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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그들만의 리그 - 황석규

황석규(전북지방자치학회부회장)

해묵은 논쟁이 옷을 바꿔 입고 있다. 보수와 개혁이란 구시대적 이분법적 논쟁이 개혁세력의 실패책임이라는 명목으로 외피를 바꾸어 갑론을박을 거듭하고 있다. 제도권과 비제도권의 모호한 경계에서 ‘유연한 진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개혁 실패를 합리화 하려는 세력도 있고, 무능력 혹은 진보적 민중주의 약화가 개혁실패의 원인 이라며 ‘유연한 진보’를 비판 하는 이도 있다. 이 모든 논쟁의 본질은 뉴라이트로 대변되는 보수세력의 압도적 우세 속에서 극단적 위기의식을 절감하는 개혁과 진보를 칭하는 세력의 생존을 위한 모색과정이다.

 

현대는 가치상실의 시대요. 철학부재의 시대이다. 고도로 집적화한 기술과 자본이 정보대중화와 중산층 확산과 결합하면서 인간존재에 대한 가치지향점을 상실해 버린 정신적 공황 시대가 된 것이다. 7080세대를 격동으로 몰아 넣었던 정치적 사회적 모순은 시대적 역할을 다하고 사그라 들어 버렸고 그 주역들은 제도권으로 무대를 옮겼다. 현실정치의 벽을 글자 그대로 ‘유연하게’ 뛰어 넘는데 실패한 개혁세력들은 이제 생존을 위하여 제도권내의 세력분열을 시작으로 비제도권내 에서도, 이념분열을 시작한 것이다.

 

현실참여도가 높아 대중에 대한 탁월한 이해력을 기반으로 제도권속에 성공적으로 입성했던 진보주의자는 현실의 벽에 부딪쳐 신음하는 작금의 자신들을 유연한 진보라고 합리화하고 있고, 아직도 비 제도권이라는 소외감에 이를 비판하는 이들은 ‘두려움의 동원정치’ ‘헤게모니 장악 실패’ ‘진보적 민중주의의 실패’를 들어 유연한 진보세력의 실패를 비판 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유연했던 진보’가 그 세력확장의 기반이 되어야 할 복지는 햇볕도 들지 않는 골방에 팽개쳐진 지 오래 이고, ‘유연하지 못했던 진보’의 이념적 기반인 정의의 기사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현실정치의 승리자 들은 항상 배 고픈 것을 염려 하는 척 하지만, 포퓰리즘에 야합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권력의 속성상 일반 대중의 배 아픈 것을 자극해야 만 한다. 배고픔을 해결 하는 것이 복지의 문제라면 배아픔을 해결 하는 것은 정의의 문제 일 것이다. 배아픔의 유용함을 잘 이해하고 있던 ‘유연했던 진보’세력들은 배아픔 해결에 올인 하다가 스스로 파논 함정에 빠져 추진력을 상실하여 버렸고, 배고픔의 정당성을 강조하던 ‘유연하지 못했던 진보세력’들도 이미 더 이상 배고픔을 이해 할 수 없을 정도로 비대해져 버린 것은 아닐런지?

 

이들의 논쟁 속 그 어디에도 제도권적인 권력과 과 비제도권적인 정당성을 안겨준 서민의 존재는 찾을 수 없다. 예나 지금이나 그들에게 있어서 서민은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거나, 두려움을 야기해서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가야 하는 수단이자 대상 일 뿐이다.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현실 인식에 기반하여 반복적인 정책실수를 거듭하던 참여정부 5년동안 한국사회의 보수세력은 새로운 생명력을 회복하였다. 과거 스스로 보수를 부인 하며 부끄러워 하던 자들이 이제는 신자유주의, 뉴라이트라는 미명하에 스스로 보수임을 강조하고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유연했던 진보세력’의 정책 실패가 흡사 보수세력이 전문성과 인맥을 갖춘 한국사회의 유일한 능력집단으로 오인하게 만들었으며 ‘유연하지 못 했던 진보세력’의 경직성이 보수세력 내에 다양성이라는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계기가 되어 준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가치상실의 시대에 과연 누가 보수세력이고 누가 개혁세력인가? 누가 유연했고 누가 유연하지 못했는가? 역사는 스스로 필요한 세력을 선택한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 보수세력 이라고 자기자리를 무한정 지키고 않아 있을 수는 없고, 개혁세력이라 하여 현실적 한계를 건너 뛰어서 앞서 갈 수도 없다. 서민은 배가 고프다. 너무 배가 고파서 아픈 것이다. 배 고픈 사람은 정의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다. 그래서 보수가 득세하는 세상이다. 이제야 배고픈 사람에게 소화제를 처방한 것이 잘못 되었음을, 배가 아픈 게 아니고 고프다는 것을 깨 달았지만 너무 늦었다. 배고픔의 해결이 과거의 선택이고 배아픔의 해결이 현재의 선택이었다면, 미래의 선택은 양자를 함께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조화로운 리더쉽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황석규(전북지방자치학회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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