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말, 가족과 함께 베트남에 살던 홍콩 소년은 친구들과 함께 동네 영화관에 몰래 숨어들어가 춤과 노래로 가득한 인도 영화 보는 것을 좋아했다.
영화를 보고 나온 뒤에는 들어가지 못한 친구들을 위해 영화 이야기를 들려줬고 직접 배우들의 연기를 따라해 보이기도 했다.
집 근처에는 촬영 기자재 상점이 있었고 영화 놀이를 하던 어린이들을 귀여워한 주인은 장비를 빌려줬다. 소년과 친구들은 즐겁게 놀며 영화를 찍었다.
이 소년이 바로 '황비홍', '칠검'을 연출하고 '영웅본색', '천녀유혼' 등을 제작한 홍콩의 쉬커(徐克ㆍ58) 감독이다.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쉬커 감독은 5일 오후 부산 해운대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마스터클래스'에서 바로 이 어린시절 영화 놀이가 자신의 작품 세계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영화를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것들을 찍어야 하자 갑자기 외로워졌죠. 그때 내가 왜 영화를 찍어야 할까 돌이켜봤습니다. 바로 어린시절 극장 안에서의 즐거움, 친구들 앞에서 이야기할 때 충만했던 희망, 생명력 때문이었죠. 그 자신감으로 영화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어린시절 또 하나의 추억으로 일본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과의 특별한 '인연'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어린 시절 베트남에서 홍콩으로 돌아와 영화를 찍겠다고 결심했던 계기가 일본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작품이었다는 것.
"기분이 좋지 않았던 어느날 무작정 버스를 타고 가다가 한 극장에 사이공 영화와 비슷한 풍경의 포스터가 걸려있는 것을 봤습니다. 아주 매력적이었던 그 작품은 바로 구로사와 감독의 '요짐보(用心棒)'였고, 이후 사람이 없는 아침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습관이 생겼고 영화 감독의 꿈을 꾸게 됐습니다"
쉬커 감독은 나중에 제작자와 감독으로 손잡고 '천녀유혼', '동방불패' 등을 만들게 되는 청샤오둥(程小東) 감독과의 첫만남을 들려주기도 했다.
"저는 영화를 찍기 전에 처음 TV 드라마로 무협물을 연출했습니다. 눈이 있는 풍경을 찍기 위해 한국에 촬영을 가 고생했던 기억이 있는 작품이죠. 당시 밤마다 제가 직접 편집을 했는데 누군가가 뒤로 다가와 들여다보더군요. 누구냐고 물었더니 그가 '나는 청샤오둥인데'라고 말했습니다. 그도 거기서 편집을 하고 있었던 거죠. 그렇게 해서 좋은 친구가 됐습니다"
처음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한 쉬커 감독은 마스터클래스 젊은관객들에게 "나도 아직 다 크지 않은 어린이"라면서 조언을 들려줬다.
"이 시대의 산업 안에서 창작을 하는 사람들은 외롭고 힘듭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나눠 향유하는 것이 중요한 가치입니다. 힘들지만 스스로를 믿고 힘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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