야겠다는 심산, 이번에 어물쩡하게 넘어가면 내년에도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단도 작용했을 것이다.하지만 김 교육감은 선출직 정치인이다. 원칙과 법대로만 한다면 정치처럼 쉬운 일도 없다. 원칙과 법대로 되지 않는 게 정치다. 그래서 어렵다. 때로는 윽박 지르기도 하고 물밑 거래도 한다. 타협과 조율이 필요한 게 정치이다. 이 기술을 적당히 활용하면 적어도 나쁜 정치는 피할 수 있게 된다. 민생이나 교육 같은 범위가 넓은 분야라면 말할 나위도 없다.한번 입맛 들이면 되돌리기 어려운 게 복지분야다. 고급차를 차던 사람이 아래 급의 차로 갈아타기 어렵고, 고급 음식에 젖어 있던 사람도 아래 급의 음식으로 맛을 바꾸기가 쉽지 않은 이치와 같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이 일단 봉합은 됐지만 여전히 진행형이다. 3개월 뒤 보육대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여야가 5064억 원의 예산(전북 몫 200250억)을 편성한 것이나, 다른 시도교육청이 몇개월 분량일 망정 누리과정 예산을 모두 편성한 것도 이런 다급성과 절실성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독 전북교육청만 예산편성을 거부한다면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도교육청 예산 수정 편성 잘 한 일자칫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할 수도 있다. 한 농부가 제사에 사용할 소의 삐뚤어진 뿔을 바로 잡기 위해 팽팽하게 뿔을 동여맸더니 뿔이 뿌리째 빠져 소가 죽고 말았다는 고사성어다. 작은 결점을 고치려다 도리어 일을 그르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김승환 교육감은 누리과정 예산을 정치인의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도의회의 요구를 받아들여 일정 액이라도 수정 예산을 편성한 것은 잘한 일이다. 내년 국가예산이 반영될 수 있도록 도의회와 공동 노력할 명분을 확보하고 보육대란도 막는 이중효과가 있다. 명분과 현실을 고려한 타협책이다. 정치란 이상과 현실, 원칙과 명분 사이에서 항상 고뇌하게 만드는 괴물이다. 누리과정 예산은 홍역을 치렀지만 정치적으로는 좋은 본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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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재
  • 2014.12.15 23:02

차기 전북대 총장의 조건

지난주 지인과 함께 점심을 대충 때운 뒤 전북대 캠퍼스를 둘러보았다. 총장 선거를 앞둔 분위기가 어떤지 염탐할 참이었다. 그런데 그 어느 곳에서도 선거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다. 교직원이나 학생 모두 관심 밖이었다. 캠퍼스 도로변에 선거공보 벽보와 홍보플래카드만 나붙어 있을 뿐. 몇몇 학생에게 물었다.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관심 없다는 투였다. 마치 지방선거 때 후보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주민들 분위기와 흡사했다. 리더의 소명의식이 조직 변화 이끌어분위기가 이럴 망정 누군가는 총장에 선출될 것이다. 총장 후보는 9명이다. 기호 순으로 열거하면 이귀재(52·환경생명자원대) 김영곤(59·의학전문대) 양오봉(51·공과대) 한길석(56·상과대) 이남호(54·농업생명과학대) 김동원(54·공과대) 김선희(57·의학전문대) 신형식(58·공과대) 김세천(59·농업생명과학대) 등이 그들이다. 지인인 이 대학 교수는 “3명은 왜 출마했는지 모르겠고, 3명은 ‘깜’이 아니며 3명 정도가 경쟁력이 있다.”고 했다. 교직원들 사이에 나도는 하마평일 것이다.전북대는 지역 거점 대학이다. 1947년 설립 당시 조선황실의 지원과 전북도민의 성금으로 세워진 ‘도민의 대학’이다. 따라서 지역사회가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전북대 역사는 깊다. 전남대보다 하루 먼저 인가를 받았고 충남대보다는 10년이나 긴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한 때 두각을 나타냈지만 1990년대 수도권 중심의 대학정책이 시작된 이후 위상이 크게 떨어졌다. 2000년대 들어서는 연구비 유용 및 횡령, 학위매매 사건 등 비리가 터지면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안일한 학교 경영과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다. 언론사 평가에서 전국 43위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는다. 2006년의 일이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전북대는 변환기를 맞는다. 대대적인 개혁과 교육 연구시스템의 혁신이 이뤄졌다. 이를테면 교수 승진 및 재임용 기준 강화, 정년보장 교수의 연구실적 제출 의무화, 교수 면직제도 국립대 최초 도입 등이 그런 예다. 실제 교수 5명이 면직되기도 했다. ‘교수는 철밥통’이라는 고정관념을 깨 부순 것이다. 당근정책도 병행됐다. Nature, Science, Cell 등 3대 과학저널에 논문이 게재되면 최대 1억 원 장려금을 주는 등 우수논문에 대한 인센티브도 국내 최고 수준으로 제공했다. 세계 수준 논문(SCI논문) 증가율 전국 1위, 이공계 교수 1인당 SCI급 논문 수 거점국립대 1위, 인문사회 교수 1인당 연구재단 등재 논문 수 국립대 1위 등은 개혁의 결과물이다. 이런 실증적 사례는 리더가 어떤 소명의식을 갖고 조직을 이끌어 가느냐에 따라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본보기이다. 서거석 총장의 지난 8년 경영은 전북대를 서너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개혁 드라이브를 걸 당시 필자는 서 총장을 향해 ‘욕 먹는 총장이 되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개혁은 고통을 동반하는 것인데 욕 먹지 않을 수 없는 일. 서 총장은 실제로 욕 많이 얻어 자셨다. 하지만 결과는 빛나고 있지 않은가. 8년이 지난 지금 질적 양적 성장이 가시화됐고 국내 10위권 대학의 반열에 올라 있다. 시대정신 맞는 역량·리더십 가져야이젠 차기 총장에 관심이 쏠려 있다. 핵심 조건은 전북대를 한단계 더 상승시킬 수 있는 마인드와 역량이다. 그런데 후보 중에는 저간의 성과를 폄훼하며 총장에 당선되면 각종 제도를 느슨하게 고쳐 구성원들의 부담을 덜겠다는 이도 있고, 음해와 흑색선전에 주력해 온 이도 있다. 실현가능성 없는 공약을 남발하거나 기성 정치인 못지 않게 교외의 정치꾼들을 동원해 선거운동을 벌인 이도 있다. 총장에 당선돼선 안될 후보들이다. 내일이 선거일이다. 선거인단 48명(교내 36명, 교외 12명)의 책임이 막중하다. 글로벌 경쟁시대에 지속적인 발전을 담보할 인물이 누구인지, 시대정신에 맞는 역량과 리더십을 가진 후보가 누구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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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재
  • 2014.11.03 23:02

