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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③"모르죠? 얼마나 힘든지"

안선희 정신보건간호사(남원시정신건강센터)

 

그녀는 예뻤다. 화장기 없는 고운 얼굴, 여성스런 몸짓, 조용한 말투, 어느 것 하나 빠진 데 없이 무척이나 예뻤다.

 

그뿐 아니었다. 주간 재활프로그램이 있는 날엔, 제일 먼저 자전거를 타고 나타났다. 부탁하지 않아도 알아서 청소하고, 프로그램 준비하고, 나오지 않는 회원들까지 챙겼다. 그러니 어찌 예뻐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녀와 나는 때론 자매처럼, 친구처럼, 애인처럼 사이가 좋았다. 남들이 질투할 만큼이나….

 

그런 우리 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표면적인 시작은 그녀의 과체중에서 비롯되었다. 그녀는 과체중이 심해 고혈압, 당뇨까지 합병증이 생겨 치료를 받아야할 정도였다. 치료 초기 부모님께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받자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속상해하실 부모님 생각에 비밀로 해 달라고 내게 부탁했다. 대신 열심히 운동하고, 먹는 양도 줄이겠다고 철썩 같이 약속했다.

 

누구나 그렇듯 혼자서 관리하는 일은 그녀 역시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혈당조절이 어려웠고, 잠이 많은 것도 과체중에 한몫했다. 어떡해서든 그녀를 움직이게 해야했다.

 

나는 그녀에게 일주일 내내 보건소에 나와 운동하라고 했다. 주간재활프로그램이 없는 날에도 동료상담을 핑계 삼아 회원 집 방문에 그녀와 동행했다.

 

하지만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부모 모두 직장을 다니는 탓에 방학동안 그녀는 오롯이 혼자 지내야만 했다. 보건소를 나오지 않는 날엔 오후 1~2시까지 잠을 잤다. 스스로도 그게 걱정이 됐는지 상담을 해 왔지만, 나는 '의지가 약하기 때문'이라며 그녀를 몰아붙였다. 당장 다음 날부터 매일 보건소에 나오라 강요도 했다. 한 달 쯤 열심히 운동하는가 싶던 그녀가 어느 날부턴가 살며시 모습을 감추었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녀가 다시 얼굴을 보인 건 주간 재활프로그램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얼굴 가득 미안한 표정을 지은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에게 나오지 않았던 이유를 물었다. 매일 매일 보건소에 나오는 게 너무 힘들었단다. 잠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의 동생이자 친구이자 애인이었던 그녀는 내게 실망을 안겨주지 않으려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말았다. 평소 복용하는 약 중에 자신을 '잠에 잡아두는 약'이 있는 것 같아 그 약을 빼고 먹은 것이다. 환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질환이 재발한 탓이었다. 그녀는 실망을 줘서 미안하다며 얼굴을 들지 못했다.

 

"아니야, 아니야. 미안한 건 네가 아니라 나야, 나."

 

그녀가 가진 정신장애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동할 것만을 강요하고, 의지가 약하다고 몰아붙였던 내 잘못이 그제야 비로소 제대로 보였다.

 

가끔 회원들이 묻는다.

 

"선생님은 모르죠? 얼마나 힘든지…. 아픈 것도 힘들고, 약 먹는 것도 힘들고…. 정말 모르실 거예요."

 

그렇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들의 아픔을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 어떤 게 그들을 위하는 것인지를 말이다. 다만 그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은 게 내 진심이라는 점만 확실할 뿐이다.

 

/ 안선희 정신보건간호사(남원시정신건강센터)

 

※ 이 캠페인은 전라북도·전북일보·국가인권위원회 광주인권사무소가 공동으로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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