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지도부의 호남 발언을 되새기면 허허롭다. 지난 2008년 9월 지역 민생탐방 차 전북에 들렀던 박희태 대표는 "호남벌에서 언제 금배지를 한번 수확할까 하면서 왔다. 태산도 오르고 또 오르면 언젠가는 오를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구애작전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꼭 1년 뒤, 정몽준 대표는 대표 취임 후 첫 지방방문 행선지로 호남을 택했다. 그는 광주지역 당직자 간담회에서 "우리가 호남에서 사랑 받으려면 이곳 말처럼 '징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언급했다.
2008년 4월 MB 측근으로 당내 소장파 그룹을 이끌었던 정두언 최고위원은 쓴소리를 날렸다. "당이 선거때만 와서 지지를 호소할 게 아니라 평소에 노력을 더해야 한다. (지지층이 적은 호남지역에) 장기적 안목에서 투자해야 하는데 그렇게들 안하더라."고 털어놓았다.
호남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기반이 그만큼 취약하다는 역설이다. 한나라당 사람들은 호남에서 한나라당 당원으로 일하는 것은 만주벌판에서 독립운동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한다. 지도부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욕을 다져왔다.
그런 탓일까. 변화의 조짐도 있었다. 지난해 도지사 선거때 정운천 한나라당 후보가 얻은 18.2%의 지지율은 한나라당 사람들한테는 하나의 '희망'이었다. 석패율제가 시행되면 내년 4.11총선에서 적어도 3∼4석은 건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래서 한나라당 사람들은 지금 신발끈을 매만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호남배제론'이 튀어 나왔다. 홍준표 대표는 호남과 충청에 안배하던 지명직 최고위원 두자리를 모두 충청에 주겠다고 공언했다. 표가 나오지 않는 호남을 포기하겠다는 뜻을 이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낸 정치인도 아마 없을 것이다.
전국을 챙겨야 할 집권 여당 대표의 생각 치고는 너무 계산적이다. 당 차원에서도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최고위원회의에 호남이 배제되는 건 작은 문제가 아니다. 정강정책에도 어긋나는 독선이다. 한나라당의 정강정책은 '이제 구각을 깨고…지역주의에 안주하지 않는 전국정당으로 거듭 태어난다'고 적고 있지 않던가.
홍 대표의 발언은 어르고 달래도 모자랄 판에 찬물을 끼얹고, 이제 막 틔우려던 싹을 짓뭉갠 꼴이나 마찬가지이다. 재고해야 옳다.
/ 이경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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