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는 '전북일보 4·11총선기획단'과 함께 이번 선거가 갖는 의미를 진단하고, 유권자들이 가져야 할 후보선택 기준을 제안한다.
4·11총선은 12월 대선과의 연계성 뿐만 아니라, 정치권이 국민에게 대대적인 정계개편을 통한 쇄신을 약속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기대와 관심 속에 진행되어 왔다. 그런데 막상 베일이 벗겨진 여·야의 공천 결과는 지극히 실망스러운데다가 선거문화 또한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해 정치권이 도대체 이번 총선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있기나 한건지 고개가 절로 갸우뚱 해진다.
여기서 불과 얼마 전의 정치적 상황을 한번 돌아보자. 위기에 빠진 민주당은 몇 달 전 시민사회와 통합해 통합민주당을 출범해야 했고, 한나라당도 당을 재탄생시키겠다며 부랴부랴 당명을 바꾸었다. 진보세력도 새로운 정당을 만들었다. 한국정치사에서 이처럼 거의 모든 정당의 간판이 선거 전에 새로 바뀐 것도, 정당이 비정치권의 시민세력과 정치통합에 나선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모든 일의 발단은 그보다 몇 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년 서울시장보궐선거를 앞두고 안철수교수가 50%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더니 급기야 차기 대선후보로서도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이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민주당은 안철수 교수의 양보를 받은 박원순시민후보를 도울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시민혁명이었다. 정치권을 향한 실망감이 한순간에 정당정치를 뿌리째 흔들었던 이 사건은 '정당정치의 위기'를 통해 한국정치에 새로운 과제를 남기게 되었다.
정치권이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위기의 원인이 본질적으로 대표자에게 정치적 결정권을 위임하는 현재의 대의민주주의체제 그 자체에 있음을 먼저 인식해야한다. 지금처럼 유권자가 자신이 선택한 정치인이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해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는 선거 때조차도 선거권자와 피선거권자간의 개인적 관계만 존재할 뿐, 시민의 삶과 관련된 생활문제를 시민이 공동으로 논의하고 정치에 반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다보니 시민의 공동체적 관계는 갈수록 상실되고 지역민의 생활 의제는 정치적 결정무대에서 부차적인 것으로 다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극단적인 1% 편중사회가 가져온 서민과 젊은층의 삶의 파괴는 이들에게 다시금 공동체적 소통과 협력의 필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결국 안철수신드롬을 통해 드러난 시민의 직접적인 정치참여는 현재의 대의민주주의가 가진 문제점을 자각한 시민이 직접 만들어낸 변화의 요구인 것이다.
이처럼 시민의 직접 정치참여가 역사적 흐름인 이상 정치권은 시민정치를 흡수해야만 생존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당명 변경 같은 표면상의 방법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정당이 시민 속으로 들어가 호흡하고 그들의 공동체적 삶과 문화를 고민하고 그들의 생활의제를 정책의제로 실현하는 노력을 기울일 때에야 근본적인 해결의 길이 열릴 수 있다.
당장 이번 총선에서부터 정치권은 지역 주민의 삶과 자치역량을 키우기 위한 생활의제를 정책공약으로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만 등 돌린 시민의 마음이 돌아설 것이다. 4·11총선이 주민참여정치가 실현되는 계기가 되도록 유권자 또한 냉정한 공약평가의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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