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별천지다. '달궁'. 달의 궁전인가. 그렇다면 하늘이 내린 경치가 아닌가? 지리산 계곡 가운데서 피서객들의 발길이 가장 많은 곳이 바로 달궁이라 한다. 남원시가지를 지나 산내로 들어서 지리산 계곡으로 이어지는 길은 호젓했다. 지리산에서 뻗치는 그 천연의 고요함에 도시 생활의 소란스러운 삶이 유치하게 스쳐지는 순간 그야말로 온몸을 애무하듯 상쾌한 바람이 진하게 다가왔다. 인공이 아닌 자연의 유쾌한 시원함이 자릿자릿 가슴 속 깊은 곳까지 풍만하게 스며든다.
달궁은 2,000년 전의 궁성이었다. 삼한의 하나였던 마한이 달궁이란 이름을 붙였다. BC 1세기경, 마한은 현재의 전북 금마 지방을 중심으로 융성한 발전을 하였다. 그러다 AD 2세기경에 이르러 점차 그 세력이 약해지면서 마한의 백성들은 경상지방에 위치했던 진한의 침입에 시달렸고 안전한 보금자리를 찾아 남하하다가 지리산 안에서 새로운 요새지를 발견하고 궁성을 지었다. 달궁에서 마한은 71년간 선정을 베풀었다고 전해진다.
지리산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있으니 달궁은 적을 방어하기에 천혜의 요새일 수밖에 없다. '땅 끝 마을'이라는 팻말은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숲과 태고 적에 태어났을 듯한 계곡의 바위들을 한마디로 아우르고 있었다.
서정인은 울림소리가 좋아 '달궁'을 소설의 제목으로 삼았다고 했다. 그런데 지리산의 실제 달궁은 너무 깊어 그 울림이 처연하다. 달궁 계곡 굽이굽이마다 소설 '달궁'의 주인공인 인실이가 내뿜는 고단한 삶도 함께 서럽게 울리는 것만 같다. 달궁달궁달궁달궁...... '달궁'이라고 한 번 읋조릴 때와 '달궁'을 겹겹이 여러 번 반복하면 그 울림이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마한의 궁녀는 달궁에서 유유히 거닐며 여유롭고 한가로운 삶을 살고 싶었을 테지만 국운이 기울면서부터는 '달궁달궁달궁달궁'하면서 조급하고 여유 없는 불안한 생활을 했을 것 같다.
소설 '달궁'의 주인공인 인실이는 일기장 하나만 덜렁 남겨놓고 뺑소니차에 치어 죽었다. 그 여인은 횟집 여자였다. 작중화자인 '나'는 안면도와 태안 근처를 여행하던 중에 한 횟집 주인을 알게 되고 서울로 돌아 온 며칠 후, 죽은 여인의 일기장을 소포로 받게 된다. 그 여인의 남편은 작중화자인 '나'의 삶이 자신들의 삶과는 거리가 멀어 수치를 느끼지 않고 치부를 털어놓을 수 있다는 생각에 죽은 아내의 일기를 보낸다고 했다. 그렇지. 우리들은 대개 삶의 모습이 서로 다르면 상대방에 대해서 너무나도 무관심하거나 전혀 이해하려 들지 않지.
배가 고파오자 달궁 마을의 즐비한 음식점들이 눈에 잡힌다. 음식점들은 대개 회와 매운탕, 토종산닭백숙, 멧돼지 구이, 산채비빔밥 정도를 메뉴로 내놓고 호객을 하고 있다. 어느 식당으로 갈까?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각 음식점마다 별미음식이라고 특별히 따로 자랑스럽게 선전하고 있는 문구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그 별미음식이란 한결같이 '3년 묵은 김장김치'이다. '3년 묵은(?)' '김치', '김치', '김치'. 달궁의 음식점에서 '3년'과 '김치'는 돈으로 환산되고 있었다. 갑자기 그것은 땅 끝 산골마을의 단조로운 삶이 마음에 아리도록 진하게 묻어나는 깊은 울림을 만들어내는 듯 했다.
소설의 주인공 인실이는 6?25 전쟁 때 미아가 되었다. 다행히 어느 싸전집 주인이 인실이를 거두어 주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인실이의 운명은 달라졌다. 인실이는 주인집 삼촌에게 강간을 당했고 주인집 아들과 동거에 들어갔다가 기도원에 강제 수용되는 일도 겪었다. 기도원을 탈출한 인실이는 기도원 이사장 집에서 집안 일을 돌보다가 윤 선생을 만나 함께 살면서 공장에 취직도 했다. 취직한 공장에서 인실이는 공장 전무에게 추행을 당했고 이를 계기로 공장에서 쫓겨났다. 그러다 미군 부대 주변의 술집에서 일을 하던 중 인실이는 또 새로운 남자 홍형태를 만나 결혼을 했다. 그러나 그 새 남편은 간첩 교육을 받았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떠나고 인실이는 남편의 친구 우종류와 새로운 관계를 갖기에 이른다. 남편이 출옥하자 인실이는 괴로웠다.
이 땅에는 작중인물 인실이와 같은 또다른 많은 인실이들이 있었고 인실이처럼 그렇게 '달궁달궁' 살아 왔다. 왜? 왜 인실이는 그렇게도 척박한 삶을 견뎌낼 수밖에 없었을까. 돈 때문에? 그것은 '분명히 돈 때문이었다. 모두들 돈을 과신했다. 없는 사람들은 없는 대로, 있는 사람들은 있는 대로, 특히 있는 사람들이 더 그랬다. 그래서 돈은 많을수록 부족했다.'
작가 서정인은 6·25 전쟁 이후 '돈'이 우리의 삶을 지휘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돈'은 의리도 윤리도 정의도 진리도 삼켜버렸고 우리들은 어느새 서로서로 다른 사람들의 구정물까지 빼앗아 자기의 배를 채우는 돼지보다 못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고 말이다. 여기에 더해서 대한민국은 광기 어린 반공 이데올로기까지 얹어 진실과 자유와 정의를 무참히 치고 나서 뺑소니차처럼 슬그머니 내빼버렸음을 작가는 신랄하게 지적한다.
달궁 계곡의 나무들은 고만고만하게 키가 작다. 태고적 원시림이 쭉쭉 뻗어있을 법한데 말이다. 하늘을 뒤덮을 정도의 아름드리 나무들은 기대한 만큼 보이지 않는다. 그 원인 중에는 일제에 의한 치욕스런 식민 시대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의 나무들도 일제에 의해 수탈당했으니까. 그런데 20세기 후반 반공 자본주의의 습격은 소설의 주인공 인실을 통해 우리의 속 아픈 전쟁과 한국인의 피폐했던 삶을 더욱 깊이 다시 한번 되짚어보게 한다. 인실이의 추억 속에 아득히 남아 있을 태고적의 천혜의 달궁은 마음의 고향일 뿐인가.
달궁 계곡을 내려오는 길에 실상사에 들렀다. 국보와 보물들이 늠름하게 보전되어 있었다. 우리의 윤리와 정의와 진리도 한 켠에서 그렇게 꿋꿋하게 보전되었겠지. 집으로 향할 때는 우리의 앞에 이미 희망의 길이 나 있었다.
/장미영(전북대 전라문화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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