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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球)을 잃어버린 우울한 고3의 12월

▲ 이 세 재

 

시인·전주 우석고 교감

빌 게이츠가 미국의 마운틴 휘트니 고등학교에서 연설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인생충고 열 가지를 말했는데 그 열 번째가 “공부 밖에 할 줄 모르는 ‘바보’한테 잘 보여라. 사회에 나온 다음에는 아마 그 ‘바보’ 밑에서 일하게 될지 모른다.”라는 것이었다. 빌 게이츠 자신이 미국 수학능력고사에서 1,600점 만점에 1,590점을 맞고 하버드 법대에 입학한 수재로서 결국에는 자기 밑에 수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게 되었으니 자신 있게 이런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공부를 잘 하는 것이 성공의 확률을 높인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흔히 대학에 가는 것을 두고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확률을 높이는 것이라 말한다. 물론이다.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이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확률을 높이는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실은 공부를 하기 위한 대학이 아니라 취업이나 사회적 지위 획득의 수단으로 대학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그리하여 소위 일류대학에 진학하면 곧 성공이 보장된 것처럼 여기고 모두들 더 좋다는 대학을 가기 위해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

 

더구나 대학에 진학하는 건 앞서 말했듯이 성공의 확률을 높일 뿐인 것인데도 마치 대학이 인생을 결정짓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대학은 학문을 탐구하는 곳으로서 각자 특색 있는 대학들에서 연구된 지식과 진리들이 인류의 문화를 발전시키고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원동력을 제공하는 곳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혹 취업을 위한 노력만을 하는 대학이 있다면 그곳은 직업훈련소이지 대학이라고 불러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어느 나라에나 명문대학은 있다. 그러나 명문대학이 인생의 성공을 보장하는 곳은 아니다. 빌 게이츠도 하버드 법대를 중퇴하고 자신의 꿈인 컴퓨터로 성공한 사람이다.

 

이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수능성적을 받았고, 내일 모레면 수시합격생이 발표되고 이어서 정시모집에 원서를 접수하는 등 바야흐로 대학 입시철이 되었다. 이때가 되면 학생들이 받은 점수에 따라 마치 우시장에서 등급에 따라 팔려가는 소떼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소위 배치표라는 것이 작성되면 자신의 적성이나 능력과는 관계없이 점수에 줄그어진 대학과 학과를 선정한다. 청소년기를 다 바쳐 공부한 학생들의 운명을 배치표가 이리저리 결정해버린다. 그리고 그 명단이 학교 진학게시판에 때로는 일 년 내내 걸리게 된다. 서울대학교에서부터 어느 3류 대학교라고 불리는 곳까지 그들의 가슴에도 걸려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대학원서를 접수하고 나면 고 3들은 대부분 풀이 죽어 그 좋아하던 축구도 하지 않는다. 내가 있는 학교에는 인조잔디 축구장이 근사하게 마련되어 뻥뻥 축구공 차는 소리가 신나는 학교이다. 어쩌다 체육시간 빼먹는 날이면 교실 출입문에 주먹자국이 선명하게 남는다. 그 좋아하던 축구도 하지 않는 고 3의 우울한 12월도 벌써 7일째다.

 

아이들은 왜 공을 좋아할까? 공은 정직하다. 주어진 힘만큼 튀어 오른다. 주어진 힘만큼 멀리 가고 그 힘이 남아 있을 때 부딪치면 그만큼 되돌아 올 줄도 안다. 스핀을 넣으면 그 방향을 따라 휘어져 가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던지거나 차면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숨어버린다. 수평이 아니면 정지해 있지 않고 경사를 따라 굴러가 버린다. 이렇게 정직한 공을 아이들은 좋아한다. 마치 자기가 던진 만큼 미래가 자기에게 되돌아올 것을 믿어왔을 것이다. 그런데 대학원서를 쓰는 대부분 고 3학생들은 하루아침에 이 믿음을 잃고 허탈해 할 것이다.

 

자신이 던진 공의 궤적을 따라 자신의 꿈이 이루어진다는 확신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하는 세상을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고쳐야 할지 반성하는 12월이 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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