호남문제를 보는 호남의 정치인들

“작년부터 충청도가 호남인구를 추월하면서 영·호남이 아닌 영·충·호(嶺·忠·湖)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호남의 위상이 줄어들고 있다.” (한갑수 호남미래포럼 이사장) “호남소외와 좌절을 이대로 방치하면 국가발전과 사회통합에 현저한 악영향을 끼쳐 대한민국의 미래와 희망도 사라지게 될 것.” (윤장현 광주시장)지난 4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호남발전간담회에서 나온 얘기들이다. 이 지역 각계 인사 90여명이 호남발전공동선언문 발표하고 지역인재 양성과 일자리 창출, 호남출신에 대한 인사차별 해소 대책을 정부와 대통령에게 요구했다.■ 전북출신 무장관·무차관 시대지역 정치권이 뭉쳐 대통령한테 건의할 정도로 호남은 척박해 있다. 박근혜 정부의 인사정책과 지역정책을 보면 호남은 아예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전북이 더 문제다. 광주 전남은 전북보다 나은 지역이다. 그럼에도 그쪽은 악악거리는데 전북의 정치권은 존재감조차 없다. 전북은 지금 전두환 노태우 시절에도 없던 이른바 ‘무장관 무차관’ 시대를 맞고 있다. MB정부와 박근혜 정부 통틀어서도 전북 출신 장·차관 비율은 보잘 것이 없다. MB정부 때 147명 중 7명(4.8%),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67명 중 4명(6.0%) 뿐이었다. 반면 대구·경북 출신 장·차관 비율은 MB정부 때 18.3%(27명), 현 정부 들어서는 19.4%(13명)에 이른다. 전북과 전남·광주 등 호남은 장·차관 비율이 한 자릿수, 대구·경북과 부산·경남 등 영남은 두 자릿수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전주 완산갑 김윤덕 국회의원 분석 자료) 그뿐인가. 검찰총장, 감사원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등 이른바 ‘빅4’ 사정기관 수장이 모두 영남출신이다. 정부 인사위원장인 대통령 비서실장도 영남이다. 해도 너무 했다. ‘길이 역사에 남을 괄목할만한’ 편중 인사다. 호남차별과 개선방법에 대해서는 역설적이게도 호남의 새누리당 최고위원인 이정현(전남 순천·곡성) 의원이 꿰뚫고 있다. “특정지역 출신이라고 해서 진급이나 보직인사에서 차별 받거나 소외·배제되는 것은 인권유린이다.”, “공직 인사에서 호남인을 배제하는 편파인사를 하는 장관이나 국영 기업체 사장을 발견하면 그가 물러날 때까지 싸우겠다.”(YTN라디오 인터뷰) 그러면서 이 의원은 공직인사에서 지역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했다. 시스템으로 접근하겠다는 해법이다. 새정치연합 호남 국회의원들이 해야 할 소리를 새누리당 의원이 하고 있다. 현 정부의 호남 차별인사에 대해 제대로 언급조차 하지 않는 전북 국회의원과도 대조적이다.박 대통령은 ‘100% 대한민국’과 ‘대탕평 인사’를 약속했다. 이걸 실현하려면 대통령 직속의 국민대통합위원회가 기능을 제대로 해야 한다. 그런데 유명무실하기 짝이 없다. 작년 7월8일 출범한 대통합위는 지난 2일 한광옥(72) 위원장이 연임함으로써 2기째를 맞고 있다. 한 위원장은 전주출신으로 전주북중과 중동고, 서울대(영문과)를 나왔다. 4선 국회의원을 지낸 동교동계 정치인 출신이다. DJ 비서실장(2000년)과 새천년민주당 대표(2001년)를 역임했다. 2012년 대선을 앞둔 10월5일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며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그의 이력을 보면 국민통합의 적임이다. 호남소외와 처방에 대해서는 같은 당 이정현 의원보다도 더 잘 알고 있을 터다. 그런데 극심한 편중인사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한 적이 없다. ‘100% 대한민국’을 위해, 그리고 편중인사와 갈등에 대해 중재 조정역할을 해야 하지만 존재감이 없어 보인다. 그럴 바엔 무얼 하겠다고 대통합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의 호는 범봉(凡峯)이다. 그저 평범한 봉우리로 남겠다면 위원장직을 내놓고 평민으로 사는 게 낫겠다. ■ 정부의 지역차별 인사에 적극 대응을호남문제를 보는 호남출신 정치인들의 생각과 행동이 천차만별이다. 도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정치권에 대한 실망도 크다. 정치인들이 앙칼지게 활동하지 않으면 도민들이 내치는 수밖에 없다.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4.09.22 23:02

