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간 일본 새 문물 시찰
1881년 우리 정부는 서양의 근대적인 기술과 문화를 받아들인 일본의 새 문물제도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눈을 뜨기 시작하고 일본에 신사유람단, 청국에는 영선사(領選使)를 파견했다.
날로 발전하는 세계의 시운에 따르려는 고종의 의욕적인 노력에 따라, 파견되는 신사유람단의 인선은 2월 9일에 끝냈으며, 부산을 떠난 것은 4월 10일이었고, 일본 동경에는 4월 28일에 도착했다. 4개월간에 걸친 시찰을 마치고 10월 22일 귀국한 일행은 12개 반에 수행원까지 36명이었다. 그 명단을 보면(괄호 안은 수행원)
▲박정양(왕제웅 이상재) ▲조준영(이봉식 서상직) ▲엄세영(엄석주 최성대) ▲조병직(안종수 유기환) ▲강문형(강진형 변택호) ▲홍영식(고영회 함낙기 김낙운) ▲민종묵(민재후 박효식) ▲어윤중(유길준 윤치호 유정수 김양한) ▲심상학(유진태 이종빈) ▲이헌영(이필영 민건호) ▲이원희(송현빈 심의영) ▲김종원(손붕구) 등이었다.
연령별로 보면, 최고령은 55세의 이원희였으며, 홍영식은 27세로 가장 젊었다. 그러나 수행으로서는 이상재 31세, 유길준이 26세였지만 윤치호는 18세 소년이었다. 이들은 동경과 대판을 중심으로 정부의 6개성(省)과 세관 조폐창을 시찰하는 한편 잠업 제사(製絲)에 이르기까지 살피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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