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지역학에 대한 관심이 부쩍 고조되고 있다. 전주학 관련 학술대회가 정기적으로 열리고 '여지도서'등 고전 번역도 활발하다. 서울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지역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노력인 것 같아 흐뭇하다. 이는 지역문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고, 발전 동력을 지역에서 얻고자 하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특히 전주의 경우 전통문화중심도시를 지향하고 있어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때 일본어로 간행된 '전주부사(全州府史)'의 국역은 또 다른 의미를 더한다. 전주의 지나온 발자취, 그 중에서도 일본인의 시각에서 쓰여진 일제 강점기의 역사와 문화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는 우리 민족에게 치욕의 기간이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요, 근대화의 과정이다.
전주부사는 일제가 막바지로 치닫던 1942년 간행된, 당시의 종합인문지리지 성격을 띤다. 전주의 향토사를 연구하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완산지(完山誌)와 호남읍지(湖南邑誌)의 뒤를 잇는 정사(正史)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해방 이후 전주시사(全州市史)가 4번 발행되었다. 말하자면 완산지와 전주시사를 잇는 가교와도 같다.
이 책에는 두 가지 시각이 드러난다. 하나는 일제 침탈과 야욕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곳곳에 일본의 우월성과 한민족의 저급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예컨대 견훤관련 기술에서 "후백제가 일본을 받드는 것은 마치 아버지를 모시는 만큼 두렵고, 유아가 어머니를 사모하는 정에 유사하다"는 기록을 인용한다. 또 전라도인의 성적(成績)에서 "전주는 인재가 매우 적고, 중앙집권의 폭력적 위엄에 눌려 일어나려는 기력을 상실, 늘 낡은 인습을 버리지 않고 뒤로 물러나 움직이지 아니하니, 모든 일에 뒤쳐진 듯한 느낌"이라고 적고 있다.
반면 부정(府政)에 대해서는 놀랄만큼 객관적 시각을 견지한다. 재정 교육 사회 보건 교통 산업 철도 종교 누정 등에 대해 정확하게 기술, 당시 사회경제상을 아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일제는 1914년 군산에 군산부를 설치했다. 이에 비해 전주는 전주면으로 격하시켰다. 전주는 그 뒤 1931년 전주읍으로 승격했고 1935년 전주부로 승격되면서 완주군과 분리되었다.
전주부사 번역을 계기로 지역사의 원전이랄 수 있는 완산지 등에 대한 번역도 서둘렀으면 한다.
/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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