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로 즐긴 마야인에겐 화폐로도 쓰인 '갈색 금'
14일은 설날과 딱 겹친 '성 밸런타인 데이(Saint Valentine's Day)'. 해마다 이날이면 사랑하는 남녀가 초콜릿을 건네며 사랑을 고백한다. 2월 14일인 밸런타인 데이엔 여성이 남성에게, 3월 14일인 화이트 데이(White Day)엔 남성이 여성에게 사탕을 전하는 날이라는 것은 일본식 개념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청춘남녀들은 초콜릿과 사탕에 사랑을 싣기에 바쁘다. 실제 화이트 데이는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에서만 기념하는 날이다. 사랑의 묘약인 초콜릿의 기원은 어디이고 어떤 경로를 통해 현대까지 이르고 있는 것일까. 초콜릿에 얽힌 역사의 편린들을 따라가 본다.
카카오 나무의 열매인 '카카오 빈'으로 만든 식품인 초콜릿의 고향은 중앙아메이카. 중앙아메리카와 멕시코 지역을 중심으로 고대 문명을 일으킨 올멕인과 마야인들이 초콜릿으로 음료를 만들어 먹었다. 올멕인들은 카카오 빈을 처음으로 재배했고, 마야의 왕족과 귀족들은 이를 음료로 만들어 즐기는 한편 신전에 바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카카오 나무는 적도 일대 습하고 무더운 지역에서 널리 자생하고 있었다.
이를 유럽인들에게 처음으로 소개한 사람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행해중 얻은 카카오 빈을 에스파냐 왕에게 바쳤다. 콜럼버스는 호기심 차원에서 초콜릿에 접근했다면, 내재적인 가치를 발견하면서 초콜릿을 활용한 사람은 스페인의 정복가 헤르난 코데스이다. 당시 신세계에 발을 디딘 코데스는 카카오 빈 사업에 착수, 캐리비언 일대에서 카카오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마야문명에서 아즈텍문명으로 이어지는 시기엔 카카오 빈이 화폐로서 사용되었다. 노예 한명은 카카오 빈 100개, 토끼 한 마리는 카카오 빈 4개로 거래될 정도로, 카카오 빈은 이른바'갈색 금'이었다.
카카오 나무가 유럽에 진출한 때는 1580년. 카카오 나무는 스페인에 상륙한 이후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유럽인들은 금새 초콜릿에 매료되어 제조공장을 짓는 한편 당시 자신들의 식민지인 인도네시아, 필리핀, 뉴기니아 등에도 카카오 나무를 심었다. 유럽에 초콜릿 매니아층이 두터워 지면서 유럽-아메리카를 잇는 무역선이 1585년 등장했다.
초콜릿하면 지금은 고체를 연상하지만, 처음엔 액체 상태의 음료수였다. 고체 초콜릿을 만든 사람은 네덜란드 반호텐. 그는 1828년 딱딱한 형태의 초콜릿을 개발했다. 이후 스위스에선 우유를 첨가한 밀크 초콜릿이 개발되었고 이후 다크 초콜릿, 화이트 초콜릿 등 신제품이 잇따라 출시되었다.
한국에 초콜릿이 소개된 시점은 구한말 명성황후가 러시아 공사의 부인으로부터 받았다는 설과 이토 히로부미가 대한제국 상궁들에게 선물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맞서고 있다.
◆ 밸런타인 데이와 초콜릿
밸런타인 데이에 대한 기원은 몇가지 설이 회자되지만, 신뢰도가 높은 주장은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의 명령을 어기고 군인들의 혼배성사를 집전했다 순교한 성 밸런타인 주교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당시 황제는 남자들을 입대시키기 위해 결혼을 금지했다.
밸런타인 데이에 초콜릿을 선물하는 관습이 시작된 때는 19세기. 영국의 제과업체인 캐드베리사가 처음으로 밸런타인 데이와 초콜릿을 연관시켰다. 이를 상업적으로 확산시킨 나라는 일본. 1936년 고베의 제과업체가 초콜릿을 선물하는 이미지 광고를 내면서 초콜릿 선물이 본격화 되었고, 1960년 일본 최대 제과업체인 모리나가가 '사랑하는 남성에게 초콜릿을'이라는 광고 캠페인을 벌이며 '밸런타인 데이=초콜릿'이라는 등식이 자리잡았다.
◆ 초콜릿의 효능
초콜릿 성분은 지방의 비중이 높다. 초콜릿 40g은 쌀밥 한 공기 반 정도과 맞먹는 열량을 지니고 있다. 또 흥분성 알칼로이드인 테오브로민이라는 성분은 육체적 피로를 잊게 만든다. 예전엔 왕족이나 귀족들이 사랑을 나누기 전에 '사랑의 음료'로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실제 이탈리아 가톨릭 성직자들 사이에 '최음제'논란이 일기도 했다.
◆ 국가별로 본 초콜릿의 세계
◇ 멕시코-초콜릿의 고향
멕시코는 마야문명에서 아즈텍문명으로 이어지는 영원한 초콜릿의 원산지이다. '원조'답게 100% 자연 초콜릿이 선보이고 있고, 이곳의 전통 술인 데킬라를 혼합한 제품도 나온다.
◇ 미국-초콜릿의 대중화
밀턴 스네이블리 허쉬(Milton Snavely Hershey)는 펜실베니아주 데리에 초콜릿 마을을 만들고 초콜릿을 대량생산을 통해 대중화 시켰다. 우리나라에도 '허쉬'란 상표로 널리 알려져 있다.
◇ 이탈리아-쟌두야의 고장
초콜릿에 아몬드·헤이즐넛·호두를 섞은 '잔두야(Gianjuja)'를 만들어 세계시장에 진출했다. 카파렐리, 페루지나 등이 대표적인 초콜릿 제조업체이다.
◇ 스위스-초콜릿의 나라
스위스는 유럽국가에서는 뒤늦은 18세기에 초콜릿과 접했지만, 이후 일인당 소비량이 세계 최고에 이르며 '초콜릿의 나라'로 불린다.
◇ 네덜란드-코코아의 나라
암스테르담의 화학자인 반 호텐은 초콜릿에서 카카오버터를 없애 미세한 분말형태의 초콜릿 제조법을 개발, 이를 코코아라고 이름 붙였다.
◇ 프랑스-초콜릿 법의 나라
루이 13세가 스페인 공주와 결혼하며 전해진 초콜릿은 프랑스에서 전성기를 맞았다. 정부는 일명 '초콜릿 법'을 만들어 초콜릿 제조업을 보호했다.
◇ 영국-초콜릿 정치
영국은 17세기에 초콜릿이 전해진 이후 애호가들을 중심으로 '초콜릿 하우스'를 만들었고, 이곳에서 귀족과 신사계급들은 정치와 문화를 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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