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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만 총감독은…

'수사반장·제1공화국·야망의 25시' 등 정치드라마 대명사

1948년 전주 교동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어린 시절을 외롭게 보냈다. 부친이 고위직 행정공무원이어서 윤택한 생활을 했지만 집에 마음을 붙이지 못했다. 전주 북중 2학년 때 서울로 올라온 그는 공부 대신 다른 쪽(?)에 마음을 두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싸움 초단'일 정도로 싸움을 잘했다. 방황했던 어린 시절에는 감추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지만 그래도 그 시절이 있었기에 문화 판과 인연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방황했던 시절, 고등학교를 여섯 군데나 전전했던 그는 '최종에는 명지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중고등학교를 마음대로 다닌 것도 자신의 삶에'필요악'이었다고 말하는 그는 나름대로 철학과 지각을 갖고 있는 아이의 방황이라면 언젠가는 제자리로 온다고 믿고 있다.

 

중학교 3학년 때는 공보처가 주최한 시나리오 공모에 응모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외갓집을 가기 위해 가출했던 기억을 그대로 담은 이 최초의 작품은 물론 떨어졌다. 방황은 대학 입학과 함께 끝냈다. 연극영화과 실기시험에 자신이 없어 서라벌예대 신문방송학과에 들어갔지만 3학년 때 과를 옮겨 끝내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1학년 2학기 때 정식으로 출가(?)한 이후에는 학교에서 기숙하며 지냈다. 그가 '생애에서 가장 알차고 화려하고 보람 있게 생활했던 때'로 회상하는 그 시절에 '슬리핑 야성'도 단련됐다. 1973년 MBC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4개월 동안 날밤을 새며 학과공부를 했는데, 전문시험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맞아 합격했다. 신입시절 1년 동안은 통근 사이렌 불면 퇴근하는 일상에서 매일 아침 생방송을 했을 정도로 방송에 모든 시간을 바쳤다. 일 잘한다는 소문이 나 드라마 파트와 쇼 파트에서 프러포즈를 받았는데 더 적극적이었던 드라마를 택했다. 어린이 연속극을 만들 때는 아동심리까지 공부했고 청소년드라마 〈제 3교실〉을 만들때는 PD라는 직업에 대한 철학을 갖게 됐다. 이후 〈수사반장〉 〈제 1공화국〉을 비롯한 공화국 시리즈, 〈거부실록〉 〈야망의 25시〉 〈땅〉 〈간난이〉등 수많은 대표작을 냈다. MBC를 거쳐 SBS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그는 정치드라마에 열정을 쏟았다. 덕분에 '고석만'이란 이름은 정치드라마의 대명사가 됐다. 99년 청와대 행정관으로 들어가 일하기도 했지만 그 뒤 국립영상간행물제작소 소장과 K-TV대표를 거쳐 2003년 EBS 사장으로 다시 방송으로 돌아왔다. 은퇴할 나이에 오로지 '좋은 드라마를 만들고 싶어' MBC 제작본부장으로 다시 들어갔으나 그 꿈은 무참히 깨졌다. 2007년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에 취임했으며 퇴임한 이후 연극 연출 등으로 '젊은 시간'을 보내다 여수엑스포 총감독으로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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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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