다시 '전북의 이정현'은 왜 없는가

재작년 7월 이 난에 〈‘전북의 이정현’은 왜 없는가〉라는 칼럼을 썼다. 지난해 4·11총선을 8개월이나 앞두고 적지인 광주 서구 을에 출마의 뜻을 밝힌 시점이다. 홍준표 경남지사가 한나라당 대표 시절 지명직 최고위원 두 자리를 모두 충청 인사로 배치하자 이정현은 “전국 정당임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정치인으로 발 붙이고 살 수 있나”고 홍 대표한테 직격탄을 날린 적이 있다. MB의 호남 홀대 인사를 두고도 “호남출신으로서 분노를 느낀다. 이 정부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게 편파인사다.”고 공개적으로 쓴소리를 날렸다. 지역주의 타파 화신으로 떠올라이런 정치발언을 예로 들며 이른바 ‘호남지킴이’를 자처한 그의 좌고우면하지 않는 당당한 태도가 좋다고 썼다. 칼럼은 그러면서 “(전북의) 한나라당 사람들이 너무 무기력하다. 민주당 편향의 지역정서 탓만 한다. 스스로 고착적인 구조를 타개하려는 시도나 노력도 없다.”고 비판했다. 꼭 2년 뒤 이정현은 7·30재보선에서 지역주의 타파의 화신으로 떠올랐다. 전통적 야당 텃밭인 전남 곡성·순천에서 4수(修) 끝에 새누리당으로 금배지를 달았다. 승리 원인 중 하나를 꼽으라면 그의 진정성을 꼽겠다. 이정현은 전북의 정치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전북의 새누리당 사람들은 어떤 생각일까.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아니면, 우리는 안돼? 집권여당인 데도 정운천을 빼고는 너무 무기력하다. 새누리당 지도부의 호남 포기 전략을 포기시킬 의지를 다질 법도 한데 무반응이다.새정치민주연합 사람들도 가슴이 철렁했을 것이다. ‘예산 폭탄’을 들고 적진에 들어가 지역발전에 갈증을 느끼던 민심을 공략했으니 발등에 불덩어리가 떨어진 셈이다. 낙후와 소외. 신물 나는 이걸 탈피할 갈증은 전북이 더 했으면 더 했지 못하지 않다. 지금 전북은 사상 유례 없는 ‘무장관 무차관’의 쓴 맛을 보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과거엔 난리가 났을 터다. DJ도 인사편중 만큼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호령했다. 그런데 전북의 국회의원들은 화 낼 줄도 모른다. 더위 먹은 탓인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정현 같은 ‘초(初)’자가 당 대표와 대통령을 향해 쓴소리를 날리는 마당에 야당이, 더구나 3선 중진의원들이 정부와 대통령을 향해 한마디 말도 못하는 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야성(野性)이 죽었거나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지역 현안에 대해서도 무감각하다. 포항 북구가 지역구인 새누리당의 이병석 의원은 최근 새만금∼포항간 동서고속도로 조기 건설을 당 지도부에 요구하고 나섰고, 부여·청양이 지역구인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얼마전 전북구간이 포함된 제2서해안 고속도로 계획을 정부 안으로 채택시켰다. 모두들 자기 지역의 현안들에 대해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전북의 국회의원들은 무관심이다. 민심은 엄중하다. 도도한 물결처럼 끊임 없이 흐르고 변한다. 7·30 재보선은 무기력한 야당, 안이한 새정치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거물급 중진도 여럿 날려버렸다. 특히 지역주의에 기대어 대충 일했다간 국물도 없다는 교훈을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전북에도 진정성 있는 정치인 있어야이정현은 국회 의원회관과 지역구 사무실에 ‘호남예산 지원 전초기지’라는 팻말을 붙이고 일하겠다고 했다. ‘호남예산 지킴이’의 진정성이 엿보인다. “일하고 싶어 미치겠다”는 이정현 같은 진정성 있는 정치인 몇명만 있더라도 전북은 훨씬 나아질 것이다. 20개월 후면 총선이다. 지금처럼 안일하게 정치 했다간 큰 코 다칠 수 있다. 지방선거에선 도내 단체장 절반을 무소속이 차지했다. 국회의원을 겨냥한 심판 성격도 담겨 있을 터다. 자세를 낮추고 치열하게 그리고 진정성 있게 일하지 않으면 민심은 언제든 내친다는 걸 꼭 기억할 일이다. 누가? 우리지역 국회의원들이.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4.08.04 23:02

전북이야말로 혁신이 필요한 곳

유종근 도지사 시절 행정부지사에 경남 출신의 이성열씨가 선택된 건 파격이었다. 경남 함안 출신으로 마산중과 서울고를 나온 인재이지만 전북과는 아무런 연고도 없었다. 그는 인사로비를 벌일 성품도 아닐뿐더러 전북에 와야 할 까닭도 없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행정고시(17회)에 합격한 뒤 행정자치부에서 그야말로 청운의 꿈을 꾸던 시기에 유 지사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유 지사가 그를 선택한 건 지역주의 벽을 허물기 위한 실천의 방편이었다. 사람 하나 쓰는 걸로 지역주의가 가실 리 없지만 상징성은 컸다. 그는 중앙정부와의 가교 역할, 직원들과의 소통 등 모든 면에서 일처리를 깔끔하게 해냈다. 경기·제주도지사 당선인의 파격새누리당의 남경필 경기도지사 당선인이 정무부지사 자리를 야당에 제의한 것도 파격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정책협상을 먼저 하자고 역 제의해 엊그제 정책협상단을 꾸렸다. 전·현 국회의원과 경기 도의원, 남경필 당선인과 낙선한 김진표 전 의원 보좌관 등 여야 양측에서 각기 5명씩으로 구성됐다. 상생과 협력의 정치를 펴 나가기 위한 첫 단추를 뀄다. 이른바 연정이다. 새정치연합 김태년 경기도당 위원장은 “정치혁신, 민생우선, 도전정신을 3대 원칙으로 삼아 새로운 정치를 만드는데 헌신하겠다.”고 화답했다. 새누리당의 원희룡 제주도지사 당선인은 아예 선거 라이벌이었던 새정치연합의 신구범 도지사 후보에게 도정인수위원장 직을 제안해 성사시켰다. 자신의 제1공약인 ‘협치를 통한 도민이 주도하는 도정 구현’의 일환이다. 신구범 위원장은 “제안이 신선하고 도전적이다. 선거가 끝난 지금 최우선 과제는 편가르기의 선을 지우고, 도민 힘을 한 데 모으는 일”이라며 수락했다. 이들 정치지도자들의 공통점은 혁신 마인드와 이를 실천에 옮기는 용기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관행을 깬 파격을 실험하고 있다. 실은 전북이야말로 혁신 마인드가 필요한 곳이다. 전북은 전통적 야당 텃밭이다. MB에 이어 새누리당 정권 7년째 정치적으로 고립무원의 동토지역이 돼 버렸다. 경제적으로는 ‘낙후’ ‘전국 3% 경제’라는 오명을 30년 넘게 달고 있다. 기업, 일자리, 소득 모두 최하위권이다. 걸출한 정치인들이 배출됐지만 지역은 달라지지 않았다. 전북의 존재감은 너무 희미하다. 전북이 처한 상황을 놓고 보면 뭔가 돌파구를 마련할 역동적인 혁신마인드가 필요한 곳이 바로 전북이다. 3년 전 MB정권 하에서 도정이 잘 풀리지 않던 시기에 정무부지사를 (당시) 한나라당의 추천을 받아 임용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김완주 도지사한테 한 적이 있다. 김 지사는 “그렇게 하면 도내 국회의원들이 나를 가만 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글쎄, 국회의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지만 거기까지가 한계다. 전북도 지역발전·민생 위해 바꿔야이젠 자치단체도 글로벌 경쟁시대를 맞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서 융합과 통섭이 시도되고 그 결과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관행적 사고와 과거답습적 패러다임에 묶여 있는 한 전북은 미래가 암울하다 할 것이다. 역동적이고 혁신적인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역발전과 민생을 최우선시 한다면 정책과 정치연합을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것이야말로 기득권을 버리고 새 길을 모색하는 정치혁신이자 새정치이다. 송하진 도지사 당선인이 당장 코 앞에 닥친 정무부지사 인선이나 전북의 미래 설계를 놓고 고민이 많을 것이다. ‘신선하고 도전적인, 관행을 깬 파격적인’ 구상들이 톡톡 튀어 나왔으면 한다.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4.06.23 23:02

