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6-06-02 02:31 (화)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경제 chevron_right 경제일반
일반기사

[동진강] 하구


 

 

실뱀장어 노다지 꿈 이젠 옛말



 


노령산맥의 서사면 정읍 산외면에서 첫 물길을 시작한 동진강은 김제에서 부안으로 향하는 23번국도 동진강휴게소 인근에서부터 강과 바다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다.





 

어선들이 드나드는 이곳 하구에서 강물은 곡창지대의 토사를 옮겨다 풀어놓은 거대한 탁류(濁流)로 변하고 그 폭도 급격하게 넓어진다.





 

하구쪽에서 김제 죽산면과 부안 동진면의 경계선 역할을 하는 동진강은 고부천과 원평천·신평천을 차례로 받아들이면서 하천으로서의 생을 마감하게 된다.





 

정읍시 산외면 산간지역으로 빠져나온 옥정호의 맑은 물이 정읍 칠보와 태인·김제 부량면등을 거치면서 호남평야를 관개(灌漑), 한반도 최대의 곡창지대로 만들어내는 막중한 역할을 마치고 바닷물과 섞이고 있는 것.





 

동진강 하구는 고부천이 유입되는 부안 동진면과 백산면의 경계에서 갯벌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고 강폭이 넓어지기 시작, 서해를 향해 입을 벌리는 나팔모양을 하고 있다.





 

넓은 간석지가 분포된 이곳 하구는 정읍천이 합류되는 신태인 인근까지의 하상이 해발고도 4∼5m에 불과, 밀물때 바닷물이 유입되는 감조(感潮)구간이 된다.





 

조수(潮水)의 영향으로 하루에도 몇번씩 그 모습을 바꾸는 동진강의 어귀, 거센 바닷바람속에서 실뱀장어 잡이에 나선 어선들이 물때에 맞춰 진을 친다.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강 하구를 어장으로 하는 실뱀장어 채포(採捕)업은 2월말부터 5월초까지가 제철이다. 예전에는 1kg에 8백만원에서 1천만원까지 받을 정도로 고가에 거래, 어민들의 주요 소득원이었다. 장어의 새끼인 실뱀장어는 인공부화가 되지 않아 그 가치가 금에 비교될 정도.





 

그러나 최근에는 새만금방조제 축조로 봄철이면 강으로 거슬러 올라오던 실뱀장어수가 줄어들고 있다.


민물.바닷물 섞고 하천 일생 마쳐
새만금 방조제 영향 어장 황폐화


게다가 수입량마저 증가, 현재는 1kg에 1백10만원 수준으로 가격이 형편없이 떨어졌다는 게 김제 죽산면사무소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에따라 한때 노다지로 인식됐던 실뱀장어 잡이를 포기하는 어민들도 점차 늘고 있다고 한다.





 

김제 죽산면 대창어촌계장 이세준씨는“1∼3톤 정도의 소형어선 47척이 밀물때 강하구에서 실뱀장어잡이에 나서고 있다”면서“올해는 작년에 비해 좀 나아진 편이지만 새만금 방조제가 들어선 이후 갯벌이 높아져 예전의 어획량에 크게 못 미친다”고 말했다.





 

늦가을에서 초겨울까지는 망둥어낚시를 즐기는 강태공들이 대거 몰려 동진강휴게소 인근에서는 자리를 차지하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강하구에는 또 김제시에서 조성한 일반폐기물 매립시설과 분뇨처리장등 환경시설이 들어서 있으며 일제시대에 완공된 서포방조제와 동진방조제가 농경지와 갯벌을 경계짓고 있다.





 

새만금간척사업이 예정대로 진행돼 이곳 동진강 하구가 담수호로 바뀌게 되면 갯벌과 바다를 무대로 삶을 일궈온 주민들의 생활환경도 크게 변화될 전망이다.




 

한편 백제부흥전쟁을 원조하기 위해 왜(倭·일본)에서 온 지원군이 나당연합 함대에게 궤멸당한 백강구(白江口)전투현장이 동진강하구라는 주장이 제기돼 이 지역의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하고 있다.



 

부안 백산성(白山城)



 

- 동학혁명군 총집결지



 

29번국도와 30번국도의 분기점인 부안군 백산(白山)면 용계(龍溪)리 회포마을 중심부에 위치한 자그마한 야산 ‘백산(白山·47m)’은 근대 민족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역사적인 장소로 유명하다.




 

발아래로 바닷물의 유입을 막는 동진강제수문이 내려다 보이는 이 산의 정상부에는 지난 1989년 11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건립한 ‘동학혁명백산창의비(東學革命白山倡義碑)’가 서 있다.




 

강 하류 교통의 요충지에 자리잡은 백산은 1894년 3월 동학혁명군이 총집결,첫 지휘소가 설치된 곳으로 농민군은 이곳에서 전열을 재정비한 후 전주성을 점령하기에 이른다.





 

동학농민전쟁 1차봉기때 호남창의소가 설치됐던 백산은 사방이 들판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관군이 어느쪽에서 접근해오더라도 쉽게 알아챌 수 있는 유리한 지형이다.





 

당시 부패한 관료의 학정을 견디다 못한 농민들은 손에손에 죽창을 들고 백산에 모여들어 ‘앉으면 죽산이요 서면 백산(坐則竹山 立則白山)’이라는 말이 나오게 됐다.





 

백산에 모여든 농민군은 산 중턱을 둘러가며 토성을 쌓았는데 지금도 그 흔적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또 동진강 인근 전략적 요충지인 이 산의 정상부는 오래전 백산성이 위치했던 곳으로 사적 제4백9호로 지정돼 있다.





 

백산은 특히 백제부흥 항쟁의 중심지였던 주류성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종표 kimjp@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경제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