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5 23:20 (Wed)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문화일반
일반기사

[김용택의 거리에서] 물난리

시골 어머님이 한밤중에 전화가 왔다.

 

"야야, 용택아 큰 일 났다. 물이 큰 집 논두렁을 넘어 와 부렀다. 어쩐 다냐. 칠흑 같이 어둔 디. 야야 어쩐 다냐. 불을 끄기라도 허지만, 물은 어쩌지도 저쩌지도 못 한다. 이게 뭔 일이 다냐. 살다 살다 이런 일은 첨이다. 동네 사람들이 시방 다 창섭이 네 집으로 도망간다. 만조성이 이장 하고 쌀가마니를 나르고 있다. 승권이네 집은 진작 물이 들어가 부렀다. 나는 통장만 가지고 피난 간다. 네 책은 어쩐다냐."

 

"어머니 다 버려, 다 버리고 어머니만 얼른 도망 가세요. 내가 시방 가까요."

 

"아니다, 오지마라. 동네 길이 다 막혀 부렀다. 군수님 허고 의원님은 동네 뒷산을 타고 왔단다. 참말로 이것이 시방 먼 일이 다냐. 물이 시방 동네로 달려온다. 회관 마당까지 물이 넘실거린다. 이따 또 전화 허마."

 

수마는 임실군 장산리 마을 앞 논과 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멈추었다.

 

강가에 바위가 많은 섬진강 상류에 비가 밤 세워 오면, 강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물소리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물이 불어나면 물속에 있는 커다란 돌멩이들이 굴러가는 소리는 장난이 아니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물이 금방 마당으로 달려오는 것 처럼 우글거리고, 더그럭 거리고, 쿵쿵거린다. 아버님이 물을 확인하시러 물가로 나갔다가 들어오시면서 "아직 멀었구만, 벼락바위도 안 넘었어." 하면서도 밤 내내 잠들지 못했다.

 

날이 세면 사람들은 강가로 물 구경을 나왔다. 고기를 낚고, 투망을 던지고, 얕은 물로 도망 나온 물고기들은 소쿠리로 떠 잡았다. 강변에 쌓아 둔 보릿대가 떠내려가면 보릿대 더미 위에 뱀들이 새까맣게 올라가 둥둥 떠내려갔다. 비만 그치면 물이 금방금방 빠져나가 논으로 따라 들어 온 고기들을 통발을 놓아 잡았다. 물이 빠지면서 남실거리는 논두렁으로 커다란 고기들이 휙휙 뛰어 넘으면 아이들은 뛰는 고기들을 향해 소쿠리를 들이댔다. 고기들이 소쿠리 속에서 펄떡펄떡 뛰었다.

 

그땐 그랬다. 내가 기억한 마을의 물난리는 그 수준이었다. 이제 달라졌다. 올여름 사람들 마음속에 심어진 비에 대한 공포는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 넘은 자연 현상에 대한 대응, 대비, 대안, 대책은 이제 한 가지로는 안 된다. 다각적인 대책을 세워 두어야 한다. 그 중에 하나가 맞으면 된다. 물난리 후 늘 인재 가능성이 더 크다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수재는 분명 인간이 막을 수 있거나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