리더 잘못 뽑으면 세월호 짝 난다

“국민이 요청하는 변화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낡은 정치와의 결별을 선언한다.” “새정치만이 낡은 정치에 지친 국민에게 희망을 드릴 수 있다. 먼저 버리고 내려놓자. 과감히 바꾸자.” 지난 3월 새정치연합 창당발기인 대회에서 김한길 안철수 두 공동위원장이 언급한 인사말의 일부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새정치연합의 경선과 공천파동은 국민이 요청하는 변화를 담아내지 못한 낡은 정치였다. 기득권에 함몰된 구태를 드러냈다. 먼저 버리고 내려놓겠다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고 과감히 바꾸지도 못했다. 경선·공천파동, 새정연의 낡은 정치경선과 공천은 민주적 절차와 기회의 균등, 공정성과 일관성이 생명이다. 그런데 자격심사는 이현령 비현령이었다. 후보자 배제기준이라는 걸 만들어 놓고 예외 없이 적용하겠다고 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후보자 배제기준에 들었어도 누구는 살아나고 누구는 죽었다. 이게 새정치인가 하는 의문이 이는 건 당연하다.경선방식은 혼란 그 자체였다. 여론조사와 공론조사를 놓고 갈팡질팡 했다. 도지사 경선은 가까스로 파경 직전에야 숨통를 찾았다. 유·불리를 놓고 머리 좋은 사람들의 계산이 오락가락한 탓이다. 공천심사는 민주계와 안철수 계열 후보 간 이전투구의 장이 됐다. 양대 세력의 대표들은 서로에게 흰 눈을 들이대고 손가락질 해대기 바빴다. 황금연휴라는 지난 주 새정치연합 전북도당은 욕설과 몸싸움, 항의와 연좌농성, 기물파손 등으로 난장판으로 변했다. 탈당과 무소속 출마, 삭발투쟁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한 지붕 두 가족’ 체제에서 일어나는 필연적인 결과다. 이런 걸 보면서 차라리 기초선거 무공천을 고집했다면 하는 생각이 든다. 무공천을 했다면 민주계와 안철수 계열 후보 간 경쟁구도가 형성되면서 지역과 유권자에 대한 정치서비스가 극대화됐을 것이다. 공천제로 회귀하면서 경쟁은 없어졌고 줄세우기가 되살아났다.국회의원 등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이들은 무소불위의 공천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게중에는 친·불친에 따라, 또는 충성도에 따라 살리고 죽이는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의 힘을 발휘했다. 국회의원들이 갖가지 이유를 대며 공천 유지를 관철시킨 게 다 이런 이유였던가 싶다. 이 역시 새정치가 아니다.공천은 정당이 유능한 사람을 천거하는 정치행위이다. 그래서 개혁공천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런데 여전히 ‘사천(私薦)’이 횡행했다. 계파 안배와 외부 입김, 경우에 따라선 뇌물 등이 개입한다. 이건 구태정치다. 기득권에 안주하는 낡은 정치다. 지방선거에서 새정치는무엇인가. 자격심사와 경선, 공천의 일관성과 공정성을 유지하고 지역의 문제들을 선거 의제화하는 일이다. 중앙에 함몰된 정치이데올로기를 해체하고 지역이 주체가 돼 유능한 리더를 뽑는 것이야말로 지방선거에서의 새정치라 할 것이다.안철수 공동대표는 “정치가 바뀌어야 우리 삶이 바뀔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정치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지분 챙기고 기득권 행사하는 관행은 옛날 그대로다. 그러니 정치혐오감만 쌓일 뿐이다. 단체장·지방의원 잘못 뽑으면 피해지방선거가 채 한달도 남지 않았다. 그런데도 우리지역 시장·군수 선거에 누가 나왔는지 아는 유권자들은 별로 없다. 지방의원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상태에선 후보의 자질과 능력, 도덕성과 차별성을 기대한다는 건 언감생심이다. 큰 일이다. 세월호 침몰사고는 리더의 중요성을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무능하고 천박한 선장, 자신의 안위만 챙긴 항해사와 조타수 등이 배를 지휘할 때 어떤 피해를 입게 되는지 똑똑히 보았다. 지방선거는 지역을 책임질 리더들을 뽑는 정치이벤트다. 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잘못 뽑으면 지역이 피해를 입는다. 거덜 날 수도 있다. 세월호의 경우와 결코 다르지 않다는 걸 유권자들이 기억할 일이다.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4.05.12 23:02

지방선거에 '지방'은 있는가

지방자치를 ‘풀뿌리 민주주의’(grass-roots democracy)라고 한 이는 독일의 정치사상가인 칼 프리드리히다. 식물의 뿌리처럼 가장 밑부분인 주민을 통해 민주주의가 이루어진다고 해서 비유적으로 그렇게 불렀다. 식물의 뿌리는 식물이 자라는데 필요한 영양분과 물을 공급해 준다. 민주주의에서는 주민 한명 한명이 식물의 뿌리 같은 존재다. 주민이 주체로 기능하면서 지역과 삶을 변화시키는 참여 민주주의의 한 형태가 풀뿌리 민주주의이고 지방자치다. 주민 관심사안, 지선 이슈 돼야지방선거는 지방자치의 리더를 뽑는 선택의 기회이자 지역의 고민을 놓고 해결방안을 찾는 정치이벤트다. 따라서 누가 지역을 대표할 적임자인지, 지역은 어떤 과제를 안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처방을 제시하는지 등등의 토론 공간이 돼야 한다. 그런데 6·4지방선거가 70여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중앙의 거대 담론에 가려 정작 중요한 지역의 문제들이 돌출되지 않고 있다. 최근 무상버스, 복지 등의 문제가 관심을 끌었지만 이 역시 중앙 정치권이 제기한 사안이다. 지방선거에서는 지역의 문제들 이를테면 새만금 권역조정, 전북권 신공항 정책, 2주갑을 맞은 동학농민혁명의 기념일 제정, 혁신도시 인프라 확충, 관광정책, 인구 증가 및 일자리 대책, 교육문제, 지역특화 프로젝트로 선정된 농생명에서부터 대중교통, 아파트 관리비, 쓰레기 처리 등 소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지역주민 관심사안이 중심이 돼야 한다. 지역 현안을 쟁점화하고 치열한 논쟁을 벌일 때 비로소 방향성과 해결가능성도 모색될 수 있다. 대안과 개선 과제가 자연스럽게 제기될 것이고 후보 간 차별성도 띨 것이다. 선거 판이 용광로처럼 달아오르고 고민을 녹여내며 정책적 대안이 흘러나오는 공간이 된다면 지역발전과 도민이익을 한단계 높이는 훌륭한 정치이벤트가 될 것이다. 하지만 지역의 문제들에 대한 의제화나 대안, 미래지향적인 비전 등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갈등 사안이거나 자치단체 간 소지역 이기주의가 작용하고 있는 현안 등은 아예 손 대지 않으려 한다. 유권자 표를 의식한 이른바 포퓰리즘적 사고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인데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정치리더라면 지역 현안에 대한 분명한 자기 철학과 소신이 있어야 한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의 지역정책 패러다임은 중앙정부 주도에서 벗어나 상향식으로 바뀌었다. 주민과 자치단체가 자율적 협의를 통해 아이디어를 내고 지역 특성에 맞는 정책들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경제 문화 관광 등 협력사업 발굴과 자치단체 간 협력, 창의적인 아이디어, 다른 지역과의 차별성 등이 향후 지역발전을 좌우할 중요한 숙제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걸맞는 처방도 후보들은 제시해야 마땅하다. 선거는 검증이고 선택이다. 지역의 문제들에 대해 어떤 철학과 비전, 청사진을 갖고 있는지는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현역은 현역 시절 지역의 문제들에 대해 무얼 잘하고 잘못했는지, 정치신인들은 어떤 처방을 제시하는지 검증하는 건 유권자로선 당연한 의무다. 지역 현안, 대안·해답 모색 필요식물이 자라려면 영양분이 있어야 한다. 봄철 땅을 갈아 엎고 땅심을 키우는 것도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서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침체되고 낙후된 전북 같은 곳은 포크레인으로 땅을 갈아엎듯 지역의 문제들에 대해 수술할 것은 수술하고 정리할 것은 정리하는 과감한 과정을 밟아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선거의 후광효과이고 후보들이 취할 태도다. 그런데 지방선거 판이 너무 잠잠하다. 지역 현안들도 실종돼 있다. 지방선거에 ‘지방’이 없는 꼴이다. 무엇 때문에 선거를 치르는지 선거의 정체성도 애매해질 수 밖에 없다. 사람만 뽑으면 되는가. 아니다. 지역의 문제를 놓고 대안과 해답을 찾는 길을 모색하는 과정이야말로 지방선거의 요체라 할 것이다.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4.03.24 23:02

