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5 15:27 (Wed)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36. 남원 운봉 송흥록 생가 - 판소리 큰 줄기 동편제의 탯자리

우리 음악 공부하는 사람들에 주목받는 유적지

   
 
 

판소리는 우리민족의 정서와 멋과 풍류가 어우러진 민중 음악이다. 판소리는 위로는 임금에서부터 아래로는 민중들까지 즐겨 들으며 함께 울고 웃었다. 판소리의 양대 산맥은 동편제와 서편제다. 남원은 동편제 판소리의 탯자리다.

 

수많은 명창과 명인들이 지리산 자락에서 각고의 노력 끝에 득음을 이루며 한국 판소리사에 굵은 족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판소리 명창 반열에 오르기 위해선 지리산 계곡에서 독공하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다. 그만큼 이 지역은 판소리를 위한 자연환경과 인문 환경이 하나가 된 곳이다.

 

최근 들어 지리산 둘레길이 펼쳐져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쉽게 판소리 명창과 조우하게 된다. 우리음악이 대우받을 수 있는 주변 환경이 형성된 것이다. 특히 남원시 운봉읍 비전마을은 동편제 판소리의 창시자인 가왕 송흥록이 태어난 곳일 뿐 아니라 여류명창 박초월의 판소리를 익힌 소리의 고향이란 점에서도 범상치 않은 지역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운봉은 우리나라 3대 악성의 하나인 옥보고가 거문고를 크게 발전시킨 곳(운상원)으로 알려져 있어 이곳은 우리나라 전통음악의 산실이다. 이처럼 운봉이 이 땅의 소리의 중심지로 거듭나는데 대해 향토사학자 김용근씨는 운봉을 지칭해 동편제 판소리의 창시자 송흥록을 비롯하여 수많은 소리꾼들의 수련 장소였던 구룡계곡 뿐만 아니라 소리를 즐겨하는 귀 명창들과 그들을 후원하는 재력가인 만석꾼이 있어 소리를 하기에 가장 적합한 자연환경을 갖춘 지역"이라고 소개한다.

 

조선 순조 때 운봉읍 화수리 비전마을에서 태어난 송흥록 선생은 민속음악 가운데 가장 느린 진양조를 판소리에 응용, 판소리의 표현영역을 확대시키는 등 다양한 음악 기교를 사용함으로써 극적이면서도 예술적인 판소리를 완성시킨 인물이다. 특히 〈춘향가〉의 옥중가중 귀곡성(귀신 울음소리)은 그가 창작한 독창적인 판소리 창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송흥록 선생으로부터 출발된 동편제는 형의 고수로 지내다가 뒤에 형에 버금가는 명창이라는 소리를 들은 아우 송광록과 손자 송만갑이 대를 이어온 이후 계층과 지역을 초월한 광범위한 애호를 받는 예술로 부상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송흥록은 철종으로부터 정삼품인 통정대부의 벼슬을 받기도 했으나 세도가 김병기 일가의 몰락과 대원군의 부상에 따라 명예와 돈도 모두 팽개치고 함경도 지방을 떠돌다가 생을 마감했다.

 

평생을 소리에 미쳐 소리를 지키다 간 송흥록은 지금도 판소리사에서 큰 업적을 남긴 대명창이다. 소리가 천시 받던 시절, 소리를 생명줄처럼 지키고 살았던 그는 지금도 후학들에 판소리 중시조뿐 아니라 치열한 정진과 새로운 것을 향한 진양조 창시자, 그리고 후대에 명맥을 이어놓은 교육자로 첫 손에 꼽힌다.

 

2000년부터 비전마을에 국악성지가 조성되며 송흥록 선생 생가와 박초월 명창 고택이 복원되어 있고 동상 등이 건립되어 조명을 다시 받고 있다. 우리 소리를 지켜온 명창에게 후학들은 제대로 대접을 해주고 있는 형상이다. 지금도 판소리 전공자뿐 아니라 우리 음악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판소리 유적지로 주목받고 있다.

 

/전북도문화재전문위원·한별고 교사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