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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완주 갈동유적 1호 무덤 출토 청동기 거푸집 - 하나의 틀로 '한국식 청동칼' 세형동검·청동창 제작

 

완주 갈동의 청동칼 거푸집이 빛을 다시 본 것은 무려 2100년 만의 일이다. 무덤 속에 함께 묻힌 주인이 생전에 가장 애지중지했던 물건일지도 모른다. 귀한 청동칼을 만들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2003년, 전북 완주군 이서면 반교리의 갈동마을과 양동마을 사이에 새로운 도로가 생겼다. 이곳에 남아있던 유적이 도로 건설로 파괴되기에 앞서 문화재 발굴이 이뤄졌다. 호남문화재연구원이 70여 일에 걸친 조사 결과 끝에 낮은 언덕 위에서 초기철기시대(기원전 3~4C ~ 기원전 1C·청동기가 주로 쓰였지만 점차 철제품의 비중이 커졌던 시기)의 움무덤 3기가 확인되었다.

 

그중 1호 무덤에서 출토된 거푸집이 이번 글의 주인공이다. 오늘날이야 뛰어난 철제품을 자유자재로 만들어내지만, 쇠를 부릴 기술이 모자랐던 당시에는 녹는 온도가 보다 낮았던 청동기가 주력 생산품이었다. 구리와 주석을 녹인 주물을 미리 만들어 놓은 거푸집에 부어 식히면 우리에게 익숙한 청동기가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따라서 정밀한 거푸집을 마련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였다. 갈동 출토 거푸집의 원석은 곱돌(활석)이다. 만지면 양초처럼 매끄럽고 쉽게 긁힌다. 무언가를 새기기에 적합한 소재였다. 당시의 장인은 거푸집으로 쓸 곱돌을 구하고 나면, 알맞은 크기와 형태로 다듬고 표면을 갈아 평탄한 면을 만들었다. 다음에는 원하는 청동기의 모양을 평면 위에 설계하고 그 안을 파냈다. 새길 때 쓰는 도구로는 더 단단한 돌이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양면을 가진 청동칼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틀이 하나 더 필요했다. 두 개의 틀을 만들어 새긴 면을 서로 포개면 한 세트의 거푸집이 완성되었다. 갈동 출토 거푸집의 두 틀에 새겨진 주형의 외곽선이나 깊이는 서로 거의 오차가 없을 정도로 정교했다. 장인은 이렇게 포개진 거푸집을 세우고 미리 뚫어 놓은 구멍으로 녹인 청동 물을 부어 넣었다. 거푸집 속에서 주물이 굳혀지기를 기다린 뒤 떼어내 숫돌로 표면을 매끄럽게 하거나 날을 세우면 이윽고 하나의 청동기가 탄생됐다. 청동기는 당대의 최첨단 기술이 결집돼 만들어진 신분과 의례의 상징물이었다.

 

완주 갈동유적 출토 거푸집은 두 개가 한 세트를 이루는데 각각 '한국식 청동칼'이라고도 부르는 세형동검의 주형이 새겨져 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두 개 중 하나의 반대면에 청동창의 주형도 있다는 것. 하나의 거푸집으로 청동칼과 청동창을 제작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완주 지역은 초기철기시대 중심지 중 하나로 손꼽을 만한 곳이다. 근래에 조사된 갈동, 신풍, 덕동 유적의 대규모 무덤 유적에서 쏟아져 나온 다양한 금속제품들은 전국 어느 유적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오히려 더 값지다. 무엇보다도 거의 발견되지 않았던 한국식 청동칼의 거푸집이 여기서 나온 점에 주목해야 한다. 교역이 아닌 자체 생산의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즈음에서 역사적으로 수준 높은 선사 문화의 근간에는 풍부한 생산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해본다. 어쩌면 맛과 멋이 가득한 예향의 고장 전북의 전통은 2100년 전에 튼튼한 뿌리를 내려놓은 것 아닐까.

 

/최경환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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