지방선거, 유권자는 원숭이가 아니다

“정치인은 어디서나 똑같다. 그들은 강이 없는 곳에도 다리를 건설해 준다고 약속한다.” 비록 빌 공자 공약일지라도 공약을 늘어놓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정치인들의 속성을 빗댄 말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쇄신 공약이 또 난무하고 있다. ‘안철수 현상’에서 발원된 쇄신 공약은 실은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다. 이미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국민에게 약속한 터다. 진정성 있는 정치혁신 꼭 필요대선을 한달여 앞둔 2012년 11월치 신문을 뒤적거리면 국회의원 특권 폐지, 국회의원 세비 30% 삭감, 중앙당 권한 축소, 의원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 폐지 또는 제한, 의원의 영리목적 겸직 금지, 기초선거 공천폐지 등을 여야가 앞다퉈 쏟아낸 걸 보게 된다. 이른바 정치쇄신 공약이다. 지난 1년 내내 정쟁에 몰두하다 결국 흐지부지되고만 공약들이다. 그런데 지방선거가 닥치니까 또 새롭게 포장된 정치혁신 과제가 쏟아지고 있다. 사과나 반성도 없이 엇비슷한 공약이 먹잇감으로 제시되는 건 국민을 희롱하는 짓이다. 권력자가 국민을 희롱하는 고사성어가 조삼모사(朝三暮四)다. 송나라 저공(狙公)이 원숭이 수가 늘자 먹이를 줄이기 위해 하루에 밤 일곱개만 주기로 했다.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이 적다고 항의했다. 그래서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주겠다고 말을 바꿨다. 그랬더니 원숭이들이 기뻐하더라는 것이다. 열자(列子)에 나오는 이야기다. 똑같은 말에 희롱당하는 원숭이를 국민에, 잔 술수를 이용해 상대방을 현혹시키는 저공을 정치인에 빗댄다면 과할까. 국민 눈높이의 정치혁신은 꼭 필요하다. 진정성이 문제다. 공약 채택은 신중해야 하고 한번 내건 공약은 이행해야 마땅하다. 대국민 공약을 ‘안되면 말고’ 식으로 아무렇게나 내뱉어선 안된다. 그건 헌 정치, 구태정치다.안철수의 새정치 구호는 흡인력이 있다. “낡은 틀로는 아무 것도 담아낼 수 없다.” “문제를 풀어야 할 정치가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다.” “정치가 바뀌어야 우리 삶이 바뀔 수 있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과 실망, 새정치에 대한 갈증이 심한 터에 새정치 구호는 그 욕구를 충족시켰다. 안철수의 힘은 60년 정통야당을 추동시키고 집권여당을 긴장시키는 데서 잘 드러난다. 안철수가 없으면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나 공천쇄신 등의 정치혁신은 언감생심일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how to)가 없다. 추구하는 가치는 옳지만 어떻게 새정치를 할 것인지 방법론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슬로건 정치라는 비판을 듣는 이유다. 슬로건의 구체성을 뒷받침하지 못하면 감언이설이고 립서비스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새정치는 동전의 양면이다. 지방선거가 넉달도 채 남지 않았다. 그런데 아직 선거 룰도 확정되지 않고 있다. 정치개혁특위는 허송세월 하다 2월말까지로 활동시한을 한달 연장했다. 그런데도 합의되지도 않을 안건을 들고 나와 쇼를 하고 있다. 국민을 우습게 보기 때문이다. 국민 희롱하는 정당·정치인 심판출마 입지자들의 가장 큰 관심은 공천문제다. 새누리당은 대 국민 공약인 기초선거 공천폐지 여부를 아직도 확정 짓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눈치를 보는 모양이다. 파기한 공약이 하도 많아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과연 공당으로서 영혼이 있는지 묻고 싶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솔깃한 공약들이 넘칠 것이다. 선거가 끝나면 또 까마득히 잊히고 말 것이다. 선거 때만 을(乙)이 되고 선거가 끝나면 갑(甲)이 될 정치인의 모습도 보게 될 것이다. 원숭이를 희롱하는 저공 같은 정치인, 아무렇지도 않게 대 국민 공약을 파기하는 정당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문제다. 선거는 검증이고 심판이다. 기억했다가 선거 때 심판하는 수 밖에 없다. 식언(食言)과 허언(虛言)을 밥 먹듯이 하면서 국민을 희롱하는 정당과 정치인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심판해야 한다. 유권자가 원숭이처럼 희롱 당해선 안된다. 유권자가 갑인 경우는 선거 때 단 한번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4.02.10 23:02

