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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문화콘텐츠 50] 전북 종교.문화- 영적 자산 잇는 순례길

(23) 천주교천호성지·치명자산…원불교 만덕산·월명암

▲ 영적 자산의 세계적 콘텐츠화

 

올 한해 대한민국 최고의 화두는 '죽음'이 아닐까?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비롯하여 두 명의 전직 대통령 서거까지. 죽음은 살아있는 자에게는 성찰을 남긴다. 종교는 죽은 자를 생각하며 삶의 이정표를 세운다. 인류 최대의 문화 콘텐츠인 종교의 도그마가 전북이다.

 

천주교 성지인 천호와 여산, 나바위, 전주 전동성당과 치명자산. 원불교 성지인 익산총부와 만덕산, 월명암등에는 신자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각기 다른 종교의 성지가 하나의 길로 이어진다. 매력적인 상표는 시장에서 물건이 잘 팔리게 하는 요소이다. 유명상품은 그래서 상표, 즉 브랜드라고도 한다. 우리 지역은 종교적으로 볼 때 영적인 명품(名品)의 가치를 지녔다. 살고 있는 지역이 유명 브랜드인 셈이다. 종교성지를 연결한 순례길을 걷는 순간 사람들은 수동적인 소비자에서 문화의 창조자가 된다. 가장 오래된 것은 가장 미래적인 것이다.

 

기호로서 상품 소비는 개별 상품을 소비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상품의 소비를 둘러싼 맥락으로서 공간이 함께 소비되기 때문이다. 특히 종교인들은 개별상품으로서 명품이 아닌 기호화된 공간을 소비한다. 프랑스 유학시절 순례길을 경험했던 이병호 주교는 순례길 조성에 적극적이다. 원불교측 실무를 맡은 박명원 교무는 2012년 세계보이스카우트 전주 대회 추진위원도 겸하고 있다. 그는 대회 프로그램에 순례길을 포함시킬 구상이다. 무엇보다도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구체화되는 교황의 방한시 전주 방문이다.

 

종교는 죽음을 넘어선 영성 콘텐츠다. 천주교 전주교구에서는 전주출신 순교자인 유항검의 성인시복과 관련해 교황의 전주내방을 추진하고 있다. 절차적인 문제는 이미 해결이 된 상태. 예전 교황의 광주방문처럼 전주방문이 성사가 된다면 순례길과 관련한 콘텐츠의 파급효과는 폭발적이다. 순례길을 걸으며 죽음으로 신념을 지켜낸 순교자의 삶을 돌이켜 볼 때, 우리는 문득, 불편한 진실을 상기할 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참회하고 싶은 오래 전의 잘못같은 것. 반년이 지나도 묻히지 못한 용산의 죽음같은 것.

 

▲ 종교박람회의 가능성

 

지난 달 국립중앙박물관 광장에서는 올해로 13회를 맞는 종교문화축제가 사단법인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주최로 열렸다. 기독교와 불교, 천주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민족종교 등 7개 종단이 참여해 종교 문화예술을 한자리에서 소개하면서 화합을 모색하는 행사. 이처럼 종교인들 간의 친목과 교류에 머문 종교축제를 발전시켜서 우리지역에서 종교박람회를 개최하는 것은 어떨까? 영적 자산이 풍부한 우리지역에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선교사가 남한 땅에 첫 발을 내딛은 곳도 이곳이었고, 원불교를 비롯한 증산교 보천교 동학 등이 융성한 곳도 우리 지역이다. 그 외 모악산을 모태로 한 수많은 신앙들의 기초에는 영적인 세계와 유난히 주파수가 잘 맞는 지역성이 자리하고 있다. 익산시에는 원불교총부가 나바위성당에는 최초의 선교사 흔적이 신앙의 모태(母胎)적 의미를 증명한다. 장소가 곧 콘텐츠인 셈이다. 순례길 조성사업이 자체 수요로도 충분할 거란 기대도 이 때문이다. 순례길의 거점지 중 하나인 천호성지만 해도 한해에 12만명이 다녀갈 정도다.

 

무한경쟁사회에 지친 개인들은 삶의 가치를 순례에서 찾는다. 더 이상 문명의 꽃인 종교문화를 개인의 신앙적 측면으로만 바라볼 게 아니다. 종교박람회는 영성구원을 목적으로 한 각 종단의 실천적 모델이 될 것이다. 종교사상 학술대회장 인근에 시대적 요구를 각 종교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발언하는 종교 북카페를 운영하는 것은 현실사회와 밀접한 종교단체의 의지를 모우는 마당이 될 것이다. 또한 소박하고 기품있는 각 종교의 의식주 문화는 새로운 콘텐츠로 무궁무진하게 재생산될 수 있다. 종교별 예복을 개량한 패션쇼와 종교음악회, 사찰음식 축제는 그 자체가 축제의 성격을 지녔으며 십자가 비즈공예, 묵주 만들기 등의 체험 행사는 자신만의 기념품을 남길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순례길 조성으로 무르익은 종단간의 협조로 실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종교콘텐츠 개발은 우리지역이 정신문화의 메카로 발돋음 하는 계기를 만들 것이다.

 

▲ 슬로시티로의 꿈

 

최근 지자체의 통합이 이슈가 되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좀 더 크고 강한 지역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크고 강한 것의 추구의 이면에는 작고 소중한 것에 대한 외면이 자리하고 있다. 종교 콘텐츠는 지역경제를 살리는 '슬로시티(slow city)'를 활성화한다. '슬로시티'의 개념을 처음으로 파급시킨 이탈리아의 끼안띠지방은 피렌체 산맥 인근의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여행객들에게 자신들이 먹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느림의 미학'을 가르쳐 주었다. 전북도의 '우리마을 조성사업'의 시행착오가 가치부여의 과정이 없이 이벤트 개발이 우선되었기 때문이라면, 순례길은 '슬로시티'의 꿈을 영글게 할 튼튼한 가지의 역할을 할 것이다. 순례객들은 자연스럽게 마을사람들과 삶에 스미며 느림의 가치를 알게 된다. 천천히 걸으면서 일상에서 멀어질수록 순례의 참 의미는 생생해진다. 그리하여 '외로움은 곁에 달고 다니는 감기와 같다'는 식의 자신만의 깨달음을 하나씩 알게 될 쯤. 우리는 문득 오래된 질서를 생각해 낼 것이다. 자연과 더불어 묵묵히 살아온 전북인의 삶에 대해. 전북을 대표하는 문화콘텐츠로서 순례길이 주목받아야 할 이유다.

 

/박태건 문화전문객원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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