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치맨
잘생긴 주연 배우 때문에 영화 007 시리즈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 꿈꾸던 장래 희망이 비밀 스파이. FBI 같은 국가 안보국에 소속돼 활동하는 모습을 동경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지 아니면 상상력이 나날이 풍부해 지는지, 몇 년이 더 흐른 뒤에는 내가 초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품었다. 특히 감(感)으로 뭔가를 맞추면 '혹시' 하는 마음에 벽에 귀를 대보곤(멀리서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원더우먼'이나 '슈퍼우먼'처럼) 했으니까. 문제는 영화 '워치맨'의 등장이다.
'워치맨'은 초인적인 능력을 타고나지 않아도 '히어로'가 된 감시자들의 이야기.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히어로가 된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특별한 능력이 있지 않아도 멋있어 보이는 모습 때문에 영웅이 되겠다는 허황된 꿈을 당분간 더 꿔야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뻔한 영웅 영화라고 생각했다면 당장 생각을 바꿀 것. '영상 혁명가'라 불리는 잭 스나이더 감독의 손에서 탄생한 '왓치맨'을 만나보자.
▲ 히어로의 반란
국가의 승인 없이는 히어로 활동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된 시대. 히어로들은 대부분 은퇴를 선언하지만, 신분을 감춘 채 감시자와 파수꾼의 역할을 행하는 왓치맨은 비공식적으로 활동을 계속해 온다. 왓치맨 중 하나인 로어셰크(잭키 얼 헤일리)는 과거 함께 활약했던 동료 코미디언(에드워드 블레이크)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사건 이면의 감춰진 사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밝혀낸 진실은 왓치맨 역할을 해오던 과거의 히어로들을 없애려 한다는 것.
왓치맨은 그래픽 노블의 거장 앨런 무어가 만든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데이브 깁슨이 그린 그래픽 노블 「왓치맨」은 1986년에 출간되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고, 타임지에서 선정한 '1923년 이후 발간된 100대 소설 베스트'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영화가 되는데 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터. 원작이 훼손될까 하는 걱정이 가장 컸을 듯 싶다.
▲ 영상의 미학
원작이라 불리는 만화가 워낙 오래 전 것이라 영화에 관심을 갖기 전에는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메가폰을 잡은 잭 스나이더 감독의 영상미에 대한 기대가 9할 9푼. 한편의 광고나 뮤직 비디오를 보는 듯한 영상 스타일은 그동안의 영화보다도 이 영웅물에 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잭 스나이더 감독이 원작 팬으로부터 환영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원작자인 앨런 무어에게도 좋은 소리만은 듣지 못했다. 새내기(?)감독에게 이런 대작이 간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라고 보면 좋겠다. 결과적으로 완성된 작품은 나쁘지 않다. 만화책 오려 내 붙여 놓은 듯 원작과 많이 닮았고 감독 특유의 감성도 놓치지 않았다. 다만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몇몇 원작 장면들이 오리지널 팬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다섯 명 정도의 캐릭터는 감독도 꽤 공을 들였다는 짐작을 할 수 있게 만든다. 각 캐릭터가 가진 각자의 성격과 의도를 파악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기 때문. 무엇보다 등장인물간의 대화에 신경쓰길 조언하고 싶다. 화려한 볼거리에 눈이 현혹돼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생기겠지만, 그들의 대화는 결코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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