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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들의 편지

'선생의 편지에 많은 위로를 받았고, 선생의 안녕과 복됨을 기원합니다. 무릇 공부라는 것은 단지 기질의 변화일 뿐이니, 자신을 꾸짖어 책하는 것에 이르면 스스로 진실된 기쁨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중략- 보내주신 참먹은 긴요하게 쓰겠습니다./전남 화순 출신 의병장 기우만(1846~1916)이 쓴 감사 편지'

 

편지는 일기처럼 개인적인 글이다. 지금은 이메일과 휴대전화 문자가 편지의 기능을 대신하고 있지만, 인터넷 시대가 오기 전에는 안부나 용건을 적어 보내는 편지가 중요한 일상이었다.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를 살았던 옛 사람들은 특히 편지를 많이 활용했는데, 그들이 남긴 편지는 당대의 정치 경제 사회상을 읽게 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조선 후기 사상가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가족과 친지에게 보낸 편지도 그중의 하나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아들과 제자들에게 많은 편지를 보냈다. 아버지의 자상한 사랑과 스승의 정이 넘치면서도 더 좋은 세상을 향한 사상과 의지를 담고 있는 이 편지들은 오늘에 이르러서도 소중한 깨우침을 전하는 인생교훈의 지침서로 읽힌다.

 

국립전주박물관이 지난 연말부터 열고 있는 '옛 사람들의 편지글'전에서 만나는 편지도 감동과 교훈이 크다. 휴대전화 문자만으로 안부를 주고받는 오늘의 일상에서는 좀체 찾아볼 수 없는 정과 사랑이 그대로 담겨 있는 이 편지들은 황병근 전 전북도립국악원장이 박물관에 기증한 유물이다. 조의를 표하고, 사돈댁과 친척에게 인사를 전하고, 바쁜 농사일에 매달려있는 고통을 토로하고, 관직을 떠난 선비가 어지러운 정국을 걱정하고, 장성한 아들에게 애틋한 사랑을 전하는 등 사연도 목적도 다양하다. 대부분 내용이 흥미롭지만, 특별히 눈길을 모으는 편지가 있다. 아들의 결혼을 반대하다가 결국 허락한 아버지의 편지다.

 

'여재공(呂才公)의 점법은 엉터리이고 소강절(邵康節)의 점법은 배운 적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과(孤寡)의 점법으로 논하면 바로 남자는 고아가 되고 여자는 과부가 되는 팔자라 세상에서 꺼린다고 점괘에 나옵니다. 그래서 저는(혼인을 허락할 마음이) 전혀 없었는데, 아들이 더욱 마음을 두어 하는 수 없이 제 마음대로 하게 하였습니다. 이른바 '늙은이가 젊은이를 이길 수 없는 법'이라고 하겠지요. 사람의 화복은 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모두 하늘과 인연에 맡겨야 하나봅니다. 시절은 달라도 사람살이는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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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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