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미숙(전 CBS TV 본부장)
디지털이 만들어내는 속도가 눈부시다. T.G.I.F - 트위터(Twitter), 구글(Google), 인터넷(Internet), 페이스북(Facebook)으로 상징되는 TGIF는 지구촌 사람들을 빛의 속도로 연결하며 새로운 문명을 만들고 있다. 인류가 가진 자산을 융합하고 공유하기 위해 트위터는 끊임없이 '지금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고, 페이스북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묻는다. 페이스북의 '담벼락'과 트위터의 '타임라인'이 없었다면, <연금술사> 를 쓴 파울로 코엘료가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흥분하며 갈겨쓰는 관전평을 동시에 즐길 수 없었을 테고, 작가 이외수가 던지는 비오는 저녁 쫄깃한 글들을 라이브로 감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구 반대편으로 유학 간 아들이 저녁식사 하러간 식당과 마을길을 안방에 앉은 채 둘러볼 수 있고, 함께 메뉴를 고르고, 맛이 어떤지 대화가 가능한 세상. 소셜미디어에 비친 한국사회는 전통적 미디어가 보여주던 그것과는 확연하게 다른 속도가 지배하고 있다. 연금술사>
올해 미국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들의 인식을 조사한 것 중에 흥미로운 대답이 있다. '손목을 손가락으로 톡톡 가리키는 것이, 시간을 알려달라고 하는 제스처인지 전혀 인식 못함', '줄이 달린 전화를 사용해본 일 없음', '이메일은 거의 안 씀. 왜? 느려서.' 그래서 2014년쯤엔 손목시계나 이메일이 사라질 것이라고 보고서는 전망한다. 지난 석 달간 세계적인 인터넷 가게 아마존에서는 종이책 100권당 전자책 143권의 비율로 전자책이 더 많이 팔렸다고 한다. 지난달에는 전자책 180권에 종이책 100권 비율로, 갈수록 격차가 커졌다. 아마존이 15년 넘게 종이책을 팔았고, 전자책을 판 건 이제 겨우 3년이라고 생각하면 변화의 속도가 정말 놀랍다. 통계를 보면 아직은 아니지만, 전문가들은 불과 몇 년 내에 전자책 판매량이 종이책을 가볍게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도 2013년부터 디지털교과서를 전국 초등학생들에게 보급해 '책 없는 학교' 시대를 열기위해 관계부처가 준비 중이다.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인 현재의 초중등 학생들은 태블릿PC를 이용해 동영상과 사진, 인터넷 상의 방대한 자료 등을 함께 활용하면서, 학교로부터의 유비쿼터스 시대를 활짝 열어 갈 것이다. 이들이 성인이 된 10년 후 한국사회는 어떤 문화와 문명을 만들어내고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벌써 전국 110개 초등학교, 1만 6700명이 디지털 교과서로 시범 학습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이제 도서관에서 향긋한 종이책을 뒤지는 '책벌레'들의 시대가 디지털의 속도에 밀려, 사라질 것인가. TV와 종이신문 같은 전통적 미디어 매체들 또한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스스로 고민이 무겁다.
우체국 네거리 찻집에 앉아 연인을 기다리며 애태우던 김추자의 '커피 한 잔'은 이제 없다. 스마트폰에 대고 손가락 몇 번 까딱거리면 여자친구를 화면으로 불러낼 수 있는 요즘 시대의 사랑은 단막극일 수 밖에 없다고, 손편지 한 통이 도착하는 데 사흘이 걸리고 손목 한 번 잡는 데 삼 년이 걸리는 아버지의 시대에는 사랑 또한 대하극일 수 밖에 없었다는, 그러니 어느 쪽이 진짜 사랑이냐는 노 작가의 물음에 트위터리언들은, 답할 여유조차 없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소통을 말하고 그리워하는가. 더 효율적인 삶을 향해 달리느라고 놓치고 온 가치와 행복이 소셜미디어가 회복시킨 문명의 한 부분으로 들어앉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새로운 문명의 탄생 앞에 서서 소셜미디어 시대의 시대정신을 묻는다. 가을이 오는 어느 아침 페이스북을 열면, 맨발로 달려 나가도록 반가운 글 한 줄 담벼락에 씌어있지 않을까. 페이스북은 젊은 날 동구 밖을 바라보며 기다리던 우체부 같다.
/ 허미숙(전 CBS TV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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