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전주국제영화제 속을 거닐며
십 년 동안의 전주국제영화제는 독립, 예술, 실험의 광장이었다. 적어도 나 개인에게는 미지의 세계를 열어준 도전이요, 행운이었다.
유년시절의 종교적 성장을 이끌어주신 나의 선생님은 군산의 한 영화관 미술을 담당하신 분이었다. 그 분을 통하여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시적인 영화들, 그리고 수많은 미국 서부극들을 접할 수 있었다. 한 때 문학과 연극에도 관심을 두었지만 이런 경험과는 거리가 멀다 할 다른 직업으로 영상 세계와의 만남을 접고 있었다.
21세기가 시작된 2000년, 세계영화 역사 100주년의 열기가 아직은 남아 있던 그 때, 정이 흠뻑 들어있는 전주에서 국제영화제가 막을 열었다. 나에겐 평생에 얻기 어려운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젊은 기운이 남아있던 60대 초반, 대학의 행정을 책임지고 있던 사이사이에도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낯선 영화에 심취돼 있었다. 일본의 다큐멘터리 감독 산쯔케가 목숨을 걸고 전쟁터 같은 촬영현장에서 얻어낸 그의 작품은 머뭇거리며 나약했던 삶에 도전장으로 다가왔었다.
그러나 많은 국내의 영화애호가들이 낯선 대안적 디지털 영상세계를 접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의 영화제는 여러가지 난관에 봉착했었다고 한다. 10년의 반절의 기간은 산고를 겪었고 영화제의 정체성 확립에도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내부적 아픔을 통해 후반의 영화제는 정체성 뿐만 아니라 운영의 기술까지도 발전을 보였던 시기다.
전주영화제는 안으로 고초를 겪고 있던 때에도 국내의 다른 영화제와는 뚜렷한 차별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대안, 자유, 독립, 그리고 소통'이라는 진보적 이념에 확신을 갖게됐다. 그 고집스런 확신은 전주영화제의 존재가치를 올려주는 원동력이 됐다. 10년을 거쳐 오는 동안 이제 전주는 누구도 해칠 수 없는 든든한 거목이 되었으며, 그 거목은 예술적 가치를 듬뿍 지닌 영화들을 세계 구석구석에서 발굴해 수준 높은 영화에 목말라하는 이들에게 생명수를 제공하는 오아시스가 되었다.
국내의 어느 영화제의 재정규모의 절반도 되지 못하는 형편에서 우리지역이 낳은 유수한 영화인의 노력과 자원하는 젊은이들의 헌신, 지역의 주민들, 지방자치단체장들과 관련된 사업을 담당한 이들의 협력으로 명실공히 세계영화의 울타리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전주영화제 살림을 꾸리는 실무자들은 열악한 재정 가운데서도 투명한 운영을 했으며, 이러한 투명성은 영화제 발전의 근간이 되었다고 본다. 세계 영화사에 빛나는 숨겨진 실험적 예술 영화들을 이곳 전주까지 옮겨오게 한 집행부와 프로그래머들의 두둑한 고집은 우리를 다른 영화제와 차별되게 하는 힘이었다. 또한 영화제는 우리지역이 영화산업의 토대인 촬영소와 영화제작소를 성공적으로 일궈내는 데 기여를 했다. 이 일들은 지방자치단체장의 의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10년의 기념적 영화제를 마무리 지으며 다시 10년 후의 영화제를 극상시키기 위한 도전이 있어야 할 것이다. 조직운영의 기술은 많은 발전을 보았지만 더욱 세계적인 소통이 필요하며 국제적 인재 육성이 긴급하게 요청된다. 이 경험은 전통문화와 미래의 문화를 함께 엮어가야 할 영화제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발전시켜갈 수 있는 첩경이다.
이제 우리 영화제는 또다른 미지의 세계를 추동해 가야 할 것이다. 아니, 우리 사회는 영화적 발상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음을 이번 영화제에서 강하게 느꼈다. 이러한 디지털적 발상의 실천을 위한 여러 사업들에 관심을 둘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영화감독들을 길러낸 시네마떼크와 같은, 영화자료들을 연중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는 공간 마련 같은 일이다. 이 사업은 영화의 산업화를 도모하는 것보다 더 산업적인 토대를 닦아놓을 것이다. 이제 우리지역이 명실공히 영화산업과 영화문화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 필수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아흐레 동안 빠듯하게 짜인 상영시간에 맞춰 피곤함을 잊고 본 것은 각 나라와 각 민족이 겪어온 슬픔과 기쁨, 사랑과 분노, 절망과 희망이었다. 영화를 통해 그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들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한 주간이었다. 국내외에서 찾아온 영화를 사랑한 이들과 초청받은 국내외 감독들과의 짧은 만남 역시 아름다운 선물이었다.
11회를 위한 전주의 모험은 이미 시작되었을 것이다. 세계와 인류의 삶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두려움 없는 새로운 탐색을 가능하게 한다. 또다른 낯선 영화의 세계를 기대한다. /이영호 전북독립영화협회 이사장(전 한일장신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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