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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체육 비사] ④ 유상수 전 도체육회 상임부회장

"무작정 찾아가 사단 체육팀 만들자 했죠"

전북체육의 역사에서 유상수(88) 초대 전북체육회 상임부회장의 족적은 뚜렷하다.

 

고교 코치와 감독으로 활동하면서 전북축구의 중흥을 일궈냈고, 전북대 학생처장으로 7년동안 재임하면서 체육과를 신설, 체육인들을 길러냈다.

 

오늘날의 전주실내체육관을 신설하는데 산파역을 했는가 하면, 운동 여건이 열악한 선수들을 육성하기 위해 향토사단에 찾아가 요즘의 상무나 마찬가지인 체육팀을 신설해내는 뚝심을 보이기도 했다.

 

이미 은퇴한지 오래돼 그를 기억하는 일반인들은 많지 않지만, 전북체육의 역사를 이야기할때 빠질 수 없는 사람이 바로 체육인 유상수씨다.

 

도내 체육인들 사이에서는 '축구선수 출신 유(柳)씨 3형제'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셋 모두 축구를 한 유상수·유평수·유도수씨가 바로 그들이다.

 

유상수-평수씨는 친형제고, 도수씨는 사촌동생이다.

 

수년전 작고한 유평수씨는 국가대표 축구선수 출신으로, 도 체육회 사무처장을 역임했으며, 유도수씨는 축구선수로뿐만 아니라 지도자로서 전북체육계에 한 획을 그은 사람이다.

 

그러면 유상수씨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완주 삼례가 고향인 그는 개성 송도고보와 서울대를 졸업한 뒤 전주고와 전주상고 교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후 전북대 교수로 옮겨 정년때까지 근무했으며, 체육분야로는 전북축구협회 전무이사, 대한축구협회 이사, 전북체육회 사무처장과 상임부회장 등을 지냈다.

 

먹고 살기도 힘든 70년대를 전후해 그는 "체육이 살아야 전북이 활기를 찾는다"는 신념으로 무작정 향토사단을 찾아가 "사단에 체육팀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했다.

 

처음엔 웃기는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으나 그의 진심어린 호소와 설득에 모두가 손을 들고 말았다.

 

체육 전문선수들이 군 복무를 하되 체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건의를 실현될때까지 계속해 마침내 승낙을 받아냈다.

 

70년대와 80년대 이들이 전북체육의 든든한 자원이 됐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전북대 학생처장 재임 시절, 체육과를 신설하고 전주실내체육관을 건립하는데 핵심 역할을 하기도했다.

 

두 차례에 걸쳐 도 교육위원을 지내면서 주창한 '1교 1경기 운동'이 결실을 맺으면서 70년대만 해도 전북 고등부팀이 서울을 제외하곤 전국 최강의 전력을 과시하곤 했다.

 

도 체육회 초대 상임부회장 재직때인 79∼80년 22억원의 체육기금을 모은 일화를 기억하는 사람이 지금도 많다.

 

당시로선 막대한 액수인 22억원을 모으는 과정에서 관련된 사람들을 찾아가 끊임없이 그 필요성을 설파하던 모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전북체육이 한단계 발전하고, 80년 제61회 전국체전의 성공적 개최를 이루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교육과 체육 일선을 떠난 후에도 그는 원로체육인으로서 97 무주·전주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의 성공 개최를 위해 다른 시도를 찾아가 홍보활동을 펼쳤고, 2002 월드컵 전주유치 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유상수 옹은 "선수생활 20년, 지도자 생활 40년 등 60년동안을 전북체육과 함께 호흡해 왔다"며 "후배들이 전북 체육의 위상을 단단히 다져주길 바랄뿐"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미 많이 늙어 제대로 듣지 못하는 몸이지만, 그는 후배들이 좀 더 열정을 가지고 해줄 것을 두번, 세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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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병기 bkweegh@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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