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7 01:32 (Fri)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문화마주보기
일반기사

[문화마주보기] 프랑스 한 시골의 책 마을 - 장성수

장성수(최명희문학관 관장)

지난 12일부터 열흘 남짓한 일정으로 프랑스를 다녀왔다. 프랑스의 여러 박물관과 각 지방의 자료집성 센터를 방문하여 그들의 자료 집성에 대한 기술 동향을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초가을의 날씨였지만 그곳의 풍광은 사뭇 달랐다. 처음 우리가 머물렀던 수도 파리는 듣던 대로였다. 유명한 르부르 박물관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기차역을 개조해 만든 ‘오르새 미술관’이나 대통령 친구의 도움으로 세워졌다는 ‘께 브랑리 아시아 및 아프리카 인류학 박물관’은 우리들의 부러움을 살만 했다. 프랑스인들에게 ‘옛날’과 ‘오늘’은 서로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었다.

 

바쁜 일정으로 자세한 속내를 드려다 볼 수는 없었지만, 단순한 관광여행에서는 보지 못할 몇 가지를 볼 수 있었다. 그 중 스위스와 독일의 접경에 위치한 로렌 지방의 퐁트누와 라 주트라는 조그만 시골 마을은 특이한 곳이었다. 세계적인 크리스탈 생산지로 유명한 바카라에서 약 7Km 떨어져 있는 이 마을은 인구가 겨우 280여명밖에 안되는 곳으로 우리 일행을 안내해준 프랑스인조차 잘 모를 정도로 한적했다. 검은 구레나룻이 멋진 촌장이 이곳의 역사를 들려주었다.

 

이곳에 지역구를 둔 프랑스와 기욤이라는 프랑스 정부의 농림부 장관이 자신의 고향이 점점 쇠락해 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책 마을 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이곳이 적격지로 선정되었고, 마침내 96년에 책 마을을 열게 되었다. 프랑스 전체에서 세 번 째로 조성된 책 마을이다. 당시 이곳은 지속적으로 농민인구가 감소했고, 따라서 빈집이 늘어났기 때문에 서점을 유치하는 일이 상대적으로 용이했다.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만이 이 마을로 들어올 수 있는데 18개의 책방 외에 출판, 책 수선, 서예(서양식) 등 책과 관련된 가게가 8곳이 있다. 총 26개의 가게가 행정관청 주위의 마을 중앙에 몰려있다. 문을 연 당시부터 10년 동안 방문객의 수는 80만 명으로 일년에 평균 7만 명 이상이 다녀갔다. 이 마을로 책을 사러오는 사람들은 프랑스인뿐만 아니라 벨기에, 독일, 멀리는 북유럽 사람들까지 있다.

 

프랑스 정부는 국가예산을 책정해서 책 마을 조성사업을 지원하였다. 마을로 들어와서 책방을 운영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정부로부터 이주에 관련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집 구입, 수리 및 개조 등을 할 수 있는 자금이 정부로부터 지원되었다. 초기에는 빈집이 많아서 이주가 비교적 수월했던 반면, 현재는 상황이 달라졌다. 책 마을에 대한 소문이 나면서 이주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집의 수는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이상 이 마을에서 빈집을 찾을 수 없다. 이 점만 보아도 농촌회생운동은 성공한 것이다.

 

대도시에서 책방을 경영하다 초기 이 마을로 이주했다는 최고참 서점 주인은 이전보다 훨씬 수입이 좋다면서 한국 사람들의 방문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지역 농민, 상인 간의 대타협과 화합이 이런 명소를 만들었다며 여유 있는 웃음을 지었다. 내 머리 속에는 날로 피폐해져 가는 우리의 농촌이 떠올랐다.

 

/장성수(최명희문학관 관장)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