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종일(우석대학교 총장)
한국의 전통 문화 수출을 생각하다가 문득 기억이 난 것이 학생 시절에 읽은 이반 뚜루게네프(Ivan Turgenev)의 처녀지(Virgin Soil)였다. 저자가 그의 소설에 이런 제목을 쓴 것은, 이 책의 주인공이 추진하는 커다란 역사적인 변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마치 처녀지를 개간하는 사람이 오랫동안 깊이 땅을 갈아엎어야 하는 것처럼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심도 깊은 변화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이었다고 들었다.
세계화의 시대를 맞아 한국의 전통 문화도 음식에서 음악이나 무용 등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무대에 진출해 스스로의 위상을 개척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이나 금융 혹은 무역이나 스포츠 등의 분야에 비하면 한국 전통 문화가 세계의 무대에서 활약을 하는 전망은 그렇게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문제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문화도 이제는 세계를 대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국내에서의 처지도 밝은 전망이 어렵다는 점이다. 전통문화가 세계화에 부진한 이유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 사업에 관계하는 분들이 장기적인 안목과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마치 처녀지를 개간하듯이 깊고 넓게 스스로 활동의 무대를 경작하는 것이 아닐까.
문화는, 특히 한 민족이 생을 개척하고 영위하는 생존의 양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전통 문화는 그 자체로서 비할 수 없는 가치를 갖고 있지만, 다른 면으로는 다른 영역에서도 중요한 자원이다. 문화는 한 나라나 지방을 막론하고 경제나 정치 혹은 사회적인 분야에서도 비할 수 없이 귀중한 자원이 될 수 있다. 이 점은 이른 바 감성의 시대를 맞아 그 의의가 더욱 부각되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문화도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면서 스스로의 가치를 온 세계에 널리 알리는 것과 동시에 나라와 민족의 존재 가치를 드높이면서 한편으로 현실적인 성과도 이룩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가 경제나 정치의 영역은 물론 문화적인 면에서도 세계에서 크게 인정을 받고 있지만, 전통문화의 영역에서는 해외에서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그 활동이 크게 떨치지 못하는 것 같아 유감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국내 시장이 좁은 나라에서는 특히 왕성한 해외 활동이 없이는 매사가 옹색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문화도 수출에 성공하지 않으면 안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필자는 전주에 전통 문화를 연수하는 국제적인 규모의 사숙이 있고 이곳에 세계 각처에서 유학생들이 모여 우리 문화의 진수를 전수 받는 광경을 보는 꿈을 갖고 있다. 또 외국에서도 우리나라의 전통 문화를 배우려는 의욕이 확산되어야 한다. 이런 것이 꿈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면 우리 전통 문화는 장래가 밝을 수 없다.
현재 이런 꿈이 이루어질 전망이 낙관적인 것은 아니지만 좋은 여건이 없는 것도 아니다. 첫째는 우리 문화의 우수성이다. 특히 판소리는 세계의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할만한 예술이다. 둘째는 지난 세기에 일어난 우리 민족의 확산이다. 지구상 어디에 가더라도 우리 동포들이 상당한 집단을 이루어 살고 있다. 우선은 교포 사회가 문화 수출의 교두보가 되겠지만 점차로 기반을 현지인으로 확대하여야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 문화 수출의 처녀지를 길게 그리고 깊게 개척하는 것이다. 일회성의 행사들이 아닌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차근차근 이 중요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아울러서 함께 일할 수 있는 지지층을 국내외에 두텁게 형성하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어떤 일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실망과 좌절에 빠지지 않고 긴 호흡으로 꾸준하게 그리고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진력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라종일(우석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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