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정신!" "오뚝이 정신!" 구름이 잔뜩 낀 12일 오전 경기도 안산의 대부도에 있는 청룡 극기훈련단.
군복을 갖춰 입은 한국 펜싱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두 손을 허공에 올리고 뜀뛰기를 하고 있었다. 이른바 '공수 낙하 훈련'.
앞꿈치만으로 뛰면서 "해병대 정신"을 외치는 이들의 얼굴에는 극심한 피로와 비장함이 동시에 묻어났다.
한시간 가량을 쉬지 않고 같은 동작을 반복해 다리가 아프고 지루할 법한데도 목소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기가 발동했는지 목소리는 오히려 점점 커졌다.
다리를 쉴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은 뛰는 중간에 바닥을 한 바퀴 구를 때뿐. 한 바퀴를 구르고 나면 군복은 온통 흙투성이가 되었다.
체력훈련에 이미 익숙해졌을 선수들이지만 평소 훈련과는 또 다른 이색 체험에 혀를 내둘렀다.
대표팀 주장인 정승화(29.부산광역시청)는 "안 하던 걸 하려니까 너무 힘들다"면서 "오늘은 햇빛이 없어서 그나마 나은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미녀 검객' 남현희(29.성남시청)도 땀을 뻘뻘 흘리며 "너무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무표정한 교관은 "힘들수록 강하게"를 외치며 선수들을 더 거세게 몰아붙였다.
선수들이 지칠 때마다 "나는 강하다" "불가능은 없다"는 구호로 사기를 북돋웠다.
남자 사브르의 오은석(27.국민체육진흥공단)은 낙하 훈련이 끝나고 "훈련 중에 잠시 팔이 꺾여서 아프긴 했지만 이제 괜찮다"면서 활짝 웃었다.
다음 훈련은 낙하산이 펼쳐질 때까지 달리는 '낙하산 송풍 훈련'.
선수들은 4명씩 한 조가 되어 한 사람이 낙하산을 메고 달릴 때 나머지 세 명은뒤에서 낙하산이 잘 펼쳐질 수 있게 도왔다.
조석동(23.울산광역시청)이 메고 달리던 낙하산이 활짝 펼쳐지자 지켜보던 선수와 코치들은 함성으로 응원을 보내줬다.
대표팀 담당 교관은 "평소에는 거의 체육관에서만 연습을 하다 보니 훈련 첫날에는 바깥에 나와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았다"면서 "그러나 오늘은 열심히 잘 따라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전날 훈련단에 입소해 고된 하루를 보내고 불침번으로 첫날밤을 지새운 선수들은 수면 부족을 호소하기도 했다.
여자 플뢰레의 전희숙(26.서울특별시청)은 "잠을 두 시간 밖에 못 잤다. 마치 벌을 서는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하루 만에 군기가 바짝 든 선수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차 '해병대정신'을 몸에 익혔다.
남자 사브르 대표 원준호(24.국군체육부대)는 "해병대의 악이나 깡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아직 이틀 남았지만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금화(28.익산시청)도 "오늘 오후에 (11m 높이에서 뛰어 내리는) 헬기 레펠 훈련이 기대된다"면서 해병대식 훈련에 완벽히 적응한 모습을 보여줬다.
펜싱 대표팀은 14일까지 이곳에 머무르며 110㎏ 짜리 보트를 머리에 이고 행군하는 '지옥훈련'과 서바이벌 게임 등을 통해 더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할 계획이다.
대표팀이 처음으로 이런 훈련을 기획하게 된 것은 오는 11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정상을 지키려면 정신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
김융율(47) 감독은 "날씨가 더워 선수들이 나태해질 수 있는데 이런 훈련을 통해서 마음을 가다듬고 아시안게임에서도 라이벌 중국을 물리칠 수 있도록 하겠다"고밝혔다.
남자 에페의 심재성(44) 코치도 "선수들이 안 쓰던 근육을 써서 힘들겠지만 취지를 이해하고 있다"면서 "대표팀의 능력은 이미 올라와 있기 때문에 정신력만 뒷받침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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