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기의 미덕은 어디 바둑뿐이겠가. 인생도,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동영 민주당 고문이 지난주 대선 불출마 뜻을 밝혔다. 한때 최대 조직을 거느렸고 대선 후보로서 날렸던 과거를 생각하면 힘든 결정이었을 것이다.
정 고문은 지난 대선에서 떨어진 뒤 '나는 부족한 대통령 후보였다'는 반성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참여정부가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한다는 비판에 직면했을 때 모든 것을 걸고 대통령 앞에서 방향 전환을 주장하지도 못했다. 분양원가공개 공약이 좌초당할 때 반기를 들지 못했다. 한미FTA를 초고속으로 밀어붙일 때도 비켜서 있었다." 차기 대선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으리라.
몇차례 '악수(惡手)'도 두었다. 2009년 4.29 재보궐 선거때 자신의 원래 서울 지역구를 포기하고 고향에 내려와 손쉽게 당선됐다. 뼈를 묻겠다던 장수가 후방으로 내려와 보급품을 챙긴 격이다. 무관(無冠)의 고통을 견디지 못한 탓이리라.
또 대선후보까지 지냈으면서 당의 주문을 거스르고 무소속으로 출마, 공천후보를 거꾸러 뜨린 것도 거물스럽지 못한 처신이다.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를 서울로 이전한 것도 막판 마지못한 결정 아니던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몽골기병' 답지 못한 행태들이다.
반성문을 쓴 뒤 정 고문의 행동은 달라졌다. 용산참사 현장을 찾아 적극적인 해결 노력을 기울였고 4대강 개발 반대와 한진중공업 사태 때도 열의를 보였다. 진정성과 존재감 두 포석 차원이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마음을 비웠다. 정치인이 대중에게 잊혀진다는 건 곧 죽음이다. 이런 걸 극복하고 "한 발 뒤에서 정권 교체에 모든 것을 쏟아 붓겠다"고 했다. 훗날 복기에서 잘한 결정으로 해석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정치이기 때문에 그렇다. 계산하지 않는 우직한 정치가 길게 보면 가장 좋은 길일 수 있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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