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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한국의 엘리트 - 장세균

한국과 일본은 대한해협이라는 조그만 바다를 사이에 두고 약 120km 떨어져 있다. 일본은 한국을 외국이 아닌 제3국으로 보고 있다. 과거 자기나라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외국으로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본을 미워하는 나머지 일본을 정확히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일본을 극일(克日)하기 위해서는 손자병법(孫子兵法)대로 일본을 잘 알아야 하는데 말이다. 일본은 동양(東洋)이면서도 희한할 정도로 여러 가지로 과거 서구사회를 닮았다. 우선 그들의 천황(天皇)은 허수아비일 뿐 임금처럼 실권을 쥔 막부(幕府)의 장군이 있었지만 그는 일본전역을 간접적으로 통치했을 뿐 직접적 통치자는 각 지역에 있는 대명(大名)들 즉, 다이묘들 이었다.

 

그들의 존재는 마치 중세 서양에서의 영주(領主)와도 흡사했다. 대명(大名)들은 자기 독자영역을 지키기 위해 사병(私兵)을 가질 수 있었으며 그들밑에는 농민들을 관리하는 사무라이 즉 무사(武士) 집단이 있었다. 그들은 농민들로부터 세금을 거두었으며 대명의 지시아래 치안을 책임지었다. 이는 중세 서구사회에서의 기사(騎士)들과도 비슷한 존재이었다.

 

대명(大名)들은 농민들로부터 쌀 수만석 또는 수십만석을 거두어들이면서 그들 지역의 치안을 책임져야 했다. 이처럼 일본의 지배계급은 막강한 권력을 소유한 대신에 치안(治安)의 책임을 져야했다. 과거 우리사회의 양반들의 무책임성과는 대조적이다.

 

우리의 경우 양반들은 국가의 모든 의무에서도 도망질 쳤다. 세금을 회피하고 부역(賦役)에서 빠져나가고 군대(軍隊)를 기피했다. 나라가 궁지에 몰리면 제일 먼저 도망가고 나라가 회복되면 나타나 백성위에 군림하고 착취했다. 일본은 그들끼리 잦은 내전(內戰)을 했지만 전쟁이나 전투는 사무라이들의 전담이었다.

 

전투가 벌어지면 일본 농민들은 도시락을 싸가지고 산에 올라가 요즈음 축구경기 구경하듯 전투를 구경했다. 우리와 달리 그들의 내전(內戰)은 대명(大名)과 사무라이들간의 일이었지 농민들과는 관계없었기에 농민들에게는 피해가 없었다. 오늘의 한국 엘리트들의 집단 이기심도 어쩌면 과거 잘못된 우리 양반문화의 소산이 아닌가 한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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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균 desk@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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