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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미륵사지 유물 발굴 이후의 과제

1400년만에 백제의 혼(魂)이 깨어났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우리나라 최대의 사찰인 익산 미륵사지(국보 11호)의 창건과정이 드러나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이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미륵사지 석탑 보수 정비를 위한 해체조사 과정에서 발견한 사리장엄구(사리를 담은 용기)에서 나온 유물은 그야말로 백제의 진면목을 보여 주었다. 그 중 금으로 된 사리호(사리를 담은 병)와 석탑조성 내력을 적은 사리봉안기(舍利奉安記)는 최대 수확으로 꼽힌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의 표현대로 "국보급 중에서도 최상급의 국보"요 "무령왕릉 발굴 이후 최고의 발굴"이 아닐까 싶다.

 

이번 발굴은 건축사는 물론 금속공예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큰 의미를 지닌다. 오랫동안 추정에 머물던 미륵사지 석탑의 축조연대가 백제 무왕 40년, 서기 639년으로 확인되었다. 또 백제 금속공예 기술과 문화가 얼마나 높은 수준이었는가를 증명해 준다. 그리고 삼국시대 말의 탑양식 연구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 준 것도 크게 평가받을 일이다.

 

하지만 이번 발굴은 많은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첫째, 500점이 넘게 쏟아져 나온 유물의 의미를 정확히 규명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문화재청은 이들 유물의 보전처리를 마치고 문헌기록과 비교검토 후 관련학계와 심화연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상대적으로 빈약한 백제사를 보완하는 계기이길 바란다.

 

둘째, 이번 발굴로 설화로 내려 오던 서동과 선화공주의 로맨스, 서동요 등의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져야 한다는 점이다.'백제왕후좌평사택적덕녀(百濟王后佐平沙宅積德女)'의 정확한 해석이 그것이다. 이는 그동안 알려졌던 백제와 신라간 문화교류설을 흔들뿐 아니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익산과 경주간 문화축제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나아가 삼국유사 등 우리나라 역사서에 대한 재검토로 이어질 수 있다.

 

셋째, 이번 발굴로 미륵사지의 어느 부분까지 복원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해체 당시 남아 있는 부분까지만 복원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부재를 추가해 원래 모습인 9층까지 완전히 복원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발굴은 도내 문화재및 역사학계 등이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번 발굴은 우리나라 전체의 문화재 복원 실력이 총동원되어야 하지만 도내 학계 등이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는 점을 통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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