등 돌린 민주당을 위한 苦言

민주당이 요즘 안녕치 못하다. 열흘전 한국갤럽이 발표한 민주당의 정당지지도는 10%(새누리당 35%, ‘안철수 신당’ 32%)였다. 호남에서도 13%에 불과했다. 반면 ‘안철수 신당’은 44%로 민주당을 세배나 앞섰다. 이러니 안녕할 리 없겠다. 민주당으로선 억울할 수도 있다. 장외투쟁도 했고 장내에 들어와서도 할 일 다 했는데 이런 평가를 받다니? 밤 새도록 공부 했는데 시험점수가 형편 없이 나왔다면 속 상할 일이다. 하지만 민심은 천심이다. 지난 1년여 동안 민주당은 줄곧 태동도 하지 않은 ‘안 신당’한테 맥을 추지 못했다.리더십 부재…정국주도 호기 날려왜 그럴까. 정치쇄신을 등한히 했고 기득권에 안주했기 때문이다. 야성(野性)과 리더십도 부재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지난 10개월 동안 호재(好材)가 많았다.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공약파기, 인사난맥 등은 정국을 주도하기에 충분한 소재들이다. 그런데도 손에 쥔 성과물이 없다. 만약 DJ가 지휘했다면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공약 파기도 좋은 재료다. 기초연금, 인사 대탕평, 지역 현안들이 식언이 됐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공약도 대선이 끝난 지 1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인사문제는 또 어떤가. 인수위 위원장은 중도 낙마했고, 대변인은 사고를 쳤다. 내각 인사에서 탕평인사는 헛 공약이 됐다. 그리곤 ‘신 PK(경남)’ 시대가 열렸다. 정홍원 국무총리(하동)와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겸 인사위원장(거제), 감사원장(마산), 검찰총장(사천), 청와대 민정수석(마산)이 모두 PK다. 이건 비정상의 극치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겠다고 말한 사람은 박 대통령 아닌가. 박 대통령은 국민대통합을 약속했다. 그런데 포용과 화합, 통합은 실종되고 국론은 분열돼 있다. 대립각은 더 커졌다. 이렇게 결과된 책임을 준엄하게 묻고 따지는 것이야말로 야당의 존재이유다. 난세에 영웅 나고, 위기 때 리더십은 더욱 돋보이는 법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그런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 민주당 내부 균열도 문제다. 힘을 합해도 모자랄 판에 김밥 옆구리 터지듯 내부에서 힘을 빼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집안이 시끄러우면 밖에서도 대접 받지 못하는 법인데 민주당이 꼭 그런 꼴이다. 민주당이 다급해진 모양이다. ‘안 신당’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안 신당’은 사실 인물, 조직, 비전이 구체화되지 않은 예비 정당이다. 60년 정통 야당이 걸음마도 떼지 않은 예비 정당을 공격한다면 등 돌린 민심이 돌아올까. ‘너나 잘 하세요’란 핀잔을 들을 것 같다. 내년은 지방선거의 해다. ‘안 신당’과 한판 승부를 해야 한다. ‘안 신당’의 핵심 열쇳말은 ‘새정치’와 ‘국민과 함께’다. 민주당은 어떻게 하는 것이 새정치이고, 국민과 함께 가는 길이 무엇인지부터 고민해야 할 것이다. 국회의원·중앙당, 기득권을 버려라몇가지 제안이 있다. 첫째 투명하고 공정한 공천시스템을 작동시키는 일이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사심을 버려야 가능한 일이다. 둘째 각 지역 시·도당 주도하에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중앙당의 권한을 이양하는 일이다. 호남 영남 수도권 등 각 지역실정이 다른 지방선거인 만큼 지역에 맡기라는 뜻이다. 셋째 정책 승부다. 경제는 피폐하고 민생은 죽을 맛이다. 거대담론에 가려 실종된 생활정치, 민생정치를 복원할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넷째 임기중 공천자가 법의 처벌을 받아 낙마할 경우 재·보선 공천 포기를 약속하는 것이다. 지역에선 돈 안 먹을 사람, 깨끗한 사람을 내보내라는 목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런 제안은 그다지 어려운 것도 아니다. 국회의원과 중앙당이 기득권만 버리면 가능하다. 민주당이 사는 길이다. 그런데 이걸 실행할 수 있을까.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게 민주당의 한계다. 발가락이 가려운데 구두만 긁는다면 여지없이 나가 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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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재
  • 2013.12.30 23:02

역동적인 정치 리더로 판을 짜자

'쪽수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다. 사람 숫자 많은 쪽을 당해 내기 어렵다는 뜻이다. 쪽수는 신문이나 책 지면의 수효를 이르는 말이지만 사람 숫자를 비하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충청 정치권이 쪽수 문제를 들고 나왔다. 충청권 인구가 호남을 앞질렀는데 선거구 수(25개)가 호남(30개)보다 적은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역동적인 대전포럼'이란 단체도 지난달 16일 선거구 증설 학술토론회를 열어 선거구 증설을 여론화 했다. "인구에 따라 국회의원 의석 수를 배분하는 문제를 국회에서 논의해야 한다" "선거구 증설 공약을 지방선거 때 추진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이 나왔다. '쪽수' 적다고 가만히 있어야 하나충청권의 민간단체와 새누리당,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여야를 떠나 이 문제를 노골적으로 공론화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을 바라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쪽수에 관한 한 뾰족한 대책이 없기도 하거니와 충청권의 정치력 확장 여파가 전북이나 호남에 좋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점 때문이다. 사실 충청은 호남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인구조사가 처음 시작된 1925년 호남인구는 352만 명이었지만 충청권은 212만 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난 5월말 충청권 인구(525만 136명)는 호남(524만 9728명)을 408명 앞질렀다. 건국 이후 처음이다. 지금은 1만7129명(10월말)이 더 많다. 세종시 출범으로 인구유입이 늘었고 수도권 규제로 기업과 공공기관이 꾸준히 충청지역에 둥지를 틀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쪽수 역전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매가 먹잇감을 나꿔채듯 충청 정치권은 이를 정치력 확장의 호기로 삼고 있다. 하지만 호남을 걸고 있다는 게 영 거슬린다. 옛날로 치면 한 주먹 감도 안되는 녀석이 좀 컸다고 깐죽대는 식이다. 문제는 단순히 선거구 몇석 증설이 아니라 정치세력화를 통해 끊임 없이 또다른 무엇을 쟁취해 나갈 것이라는 데에 있다. 벌써부터 발톱을 드러내 놓고 있다. "호남보다 인구가 많은데 장관급 이상 고위직은 적고, 내년 예산 반영도 미흡하다"며 정부와 당에 개선을 요구하고 있지 않은가. 향후 인사, 예산, 사업 등 전반에 걸쳐 호남을 걸고 넘어지면서 야금야금 먹어갈 것이다. 충청 정치권은 고단수다. 영·호남 틈새에서 취약한 정치력을 캐스팅보트로 활용하면서 존재감을 극대화했고, 선거와 정부인사에서 실리를 챙겼다.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르던 도광양회(稻光養悔)에서 벗어나 이젠 유소작위(有所作爲)의 기세로 변했다. 힘을 길렀으니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뜻이다. 사안의 핵심은 쪽수다. 병법에서도 쪽수는 매우 중요하다. 양만큼 계량하기 쉽고 정확한 조건도 없다. 정치력은 쪽수에 비례한다. 이런 추세로 가다간 호남의 존재감이 무력해지고 과거의 충청처럼 호남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살아남는 꾀를 부려야 할지도 모른다. 응집력 높일 수 있는 지도자 선출을광주·전남권은 그나마 낫다. 이달 말 중앙관료와 기업인, 법조계, 학계, 여성·청년계 인사들이 하나로 뭉친 '광주·전남미래포럼'을 창립해 세력화할 예정이다. 각계의 쟁쟁한 인사 94명이 발기인으로 나섰다. 전북이 문제다. 콩가루 집안처럼 응집력도 없고 전남·광주처럼 세력화할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정치권은 '나 혼자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식인 것 같다. 이런 현상은 결국 리더십에 달린 문제이다. 역동적인 리더십을 가진 인물로 판이 짜여야 지역이 생동한다. 쪽수가 적으면 응집력과 질로 승부해야 한다. 이런 시대흐름을 읽고 실천할 정치리더가 필요하다. 정치리더는 선거를 통해 탄생한다. 총선은 물론이고 당장 내년 지방선거부터 도민들이 눈을 부릅 떠야 한다. 그럴 때 전북도 역동적으로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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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재
  • 2013.11.18 23:02

