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학(원불교전주교구 사무국장)
옛날에 어떤 나그네가 봄을 찾아 나섰습니다. 이 나그네는 봄을 찾기위하여 추위와 굶주림과 싸우며 온 산천을 이 잡듯이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기진 맥진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때 기진 맥진한 나그네의 눈에 꽁꽁언 대지를 뚫고 돋아나는 새싹이 발견되었습니다. 나그네는 그 새싹에서 봄을 찾았습니다.
인류 공동의 원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행복일 것입니다. 행복은 인류 공동의 화두(話頭)이기도 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복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행복한 사람은 적고 행복을 찾는 사람은 많습니다. 종교인구도 늘어가지만 행복한 사람은 그에 비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진지하게 살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三世)의 시간 속에서 살아 가고 있습니다. 과거는 지나간 추억이며 미래는 오지 않은 꿈을 말하며 현재는 생생약동하는 찰나의 순간을 말합니다. 우리의 행복 은 이 시간 개념과 밀접한 관계를 맺습니다. 즉 나의 삶의 관점이 과거에 있느냐 미래에 있느냐 현재에 있느냐에 따라 행복의 강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의 두 가지 유형의 삶이 있습니다. 하나는 과거의 추억을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대화의 주제가 항상 과거에 있고 지난 추억을 이야기 할 때 신이나는 사람입니다. 다른 하나는 미래의 꿈만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즉 행복은 항상 내일 올 거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현재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그네의 이야기에서 보았듯이 봄은 찾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봄은 노란 새싹이 고개 내미는 곳에서 볼 수 있고 개울물 흐르는 시냇가에서 들을 수 있으며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호숫가에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행복도 과거의 추억이나 미래의 꿈 속에 존재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텅빈 마음을 열고 지금 여기에 초롱 초롱히 깨어 있을 때 일상의 모든 일이 행복이란 이름으로 다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의식이 행복의 조건을 찾는 여행(방황)을 멈추게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밖으로 향했던 관심을 돌려세워 삶의 보금자리로 돌아오게 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나와 가족과 처해진 상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 볼 수 있을 때 지금 여기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꽃 피게 됩니다.
우리의 의식을 지금 여기에 충실하게 되면 한가함 여유로움 마음의 여백과 만나게 됩니다. 선(禪)과 기도와 명상도 지금 여기로 인도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호흡하는 이 순간 숨을 들이 마시며 시원함을 느끼고 숨을 내쉬면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행복한 사람입니다.
△황성학 교무는
원광 대학교 원불교학과를 졸업하고 카톨릭 대학교 심리상담 대학원에서 상담 석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원불교 삼동 훈련원에서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한 리드쉽 교육을 하였으며 2002년부터 원불교 전북교구 사무국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현재 학교법인 원진학원과 사회복지법인 한울안 이사이며 전북 6.15공동대표, 전북통일 연대 공동대표, 전주 교도소 교정위원, 전주지방 환경청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황성학(원불교전주교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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