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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어진

태조어진 원본이 공개됐다. 태조어진은 진귀한 존재다. 태조의 초상이 역대 왕의 전신초상으로는 하나 밖에 남지 않은 '어진(御眞)'이어서만이 아니다. 어진은 미술사의 영역에서도 그 의미가 크다. 우리나라의 초상화 역사는 깊고 풍요롭다. 특히 조선시대의 초상화는 '조선은 초상화의 왕국'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가장 왕성하게 제작되어 미술사를 주도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초상화는 왕의 초상 '어진'이다.

 

초상화, 특히 왕의 초상화는 극도의 사실성이 요구됐다. 초상화의 대부분은 왕이 생존해있을때 그려졌지만 더러는 작고한 뒤 그려지기도 했다. 작고한 뒤에 그려지는 초상화는 아무리 사실에 가깝게 그린다해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지만,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완성되는 초상화는 실제 왕의 초상과 매우 흡사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조선시대에 제작된 수많은 초상화들은 원본으로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전란을 겪으면서 소실되었거나 실제 사용하다가 일정한 기간이 지나 낡게 되면 새로 제작한 뒤 불태워 없애버리는 의례를 거쳤기 때문이다.

 

왕의 초상도 예외가 아니다. 조선시대 왕들의 초상화가 얼마나 활발하게 제작되었을지 짐작할 수 있지만 전란을 견디고 화재를 피하여 살아남은 어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과 영조 어진 두개뿐이었다. 특히 태조의 어진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그린 전신상으로는 유일하다.

 

전주 경기전의 어진은 1408년 태조가 작고한 이듬해 전주부의 요청으로 경주의 집경전본을 모사하여 1410년 봉안 한 것을 1872년 다시 새롭게 제작한 것이다. 7년 전쯤에도 태조어진을 제대로 만날 수 있는 귀한 기회가 있었다. 국립전주박물관이 특별기획으로 마련한 전시회에서였다. '왕의 초상'은 놀라움의 절정이었다. 섬세한 세필과 강렬한 채색, 배채(背彩)의 기법을 활용해 자연스러움을 한껏 살려낸 용안의 품격에 관객들은 감탄했다.

 

어진은 당대를 통치한 조정과 국가의 상징이라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가 크다. 태조어진은 여기에 조선 창업자의 초상이라는 또 다른 의미를 더한다. 일반인들이 어진 원본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이번 공개는 지난 6월 태조어진의 국보승격을 기념해 기획된 자리다. 공개 기간도 정해져 있어 계획대로라면 11월 18일까지만 경기전 안의 어진박물관에서 원본을 만날 수 있다.

 

한 시대를 호령했던 권좌의 통치자를 초상화로 만나는 일은 흥미롭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 관객들은 초상화 앞에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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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용 kimwy@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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