민주당은 을(乙)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는가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부당한 갑을(甲乙) 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는 정치세력은 민주당 밖에 없다." 지난 6월2일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최고위원-시·도지사 을(乙)을 위한 정책간담회'에서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한 말이다. 나아가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고 땀 흘린 만큼 잘사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국가경쟁력이 제고되고 지속가능한 성장이 실현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을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를 실천해, 을들의 희망이 되겠다"고 강조했다.24시간 편의점 주인들이 본사의 횡포를 견디지 못한 자살사건이 잇따를 즈음이라서 시의적절한 발언으로 들렸다. 그리고 기대를 걸게 했다. 그러나 넉달이 지났지만 성과를 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이 발언은 경제행위뿐 아니라 정치상황에도 대입할 수 있다. 정치적 약자들도 편의점 주인 못지 않은 고통을 받는다. 공천권을 쥐고 있는 국회의원은 갑이다. 출마 입지자들은 을이다. 김 대표의 발언대로라면 국회의원은 출마 입지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를 실천해 을들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 반대다. 내년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일부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공천횡포'가 벌써부터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비협조적인 지방의원 줄세우기, 갈등 관계에 있는 입지자 찍어내기, 특정 입지자에 대한 단체장 지지 입장을 공공연히 밝히는 사례들이 그런 것들이다. 어느 지역에선 심지어 국회의원 부인이 치맛바람을 휘날리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공천 구태다. 공천권을 쥔 갑의 횡포다. 을의 희망은 커녕 눈물을 짜내게 만드는 갑(甲)질에 매몰돼 있다면 편의점 점주들을 달달 볶는 본사의 행태와 다를 게 없다. 공정한 공천 룰을 만들고 심판 역할을 해야 하는 게 국회의원 아닌가. 지난 대선과 4·11총선 이슈는 기득권에 안주하는 기성 정당과 정치권 타파였다. 그것이 이른바 '안철수 현상'으로 나타났다. 깜짝 놀란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쇄신과 기득권 내려놓기를 약속했다. 기초선거의 정당공천 폐지도 그런 일환이다. 그런데 당론으로 공천폐지를 결정한 민주당에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과거의 못된 습성이 되살아나고 있으니 그 배짱이 놀랍다. 선거 땐 을이 됐다가 선거가 끝나면 갑이 되고 만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7∼8개월 동안 얼마나 많은 입지자들이 높은 공천 벽에 자괴하고 스트레스를 받을지 모르겠다. 민주당에 대한 호남민심은 여전히 사납다. 정당 지지도에서 '안철수 신당'은 민주당보다 거의 두배에 육박할 만큼 앞선다. 민주당은 '안철수 신당'에 대해 "미풍에 그칠 것", 실행위원 명단을 놓고는 "실망했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현역 국회의원들이 국민 눈높이 정치에 둔감한 나만의 정치를 계속한다면 큰 코 다칠 수 있다. 민주당 군수 경선에 대비, 농촌에서 활동중인 전 군수는 엊그제 "70대 노인들이 안철수 쪽으로 가라 한다."며 민심이 무섭게 변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호남에서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은 대체재의 함수관계다. 지향하는 가치와 이념이 엇비슷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제 역할을 하면 '안철수 신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민주당이 잘못하면 그 반대인 시소게임 관계다. 현역 국회의원들이 기득권에 안주하거나 공천권을 사유화한다면 민심은 크게 이반할 것이다. 향후 몇달간 '안철수 신당'과 민주당을 놓고 민심의 방향을 결정할 핵심 키워드다. 민주당은 국민의 마음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아는 정당이다. 김한길 대표의 시의적절한 갑을관계 발언도 그런 맥락이다. 그러나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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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재
  • 2013.10.07 23:02

