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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아! 지방대교수

구한말 우리나라에 서양식 학교(훗날 대부분 대학으로 발전)가 처음 들어섰을 때는 가르칠래야 배울 학생이 없어 애를 태웠다. 1885년 설립된 배재학당은 지원자가 없어 공책과 연필은 물론 점심값까지 주면서 학생들을 모았고, 이듬해 스크랜턴 부인이 설립한 이화학당은 천연두에 걸려 광화문 밖에 내버려진 아이들을 치료한 뒤 학교에 입학시키는 일도 있었다. 실용적인 학문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무지한 시대의 웃지못할 학교풍경이었다.

 

그러나 1백2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의 교육환경은 천지개벽이 됐다. 남에게 지고는 못사는 특유의 국민성과 배워야 앞서갈 수 있다는 깨달음이 세계 최고의 향학열로 이어지면서 너도나도 대학으로 몰려들게 된 것이다.

 

당연히 대학문은 좁아지게 됐고 그 결과 입시지옥에 망국적인 과외열풍까지 온갖 부작용이 속출했다. 다급해진 교육당국은 앞뒤 잴 겨를도 없이 1995년 ‘대학 설립 요건 완화’라는 언 발에 오줌누기식 처방을 내리고 말았다. 2002년 현재 전문대와 대학원을 포함한 대학교육기관이 1천2백81개교나 된다니 대한민국을 ‘대학공화국’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한치앞도 내다보지 못한 대학정책 때문에 지방대학들이 열병을 앓으며 생사의 기로에 서있다. 서열이 높은 대학이나 서울 소재 대학들은 뒷짐지고 헛기침 할지 모르지만 지방대학들은 정말 장난이 아니다. 지방을 살려야 한다고 목이 쉬도록 외쳐대던 지역 지도층인사들까지도 제 자식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서울 소재 대학으로 보내는 실정인데 서설을 더 늘어 놓아 무엇하겠는가.

 

수시 2학기 신입생 모집이 한창인 요즘 지방대 교수들이 된통 몸살을 앓고 있다. 일선 고교 방문은 기본이고 혈연 지연 학연 할 것 없이 연고라는 연고는 다 동원해도 학생하나 모셔오기가 여의치 않으니 몸살이 날만도 하다. 하지만 몸고생보다 더 괴로운 것이 마음고생이다. 학생구걸을 하러 다니는 자신의 처지가 서럽고 주위의 시선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자신의 학과를 폐과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고, 신입생 확보 능력이 교수 능력으로 평가받는 마당에 어찌할 도리가 있겠는가. 구한말 교육환경이 다시 찾아온 셈 치고 가르칠 학생 열심히 불러모을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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