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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장시(場市)

장세균(논설위원)

남원시가 남원시 인월면의 5일장을 지리산과 연계하여 관광 상품화 하겠다고 한다. 이젠 거의 사라버린 우리 토속문화의 하나가 장시(場市), 즉 재래 시장이다. 장날이 되면 시장에 사람들이 북적대던 광경은 아련한 추억속의 광경일 뿐 자라나는 십대들에게는 먼 옛날 동화속의 일들이다.

 

우리나라에 재래시장이라 부르는 시골장이 처음 개설된 때는 15세기 후반으로 보고 있다. 그것도 다른 지역이 아닌 우리 전라도에서 처음 개설되었던 것이며 전라도에서도 무안 ,나주에 제일 먼저 재래시장이 형성 되었다고 한다.

 

이들 지역은 서남해안 지대로써 영산강을 가운데 끼고 평야지대가 넓게 펼쳐져서 쌀과 목화 등 농산물이 풍부했었다. 여기에다 서해 바다와 연결되어 해산물 또한 많아 시장의 조건 등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농사기법의 발달로 농업 확량의 증가가 뒤따라 시장형성을 더욱 부추겼다고 볼 수 있다.

 

서울에서 열리는 시장을 경시(京市)라 한다면 시골의 시장을 향시(鄕市)라고 했다. 시장이 개설되었으나 여기에 반대하는 측도 있었는데 이는 주로 조정과 양반들이었다. 반대 이유는 농민들이 농사보다도 상업에 치중하여 이익만을 추구하다가 논밭을 황폐화 시킨다는 것이며 또 물가를 올린다는 것이다.

 

중종대 지사 장순손(張順孫)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지금 외방(外房)에는 또 시장의 폐단이 많습니다. 백성이 다들 이것을 의지하여 매매하는데 도둑의 물건도 많이 팝니다. 백성이 다들 이렇게 놀고먹으므로 전야(田野)가 묵어 황폐합니다"또 시장 개설을 반대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농촌에서 이탈한 농민이 시장을 배경으로 도적의 무리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상황은 어쩔 수 없이 시장의 발달을 가져올 수밖에는 없었다.

 

시장의 발달은"동국문헌비고"에 의해서도 조선후기에 각 지역에 생긴 시장수를 보면 알 수 있다. 경기도에, 101개 충청도에 157개 , 경상도에 276개 ,전라도에 216개, 황해도에 82개, 강원도에 68개, 평안도에 134개, 함경도에 28개이다. 조상들의 생활문화가 관광 상품이 된지도 오래다. 아마도 남원시 인월장도 전라도 216개 시장중의 하나였으리라.

 

장세균(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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