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표(서부지방산림청장)
지난 4월6일 오후 2시경, 전남 화순군 도암면에 산불이 발생해 약 20ha를 태운 뒤 4시간 30분 만에 진화됐다. 이 날 전국적으로 11건의 크고 작은 산불이 발생하였지만 언론과 국민들이 특히 이 곳을 주목한 것은 인근에 천년고찰 운주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2005년 강원도 양양 대형 산불로 인한 낙산사 사찰이 소실되고, 지난 2월 숭례문 화재 등으로 문화재가 잿더미로 변해버린 현실이 또 다시 재현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조바심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천불천탑(千佛千塔)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는 운주사는 불길 한 가운데에서도 2006년부터 추진한 숲가꾸기 사업의 덕분으로 대웅전 등 중요 건물과 문화재가 모두 온전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 산과 연접되어져 있는 우리의 사찰들에게 숙제를 남겼다.
우리나라의 사찰은 불교가 전래된 초기 삼국시대에는 호국 불교적 성격이 강하여 왕실과 결탁하면서 성(城) 내 평지에 위치하였으나, 통일신라시대 말기에 이르러 선종과 풍수지리설의 영향으로 산지가람이 유행하게 되었고, 조선시대의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 사찰은 심산유곡에 위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일찍부터 불교적 세계관의 영향을 받아 의생활, 식생활, 주생활 등 문화 전반에 걸쳐 불교문화를 꽃피우면서 우리나라 대부분의 중요 문화재가 사찰과 함께 보전되고 있다.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만들었던 우리 민족 신앙의 총화인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해인사가 조선 8경의 하나인 가야산(1,430m) 자락에 위치하면서 국보와 보물 등 70여 점의 문화재를 보존하고 있는 것은 이를 잘 보여주는 한 예라 할 것이다.
특히, 해인사 장경판전은 13세기에 만들어진 해인사의 현존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고려 대장경판을 보존하는 보고로서 1995년 12월 대장경판 81,258판(국보 제32호), 고려각판 2,725판(국보 제206호)을 포함하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 곳은 해인사 경내의 맨 뒤쪽,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 산림과 바로 연접되어 있어 우리가 반드시 지켜내야 할 소중한 문화재가 대형 산불로부터 안전하지 못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물론 해인사가 임진왜란 때 전화(戰禍)를 면하고, 그 후 일곱 번의 화재가 발생했을 때도 장경판전 건물만은 피해가 없었다고는 하지만 요즘 지구온난화로 인한 대형 산불의 위험성 앞에서 더 이상 요행을 바랄 수만은 없다.
지난 5일, 산림청장이 해인사를 찾았다.
이날 산림청장은 해인사 장경판전은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유사시 산불발생에 대한 대비가 꼭 필요하며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곳임을 강조하였다. 또한, 해인사 주변 숲으로부터 일정간격의 내화수림대 조성과 숲가꾸기 사업을 당부하였다.
매년 산불은 계속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산불이 발생하더라도 피해 예방을 위해 미리 대비하고 준비한다면 산불로부터 소중한 인명과 재산의 피해는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사찰과 산림과의 이격거리(20~25m)를 확보하여 차나무, 동백나무 등 산불에 강한 관목류를 식재하고, 그 주변에 대한 숲가꾸기 사업을 실시하여 산불 완충지대를 조성한다면 대형 산불로부터의 피해는 막을 수 있다.
이제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한 모든 책임을 사찰에게만 지울 수는 없다. 산림청, 문화재청, 국립공원, 시·군 지자체 등 행정기관의 협조가 무엇보다도 절실히 필요하다 할 것이다.
화순군은 관내 명산과 문화재 주변 숲을 대상으로 수목 밀도조절, 잡목제거, 가지치기, 낙엽 솔방울 등 산림부산물 제거 등 '문화재 숲가꾸기'사업을 추진하여 소중한 문화재를 지켜냈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지키기 위한 화순군의 '유비무환(有備無患)'을 교훈삼아 바로 실천에 옮겨야 할 때이다.
/오기표(서부지방산림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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