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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명창과 청량음료

방송 프로그램에서 꼭지 타이틀을 정할 때 자주 사용하는 몇 가지 관용구가 있다. 대개 광고카피를 패러디한 것들인데 그만큼 전달력이 빠르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라는 타이틀은 전통문화 관련 꼭지에서 단골로 쓰는 것인데, 거기에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이 고 박동진 명창이다.

 

당시 한 제약회사의 청심환 광고에 출연한 박명창은 “제비 몰러 나간다~제비 후리러 나간다~”는 한 대목으로 전 국민을 ‘제비잡이꾼’으로 만들어버렸다. 가히 임방울이 쑥대머리를 유행시킨 것에 비견할 정도의 대단한 파급력이었다.

 

그런데 최근 방송 광고에서 다시 판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애원성에 가까운 소리로 “아이고 아버지이~”를 내지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안숙선 명창. 그 모습을 가슴 졸이며 지켜보던 한 꼬마가 무대 앞으로 다가가서 뭔가를 올려놓자 안명창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진다. 소년이 올려놓은 것은 ‘C'자로 시작하는 청량음료.

 

나는 이 광고를 보면서 몇 가지 의문점을 떨칠 수 없었다. 왜 안숙선 명창을 내세웠을까? 문화 제국주의의 상징물인 C음료와, 전통문화유산인 판소리의 극적인 결합을 통해 색다른 ‘이미지 업’을 노렸을까? 그럴 수 있겠다. 그렇다면 박동진 명창이 C음료를 광고했었어도 그렇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그 광고의 백미는 마지막 멘트,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 아니었던들, 박명창이 청심환 광고에 나올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안명창은 왜 이 음료 광고에 나온 것일까? 안명창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명창이고, 국립창극단 단장이자 예술감독이며, 가까이는 전주세계소리축제 위원장을 맡고 있는 사람이다. 새삼스럽게 나는 C음료가 문화제국주의의 상징이니, 반미의 관점에서 C음료를 마시지 말자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몇 가지 사실은 짚고 넘어갔으면 한다.

 

지난 1월 31일 세계사회포럼에 모인 좌파 활동가들은 미제국주의의 전쟁비용을 막기 위해 대표적인 미국기업인 ‘C음료 사먹지 말기’를 6대 행동강령에 포함시킨 바 있다. 좌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C음료회사와 물전쟁을 벌이고 있는 인도의 예는 어떨까? 인도에 진출한 C음료회사의 음료수에서는 살충제와 발암물질이 발견됐으며, 인도의 지하수를 1센트도 안 되는 싼값에 사들여 몇 배의 폭리를 취하고 있어서 지금까지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다.

 

물론 다 남의 나라 이야기다. 갈수록 정교해지는 다국적기업은 음료의 원액만 공급할 뿐 나라마다 독립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하루에 10억 잔이 팔린다는 C음료, 10초마다 세계 각지에서 12만 6천명이 마신다는 C음료, 20세기 미국문화의 상징인 C음료 광고에 굳이 우리 전통판소리가 동원되어야 할까? 그 광고를 보고자란 아이들이 혹여 C음료를 우리 전통음료로 착각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김선경(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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