새누리당 전북도당 이래서는 안된다

지난 15일 전주를 방문한 새누리당 정몽준 국회의원이 도내 당협위원장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새누리당 전북도당과 전북도가 정책협의회를 열기로 한 하루 전 날이다. 헌데 식사 자리에 나온 당협위원장은 3명뿐이었다. 정몽준 의원은 차기 대권 예비후보 아닌가. 나에 대한 비토? 아니면 뭔 일이 있지? 정 의원이 생각했을 법한 의문이다. 다음날 전북도청 종합상황실에서 열린 정책협의회에 참석한 당협위원장도 4명뿐이었다. 정운천 도당위원장(전주 완산 을)과 전희재 제2사무부총장(무주·진안·장수·임실), 라경균(전주 덕진), 정영환(김제·완주) 위원장이 그들이고 정몽준 의원, 정양석 중앙연수원장, 이계숙 도당 대변인(도의원)이 함께 했다. 정책협의회는 내년 사업과 국가예산, 대선공약 우선 순위와 지역 현안에 대한 추진전략을 논의하는 중요한 회의다. 그런데 찬바람이 휙휙 불다니? 더구나 새누리당이 요구한 정책협의회 아닌가.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발단은 정운천 도당위원장의 독선적 당무운영이다. 당협위원장들이 이에 반발한 것이다. 이를테면 당협위원장들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운영위원 10명을 교체해 버렸고, 정책협의회 역시 당협위원장들과 현안을 조율할 기회도 없이 독단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또 당초 방침을 뒤엎고 도당위원장 경선 선거기탁금을 4,000만원으로 결정한 것도 정 위원장의 독단이라는 것이다. 대선이 끝난 뒤 당협위원장들을 취직시켜 주겠다는 약속도 식언해 버렸고, 특위위원장을 맡았으면 도내 당협위원장 몇사람 정도는 위원에 포함시키는 아량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관심을 쏟지 않는 등 독불장군처럼 행세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 위원장 생각은 다르다. 도당 운영을 정상화시키는 과정에서의 진통, 당헌에 따라 운영위 중심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의 반발, 지난 6월 정기 도당대회 개최 문제를 놓고 불거진 갈등의 후유증이라는 것이다.어쨌건 새누리당 전북도당의 주류와 비주류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처럼 보인다. 어느 당협위원장의 징계 문제를 놓고는 서로 멱살잡이까지 벌어진 일도 있었고, 정 위원장과 김경안 익산당협위원장은 남성고 동기동창인 데도 간극은 심하게 벌어져 있다. 당의 공식행사 보이콧은 이렇듯 수개월 동안 누적된 갈등의 결과다. 하지만 정책협의회 불참은 당무를 거부한 것이고 해서는 안될 일이다. 사실 새누리당의 당협위원장들을 보면 측은한 느낌이 든다. 그들 말마따나 호남에서 새누리당 활동 하는 건 독립운동 하기 보다 더 힘들다고 자탄하는 그들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집권 여당이다. 새누리당이 전북에서 힘을 받으려면 당협위원장들이 정부와 중앙당을 오가며 현안을 조율하고 관철시키는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 기금운용본부 이전, 공항, 새만금 인프라구축, 대선공약사업 등 할 일이 많다. 전북이 홀대받으면 큰 소리로 항의해야 하고 중앙당과 정부를 비판도 해야 한다. 그럴려면 오합지졸 갖고는 안된다.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에너지를 한데 모으고 뭉쳐야 한다. 정보를 공유하고 격려하지는 못할 망정 서로 손가락질 해댄 대서야 얼굴 들고 다니겠는가. 책귀어장(責歸於長)이란 말이 있다. 조직의 장은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정운천 위원장이 진정성과 포용력을 갖고 당협위원장들한테 다가가기를 권한다. 진정성이 있다면 풀리지 못할 매듭이 없다. "허리띠 풀어 놓고 술 한잔 한 적이 없다, 마음 터놓고 얘기 한번 해본 적이 없다."는 당협위원장들의 얘기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이것이 새누리당과 당협위원장 모두가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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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재
  • 2013.08.26 23:02

지역공약도 미생지신의 자세로 접근하라

'미생지신(尾生之信)'은 융통성 없이 약속만을 굳게 지킨다는 걸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중국 춘추 시대에 미생(尾生)이라는 청년이 다리 밑에서 만나자고 한 여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홍수에도 피하지 않고 기다리다가 마침내 익사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사기'의 소진열전(蘇秦列傳)에 나오는 말이다. 이 고사성어는 2010년 1월 당시 한나라당 의원 신분이던 박근혜 대통령과 당 대표인 정몽준 의원 간의 논쟁 때 인용돼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약인 세종시를 놓고 원안대로 해야 한다는 박 대통령과 수정안을 지지하던 정 대표 간 논쟁이다.정 대표는 '미생지신'을 인용하면서 국민과의 약속과 신뢰를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는 박 대통령을 비판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미생은 진정성이 있고, 애인은 진정성이 없다. 미생은 죽었지만 귀감이 되고, 애인은 평생 괴로움 속에서 손가락질 받으며 살았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약속 이행은 곧 신뢰와 직결된다는 걸 강조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18년 동안 정치를 하면서 신뢰와 약속을 중요한 가치로 삼는 정치인으로 각인돼 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선거공약 이행 태도를 놓고 자치단체들의 불만이 많다. 심지어는 집권당인 새누리당도 흰 눈을 들이댄다. 구체성이 없어 지역공약이 흐지부지될 우려 때문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걱정도 태산이다. 정부는 최근 지역공약 이행계획(106개 공약에 167개 사업)을 발표했다. 소요 재원은 124조 원에 이른다. 이중 71개 계속사업은 중단 없이 추진하지만 96개 신규 사업은 예비 타당성과 경제성 조사를 거쳐 걸러낸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전북이 치명적이다. 전북은 7개 공약에 9개 사업이 대선 공약이다. 이중 부창대교, 미생물융복합 과학기술단지, 지덕권 힐링 거점, 동부내륙권(새만금∼정읍∼남원) 국도 등 신규사업 4건은 경제성이 없거나 떨어진다. 경제성 잣대로는 기대난망이다. 또 재원 부족 때문에 사회간접자본(SOC)은 가급적 추진하지 않고, 필요할 경우 민간자본을 끌어들인다는 것인데 이 역시 전북은 설 자리가 없다. 민간부분은 수익성이 있어야 투자 가능한데 수익성 있는 사업이 거의 없다. 7개 공약 중 '새만금 지속적 추진'과 '익산국가식품클러스터' 두 사업을 빼고 나머지는 말짱 도루묵이 될 개연성이 크다. 경제성과 타당성이 부족한 탓이다. 문제는 대선 공약을 다루는 방식이다. 타당성 없는 공약을 과연 추진해야 옳은가 하는 문제제기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선거공약은 대 국민 약속이다. 선거라는 이벤트를 통해 지역의 현안이나 숙원 사업, 주민여론 등을 정책화시켜 반영해 나가는 것이 선거 공약이다. 이런 성격을 이해하지 않고 공약사업마다 경제성과 타당성 잣대로 재단한다면 일반 사업과 하등 다를 바가 없지 않겠는가. 거창하게 선거공약을 제시해 놓고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파기한다면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애당초 하지를 말아야 하고, 한번 내뱉은 약속은 지켜야 한다. '미생지신'의 고사가 던지는 교훈이기도 하다. 신뢰가 없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무신불립(無信不立)'도 같은 맥락이다. 신뢰와 약속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박근혜 대통령이라면 공약 이행에 최선을 다해야 옳다. 불가피하게 이행치 못할 상황이라면 정중히 사과하고 국민 이해를 구하는 것이 도리이다. 공약이행은 기술적이고 정치적인 것이다. 경제성과 타당성 조사도 결국엔 정치적인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다. 정치적이지 않은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여건이 험악한 만큼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협력하고 전북도가 지원하는 모양새를 갖춰 전북의 현안들이 차질 없이 굴러갈 수 있도록 역량을 발휘해야 할 때다.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3.07.1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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