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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후백제 왕궁

견훤은 900년 도읍지를 전주로 옮겼다. 그 당시 견훤이 세운 왕궁이 중바위에서 전고 동편의 물왕물에 이른다고 전해지고 있다. 조선시대 지도에 견훤고성이라고 쓰여져 있고 <동국여지승람> 이나 <신증동국여지승람> 에 견훤의 고토성이 언급되어 있는 점을 보면 견훤의 왕궁이 중바위에서 물왕물에 이르는 어디엔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익산 왕궁평이 견훤의 왕궁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어디에 견훤 왕궁이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일부 학자들은 전주 국군묘지 위에서 중바위 사이에 있는 동고산성 자리가 후백제의 왕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로 전주성(全州城)이라는 글자와 연꽃무늬가 새겨진 기와조각, 봉황처럼 생긴 새가 새겨진 기와조각, 그리고 무사가 좌우대칭으로 창을 들고 서 있는 모습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왕궁의 증거가 아니다. 통일신라에 있던 것들이기에 통일신라시대 것일 수도 있다.

 

또 지난 1992년 동고산성에서 발굴된 대규모 유적지를 왕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일정한 간격에 따라 230여 개의 초석이 놓여있는 건물지를 거대한 2층 건물로 해석해 왕궁건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산 능선을 따라 10여개의 건물지가 더 발굴됐으며 이들도 왕궁건물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왕궁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아직 하나도 없다. 왕궁일 수도 있지만 통일신라시대 마구간 건물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왕궁으로 보기에는 아직 확실한 유물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서 전주시는 후백제 왕궁이 확실한 것으로 간주하고 이곳을 발굴하고, 복원을 하여, 역사공원을 만들겠다며 사업에 나서고 있다. 전통문화중심도시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오는 2014년까지 총 110억원을 투입하여 사업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확실한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이곳을 중심으로 후백제와 관련된 건물복원, 문화상품 개발, 복원지역 관광자원화까지 하려는 생각은 성급하다. 먼저 발굴을 통해 후백제와 관련된 확실한 유물을 찾는 것이 급선무다. 확실한 유물이 없으면 학계의 공인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확실한 유물을 찾아낸 다음 학계의 공인을 받아 사업을 해도 늦지 않다. 사업을 잘못 서두르다 미륵사지 동탑처럼 건물을 날조할 수도 있다는 점을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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