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죽여야만 하는가?"…어느 교도관의 첫 사형 집행기
사람들은 흔히 재미없는 영화를 '예술 영화' '영화제를 위한 영화' '사회적 영화' 등으로 부른다. 영화는 예술인 동시에 오락매체임이 분명하기에 관객들이 이런 영화들을 회피한다고 해서 뭐라 할 수는 없는 일. 기분 전환을 위해 극장을 찾았다가 무거운 주제의 영화를 보고 오히려 가슴이 답답해진 경험이 있다면 더욱 공감이 갈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고를 때면 의도적으로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영화는 피하게 된다. 재미있고 유쾌하고, 사회적 메시지가 담겼어도 웬만한 웃음에 지워질 수 있는 영화가 선호 1순위.
이런 의미에서 영화 '집행자'는 선호도와는 거리가 먼 영화다. 무겁고 침울하고 더욱이 사회적 메시지가 깊숙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 그럼에도 '집행자'를 봐야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우리를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영화'이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 집행자(드라마/ 97분/ 18세 관람가)
인간의 역사가 길면 길어질수록 예술은 정체기가 생기지 않을까? 새로운 것들이 쌓이고 쌓이면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어질 테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집행자'는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를 새롭게 만든 감독의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사형이란 소재를 사형수가 아닌 교도관의 입장에서 그리고 있는 것. 사형이란 제도 자체에 대한 논의나 사형수의 인권 문제에 대해 말 할 뿐 누가 교도관에 대해 생각해 본적인 있었겠는가.
교도관으로 취직한 재경(윤계상)은 첫 날부터 짓궂은 재소자들로 인해 곤욕을 치른다. 어리보기 같은 그에게 10년 차 교사 종호(조재현)는 재소자 다루는 법을 하나씩 가르치지만 재경의 눈에는 사형수와 정겹게 장기를 두는 김교위(박인환)이나 종호나 낯설기는 마찬가지. 그러던 어느 날, 연쇄 살인범 장용두 사건이 터지며 정부는 사회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12년 만에 사형 집행을 결정한다. 사형집행명령서가 전달되고 교도관들은 모두 패닉상태로 빠져들게 되는데 예행연습이 시작되고 종호는 단호한 태도로 연습에 몰두 하지만 재경과 김교위는 갈등과 망설임으로 불안하기만 하다.
교도관들의 입장에서 보는 사형제도는 참혹하기만 하다. 직업이라는 이유로 누군가를 죽여야만 하는 그들의 고통은 '정말 죽여야만 하는가'를 또 묻게 만든다. 평소 사형폐지 반대론자임을 자처했지만 교도관들의 입장으로 조금만 틀어본다면 사형제도가 정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런 의문이 드는 것. 사실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일 자체가 그리 간단할 리가 없다. 어느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 과정은 모두가 힘들 것이다. 그래서 영화 '집행자'는 그 결과에 도달하기 전까지 우리에게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주기에 착하기 그지없다.
사형 집행에 앞서 사형수는 "이제 난 못 죽이지만 니들은 계속 더 죽이겠지?" 라는 말을 던진다. 누구도 흔쾌히 정답을 말 할 수 없고 앞으로도 정답은 나오지 않겠지만 우리가 머리 속에 이 문제를 담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이미 정답에 가까워진 것은 아닐지 내심 기대가 든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