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8 00:26 (Sat)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타향에서
일반기사

[타향에서] 고향의 미학 - 김근식

김근식(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번 설에도 어김없이 귀성길과 귀경길은 북새통이었다. 다소 긴 연휴라 차량이 분산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오고 가는 길이 힘겨운 것은 여전하다. 대학 때 서울로 올라와 이제는 고향에 산 날보다 타향에 산 날이 훨씬 많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고향은 언제나 편안하고 다정하다. 필자 뿐 아니라 고향을 가진 모든 이들이 힘들고 고단하지만 마다 않고 고향을 찾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에게 고향은 부모님이 계시고 친지가 있고 추억이 있는 과거의 집합체다. 고향이 우리에게 다정한 것은 태어난 곳, 자란 곳이라는 고정된 공간적 장소가 아니라 항상 살아 움직이는 아름다운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추억은 좋은 기억만을 떠올리게 한다. 오래될수록 즐거운 기억이 남게 되고 어려웠던 기억도 점점 좋은 추억으로 되살려지는 게 법칙이다. 부모님께 사랑받고 친구들과 재밌게 어울리고 선생님께 소중한 배움을 사사받던 과거의 좋은 추억들만 고향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태어나고 자라고 놀고 배우던 그리고 사랑받던 기억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삶의 활력소가 되고 충전소가 된다. 고향을 그리는 우리네 마음엔 항상 좋은 추억으로 꽉 찬 과거가 있다. 고향은 바로 ‘과거’이기 때문에 즐겁고 편안한 것이다.

 

현대인에게 ‘지금’은 항상 답답하다. 숨막히는 경쟁사회에서 정신없이 돌아가는 초고속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우리들에게 ‘현재’는 늘 힘들고 버겁다.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이겨내야 하는 우리에게 ‘현재’는 항상 피곤하고 고달프다. 또 우리에게 ‘미래’는 더욱 불안하기만 하다. 21세기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지구화의 파도와 함께 몰아치는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언제부터인지 우리에게 미래는 희망의 푯대가 아니라 불안의 연장선으로 여겨지고 있다.

 

항상 답답한 현재를 살며 항상 불안하기만 한 미래를 앞에 두고 있는 우리에게 고향은 즐겁고 행복한 과거인 셈이다. 그땐 힘들고 어렵더라도 그것이 과거가 되면 달콤한 추억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고향은 현재의 고단함과 미래의 불안감에도 우리의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과거’만의 독특한 힘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고향은 좋은 사람들과 맺은 관계가 살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추억은 곧 사람들과의 기억이고 고향엔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만 남아 있다. 하염없이 우리에게 베풀기만 하는 부모님이 계신 곳, 그래서 고향은 내게 사랑의 관계를 알게 해준 최초의 곳이다. 어릴 때 해맑게 뛰어 놀던 친구들이 지금도 있는 곳, 그래서 고향은 내게 즐거움의 관계를 알게 해준 곳이기도 하다.

 

멀리 타향에서, 그것도 다 커서 어른이 되어 맺는 사람들의 관계는 고향의 그것과 질적으로 다르다. 일로 만나고 사업으로 엮이고 이해관계로 맺어지는 타향에서의 사람 관계는 고단하고 복잡할 뿐이다. 고향에 남아있는 사랑과 즐거움의 편안한 관계는 이제 타향에서 찾을 수 없다. 아름다운 과거와 좋은 사람들의 관계가 남아 있는 곳이기에 아직도 우리는 고향을 찾는다.

 

/김근식(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