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서 만난 원수, 죽느냐 죽이느냐…코믹과 스릴, 맛있는 연기
◆ 죽이고 싶은
요즘 한국 영화들 예뻐 죽겠다. 작품성, 흥행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있으니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처럼 한국 영화가 이런 수준이 오기 까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나 생각해보면 거짓말 조금 보태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다. 끝없는 연습으로 훌륭한 배우가 생기고,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노하우를 축적한 감독과 스태프들이 생겼는가 하면 문화인프라가 구축되면서 그들이 만들어낸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났다. 물론 벌써부터 축배들 일은 아니다. 아이를 사랑하면 매를 더 들라는 말도 있고 아직도 넘은 산보다 넘어야 할 산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선 칭찬만 해주고 싶지만 예쁜 자식이니 매도 때려야 하는 그런 영화가 있다. 유해진과 천호진이 만들어 낸 '죽이고 싶은'이다.
틈만 나면 자살을 시도하는 남자 민호(천호진)는 장기 입원 중이다. 그의 뇌 질환과 끊임없는 자살 시도 때문. 그런데 어느 날 그의 병실에 상업(유해진)이 들어오게 된다. 상업은 민호가 일생을 걸고 찾아서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싶어 했던 인물. 하지만 상업은 기억 상실에 전신마비가 된 상태다. 그래도 결코 봐줄 수 없는 민호는 상업을 죽이기 위해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어느 날 눈 떠보니 병실에 누워 있는 상업. 이미 자신이 누군인지도 기억하지도 못하고 전신마비로 꼼짝 없이 누워있는 상태다. 그런데 그의 옆 침대에 서슬 퍼런 눈으로 노려보는 민호가 있다. 같은 환자 처지에 왠지 거슬리는 그 놈. 밤마다 누가 린치를 가하는지,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머리 아프고, 삭신도 쑤신 상업. 차츰차츰 돌아오는 기억 속에 민호에 대한 적개심은 더욱 커져가는데.
이미 티저 영상에서 공개 한 것과 같이 영화는 상업이 기억을 되찾는 시점부터 분위기가 바뀐다. 캐스팅에서 예상되는 것처럼 영화 초반 유해진과 천호진은 그들의 특기인 코믹함이 묻어나는 연기를 선보인다. 몸을 움직일 수 없이 누워 지내는 이들은 스타킹이 넣은 비누가 무기가 되고 전기 통하는 곳에 분무기를 뿌리는 것이 복수다. 이렇게 자고 있는 상업을 린치하는 민호의 소심한 복수는 그 자체가 웃음으로 연결되는 것. 하지만 상업이 민호를 기억해 내면서 영화는 다중 인격자처럼 한 순간 다른 인격이 된다. 하나의 사건에 대한 다른 두 개의 기억이 교차되면서 초반의 코믹함을 이어가면서도 스릴 넘치는 싸늘함이 영화를 지배한다. 살아남는 사람의 기억이 진실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살인자가 되는 희한한 상황이 진지하면서도 관객의 흥미를 유발시키는 것. 무엇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따라 잡을 수 있는 한국 영화의 힘, 독특하면서 새로운 장르와 소재를 겁내지 않아 한다는 점을 '죽이고 싶은'이 충분히 살리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여기서 절대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천호진 유해진이란 두 배우다. 많은 조연 경력을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은 두 배우는 코믹함도 진지함도 제대로 소화해 낼 뿐 아니라 영화의 전반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의 힘 때문에 감독의 역량이 다 들어나지 못한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 여자 배우인 서효림도 의외의 선전을 해주었다.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이라면 중반이 넘어가면서부터 반전이 있는 스릴러 임에도 결말이 보인다는 것. 관객의 수준이 너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위로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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