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의 <백화보서 百花譜序> 를 보면 꽃에 미친 김군(金君)의 이야기가 나온다. 백화보서>
"바야흐로 김군은 꽃발으로 서둘러 달려가서 눈은 꽃을 주목하며 하루종일 눈도 깜빡이지 않고, 오도카니 그 아래에 자리를 깔고 눕는다. 손님이 와도 한 마디 말도 나누지 않는다. 이를 보는 사람들은 반드시 미친 사람 아니면 멍청이라고 생각하여, 손가락질하며 비웃고 욕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저자인 정민 교수의 조사에 의하면 <백화보> 의 김군은 당시 규장각 서리였던 김덕형 이었다 한다. 백화보>
이 책에 등장하는 허균, 권필,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정약용, 김득신, 노긍, 김영 등의 인물은 18세기를 풍미하던 조선의 대표적인 "마이너”였다. 이른바 잘 나가는 메이저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비껴갔던 일종의 안티세력이었던 셈이다.
한 가지에 몰두하는 힘으로 우뚝한 보람을 남긴 이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들은 하나같이 고달프고 신산한 삶을 이어갔다. 천대와 멸시 속에,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데 대한 좌절과 분노 속에, 그렇게 잊혀져갔다. 굶어죽고 만 천재 천문학자 김영, 과거시험 대필업자라는 조롱 속에 세상을 냉소하였던 노긍, 불온한 문체를 쓴다는 이유로 견책을 입고 군역을 갔던 이옥, 저자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렇게 잊혀져 간 이들의 삶을 정성스레 복원해내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인 "不狂不及”. 즉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문장은 결국 학문도 예술도 사랑도 나를 온전히 잊는 몰두 속에서만 빛나는 성취를 이룰 수 있음을 깨달은 조선시대 마이너 지식인들의 슬픈 자화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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