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그의 초기 시는 '가을의 어휘'처럼 자연 서정에서 출발하였으나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서는 왜곡되고 억압된 현실과 사회적 불의에 대한 비판 및 민중의식으로 전환, 리얼리즘의 성향을 보여주고 있었다.
소를 팔 때 나는 울었다.
아버지를 따라 읍내 쇠전에 갔을 때
젖이 불어 새끼를 찾는 소들이
젖이 그리워 어미를 부르는 소들이
말뚝에 매여
그 무엇보다도 길게 울음을 보내고 있을 때
나는 소로 태어나지 않은 것이 고마웠다.
- 중략 -
나는 소가 불쌍했다.
제가 지닌 노동력을 다 주었고
밑거름을 빚어 제공했으며
제가 숙일 수 있는 머리를 끝까지 숙여
마지막엔 제 살 뼈 가죽까지 바쳤어도
소가 소 이상일 수 없는 소
―「쇠전의 애가」 부분, 1982
소는 순박하고 친근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소는 '소'라는 운명의 고삐에 얽매여 일생을 주인을 위해 고된 노동만을 일삼다 끝내는 무참하게 도살당하고 만다. 이러한 소의 운명 앞에서 소에 대한 시인의 연민과 분노는 뜨겁다. 그것은 소가 끝내 소일 수밖에 없는 '운명에 순종하는 소'가 아니라, 그 '운명에 도전'하여 보다 넓은 세계로의 탈출을 꿈꾸는 '무서운 뚝심'이 시의 내면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의 초기 시는 '소의 운명처럼 고삐에 얽매여'억압된 현실을 벗어나 보다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을 열망한다.
눈물은 꽃이다. 눈물이 없으면 별은 반짝이지 않고 눈물이 없으면 마음꽃은 향기를 품지 못한다. 눈물은 반짝이며 흐르는 향기이고 내가 당신에게로 흘러가는 사랑이다.
눈물은 만나서 바다가 되는 큰사랑이다. 눈물을 마음껏 흘리자. 흘려서 가슴속에 퍼담자. 눈물이 마른 가슴은 돌이고 어둔 허공이다. 그래, 가슴이 예쁜 사람은 눈물도 아름답다. 아름다운 눈물을 퍼 담는 일은 나와 당신이 만날 수 있는 희망이다. 가슴이 넓은 사람에게는 눈물과 사랑도 많다. 그러므로 눈물은 일평생 길눈 뜨고 손잡고 갈 발을 따뜻이 적셔준다. ― 「눈물」 전문, 2010
논리적이고 명쾌한 은유로 엮어져 있다. 여기에서도 남다른 형이상학적 인식의 깊이와 통찰로 그의 시는 보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생명 미학, 곧 휴머니티를 추구하고 있다. '눈물'은 인간 본연의 순수와 진정성 그 자체로서 공자가 일찍이 말한 '사무사思無邪'의 세계와 동맥을 이루고 있는 시적 뮤즈Muse의 다른 이름이다. 이러한 '눈물'이야말로 메마른 우리의 가슴에 '꽃'을 피우게 하고, '반짝이게' 하는 '별'이 되어 '당신의 바다'에 다가갈 수 있는 '사랑'이라고 그는 말한다.
굴절된 역사와 사회적 모순에 대한 인간적 갈등으로부터 시작된 그의 치열한 리얼리즘은 차츰 이러한 철학적 사유의 명상을 거쳐 삶의 궁극과 존재의 본질 탐구에 보다 핍진逼眞하게 다가가는 새로운 서정미학의 구축으로 생의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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