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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동엽 선생을 추모하며 - '전통문화 아꼈던' 형, 꿈에라도 보고싶네요

 

지난 19일 조용히 눈을 감은 이동엽 전주한옥생활체험관 이사장. 고인은 지역 문화계 현안마다 묵직한 존재감으로 총대를 멘 '돈키호테'였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한 잔 걸치는 술자리를 좋아하는 주당(酒黨)이었으며, 어떤 상황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한량(閑良)이었다. 호걸의 풍채는 세월로 사위었으나, 그 허세와 패기, 웃음기 어린 목소리는 오랫동안 그리울 것이다. 김병수 (사)이음의 대표가 그를 보내는 마음을 전해왔다.

 

응급실에 온 지난 7일 밤. 이동엽 선배는 오가는 정신 결에도 "내가 누구여"를 묻는 부인에게 입술만 달싹 "공주마마"라며 농담을 놓지 않았다. 입원이 결정되고 다시 일어날 희망이 희미한데도 가끔 정신이 돌아오면 링거를 술로 대신하고 싶다거나 담배 한대 태우자고 한다. 기력도 돈도 없는 처지에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줘야한다거나 도움받은 사람을 적어두라거나 한다. 속없는 이분을 만난 건 내 나이 서른셋. 여행 후 속절없을 방황기에 낡은 한옥집 다문. 지금의 한옥마을 교동의 한 찻집, 마당에서다.

 

멍석에 조촐한 술상 보고, 술 들다 차 들다 거나하고 한가롭던 나날이었다. 어느 날은 취중에 절을 올리셔서 황망한 내가 반절을 했더니 "'뒤'를 보라"고 했다. "끄덕이는 분꽃이 고와서, 끄덕끄덕 나에게 해주는 인사가 고마워" 그랬다나. 그런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존재감을 일깨워주곤 했다.

 

어느 날엔 진지하게 한옥마을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길 나누다가, 세속적이고 속물스런 그의 답변에 울컥하는 나를 가만 바라보았다. '내가 쫌 나갔구나'싶어 철렁했는데, "병수야, 너 같은 놈을 영어로 뭐라는지 아냐. (한참 침묵) 보일러라고 한다." 고 했다. 그 때 폭폭 터지던 웃음을 애써 참았던 날도 있다. 나는 지금도 열 받으면 끓어오르는 염천의 나날이고 또 그럴라치면 그를 생각하며 내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게 무엇인지 돌아보게 된다. 더 많은 날들은 동북공정이나 미국의 중동침략을 비난하다 못해 치우천황에 대해 장한 분개를 떨치지 못하는 애달픈 국수주의자로 살았다.

 

언젠가는 볕을 잘 받아들일 광합성 촉진제 제품과 개발자를 모셔서 환경과 농촌을 살릴 큰 사업을 벌이자며 장담한 터에 서로 어려워했던 날도 있었다. 토종 콩 종자를 보급하는 모임에 불러서 비기를 알리듯 예언서에 다 된다고 하기도 하고, 한지를 곧 닥칠 피부 바이러스에 대응할 유일한 약이라고도 했다.

 

한지나, 토종 종자나 차밭에 대한 애정이나, 전통주·판각 등의 이러저러한 사업과 행사들이 그이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소리꾼들과 춤을 추다 소리북틀에 돈 꽂는 걸 좋아하셨고, 풍물을 치면 노상 춤을 췄다. 막걸리 만큼 남부시장 '정집'의 반찬들을, 또 소리꾼들과 어울리기 좋은 전주 평화동 골목의 막걸리 집'예가'를 좋아하셨다.

 

그는 전통문화를 사랑하는 40~50대들의 20대 시절부터 '형'이었다. 젊은 날 검도 수련을 했고, 주먹패들과 교분으로 협객소리를 듣기도 했다. 나중엔 (사)이음 회장으로, 굿 치던 '갠지갱' 만든 이로, 다문·산조 페스티발·한옥생활체험관의 당주가 됐다. 그 시간 동안 그를 잘 닮은 아들과 딸을 두었다. 병실에 오시고 난 뒤 한 달, 머무름 없고 든 정 놓지 않을 만큼 있다 가셨다. 여러 상주들은 형이 가시는 22일 오후 1시30분 전주한옥생활체험관에서 노제를 열고 그를 보낸다. 전주의 달빛은 이동엽과 함께여서 더욱 미만하였고, 높은 이상은 현실만큼 황망하여도 정신은 형형하여 잘 놀다 잘 가는 게 고인의 유지리라. 꿈에서라도 긴 술자리 끝에 그가 젓가락 귀에 상추 꽂고 춤판을 벌이는 모습을 보면 좋겠다.

 

 

/김병수 (사)이음 대표

이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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