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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카톡 연애 - 신명진

"엄마! 밥 언제 줄 거얏?" "앗, 깜짝이얏.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알았어. 곧 줄게 잠깐만 기다려 봐."

 

나는 점심밥 때가 훨씬 넘은 줄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두 시간 채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너무도 설레고 흥분된 기분을 멈추고 싶지 않아서였다. 딸아이의 신경질을 듣고도 나는 한참을 더 그렇게 있었다. 엄마가 스마트폰만 하고 있다고 숙직인 아빠한테 이를 거라며 딸아이가 전화 거는 시늉을 하는 것을 보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고, 미안해 미안하다. 엄마가 왜 이런다니. 정신 차리자 차려." 나는 고개를 휘휘 젓고 혼잣말을 하며 서둘러 점심밥을 챙겼다.

 

"보고 싶어 못 참겠다. 한 번 만나자."라는 꿈같은 문자가 여전히 눈앞에 아른아른 춤을 추었다.

 

우리나라 전체인구 10명 중 6명이 갖고 있다는 스마트폰을 나도 6개월 전에 갖게 되었다.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정보공유나 기타 폭 넓은 도움을 얻을 요량으로 멀쩡한 일반 휴대폰을 버리고 바꾼 것이다. 처음엔 나이 탓인지 조작에 겁을 먹고 기능의 대부분을 딸에 의지해 간신히 기본 기능만 사용했다. 그러다가 차츰 익숙해지자 여간 쉽고 편리한 것이 아니었다. 그 기능 중에는 카카오톡(카톡)이라는 것이 있다. 스마트폰 가진 사람들끼리 무료로 채팅할 수 있는 아주 쉬운 기능이다. 전화번호만 알면 누구 하고나 가능하며 몇 마디로 주고받는 간단한 인사나 문자가 일상의 무료함을 한순간 달래주기도 하고 아이들처럼 마냥 즐거운 기분으로 만들어 준다.

 

남편이 1박2일 주말산행을 가고 없는 어느 토요일 저녁 무렵이었다. 띠리링, 카톡 메시지도착 음이 울렸다.

 

"오랜만이다. 잘 있냐?" 낯선 그러나 전혀 낯설지 않은 이름의 새로운 카톡이 왔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초등학교 동창 이름이었다. 5학년 때 나와 짝꿍을 했던, 그러다가 6학년 초에 어디론가 전학을 가버렸던 남자애였다. 난 놀라고 궁금하고 설레어 대꾸하기 시작했다.

 

"정말 반갑다. 이게 얼마만이야?"그렇게 시작된 카톡이 두 달을 꼬박 이어오고 있었다. 카톡을 한지 약 2주가 지나고부터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마치 한 가족인 것처럼 문자를 주고받았다. 아침에 식구들을 챙겨 보내고 나면 곧바로 굿모닝 인사를 보내고, 점심은 뭘 먹을 거냐며 하트를 동동 띄워 보내고, 오후엔 앙증맞은 찻잔에 담긴 차 이모티콘을 날려주고, 밤엔 유혹적인 새빨간 입술 이모티콘의 굿나이트 키스까지. 즐겁고 설레지 않은 날이 없었다. 어쩌다가 대꾸가 없거나 거르기라도 하는 날엔 너무 궁금했다. 못내 아쉬워 스마트폰을 화장실까지 들고 다니며 열 번도 더 들여다봤다. 뿐만이 아니다. 딸아이에게 스마트폰에 왜 잠금 설정을 해 놓느냐며 역정을 냈던 일을 감쪽같이 잊어버리고 어느 순간 나도 비밀 잠금 번호를 설정해 놓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도 너 때문, 단풍이 들어도 너 때문, 초승달 속에도 네 얼굴, 찻잔 속에도 네 얼굴, 네거리에서도 네 생각, 음식점에서도 네 생각'

 

신기하게도 도대체 그 애가 안 따라붙는 곳이 없었다. 그 애 생각만 하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하늘을 나는 새였다가, 어여쁘게 핀 꽃이었다가, 수줍은 열아홉 살 소녀처럼 즐겁다가, 어떤 이유로 유부녀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 짜증스레 꿈에서 깨곤 했다. 바로 아까 같은 순간처럼 말이다.

 

'만나면 무슨 말을 하지? 밥을 먹을까, 차만 마실까? 아니야. 이대로가 좋을지도 몰라. 나이 든 내 얼굴을 보고 실망 할 거야. 만나지 말아야지. 아니야, 그래도 딱 한 번은 보고 싶은 걸. 어쩐다지?'수차례를 되묻는 사이 거울 앞에 내가 앉아있다.

 

거울 속에 나이 든 여인이 푸하하하, 순진한 4학년짜리 웃음으로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고 있다. 카톡 하는 동안 내내 지우고만 싶던 눈 주위 자글자글한 주름살이 이 순간 참 자연스럽다. 입가의 팔자 주름을 쓰다듬어본다. 전혀 눈에 거슬리지가 않다. 다시 한 번 웃음이 난다.

 

나는 이제 거의 6주 만에 스마트폰의 비밀 잠금 설정을 해제한다. 언제 왔는지 내 눈동자 안에 깜찍한 딸아이가 들어와 방긋 웃고 있다.

 

 

* 아동문학가 신명진 씨는 2006년 '아동문예'로 등단, 동시집 '꽃김치'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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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용 kimwy@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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