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단체마다 발주 사업의 예산을 삭감하는 일이 관행처럼 굳어졌다. 삭감 예산이 많은 것을 치적으로 내세우는 곳도 있다. 예산 칼질이 다반사로 이뤄지다 보니 아예 삭감 폭을 고려해 예산을 부풀리는 역기능마저 나타나고 있다.
계약심사제는 발주사업의 원가산정과 공법 선택, 설계변경의 적정성을 심사함으로써 사전에 예산 낭비요소를 제거하자는 취지에서 시행되고 있다. 잘만 운영하면 예산절감과 공사의 품질향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런데 운영 과정에서 불합리한 심사가 비일비재한 모양이다. 예산절감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공사의 품질이나 현장여건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예 삭감 폭을 설정해 놓고 심사가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또 예산 칼질을 하지 않으면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처럼 인식하는 잘못된 풍조도 있다.
예산을 무조건 삭감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그렇다면 부실시공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과다하게 책정된 예산은 깎고 적정하게 편성된 예산은 승인해야 옳다. 또 현장여건이나 공사의 특성을 고려할 때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예산을 늘리도록 독려하는 것도 심사의 기능이다.
그럼에도 일부 자치단체들은 마치 '심사=예산삭감'인 것처럼 잘못 알고 있다. 이런 관행이 계속되다 보니 원가삭감 비율이 최근 3년간 평균 8%(2009년 8.6%, 2010년 8.2%, 2011년 8.1%) 대에 이른다. 건설업체로서는 적정하게 받아야 할 공사비를 가만히 앉아서 8% 이상 삭감 당하는 꼴이다.
도내 건설업체들은 그렇지 않아도 장기 불황에 빠져 죽을 맛이다. 공사물량이 급감한 데다 주택시장까지 얼어 붙어 어려움이 많다. 실제로 도내에서 발주된 관급공사는 올들어 5월말 현재 5,599억원 규모로 2009년 동기 대비 59%(8,163억)나 줄었다. '개점휴업' 업체들도 부지기 수다. 이런 마당에 발주공사마다 묻지마 식의 예산삭감이 이뤄지고 있으니 업체들은 일할 맛이 나지 않을 것이다. 울며 겨자먹기로 공사를 하는 업체들이 많다.
심사는 공사품질이나 현장여건이 먼저 고려돼야 한다. 더구나 예산절감 실적을 의식한 나머지 '몇 % 삭감' 하는 식의 기계적인 심사는 없어져야 옳다. 공사부실과 업체 죽이기로 결과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건설협회전북도회 등 도내 6개 지역건설단체들이 생산적이고 합리적인 원가심사를 촉구하는 건의서를 자치단체한테 보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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